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R&D 예산 삭감 미스터리’ - 시사IN
그것이 알고 싶다 ‘R&D 예산 삭감 미스터리’
“과학계를 망치는 정확한 방법”이라는 2024년도 정부 R&D 예산 삭감은 대체 왜 벌어졌을까. 〈시사IN〉은 그 과정을 추적하고, 연구 현장에 미치는 파장을 취재했다.
기자명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입력 2023.11.23 07:33
수정 2023.11.28 06:55
844호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모여 있는 대전시 대덕연구단지의 모습.ⓒ시사IN 신선영
2024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은 한 편의 미스터리다. 자원 없는 나라에서 기술력이 살길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부 R&D 투자는 국가경제가 흔들릴 때조차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러나 12월 종료되는 국회 예산심사에서 정부안이 통과된다면 1991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 R&D 예산이 줄어든다(〈그림〉 참조).
지난 정부에서 R&D 예산이 비교적 가파르게 늘어났으니 숨 고르기를 하는 수준이 아니다. 올해 31조1000억원인 국가 R&D 연구 예산은 2024년 25조9000억원으로 5조2000억원 삭감된다. 비율로 따지면 16.7% 감소한다.
무엇보다도 의문스러운 지점은 예산안이 재조정된 배경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가 당초 마련했던 내년도 국가 R&D 예산안은 약 5% 증액이었다. 그러나 6월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 직후 R&D 예산 삭감안이 급하게 짜였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발표가 예정된 8월 말까지 불과 두 달 사이에 R&D 예산의 16.6%를 쳐냈다.
사실상 하향식으로 이루어진 일괄 삭감에 과학기술계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감소 폭도 충격적이지만 당장 어느 분야에, 어떤 사업에서 예산이 줄어드는지 깜깜이였기 때문이다. R&D 예산 삭감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9월 출범한 ‘국가 과학기술 바로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과학기술계 연대회의)’에서 공동대표를 맡은 제동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도 예산이 어떻게 깎였는지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가 되지 않고 있다. 뭔가 기준을 두고 삭감하면 연구자들은 동의는 못하더라도 납득은 한다. IMF 때처럼 ‘나라가 어려워 삭감을 한다’고 하면 감내하고 고통 분담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원칙도 없고,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으면서, 뜬금없이 ‘이권 카르텔’이라는 말이 나오니 과학기술계 연구자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11월 국회 예산심의를 앞두고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2024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에서도 정부 R&D 예산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날 선 비판이 담겼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입법 활동을 보조하는 중립적 기관이다. “정부의 2024년 R&D 예산 합리화는 그간 정부가 수립한 중장기적 지출 방향과 일관성이 부족하고, 불명확한 기준에 근거하여 편성된 예산안으로, 그간 투입된 정부의 R&D 지출 성과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며 R&D 정책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갑작스러운 R&D 예산안 재검토 지시 이후 과학기술계의 ‘이권 카르텔’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었다. 7월4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특정 산업의 독과점 구조, 정부 보조금 나눠먹기 등 이권 카르텔의 부당이득을 우리 예산에서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보도자료에서는 기득권 세력의 부당이득 공유가 이뤄지는 분야 중 하나로 “과학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 연구·개발(R&D) 나눠먹기”가 꼽혔다.
11월2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전시 유성구 한국표준과학 연구원에서 열린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미래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그러나 카르텔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과학계가 공동행동으로 반발에 나서고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자 정부도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야당의 질의가 집중되자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대통령은 R&D 카르텔이라고 말씀하진 않으셨다”라고 답했다. 좀처럼 명료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R&D 예산 재조정에 “우리나라는 과학자가 필요 없다. 서양에서 연구한 보고서를 보면 된다”라는 천공의 과거 발언까지 소환되기에 이르렀다.
대체 R&D 예산은 왜 삭감된 걸까? 정부 R&D 예산을 손봐야 한다는 대통령의 판단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정해진 예산 편성 절차를 뒤집고 촉박하게 추진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사건이 한국 과학기술계, 더 나아가 공동체의 미래에 끼칠 영향은 어디까지일까? 〈시사IN〉은 ‘2024년 R&D 예산 삭감’ 사건을 추적했다. 출발은 2022년 11월이다.
■ 2022년 11월30일의 오찬
6월28일 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으로 R&D 예산은 전면 재조정된다. 그런데 거의 동일한 발언이 지난해 11월30일 과학기술계 원로 간담회에서 확인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로 과학기술 분야 원로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 문길주 고려대 석좌교수,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등 외부 인사 6명이 참석했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도 배석했다.
대통령실은 브리핑 자료에서 “한편 참석자들은 R&D 과제 배분 시 선택과 집중을 하기보다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과기부 장관에게 개선 방안 마련을 당부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과학계에서는 “나눠먹기식 R&D 예산”이라는 6월28일 대통령의 발언이 여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참석자 가운데 문재인 정부 때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성향 원로들이 있었고, 지난 정부의 R&D 정책에 부정적 의견을 내비친 걸로 안다”라고 전했다.
과학계와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이후 올해 초쯤 대통령실에 국가 R&D 체계 혁신을 위한 소규모 TF가 경제수석 주관으로 꾸려졌다고 한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정부 R&D 투자가 비용에 가까우며 비효율적이라는 기재부 일각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즉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R&D 예산을 구조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러한 의중이 주요 R&D 예산을 편성하는 과기부의 혁신본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6월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과기부가 2024년 R&D 예산을 보고한 뒤 분위기가 차갑게 식으며 R&D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지게 된다. 〈조선일보〉는 회의 참석자의 말을 빌려 “윤 대통령이 이종호 과기부 장관에게 국정 기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질타하기도 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런 사태를 빚어지게 한 원인이 과기부와 가교 역할을 하는 대통령실의 과학기술비서관 쪽에서 일으킨 배달 사고인지, 혹은 대통령실의 기조를 전달받았으나 제대로 챙기지 않은 과기부 탓인지 책임 소재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 부처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과학 정책 전문가는 “행정부 내의 불협화음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R&D 예산 삭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 이전에 대통령실과 과기부, 혹은 과기부와 재정 당국 사이에서 물밑 조율과 협의가 원활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유례없이 예산안을 뒤집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정부의 역량과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다.”
■ R&D 예산안 누가 만들었나
6월28일 대통령의 지시 이후 국가 R&D 예산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 정부 예산은 8월 말까지 행정부에서 확정해 9월 초 국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30조원에 육박하는 R&D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짜는 데 시간이 고작 두 달 남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실이 확보한 ‘업무협조’ 문건에 따르면, 과기부 연구예산총괄과는 국가재정전략회의 다음 날인 6월29일 각 부처의 R&D 예산담당 부서에 재투자안을 7월3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주말 포함 단 나흘 기한을 준 것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는 주요 사업비를 20% 깎으라는 지시가 전화로 전달되었다.
연구·개발 행정에 밝은 과학계 전문가들은 나흘의 말미도, 두 달의 시간도 극히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정부 R&D 예산이 편성되는 절차적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정부 R&D 예산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R&D’는 과기부 내의 과학기술혁신본부(혁신본부)에서 예산안을 편성한다.
혁신본부는 연구·개발 예산에 대해서는 과학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기 위해 기재부의 예산 심사로부터 일차적으로 독립성을 갖춘 조직을 도입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노무현 정부 때 생겼다 사라진 뒤 문재인 정권에서 다시 도입됐다. 일반적인 정부예산은 소관 부처에서 기획재정부로 바로 올라가 기재부의 심사를 받는다. 이와 달리 ‘주요 R&D’ 예산은 우선 ‘혁신본부’에서 조정·배분을 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결을 거쳐 기재부의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다.
주요 R&D 편성 과정에는 ‘공공 우주’ ‘에너지 환경’ ‘ICT 융합’ ‘기계소재’ ‘생명 의료’ ‘기초기반’ ‘국방’ ‘대형 연구시설’ 이렇게 8개 기술 분야의 전문위원회가 가동된다. 각 전문위원회마다 민간위원이 약 20명 소속돼 있으며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분야별로 R&D 투자 수요와 필요도를 분석한 뒤 5월까지 혁신본부에 검토 의견을 올린다. 혁신본부는 이 검토 의견을 바탕으로 R&D 사업 예산·배분 조정안을 만들고 6월 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내년도 주요 R&D 예산안을 의결한다. 이처럼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정부의 주요 R&D 사업 계획은 6개월 동안 단계 단계를 밟아 수립된다.
따라서 불과 2개월 동안 재편된 2024년 R&D 예산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도출되었는지에 의구심이 일 수밖에 없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예산이 삭감돼서 내려온 내역을 쭉 살펴보면 정책적 일관성이 전혀 없다. 과학기술계나 연구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면 이렇게 깎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다시 만든 R&D 예산안은 사실상 기재부 주도 아래 편성되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관료 출신의 한 과학자는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기재부의 예산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혁신본부를 기재부에서 계속 탐탁지 않아 했다”라고 그간의 기류를 전했다. 과기부 대변인실은 〈시사IN〉에 “재조정된 주요 R&D 예산도 혁신본부에서 편성한 것”이라고 공식적 입장을 밝혔다.
‘이권 카르텔’을 R&D 예산 구조조정의 이유로 지목했지만 사실상 근거가 없어 뒤늦게 근거를 마련하려 한 정황도 드러난다.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과기부 노조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기재부에서 과기부로 R&D 예산 삭감 논리를 설명하라는 요구가 내려왔고, 이 요구는 다시 각 출연연으로 하달되었다. 당시 과기부 사내 게시판에는 “때린 놈이 맞은 놈한테 왜 맞았는지 이유를 적어내라고 한다”라는 자조 어린 글도 올라왔다고 한다.
■ “카르텔만 살아남을” 예산 삭감
기득권 세력과 비효율을 잡겠다고 빼든 칼에 정작 휩쓸려가는 건 연구 현장의 과학자, 공학자들이다. 정부 R&D 개혁의 필요성을 일부 인정하는 과학계 인사조차도 이번 R&D 예산 삭감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비효율적인 지출을 쳐내기 위해서는 요소를 특정해서 ‘핀셋형 삭감’을 했어야 한다. 정부 말처럼 실제 카르텔이 있다면 이번 같은 일괄 삭감 조치에서는 그런 카르텔만 살아남는다.”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인 이어확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R&D 예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기본적으로 연구·개발 분야의 속성과 대치된다고 말했다. “연구·개발은 성공과 실패의 역사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지도에도 그려지지 않은 미궁을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길로 가봤더니 아닌가 봐’ 확인하는 실패의 데이터도 자산이다. 그것들이 축적되면 이후 어떤 발견이 이뤄질지 모른다. ‘효율적으로 한 방에 되는 연구만 해’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출연연들은 주요 사업비가 20%가량 깎인 탓에 신규 과제는 물론 진행하던 연구들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내년도 R&D 예산 삭감으로 9월부터 계약직 연구자들에게 권고사직이 통보되는 사례가 생기고 언론보도로 이어지자 과기부는 출연연에 인력 규모를 유지하라고 단속에 나섰다. 이에 따라 출연연들은 줄어든 예산에 맞추기 위해 실험장비 운영을 축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경우 예산이 이대로 확정되면 실리콘반도체연구실 가동을 한동안 중단하기로 했다. “반도체 실험실은 연구·개발을 하지 않을 때도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장비를 돌려야 한다. 그 때문에 전력을 굉장히 많이 쓴다. 당연히 전기요금도 상당하다. 예산이 부족해지면 거기를 끄기로 연구원 내에서는 자체적으로 얘기되고 있다(제동국 ETRI 노조위원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실리콘반도체실험실.ⓒ시사IN 신선영
이어확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제동국 위원장의 말에 이렇게 덧붙였다. “대부분의 실험장비들은 보일러처럼 바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단했다가 재가동할 때는 컨디션을 다시 다 맞춰야 하기 때문에 돈이 곱절은 든다. 비유하자면 노트북을 켤 때마다 윈도부터 다시 깔아야 하는 격이다. 비효율을 잡는다고 R&D 예산을 삭감했는데 도리어 비효율을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
■ “이공계를 100% 망치는 정확한 방법”
R&D 예산 삭감의 영향이 과학계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은 흔히 ‘포닥’이라 불리는 박사 후 연구원, 대학원생 같은 신진 연구자들에게 쏠리고 있다. 대학원 이공계 연구실은 한국연구재단 같은 정부기관이나 정부 부처에서 연구 과제를 따내 연구실 운영 재원을 마련한다. 교수는 대학에서 임금을 받지만 그 교수의 연구실에 속한 대학원생, 박사 후 연구원들의 인건비는 이런 연구 과제 예산에서 대부분 마련된다. 정부 R&D 예산 삭감이 대학원 연구실의 연구와 인력 축소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동으로 진행하던 정부 과제 하나에서 내년도 연구비가 80% 가까이 삭감된 한 생명공학과 교수는 “대학원생을 6명 뽑을 계획이었지만 3명으로 줄였다”라고 연구실 사정을 전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10월11일 발표한 이공계 교수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90%가 연구실 인력 축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인건비 삭감 등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도 77.1%였다.
R&D 예산안이 재조정되면서 이후 일정이 일제히 지연되는 것도 연구 현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자연과학계 교수는 “본래 11월이면 한국연구재단 과제 공모를 하는데 올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하는 연구가 내년 2월에 종료된다. R&D 예산 규모가 축소된 걸로 봐서는 한국연구재단에서 나오는 과제 수도 매우 줄어들 것 같은데 신규 과제를 따지 못하면 연구실 대학원생 5명의 장래가 불투명해져 걱정이 크다”라고 말했다.
10월24일 전국공공연구노조 조합원들이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기초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한 과학자는 이번 R&D 예산 삭감을 두고 “과학계를 망치는 정확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연구·개발 규모가 일부 줄어드는 건 감내할 수 있다. 정말 치명적인 건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자리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추세대로면 가장 왕성하게 연구를 해야 할 박사 후 연구원부터, 대학원생, 학부생까지 5~6년 한 세대가 비어버린다. 사람이 빠지면 어떻게 되겠나. 100% 망하는 길이다.”
이공계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12월까지 진행되는 국회 예산심사를 겨냥해 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와 면담을 갖는가 하면 R&D 예산 삭감에 반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과 간담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준영 전국 대학원생 노조 수석부지부장은 “이번 R&D 예산안을 두고 정부는 어떠한 합리적인 설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재정이 부족하니 만만한 과학계 예산을 건드렸다는 인식을 젊은 연구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1월4일 서울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화학생물공학부 박사과정 중인 한 대학원생은 이렇게 되물었다. “정부가 R&D다운 R&D에는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는데 대체 R&D다운 R&D가 무슨 기준인가? AI, 자율주행처럼 화젯거리인 분야를 내세우지만 오늘날 AI를 가능케 한 머신러닝은 100년 전 시작된 연구가 쌓여서 나온 산물이다.”
기자명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