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8

북조선의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가능한가? - 김병연을 사례삼아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

손민석

북조선의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가능한가? - 김병연을 사례삼아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통일론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김병연과 양문수의 북조선 경제 연구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봅니다. 특히 김병연의 연구는 그의 사회주의 체제이행 연구 및 비교 자본주의론에 입각하여 전개되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적인 즐거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제재를 통한 북조선의 체제이행을 꾀하는 그의 논리는 너무나도 정교하기에 역설적으로 막상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구멍'들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비판에는 능할지 몰라도 정작 실무의 영역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한계가 크다는 것이지요. 특히 그의 경제학은 대단히 '근대주의적'인 전제 위에 성립하고 있는데 핵무장을 체제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으로 여기는 듯한 북조선 지도부의 '비합리적'인 의지가 바로 그 기본적인 전제들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병연 연구의 한계를 찾아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래도 좋은 연구들이 많으니 다들 한번씩 읽어보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담아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자 한다면 김병연은 자신의 정교한 논리구성이 현실에서 통용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무능력과 무지를 질타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특정한 행위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과 사회의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그의 굳은 신뢰는 대단히 '근대주의적'이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에서 근대주의적이라 평가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제시하는 논리의 많은 전제조건들에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전체 논리체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북조선의 비핵화 의지다. 내부 자료를 검토하지 못해 근거를 갖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내가 느끼기에 지난 30여년의 북조선의 핵무장화 과정을 살펴본다면 그들이 과연 비핵화의 의지를 단 한번이라도 품고 있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북조선은 1990년대 이래로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핵무장을 택했고, 어떠한 시련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택지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적어도 북조선 지도부 내에서는 이미 이뤄진 듯하다. 비핵화가 제재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김병연의 '합리적'인 주장은 북조선 지도부의 "비합리적"인 의지에 의해 무너지는 듯하다. 나는 북조선이 비핵화를 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렇게 가정한다면 한국에게 남은 선택지는 핵무장 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고, 나는 대체로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남은 건 미국과 일본이 그것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한국의 진보파들이 그것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동북아의 질서를 보다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주장을 할 만큼 지금의 현실은 비현실적이다. 다른 선택지가 있기를 바라고, 솔직하게 말해서는 지금의 현상황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갈등을 끊임없이 유예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지 않은가 한다. 핵무장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시하고 그 역량을 축적하면서도 갈등의 유예를 통한 시대전환의 계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듯하다."






북조선의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가능한가? - 김병연을 사례삼아 by 혁명읽는사람 - 얼룩소 alookso

북조선의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가능한가? - 김병연을 사례삼아

혁명읽는사람
2024/03/15
김병연 교수 출처 :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531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사회주의 체제 이행기를 연구한 학자이다. 나는 이분의 연구를 꽤나 열심히 읽었는데 배울 점이 참 많은 연구자라 많이 추천한다. 그의 정치적인 성향은 명백하게 보수적이다. 그는 자유, 시장경제, 민주주의 등의 가치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느 칼럼에서 그는 광복의 완성은 통일이라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 북조선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대등한 하나의 체제가 아니라 남한에 의해 '자유화' 되어야 할 미수복지에 가깝다. 그의 체제이행론 연구는 이 지점에서 북조선을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킬 것인가, 라는 대단히 흡수통일적인 논리로 변모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 내내 그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칼럼, 연구 등을 수행하였다. 얼마나 가열차게 비판을 했는지 그런 그의 태도가 문재인 정부 말기에 김병연의 이름으로 통일을 하면 남한 인민의 소득의 절반이 날아간다는 '가짜뉴스'가 나돌게 만들 정도였다. 사회주의 체제이행을 연구한 그는 이제는 북조선의 체제이행으로서의 '통일'에 대해 깊게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들은 모두 상당히 수준높은 연구들로 읽어보았으면 하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양문수 등과 행한 북조선의 장마당 연구부터 시작해서 중국 동북 지방에서 북조선 기업들 및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기업들을 상당히 많이 인터뷰한 연구까지 그의 연구는 대단히 열정적이고 현장중심적이라 보고 배울 게 많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그의 논리는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하면서 그는 자신의 통일 논리를 상당히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사실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보수적인 정치 성향만 갖고 있지 않다면 한국의 진보 정부의 통일정책은 대체로 '점진적'인 통일론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병연도 마찬가지로 점진적인 통일의 전개를 주장한다. 그의 점진적 통일론을 요약하자면 ‘비핵화→경협→통합→통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현재의 낮은 경제개발 수준의 북조선과의 급진적인 통일은 한국에 대단히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북조선도 자체적인 경제개발을 이룩해야 하고 그러한 경제개발이 한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질 때 비로소 경제협력이 정치적 통합으로 이어지며 통일로 완성될 수 있다. 이 모든 통일화 과정의 전제조건은 북조선이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여러 논리들은 모두 어떻게 북조선의 비핵화를 유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의 논리전개에는 몇가지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는데 그것들 모두를 충족시키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점이다.

우선 첫째로 북조선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야 한다. 김병연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중국이 북조선의 경제성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북조선의 대중무역은 북조선에게 있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북조선에 어떠한 기술 이전, 자본투자 등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북조선 경제가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주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중무역 과정에서 북조선의 생산물들은 본래의 가격보다도 낮게 책정되어 판매된다. 동일한 상품을 다른 국가들보다도 30%나 낮은 가격으로 중국측에 판매한다고 하니 북조선으로서는 그에 대한 불만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김병연에 따르면 현지조사에서도 이에 대한 북조선 측의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 자주성을 강조하는 나라다보니 인민들도 중국이 북조선을 예속경제로 만들려 한다는 반발이 큰가보다. 이런 맥락에서 김병연은 북조선이 경제개발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좋은 이웃"을 두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한국, 일본, 미국 등의 자유진영이다. 이때 그는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미국의 시혜를 든다. 미국에 대한 그의 예찬은 듣기 거북할 정도이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첫째 요인을 기억해두시라. 그의 모든 논리는 궁극적으로 이것으로 수렴된다.

다음 둘째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경협의 추진보다 효과가 있어야 한다. 김병연이 문재인 정부를 가장 격렬하게 비판한 요인인데 민주당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협력이 북조선의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국제제재에 균열을 내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 자료와 추측을 동원한다. 장마당 시장경제에 유입되는 달러 규모를 추정함으로써 제재로 인해 그 규모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추계하는 '통계분석'뿐만 아니라 북조선의 김정은의 담화를 분석하여 "현재의 상황은 자립갱생과 제재 간의 대결"이라는 북조선의 현실인식 자체가 제재의 효과를 증명한다고 주장하는 등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국제제재가 효과적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계속해서 통용되기 위해서는 앞서 첫째로 지적했던 중국이 북조선의 경제개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계속해서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건 러시아와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김병연의 입장에서 제재가 계속해서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북조선이 계속해서 봉쇄되어 있어야 하며, 설사 교류가 존재하더라도 북조선의 경제개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한때 상당히 무리한 주장까지 하였다. 제재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재를 견디지 못한 북조선이 비핵화에 나올 때까지 더 강하게 북조선의 경제를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위해 북조선의 인민들을 더 굶겨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 그의 독자로서의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이러한 비윤리적인 논리의 도출은 아마도 그의 논리체계가 그만큼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논리는 제재만이 북조선을 비핵화로 유도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여 그에 맞춰서 이런저런 가정을 끼워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통계적인 방식과 많은 자료를 통해 세련되게 보완되었지만 그의 논리구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기에는 너무나도 틈이 많다는 걸 금새 알 수 있다. 치밀한 논리적 구성이 역설적이게도 그 논리적 전제조건들의 실현불가능성 때문에 대단히 많은 논리적 '구멍'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김병연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비핵화'의 길은 너무나도 '좁은 회랑'으로 우리를 유도하고 있으며, 오직 그 '좁은 회랑'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식으로 논리가 구성되어 있다. 그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이 김병연적인 대북제재의 세계에서는 단 하나의 '작은 구멍'이라도 뚫리면 안된다. 그렇기에 그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도무지 할 수 없는, 북조선 인민들이 더 큰 경제적 곤란에 빠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북조선의 경제제재의 효과를 위해 철통같이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보여주기식의 민간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상당히 모순적이고 냉혹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셋째 북조선의 자율적인 외교영역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김병연은 북조선이 일본과 수교를 하거나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에 있어 큰 진전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그의 치밀한 논리는 그의 보수적인 정치성향과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만약 일본이 비핵화 없이 북조선과 수교를 한다면 그것은 한미일 연대에 균열로 해석된다. 북조선의 자율적인 외교적 행위는 그에게 있어 한미일 간의 연대를 통해 선제적으로 봉쇄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서 북조선을 제외한 전세계가 북조선의 비핵화를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 현실화될 수 있는 가정일까?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활용하여 북조선과 러시아 간의 연대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미 이 지점에서 김병연의 '좁은 회랑'은 더 이상 건너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아져버렸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금 첫째 요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택한다.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이나 러시아를 통한 제재 우회가 궁극적으로 북조선의 경제개발 및 체제유지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의하는 바이지만 논리구조상 자기순환적일 뿐만 아니라 구차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의 모든 논리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사회는 미국처럼 다른 사회에 경제성장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그러한 인식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건 현재로서 그렇다는 것이지 영원히 그 전제가 계속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미국과 독자적인 경제적 영역을 건설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10년 안에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한다면 정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가 미국이라는 엔진 외에 중국이라는 또다른 엔진을 갖게 되는 것일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김병연의 논리체계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또한 제재의 효과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학자 스키다 히로키의 저작 <미국의 제재 외교>의 결론이기도 한데 미국이 1990년대 이후 제재를 남발하는 바람에 제재의 효과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컨대 서방의 경제제재는 북조선과 달리 러시아의 상황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이미 2014년 이래로 너무 강력한 서방의 제재 하에 놓여 있었고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장해왔기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김병연 또한 이를 알고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북조선 또한 경제제재를 우회할 경로를 쉽게 만들 수 있으며 그럴 기회가 이미 주어지고 있다. 여기서 김병연과 그의 독자인 우리는 다시금 첫째 요인으로 돌아간다. 그렇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 주도의 세계시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해당 사회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동의할만한 주장이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질서가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법이다. 현실이 변하면 논리도 변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모델이 너무 정교하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자 한다면 김병연은 자신의 정교한 논리구성이 현실에서 통용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무능력과 무지를 질타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특정한 행위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과 사회의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그의 굳은 신뢰는 대단히 '근대주의적'이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에서 근대주의적이라 평가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제시하는 논리의 많은 전제조건들에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전체 논리체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북조선의 비핵화 의지다. 내부 자료를 검토하지 못해 근거를 갖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내가 느끼기에 지난 30여년의 북조선의 핵무장화 과정을 살펴본다면 그들이 과연 비핵화의 의지를 단 한번이라도 품고 있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북조선은 1990년대 이래로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핵무장을 택했고, 어떠한 시련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택지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적어도 북조선 지도부 내에서는 이미 이뤄진 듯하다. 비핵화가 제재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김병연의 '합리적'인 주장은 북조선 지도부의 "비합리적"인 의지에 의해 무너지는 듯하다. 나는 북조선이 비핵화를 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렇게 가정한다면 한국에게 남은 선택지는 핵무장 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고, 나는 대체로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남은 건 미국과 일본이 그것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한국의 진보파들이 그것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동북아의 질서를 보다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주장을 할 만큼 지금의 현실은 비현실적이다. 다른 선택지가 있기를 바라고, 솔직하게 말해서는 지금의 현상황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갈등을 끊임없이 유예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지 않은가 한다. 핵무장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시하고 그 역량을 축적하면서도 갈등의 유예를 통한 시대전환의 계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듯하다.

김병연의 주장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북조선을 자유민주주의로 이행시키겠다는 그의 세련된 논리가 비이성적인 북조선 지도부의 결정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시계열적으로 나열해서 살펴보는 것도 여러모로 흥미롭고 재밌는 경험이다. 그의 연구를 보다 많은 이가 한번쯤은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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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북조선이 최악의 국가인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국가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조차 수행하지 않고 있고 또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통계'이다. 북조선은 1960년대 이후 국가통계를 발표하지도, 작성하지도 않는다. 이는 북조선이 다른 국가사회주의들과 달리 계획경제조차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기업가'로서의 경제적 역할조차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소련국가사회주의를 비롯하여 다른 계획경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계획경제의 운영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통계자료를 수집하고 가공하였다. 비록 정치적 목적 때문에 왜곡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그것이 종국에는 경제의 실상을 왜곡시켜 계획경제 자체의 기반을 침식하였을지라도 어찌됐든 그들은 과학적인 통계분석에 기초하여 계획경제를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북조선은 계획경제를 하지 않는다. 계획경제를 하려면 관료제의 합리성이 '수령'의 권한을 제한해야 되는데, 김씨일가는 그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일가의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를 위해서 관료제의 합리성마저 부정해버린 게 저 시스템이다. 빨치산 정신을 내세우며 '유격대 국가'를 건설하며 최소한의 전시동원체제로서의 관료제적 합리성의 관철조차도 거부해버린 것이다. 기무라 미쓰히코의 지적처럼 북조선은 자신들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전全국가적 차원에서 인식할 수단 자체를 상실한 사회다. 그렇기에 이 사회는 개인이든 수령이든 국가든 자신의 주관성을 제한할 객관적 인식이 불가능하다. 북조선과의 대화 시도 자체가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북조선은 매년 한국이 내는 북조선 경제 관련 통계들을 '잡소리'라고 무시하지만 단 한번도 그걸 반박할만한 통계자료를 낸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사실 김정은 시대를 '정상국가화'로 규정하고 조선노동당에 의한 '통치'로의 복귀로 그리는 와다 하루키의 북조선 인식의 의의는 제한적으로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근대국가가 최소한의 통계자료조차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이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안보적'인 역할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에 대한 위협에 맞서 동원 가능한 인적, 물적 자원을 어떻게 동원하고 배치할 것인가는 통계자료 없이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저 국가는 인민을 수호할, 공동체 방위기구로서의 역할조차도 수행하지 못한다. 국가가 최소한의 안보적 기능조차도 제공해주지 못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하고 복잡한 경제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상 세금이 존재하는 것과 별개로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선동을 하기 위해 세금제도를 폐기한 국가이다. 근대국가의 물적 토대는 '조세'로부터 도출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조건조차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국가이다. 경제주체로서 시장경제에 개입할 물적 토대가 없는 국가가 어떻게 계획경제를 하고 인민의 생활을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김두얼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북조선은 모든 경제적 단위를 자급자족 및 자력갱생이라는 기치 아래 지역적 단위로 분산시켜버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가 없다. 철도 등의 여러 사회간접자본조차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사회가 한국과의 총력전을 수행한다? 어불성설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세력과 노동당 엘리트 집단이 핵무기에 기초하여 복수의 지역공동체들을 수탈할 뿐 근대국가로서의 민족공동체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신新군주'로서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그럼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앞서 바로 말했지만 복수의 지역공동체, 평양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잉여수탈 외에는 없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말한 가산제국가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최악의 수탈체제이다. 신상옥 표현을 빌리자면 저들은 국가공동체가 아니라 마적집단이다. 정상적이고 근대적인 주체가 아니라 마적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북조선에 대한 나의 인식은 분열적이다. 어찌됐든 국가사회주의 체제로서 '근대적'인 시스템이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와 이게 어떻게 근대적인 시스템인가 하는 감정적 분노가 대립하고 있다. 전근대라 얘기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오히려 근대국가 체제가 김씨일가에 의해 와해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그에 기초하여 북조선의 역사적 과제를 '근대국가의 복원'으로 삼아야 비로소 북조선 인민들의 주체성이 발현될 수 있는 방향의 역사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현재까지의 나의 결론이다. 결론..은 그런데 너무 화가 난다. 같은 핏줄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세계최악의 범죄집단을 용인하고 있는 북조선 인민들도 안쓰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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