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9

알라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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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0년은 독립전쟁의 전승을 거둔 봉오동·청산리 대첩 100주년이다. 모두가 기억하는 일제강점기 3대 대첩 중 2대 대첩이지만, 아쉽게도 이 신화의 주역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산포수 의병장 출신 홍 장군은 용맹함과 기발한 전투력으로 이름을 떨쳤고, 부하와 한인사회를 배려하고 낮은 자세로 각 독립군 부대와의 통합을 자신의 명예보다 먼저 생각했었다. 평양에서 태어났고, 러시아 망명 시절 소련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이주를 당한 것 등은 천하에 기상을 떨친 그의 행적을 너무 오랫동안 망각 속에 묻어 버렸다.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탄생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평전>은 중국의 봉오동전투 현장과 청산리대첩의 현장인 직소, 청산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갑오의병운동부터 게릴라전까지 지도적 역할을 담당한 유일한 의병장이자 일본군이 '하늘을 나는 홍범도'라고 부를 정도로 공포의 명장이었던 홍 장군은 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까? 시련과 고난을 벗 삼아 살다간 독립전쟁사의 영웅을 젊은 세대에게 소개한다.
목차

서 문 홍범도 장군 진혼사

1부
청산리의 영웅, 홍범도

1장 출생에서 성장까지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다 │ 조실부모, 젖동냥으로 자라 머슴이 되다 │ 군대 지원하여 3
년 동안 나팔수 생활 │ 부패 상관 폭행하고 군문을 뛰쳐나오다 │ 제지공장 3년, 주인의
폭압에 다시 탈출

2장 파란곡절의 젊은 시절, 의병투쟁 시작
금강산 신계사에서 비승비속의 생활│비구니와 함께 신계사를 떠나다│동지 만나 일본
군 소부대 섬멸│산포수와 농민으로 의병대 조직│단양 이씨와 해후, 아들과의 상봉

3장 산포수 의병장, 관북 지역 일본군 소탕전
산포수 의병부대 대장으로 뽑히다│일본군과 일진회원 가차 없이 처단│ 일제, 가족 인질
삼아 회유작전 벌이다│부인은 옥사, 아들 양순은 전사│초기 산포수 의병의 혁혁한 전과

4장 간도와 블라디보스토크 오가며 펼친 항일전
한민족의 고토, 간도로 이동│의병가.독립군가로 사기를 북돋우다│연해주로 이동, 안중
근을 만나다│‘13도의군’과 ‘성명회’에 참여하다 | 권업회 회장단에 선출돼 항일 지도│
봉밀산에서 둔전병으로 장기전 대비

5장 대한독립군 창설, 국내진공작전
러시아혁명기 노령 왕래하며 무기 구입│대한국민의회 참여, 군무부 활동│대한독립군
창건, 본격 항일전│항일 연합군 이끌고 국내진공작전 벌이다

6장 봉오동전투의 영웅
3.1운동 계기로 독립군 부대 연합전선│봉오동으로 일본군 유인 섬멸│적군 500여 명
살상한 대첩│독립군의 영웅으로 부상하다

7장 청산리대첩을 승전으로 이끌다
일제의 보복, 마적단까지 동원│어랑촌에 진지 구축, 연합부대 사령관에 추대│매복 전술
로 일본군을 자멸로 몰아넣다│국치 이래 가장 빛나는 청산리대첩│박은식의 청산리대
첩 기록│일제 정보기관의 ‘홍범도 평가’│이범석의 청산리대첩 주역 왜곡│“청산리전쟁
주역은 홍범도”

2부
시련 속의 민족혼, 홍범도

8장 일제의 보복 경신참변, 독립군 기반 상실
학살·약탈·소각의 ‘삼광전략’│매장한 시신까지 꺼내 불태우다│5천여 한인 학살 만행│
마적단까지 끌어들여 한인을 학살하다│러시아 이동 중 일본군에 타격

9장 대종교에 참여하여 민족정신 선양
독립운동과 민족종교의 관계│단군 관련 각종 사서 간행에 참여하다│『단학회보』 발간
에 자금을 지원하다

10장 좌절의 시기, 레닌·트로츠키와 회견
러시아령 이만에서 무장해제 당하다│‘자유시 참변’, 독립군끼리 총질하다│조정에 실패,
반대 측 병사들 재판관으로│둘째 아들 병사, 적군파 소속 대대장으로│내전 종식되자
입장 바꾼 소비에트 정권│모스크바의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하다│레닌에게서 권총 등
선물받다│레닌이 준 선물, 해방 후 ‘배척’의 사유되기도

11장 협동조합 일구며 재기 노렸으나
암살 위기 모면, 밀정들에 시달리다│전우들과 농업조합 만들어 둔전 활동│상처 18년
만에 이인복과 재혼│소련 정세 변화로 개간한 땅 빼앗기다

12장 광복을 2년 앞두고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다
스탈린의 폭거로 카자흐스탄에 강제 이주│극동 러시아 한인 17만여 명 강제 추방│한국
어 사용 및 거주 이전 금지 등 탄압│‘전선에 보내 달라’ 간청하다│75세 일기로 거인은
쓰러지다

부록 1 홍범도 장군을 추억하면서
전문 연구가들이 바라보는 홍범도│카자흐스탄의 홍범도 관련 자료│‘김규연 비망록’의 홍범
도│이인섭의 홍범도 회상기
부록 2 홍범도 항일역전표(1891~1909년)
부록 3 홍범도 연표

책속에서
  • P. 61 홍범도는 탁월한 사냥 솜씨와 백발백중의 사격술 그리고 사냥 성과물어 대한 공정한 분배, 지방 관리들에게 바치는 포획물의 적정선 유지 등으로 동료들의 신망을 얻었다. 얼마 후에는 안산사 포연대 대장으로 뽑혔다. - 현아
추천글
  •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 무장독립투쟁에 큰 획을 그은 영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진 부분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 까닭은 장군의 투쟁 무대가 북만과 한·러 국경지대였고, 서거하신 곳이 카자흐스탄인 데다 동서 냉전시대에 그곳과 단절되어 있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으며 항일투쟁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장군의 가족이 몰살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국 열사들의 위대한 삶과 사상에 대해 무지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령 알고 있다 해도 그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다. 그러한 형편에서 김삼웅 선생이 역사 자료를 정리해 집필한 평전들은 우리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독립전쟁 전승 100주년(2020년)을 앞두고 항일 무장투쟁사의 신화를 남긴 여천 홍범도 장군의 평전을 재발간하게 되어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 
    - 이종찬 ((사)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저자 및 역자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하늘을 나는 홍범도’, 독립전쟁의 전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7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젖동냥으로 어렵사리 자라다 9세에 아버지까지 여읜 소년 홍범도. 그는 머슴으로 살다 15세에 나팔수로 병영 생활을 시작한다. 1895년 본격 의병투쟁에 투신한 홍범도는 간도와 연해주에서 크고 작은 항일 전투를 무수히 치르는 동안 아내와 아들을 잃는다. 그러나 역경에 굴하지 않고 그는 대한독립군 창설과 국내진공작전 및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독립 영웅으로 우뚝 선다.
일제가 가장 겁냈던 의병장, 부하들과 주민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정통 무관 출신은 아니지만 남다른 지략과 전술로 일제와 싸웠던 홍범도 장군은 광복 74주년이 되는 지금까지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봉오동·청산리 대첩 100주년을 앞두고 홍 장군의 유해를 언제까지 이역만리에 방치할 것인가? 평전의 대가 김삼웅 저자는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라고 전한다.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 홍범도의 뜨거운 삶을 돌아보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와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 게릴라전 즉 ‘빨치산’ 투쟁으로 일제와 싸웠다. 홍범도 역시 항일 빨치산 전투의 주역이었다. 홍범도는 자신의 권위나 이익을 내세우지 않는 남다른 인격, 열세를 극복하는 탁월한 지휘 능력과 기발한 전술 작전으로 항일투쟁의 전설이 되었다. 상해 임정 건립 시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던 문창범(1870~1938년)의 증언에 의하면 홍범도는 수수한 조선인 노인의 옷차림을 한 산포수다운 비범한 장수였고, 투박한 말투 반면에 인자한 태도가 마치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고 한다.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서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하여 국치 이래 첫 국내진입작전으로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청산리대첩 이후 일본군의 보복인 ‘삼광전략’으로 연해주로 쫓겨가고, 이후 재개를 도모했지만 더욱 극심한 고난이 잇따른다. 고려공산당 내의 주도권 파쟁으로 발생한 ‘자유시참변’을 겪어야만 했고, 스탈린 정권하에서 강제 이주를 당해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 했던 홍 장군의 삶은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는 ‘좌파 독립운동가’?

남북에서 ‘통일 조국의 사표’로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홍범도는 그의 치열한 항일투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소홀히 취급받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독립운동 연구가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고, 그를 기릴 만한 후손이 없으며, 불행하게도 홍 장군이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크질오르다에서 서거했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붕괴되는 1980년대 말까지 카자흐스탄은 ‘철의 장막’에 가려지고, 홍범도의 소식도 차단되었다. 또한 그의 활동 영역이 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 지역 위주였고, 이르쿠츠크 등에서 러시아 측과 협력하여 항일전을 벌인 것, 한때 레닌을 만나 권총을 선물받고 볼셰비키에 입당한 일 등을 이유로 일부 역사학자들에게 ‘좌파 독립운동가’로 몰리기도 했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평가와 역사적 자료를 더해 홍범도 장군의 활동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오류를 바로잡고자 애썼다. 그리고 머슴 출신의 산포수 의병장, ‘저명한 조선 빨치산 대장’이라는 칭호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 된 건 아닌지 반문한다. 청산리대첩은 홍범도, 김좌진, 이청천 등 군지휘관의 연합작전 및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으로 이룬 것이다. 어떠한 연유와 배경이든 공적의 상당 부분이 묻히거나 다른 독립운동가에게 전공을 빼앗기는 것은 바로잡아야 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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