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8

조국신당의 약진이 만들어낼 세상은 윤석열의 전제주의보다도 위험할지도 모른다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

조국신당의 약진이 만들어낼 세상은 윤석열의 전제주의보다도 위험할지도 모른다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



조국신당의 약진이 만들어낼 세상은 윤석열의 전제주의보다도 위험할지도 모른다
한국정치노동/인권/사회+1사상/철학/역사+1

혁명읽는사람·독서가
2024/03/17

조국 교수 출처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377
'돌풍'이라 표현해야 할 조국신당의 약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내게 묻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때마다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곤혹스럽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건대 나는 이 현상을 지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인 한 분께서 조국과 직접 대화를 하셨는데 이번 총선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내게 알려준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래도 이 양반이 사리분별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건 아니구나, 하고 안심했다. 그게 조국 개인에게도, 그리고 조국(祖國)에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가 출마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한국사회가 조국이 총선에 나왔을 때 그의 도덕성 등을 문제삼으며 비판하고 낮은 지지율로 응답할 것이라 예측하였다. 여기서 '인민'들의 "수준"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건 별 의미가 없다. 이게 주어진 현실이라는 점만 인정하고 가면 된다.

변명하자면 나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이들이 조국신당의 약진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다고 말해줘)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그가 나서더라도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 모두 틀렸다. 여기서 내가 이러쿵저러쿵 예측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가 사회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잘못된 건 나지, 세상이 아니다. 이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과 별개로 지금까지의 나의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분석을 개시하는 건 별 의미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분들께서 의견을 여쭤봐주셨지만 나는 이에 대해 설명할 생각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글을 쓰려고 하였지만 끝내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비평가는 어찌됐든 '현상'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 정도는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살다살다 이렇게 자신없는 비평은 처음 해본다. 현상적으로 볼 때 민주당의 이재명이 사법리스크 등의 여러 제약조건으로 인해 대(對)정부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일부 민주당 지지층이 조국신당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분석 자체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분석 자체에는 "대체로" 동의를 하지만 사실 이준석의 개혁신당, 이낙연의 새로운미래, 녹색정의당 등의 제3지대로 갈 수 있던 지지까지 모조리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당에 단순히 이를 민주당과의 관계속에서만 생각할 수는 없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적처럼, 그리고 조국의 공언처럼 제3지대로 갔을지도 모를 이들까지도 조국신당의 자장 안에 포섭했다는 점에서는 대중엑 소구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다.

지금 이 사태에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음미해야 할 지점은 조국신당의 약진이 한국 정치구조 속에서 지니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양당제적 구도에 균열을 내고 궁극적으로는 독일형의 비례대표제로 바꾸려 했던 여러 정치개혁의 기획들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귀결되면서 나타나는 효과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작금의 정치적 형세만 놓고 볼 때 나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안토니오 그람시를 떠올리게 된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관통하는 '진지전'과 '기동전'의 조합을 민주당 진영은 대단히 자연스럽게(!) 이뤄내고 있다. 양당제적 구도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시도가 역설적이게도 특정 정치집단을 비례대표정당과 지역구정당으로 양분하여 전자가 기동전을, 후자가 진지전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되려 양당제를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국신당의 등장과 함께 정치적 구조 자체가 변모하게 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대표 정당이 있었지만 그것의 존재의의는 지금과 같이 강렬하다기보다는 보수진영의 준연동제 활용에 대한 방어적 대응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국신당은 그와 전연 다른 의미에서 움직인다.

'개딸', '포퓰리즘', '팬덤' 등의 이름으로 범주화되던 민주당의 열성지지자들은 아무리 많은 비난을 받았을지라도,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정당정치에 개입하며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의원들을 움직이고자 했을지라도 정치의 '외부자'에 가까웠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지도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별개로 개별적인 국회의원들의 행동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문자폭탄, 항의전화 등을 통해 해당 국회의원들을 괴롭히거나 정당에서 나가도록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조국신당이 성공하게 된다면 사태는 달라진다. 이제는 열성지지자들이 직접 정치적 행위의 주체가 된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대표하고 대변하는 이들이 정치에 뛰어들어 하나의 '기동전'을 펼치게 될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제를 활용하여 앞의 사람이 사퇴하면 뒤이어서 계속 새로운 이들이 충당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기본적인 의의는 여기서 찾아져야 하지 않는가 한다. 기존의 대중운동으로서의 열성지지자들의 활동이 이제는 비례대표제라는 제도를 매개로 하여 의회 내의 '정당'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원외의 대중적인 정치운동이 정당을 매개로 정치에 개입하더라도 개별 의원들이 지닌 지역구라는 자립적인 영역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대중이 직접 선출하는 정치인들이 지역구라는 자립적 기반 없이 대중의 의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만 한다. 대중의 집단적 의사가 어떠한 매개작용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입법부 내에 구현되는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긍정할지도 모르겠지만 대의제의 매개적 작용을 중시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재앙'에 가까운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의회에 진입한 조국신당과 같은 비례대표정당은 무엇을 하고자 할까? 조국신당이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조국의 검찰개혁론에 근거해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 조국신당이 내세우는 검찰개혁의 의제들 또한 이러한 대중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매우 강조한다. 대표적인 게 '검사장 직선제'이다. 조국 대표는 미국의 검사장 직선제 제도를 한국에 도입하여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행하겠다고 주장한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검사가 2년마다 순환근무를 하는데 직선제를 도입하게 되면 임기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연임까지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검찰의 기존 권한에 민주적 정당성까지 부과된다. 검찰의 전횡을 비판하겠다는 이들이 검찰에 민주적 정당성까지 부여해주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직선제로 개혁을 하면 자신들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 없이는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검찰의 힘을 꺽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왜 그들에게 자율성을 부과하는 것일까? 조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지금 검찰이 정치권으로부터,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직선제를 해야 한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2019년의 기사이다. 

"민주주의 핵심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통제받아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미국은 검사장 직선제를 하죠. 미국에서 검사장은 주민들 선거로 뽑기 때문에 인사와 예산을 자신이 쥐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갖고 있어요. 물론 검사장 직선제는 훨씬 더 정치적인 문제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검찰 독립을 말할 때 이걸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선제라고 보고요. 제가 지금 이걸 하자는 것도, 우리가 지금 그런 제도를 택하고 있는 것도 아니죠. 넓은 의미에서 보면 검사도 행정 관료거든요. 열심히 공부해서 검사가 되고 이른바 ‘관료 트랙’에 타는 건데, 어떠한 관료라고 하더라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통제받아야 합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377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은 주장이다. 조국은 지금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는 것과 직접 선출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윤석열을 조국은 왜 비판하는건가.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행정시험을 쳐서 임명되는 모든 관료들을 다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수만명에 달하는 관료, 직업군인 등의 모든 이들을 다 선거로 뽑지 않고서는 모두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해야 할 지경이다. 차라리 아테네 식의 '추첨제'를 택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조국이 말하는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본래적인 의미란, 관료제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뽑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우리가 '선출직'을 뽑아서 관료들이 그들의 '통제'를 받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통제에 대한 '책임'을 선출직들이 지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행해지고 있다. 검찰총장을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정치지도자, 선출직의 통제 하에 둠으로써 검찰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이미 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책임정치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근본적인 까닭은 '책임의 주체'로서의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퇴임하고 나면 그만이다. 그나마도 문재인과 같이 정치적 부담을 지는 게 싫어서 윤석열을 통제하지 않으면 더 책임지기 어렵다. 정치적 책임을 회피해버렸기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책임을 묻고 싶다면 문재인을 먼저 비판해야 되는데, 왜 멀쩡한 제도 탓을 하는 건가. 문재인이 집권 5년동안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며 정치적 책임은 자신이 진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한번도 없다. 그는 조국이 수사당할 때도 윤석열도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라고 말하며 사실상 방조하던 이였다.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지도자가 있을 때는 어떠한 제도도 작동할 수 없다.

 물론 지금의 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치적 책임을 질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관료제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민주화'하여 그에 일정한 '정치적 책임'을 부여하려는 조국과 조국신당의 대안이 가져올 문제가 훨씬 더 크다. 대중운동에 의해 관료제의 자율성이 침식되고, 계속해서 검찰 등의 행정부뿐만 아니라 판사 등의 사법부마저 다 '민주적'으로 선출된다면 선출직 대표자들이 정치적 '책임'을 질 일도 없어지겠지만 관료제에 책임을 묻는 건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들이 정치적 정당성마저 쥐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 누가 그것을 막을 것인가?

예를 들어 미국의 검사장 선출 자체는 조국이 인정하고 있듯이 정치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검찰권을 남용하기 시작하면 도대체 그걸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미국에서도 소수인종에 대한 수사를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바람에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만약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검사장이 직선제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상황에서 민주당을 이잡듯이 조사하며 공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보았듯이 특검이 이러한 방식으로 검찰개혁에 대응했을 때 문재인, 조국 등이 인정하듯이 참여정부는 검찰에 대한 통제가 자칫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려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에 특검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것을 반성한 이들이 어째서 검찰조직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조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게 한번 "독립"하게 된 검찰을 다시 복종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검찰을 통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검찰과 경찰과 같은 '국가폭력'에 의해 침해된 개인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장해주는 것이다. 검찰, 경찰 등의 수사에 의해 피해를 받은 개인들의 권리에 대한 보호가 강력하게 이뤄지면 이뤄질수록 검찰이 져야 하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사를 행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정한 정도의 선별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소고발이 들어올 때마다 검찰이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수사하고자 한다면 아마 검찰 조직은 하루도 제대로 버티지 못할 것이다. 닭잡는데 매번 소잡는 칼을 쓰면 소는 누가 잡겠나. 결국 일정한 정도의 선별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선별과정의 '정치성'에 대한 비판의 정당함과 별개로 선별과정이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왜곡에 의해 피해입는 이들에 대한 보상을 더 강하게 하는 수밖에는 없다. 노무현이 로스쿨을 만들어서 더 많은 변호사를 공급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문재인,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오월의봄, 2011을 참고하라)

개인의 권익을 보장하는 방향의 개혁을 하며 관료제에 대한 선출직의 '정치적 책임'을 강제하기 위한 정당 개혁을 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아가는 듯하다.

대중운동에 기초하여 개혁을 급진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비례대표정당의 출현이 국가폭력기구의 자율성을 위한 대중적 기반의 마련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이 과정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당제적인 구도가 다당제로 개편되는 과정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할 듯하다. 다당제적 구조 속에서 대중운동의 급진성에 기초하여 국가폭력기구의 자율적 기반이 확장되는 과정은 분명 양당제에 의한 전제주의적 지배보다도 시민사회의 발전에 더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조국신당이 정말로 성공하여 그 자신이 기획하는 검사장 직선제 등의 여러 '개혁안'들이 구현된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좌파 정당들이 이 사태를 보다 엄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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