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의 정치학 Scrapbook: 쇠말뚝은 없다: 파묘, 오락으론 100점 작품으론 40점

2024-03-03

쇠말뚝은 없다: 파묘, 오락으론 100점 작품으론 40점

1980년대말이나 1990년대 초중반에 KBS마저도 "쇠말뚝"과 "민족정기말살"...

Vladimir Tikhonov

1980년대말이나 1990년대 초중반에 KBS마저도 "쇠말뚝"과 "민족정기말살" 이야기를 계속 보도하곤 했습니다. 공영 방송이 어느 정도 검증된 내용만 내보내야 하는데, 그 당시 분위기에서는 "묻지마 민족주의"의 범람을 억제하기가 힘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군사 독재 시절에 거론조차 제대로 못했던 식민지의 역사적인 트라우마들은, 제도적 민주화 이후에 막 폭발되듯이 분출된 거고, 그 과정에서는 매체의 힘을 타서 각종의 유사 과학적인 "가설"들도 파져 나갔습니다. 지금 학계에서는 "쇠말뚝"을 진지하게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데 일반 사회에서는 아마도 한 때의 뉴스나 방송 프로그램을 기억해서,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 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좀 계실 겁니다.

"쇠말뚝"은 종종 발견되는데, 지질학적/지형 조사용으로 사용됐을 시설이라고 여겨집니다. 총독부는 근대적 식민 통치를 목적으로 하여 풍수지리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구관조사" 차원에서 풍수까지 포함해 "조사"만 한 것입니다. 조선인 "민족정기 말살"이라면 공립 학교에서의 일본어 교육 등은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을 겁니다. 1929년생 김시종 시인, 제주도에서 일본 공립 학교에 다녔다가 8.15 일제 패전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울었다고 나중에 회상을 하시더라고요. 그 만큼은 일본식 교육이 그 일부의 수혜자들을 "충성스러운 신민"으로 만들 가능성은 있었어요. 물론 그들도 일인들의 차별을 당하게 되면 "천황폐하의 일시동인" 등을 의심하게 되고 그랬죠. "쇠말뚝"은 굳이 필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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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은 없다: 파묘, 오락으론 100점 작품으론 40점
김훤주2024년 03월03일.

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에 관한 아주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모티브와 설정에 관한 것이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강한 스포일러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파묘] (2024. 장재현) 쇼박스.

나는 영화 ‘파묘’가 불편했다

영화 ‘파묘’를 보았다. 이승만에 대한 가짜뉴스를 영화로 퍼뜨리는 어떤 감독이 ‘좌파들이나 보는 영화’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그렇다면 나도 봐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네 영화관으로 갔다. 나는 지난 40년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좌파였다.
처음에는 제법 몰입되었다

편하게 자리에 앉아 보는데 처음에는 제법 몰입이 되었다. 우리나라 토속 신앙 풍수가 펼쳐지는 도입부는 대단했다. 일제강점기에 엄청나게 누렸던 친일파의 후손으로 미국서도 최상류인 ‘밑도 끝도 없는 부자’ 집안 이야기라기에 기대는 더욱 커졌다.

나아가 ‘대한민국 0.1% 상류층에게 풍수는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식의 멘트가 터져나올 때는 더욱 그랬다. 그들이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려고 저지르는,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세계가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풍수 김상덕, 장의사 고영근, 무당 이화림, 고수(鼓手) 윤봉길 등 주인공의 연기도 대단했다. 친일파의 후손 박지용과 그 고모, 그리고 보국사의 보살 등 조역들도 볼만했다. 그들의 연기는 모두 끝까지 눈길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빼어났다.

마지막은 기억조차 남지 않더라

그런데 갈수록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연기는 세련되게 펼쳐졌지만 초반을 넘기면서부터 조금씩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첩장’, ‘쇠말뚝’, ‘수호 정령’ 이런 얘기가 등장하면서부터였지 싶다.

이거 너무 뻔한 영화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미 수백 번은 우려먹은 상투였다. 영화는 시시해졌고 마음은 불편해졌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지켜보았는데도 마지막 마무리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친일파 무덤의 파묘를 통해 풍수와 무당 또는 우리 무속 신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영화는 일본 정령이 난폭하게 설쳐대는 장면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 탓에 영화에 대한 집중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파묘] (2024. 장재현) 쇼박스.
쇠말뚝은 오랫동안 정설이었다

‘파묘’는 일제가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쇠말뚝을 박았다는 데에 바탕하고 있다. 영화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고 표현했다. 핵심 소재인 친일파의 무덤도 알고 봤더니 일제가 쇠말뚝을 박은 위에 일본 수호 정령을 심고도 모자라 한 번 더 둘러씌운 것이었다.

감독 장재현은 어느 인터뷰에서 일제 쇠말뚝 민족정기 말살론을 두고 ‘가설’이라고 했다. 영화에서는 풍수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주고받는 대화로 나온다. 영근은 “그거 99% 거짓말이잖아”라 하고 상덕은 “그렇다 해도 나머지 1%는 어쩔 건데” 하는 식으로 받아친다.

돌이켜보면 이 ‘일제 쇠말뚝 민족정기 말살론’은 오랫동안 정설이었다. 그래서 뽑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기도 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1980년대에 형성되고 1990년대에 절정에 이르러 2000년대와 2010년대 중반까지도 그 기세가 이어졌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당시 기사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조중동과 한겨레·경향, 그리고 KBS와 MBC를 가리지 않고 다들 쇠말뚝 뽑는 장면을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이런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무슨 민족정신선양위원회나 쇠말뚝뽑기운동본부 같은 것도 있었다.

민족정기 말살용 쇠말뚝은 없었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쇠말뚝을 박은 적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까지 일제 쇠말뚝으로 보도된 대부분은 측량을 위한 것이었고 심지어 일부는 해방 이후에 박은 쇠말뚝도 있었다. 물론 측량용이라 해도 일제가 박은 쇠말뚝이라서 께름칙하니까 뽑아내자고 하면 누구나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이렇게 결론이 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를 뒷받침하는 일제의 기록이 전무하다. 일본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기록을 많이 남기는 민족이다. 그런데도 일제 40년 동안 생산된 문서에서 이를 입증하는 기록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둘째는 일본은 풍수지리설을 믿지 않는다. 땅에 혈(穴)과 맥(脈)이 있고 그런 지기(地氣)에 따라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이 숱한 경비와 물심양면의 노고까지 들여서 일부러 쇠말뚝을 박아야 하는 까닭은 없다.

물론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풍수와 귀신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조사했고 그 내용은 책으로 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식민 통치에 활용하기 위해서였지 풍수와 귀신을 믿거나 존중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일제, 우릴 두려워한 적도 없다… 우릴 멸시했다

셋째는 일제는 우리 한민족을 두려움이나 경계의 대상으로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쇠말뚝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조선 사람들이 민족정기를 되찾을까 봐 두려워하거나 걱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 민족을 대하는 기본 태도는 경멸과 무시였다. 자기네와 견주었을 때 모든 면에서 열등하고 무능한 족속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더럽다면서 능멸하고 지능이 떨어진다면서 멸시하고 게으르다면서 차별했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일제강점기 진해 신시가지 입구에 세웠던 ‘입입금지(立入禁止)’ 표지석이다. 일제는 진해를 빼앗아 해군기지를 설치하고 그 배후시설로 신시가지를 건설했다. 예전부터 거기에 살던 조선 사람들은 주변 지역으로 내쫓았음은 물론이다.

일본말 입입금지는 우리말로 출입금지다. 왜 그랬을까? 군사 기밀 보안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질서 유지 치안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진해박물관에 남아 있는 당시 기록에 따르면 ‘위생상 문제’였다. 더럽다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면서 능멸을 일상화했던 것이다.

1930년대 진해읍 중원로터리. 출처는 남도민일보.

국뽕은 애국주의와 다르다

‘국뽕’과 ‘애국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근거 없이 꾸며내어 민족과 국가를 떠받드는 것이 국뽕이라면

국가와 민족을 떠받들기 위한 과장이나 왜곡이 어느 정도 있다 해도 그 바탕에 실재하는 사실이 있다면 애국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영화 ‘파묘’는 겉으로 일제 청산 또는 반일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잇속을 밝히는 ‘국뽕’ 장사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 일반 대중을 상대로 없는 사실을 실재하는 진실인 양 믿도록 만드는 가짜뉴스다.

일제 쇠말뚝 민족정기 말살론을 두고 한편으로는 가설이라 하면서도 실제로는 역사적 사실인 듯이 스토리를 진행한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화 ‘파묘’는 별 생각 없이 그냥 즐기기 위해 보는 오락 영화로는 100점짜리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이 있고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40점에도 미치기 어렵다고 본다. 그나마 40점이라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그만큼 탄탄한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화림(김고은)은 무당이라기보다 무당집 딸 같아 보여서 그만큼 아쉬웠다.

이화림(김고은)의 굿판 장면. [파묘] (2024. 장재현) 쇼박스.

김훤주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대표.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 갱상도닷컴

4 댓글
야 댓글:
2024년 03월03일., 12:44 오후

이런 ㅂㅅ같은 글도 올릴수 있나요?

야대냐ㅑㄷ 댓글:
2024년 03월03일., 12:45 오후

친일파 매국노들은 얼마나 이영화가 싫을까 근데 500만 돌파? ㅋㅋㅋㅋ ㅂㅅ새기들 나가뒤지세요

파묘봤는가 댓글:
2024년 03월03일., 1:19 오후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글입니다.

자신을 좌파라고 하면서 시작하는 것도 설정 같고 영화를 무슨 다큐로 보는 시각도 이해할 수 없고 일본의 식민지사관을 얼마나 알기에 다 아는 척하며 단정 짓는 것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글 쓰는 진중권 같은 느낌이랄까?
까기 위해 이유를 만들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미상 댓글:
2024년 03월03일., 6:35 오후

아..귀신같은 존재는 현실에 있고?

애초에 영화적 장치를 현실에 있니 없니 하는 이야기를 왜 하는건지..

뇌의 100%를 활용한다라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더니 그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거에요~ 라며 잘난척 하는 사람들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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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에 관한 아주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모티브와 설정에 관한 것이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강한 스포일러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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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sang Jeong

저는 쇠말뚝을 직접 보았습니다. 길이는 150센티미터고 지름은 5센티미터 되는 정도의 쇠말뚝이었습니다. 지리산 법계사에 가시면 실물을 볼 수 있습니다.

40 m

Edited

Author

Vladimir Tikhonov

Dosang Jeong 네, 아마도 지형 조사 (해발 고도 확인 등)용이 아니었을까, 사학계에서 짐작들 합니다.

37 m

Okjin Park

쇠말뚝이 일본이 했다는 근거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미군이나 한국군이 설치한 경우도 많고 무당등이 설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애초에 일제시대 쇠말뚝이 관리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지금까지 남아있기 힘듭니다. 결국 산등지에서 발견되는 쇠말뚝중 미군이나 한국군, 한국정부, 무당이나 기타 한국 회사등에서 설치한게 아닌 실제로 일본에서 박았다는 쇠말뚝은 남은게 거의 없고 남아 있다고 해도 거의 다 지도제작용등이 극히 일부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2 m

Jungyoon Byun

일제가 한반도에 박은 진짜 쇠말뚝은 경성제국대학입니다. 이게 지금까지 한국 지식사회의 기맥을 끊고 있죠. ㅋㅋㅋ

19 m

곽영섭

쇠말뚝을 지형조사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렇다면 그것을 누구를 위해 왜 했을까요? 단순히 '쇠말뚝은 지형조사를 목적으로 사용했어'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일본이 꼭 우리에게 잘못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야'라고 쉽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일제시대 경부선 호남선 신작로 전기시설 각종 산업 시설이 우리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론은 딱 한가지 일본은 한반도를 영원한 식민 지배를 목적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26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