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1

최봉영 - # 묻따풀 학당 《"소유하는 것"과 "갖고 있는 것"》 1. "소유"와 "무소유" 한국사람은 말의...

(6) 최봉영 - # 묻따풀 학당 《"소유하는 것"과 "갖고 있는 것"》 1. "소유"와 "무소유" 한국사람은 말의...

최봉영
6h · 
# 묻따풀 학당

《"소유하는 것"과 "갖고 있는 것"》

1. "소유"와 "무소유"

한국사람은 말의 뜻을 깊고 넓게 살피는 일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말을 쓸 때, 어설프게 덜컥덜컥 쓰는 일이 많다. 말을 쓸 때, 조금만 살펴보아도, 그렇게 쓰는 것이 맞지 않은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냥 어설프게 덜컥덜컥 쓰려고 한다.

한국사람이 말을 어설프게 쓰는 것은 그동안 학자들이 앞장을 서왔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중국말, 서양말, 일본말 따위를 가져다가 어설프게 쓰는 것을 교사들이 따라서 배우고, 교사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학생들이 따라서 배우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그런 식으로 따라하게 되었다.

한국사람이 말을 어설프게 쓰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유(所有)”와 “무소유(無所有)”라는 말이다. “소유(所有)”는 “있는 바”를 뜻하고, “무소유(無所有)”는 “있는 바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유(所有)”를 “가지고 있음”으로 풀이하고, “무소유(無所有)”를 “가진 것이 없음”으로 풀이한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다.

한국사람은 “있는 바”를 뜻하는 “소유”를 “가지고 있음”으로 풀이하고, “있는 바가 없음”을 뜻하는 “무소유”를 “가진 것이 없음”으로 풀이하면서도, 왜 그렇게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말이 되지도 않는 말을 매우 뜻이 깊은 말이라고 떠받드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참으로 이상하고 딱한 일이다.

2. "있는 것"과 "있는 바"

한국말에서 “소유(所有)”는 “바 所”와 “있을 有”로 이루어진 낱말로서, “있는 바”를 뜻하는 말이다. 무엇이 어디에 있을 때, 그것이 “있는 바”를 가리키는 말이 “소유”이다. 무엇이 “있는 바”는 무엇이 어디에 “있게 되는 바탕”을 말한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 것은 “있게 되는 바탕”이 있어서, 그렇게 있을 수 있다.

누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소유”, 곧 그렇게 있게 되는 바탕이 있다. 이러한 “소유”는 “소유하다”가 되면서, 어떤 것이 있게 되는 바탕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드러나게 된다. 예컨대 “나는 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라는 말은 “이 집이 있게 되는 바탕이 나에게 있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 집이 있게 되는 바탕이 나에게 있는 까닭으로 나는 뜻에 따라서, 이 집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처분할 수 있다.

한국사람은 무엇이 있게 되는 바탕이 나에게 있을 때,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것을 나의 권리로 내세울 때, “나는 무엇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지니고 있다”라고 말한다. “소유권”은 “소유하다”에서 나온 말로서, 무엇이 어디에 있게 되는 바탕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권력으로써 뒷받침해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사람은 무엇에 대한 소유권을 따로 정함으로써, 무엇이 있게 되는 바탕이 누구에게 있는지 또렷이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또렷이 말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나는 이것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을 “나는 이것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이것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을 훔쳐서 가지고 있는 경우에,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소유하다”, “갖다”, “가지다”, “지니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아야, “소유”와 “가짐”과 “지님”, “소유하다”와 “갖다”와 “가지다”와 “지니다”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또렷이 알 수 있다.

3. "무엇"과 "갖고 있음"

한국사람은 무엇을 무엇으로서 알아보는 것은 무엇이 어떠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물을 물로서 알아보는 것은 물이 얼고, 녹고, 흐르고, 마르고, 끓는 것과 같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슴을 사슴으로서 알아보는 것은 사슴이 눈, 코, 귀, 팔, 다리, 몸통, 마음, 머리, 뜻하는 일, 먹는 일, 자는 일 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은 물이 얼고, 녹고, 흐르고, 마르고, 끓는 것과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물을 알아볼 수 없고, 사슴이 눈, 코, 귀, 팔, 다리, 몸통, 마음, 머리, 뜻하는 일, 먹는 일, 자는 일 따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사슴을 알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어떠한 것도 갖지 않은 무엇에 대해서는 무엇으로 알아보는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있음과 없음을 말하는 것조차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사람은 무엇이 어떠한 것을 갖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알아보기 때문에 무엇이라는 몸통과 어떠한 것이라는 가짐이 언제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몸통인 무엇과 가짐인 어떠한 것을 하나로 묶어서, 모든 것을 “~가지고”에 담아서 말한다. 예컨대 사람들은 무슨 말이든 “~가지고”에 담아서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나 가지고 / 나는 밥을 먹어 가지고 / 그는 다리가 길어 가지고 / 나무에서 새싹이 나 가지고 / ~ ~” 따위로 말한다.

한국사람이 무엇이 어떠한 것을 갖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알아보는 것은 한국말의 말차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컨대 사람들이 “나는 밥을 먹는다”라고 말할 때, “나”와 “밥”은 서로가 서로를 갖고 있는 이쪽과 저쪽으로서 함께 하고 있다. “나”는 “밥”을 먹는 일을 갖고 있는 쪽이고, “밥”은 먹히는 일을 갖고 있는 쪽이다. 나의 쪽에서 먹는 일을 갖는 것과 밥의 쪽에서 먹히는 일을 갖는 것이 하나를 이루어서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 말이 있게 된다. 그런데 내가 밥을 먹는 일이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에 “나는 밥을 먹어 가지고, 힘차게 짐을 나를 수 있었다”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한국사람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쪽과 저쪽이 함께 하는 것으로 본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말할 때, 함께 하는 이쪽과 저쪽을 끌어다 놓고서, 이쪽과 저쪽이 함께 하는 일을 풀어낸다. 예컨대 “그는 학교에 간다”라는 말은 그의 쪽과 학교 쪽을 끌어다 놓고서, 그와 학교가 함께 하는 것을 “가는 일”로써 풀어낸 말이다.

한국사람은 이쪽과 저쪽이 함께 하는 것이 갖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말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차려져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그의 쪽과 학교 쪽을 여러 가지로 갈라서 “그는ㅡ학교에 / 그는ㅡ학교를 / 그는ㅡ학교로 / 그가ㅡ학교에 / 그가ㅡ학교를 / 그가ㅡ학교로 / 그만ㅡ학교로 / 그만ㅡ학교를 / 그만ㅡ학교로”와 같이 끌어다 놓고서, 그의 쪽과 학교 쪽이 함께 하는 것을 “가는 일”로써 풀어낸다.

4. "갖고 있음"과 "같음"

한국사람이 무엇을 말하는 것은 무엇을 어떠한 것으로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무엇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이것으로 가져와서, “이것은 파랗다”, “이것은 뛰어간다”,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이것은 파랗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파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파란 것이다”는 사람들이 “이것”이 가진 것과 “파란 것”이 가진 것을 같게 여겨서, “이것은 파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이것은 뛰어간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뛰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뛰어가는 것이다”는 사람들이 “이것”이 가진 것과 “뛰어가는 것”이 가진 것을 같게 여겨서, “이것은 뛰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이 가진 것과 “사슴”이 가진 것을 같게 여겨서,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말에서 “같다”는 “갖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이것과 저것이 같다”는 말은 “이것이 가진 것”과 “저것이 가진 것”이 “같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가진 것을 저것이 모두 갖고 있고, 저것이 갖고 있는 것을 이것이 모두 갖고 있으면, 이것과 저것은 같은 것이다. 한국사람은 갖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말한다.

5. "갖고 있음"의 바탕으로서 "갖다", "가지다", "갖추다", "지니다"

한국사람은 무엇이 어떤 것을 갖고 있을 때, 갖고 있음을 네 가지로 갈라서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무엇이 어떤 것을 갖고 있다”, “무엇이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어떤 것을 갖추고 있다”, “무엇이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와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로, 한국말에서 “갖다”는 무엇이 어떤 것을 갖고 있는 것을 두루 담아내는 말이다. “갖다”는 “가져서 갖는 것”, “갖추어서 갖는 것”, “지녀서 갖는 것” 따위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말이다.

둘째로, 한국말에서 “가지다”는 무엇이 어떠한 것을 갖고 있을 때, 어떤 것을 갖게 되는 과정까지 담아내는 말이다. “가지다”는 “가지다=갖+이+다”로서, 무엇이 어떤 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셋째로, 한국말에서 “갖추다”는 임자가 어떠한 일을 하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을 갖게 되도록 하는 것을 담아내는 말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서, 여행에 필요한 것을 갖추는 일을 하고자 한다.

넷째로, 한국말에서 “지니다”는 무엇이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담아내는 말이다. “갖다”와 “가지다”는 무엇의 몸통인 “것”에 뿌리를 둔 말이고, “지니다”는 무엇이 어떠한 것으로 드러나는 “어떤지”에 바탕을 둔 말이다. 누리에 있는 모든 것은 “나름의 어떤지”를 바탕으로 삼아서, “갖가지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6. 한국사람과 "무소유"

바둑을 두어본 사람들은 바둑을 둘 때 정석, 정수, 묘수, 꼼수, 덜컥수, 무리수 따위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두려면, 정석에 바탕을 둔 정수를 찾아서 두어야 한다. 정수를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의 수를 골라서 두게 된다. 최선의 수가 묘수가 되면, 바둑을 잘 풀어갈 수 있는 반면에 무리수가 되면 바둑을 그르치는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바둑을 둘 때, 정수를 찾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꼼수나 덜컥수를 두기도 한다. 꼼수나 덜컥수는 거의 모두가 무리수가 되어서, 바둑을 그르치게 만든다. 이런 까닭으로 꼼수나 덜컥수에 맛이든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두어도,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학자들이 학문을 잘하려면, 말의 뜻을 잘 살펴서 바르게 써야 한다. 그런데 학자들 가운데는 말이 잘 안 되는 말로써 꼼수를 부리거나, 말이 되는 말인지 살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덜컥 가져다 쓰는 이들이 많다. 한국의 학자들은 말의 뜻을 묻고 따지는 일을 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바둑에서 꼼수나 덜컥수를 두는 일은 판을 그르치는 일로 끝난다. 그러나 학문에서 꼼수나 덜컥수를 두게 되면, 뒤따라서 배우는 이들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런데 학자들이 이런 것을 깊이 살피지 않기 때문에 꼼수를 부리는 말을 쓰거나, 덜컥수를 두는 말을 쓰는 것을 자랑처럼 여겨서 거듭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국가체제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은 “소유”, “소유함”, “소유권”에 대해서 눈을 크게 부릅뜨고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유”와 “소유함”과 “소유권”이 어떠한 바탕을 갖고 있는 말인지 깊이 살피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눈을 크게 부릅뜨고 이리저리 설치고 다닌다.

한국에서 학자들은 “소유하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묻고 따지지 않았다. 이러니 학자들이 “소유”를 “갖고 있음”으로 풀이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모두 그런 방식으로 따라서 생각하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소유”를 “가지고 있음”으로, “소유하다”를 “가지고 있다”로 풀이하고 있다. “소유하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이 같은 뜻으로 풀이되어 있으니, 사람들은 속여서 갖거나, 훔쳐서 갖거나, 빼앗아 갖는 것을 모두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한국사람이 “소유”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을 더욱 이상한 방향으로 이끈 것은 “무소유(無所有)”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무소유”를 “가진 것이 없음(:표준국어대사전 풀이)”로 받아들이면서, “무소유”를 통해서,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무소유”를 이런 식으로 풀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무엇은 어떤 것을 갖고 있어야 무엇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무엇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 갖고 있는 눈, 귀, 코, 팔, 다리, 숨통, 밥통, 머리, 마음, 먹는 일, 자는 일, 노는 일 따위를 모두 그것답게 할 수 있도록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가지는 것에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무엇답게 하는 것은 무엇이 무엇답게 되도록 무엇을 가지고 지니는 일에서 비롯한다.

한국사람이 “무소유”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은 법정 스님이 1976년에 수필집을 낼 때, “무소유”라는 이름을 붙이면서였다. 사람들이 <무소유>라는 책을 널리 읽게 되자, “무소유”라는 말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에 “무소유”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 스님의 뜻인지 아니면 출판사의 뜻인지 알 수 없다. “무소유”라는 말은 뜻이 지나친 까닭으로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러니 법정 스님도 “무소유”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뜻하는 말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은 “무소유”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또렷하게 밝혀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법정 스님의 책이 <무소유>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과 함께, 에리히 프롬이 자본주의사회의 소유에 대한 욕망 부풀리기를 날카롭게 비판한 <To Have or To Be>가 <소유냐 존재냐>로 번역되어 나와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되자, 한국사람의 머리에 “존재”, “소유”, “무소유”가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존재”, “소유”, “무소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어보면, 누구나 얼버무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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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 An
Mo An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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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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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이호재 선물받은 책을 방금 다 읽었는데 느낌이 옵니다. 큰 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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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최봉영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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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삼
전영삼 오늘의 말씀이 최고십니다
<무소유>를 어찌 생각해보면…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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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삼
전영삼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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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삼
전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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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hoon Lee
Changhoon Lee 같다 갖다 가지다 갖추다
그 말뜻과 그물을 밝게 가르쳐주셔서…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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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최봉영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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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
신동숙 법정 스님이 뜻하시는 무소유란,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갖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라 얘기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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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최봉영 신동숙 그렇습니다. 나는 20대 시절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집을 읽은 뒤로 수십 년에 걸쳐서, 무소유의 뜻이 무엇인지 풀어보려고 힘써 왔습니다. 오늘의 글은 그렇게 해온 끝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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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
신동숙 최봉영
그 오랜 걸음이 반갑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법정 스님과 다석 선생님과 동행해 오신 것 같습니다.
'무소유'에 대한 의미는 누구에게나 늘 열려 있어서, 진화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숙한 의식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열린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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