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냐 중국이냐 ‘해묵은 딜레마 프레임’ 깨자
등록 :2020-11-23
기고ㅣ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바이든 대중 견제노선, ‘신냉전’ 해석은 과장
- 극우세력 퇴출될 것…동맹 강조도 방어 성격
- 북핵 문제도 미-중 갈등보다는 협조 가능성
- 한국 장기적 대중국 선택지, 관여 외는 없어
- 지역분쟁·대중 봉쇄 동참, 전략적 이익 해쳐
- 한국 처한 국제정치 현실 ‘딜레마’ 규정,
- 우리 상상력 제한하고 외교 선택지 좁혀
- 소국과 분단피해 의식이 외교담론 지배
- 경제·군사력에 K컬처·K방역·정보화 시대
- 지정학 환경, 숙명으로 받아들여선 곤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딜레마’라는 프레임은 우리의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하고 외교적 선택지를 좁힌다. 한국 정부가 제안하고 주도해 지난 3월26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화상 정상회의는 이런 딜레마에서 탈피하려는 좋은 시도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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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교안보 여론 주도층 사이에는 ‘외교적 선택의 딜레마’라는 해묵은 프레임이 있다. 한국이 처한 국제정치 현실을 ‘딜레마’라고 규정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상수’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은 우리의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하고 외교적 선택지를 좁힌다. 딜레마라고 생각하는 순간 딜레마에 빠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딜레마 프레임’은 미-중 사이에서 어설픈 줄타기를 하면 안 된다고 훈수한다. 자칫하면 양쪽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해법은 ‘원칙 외교’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원칙’은 대개 미국이 주도해온 전후 국제질서의 가치와 규범이다. 결국은 양자택일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고, 답은 정해져 있다.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에 줄서기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에 어찌 양자택일의 길만 있겠는가. 외교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프레임은 종종 현실을 오도하거나 과장하게 만든다. 많은 전문가가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지적하면서 미-중 간 전략경쟁과 충돌은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격적 현실주의에 근거하든, 패권 전이론으로 보든, 구조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들어서도 달라질 게 없다고 말한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중국을 위협으로 보는 시각은 초당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새 행정부도 대중국 견제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 민주당이 대중국 관여정책의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시진핑 중국 주석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공세적 노선으로 중국을 보는 시각은 많이 변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견제 노선을 일전불사라도 할 것 같은 ‘신냉전’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소위 ‘차이나 배싱’(중국 때리기)이 경제 영역에만 그치지 않고 이념적·군사적 영역으로 확대됐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같은 반중주의자들이 행정부 요직에 포진해 트럼프라는 포퓰리스트 정치인과 연합했기 때문이다. 이들 극우세력은 중국이라는 지정학적 실체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를 공격했다. 체제를 건드리는 건 적과 동지가 선명한 정보세계의 심리전 양상이며 신냉전이라고 할 만하다.
바이든 시대에는 반중 극우세력들이 행정부에서 퇴출될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와 미국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리버럴리스트’들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고 세계 경제의 파국을 원치 않는 월가와 신자유주의 자본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극우세력들은 심지어 이들도 친중이라고 공격한다.
바이든 행정부도 광범위한 미국 내부의 반중 정서를 의식해 정치적으로는 홍콩 등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거친’ 모습을 보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더 성장하기 전에 밟아버리겠다’는 호전론자들과는 거리가 꽤 있다. 바이든 진영이 동맹을 강조하는 것도 트럼프가 동맹을 파괴한 데 대한 반작용 성격이 짙다.
물론 바이든 당선자도 중국이라는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들과 조율하고 협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중국과 싸우자고 세를 규합하겠다는 공격적 측면보다는 ‘미래의 위험 분산’이라는 방어적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동맹들에 일방적으로 양자택일을 강요하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미-중 관계는 전략경쟁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냉전 양상이라기보다는 ‘경쟁적 공존’(competitive coexistence)일 것이고 미-중 간의 대결은 당분간 조정기와 소강 국면에 진입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자연스레,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등 안보 엘리트들의 지지를 받던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최소한 명패는 바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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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가 들어서도 미-중이 일전불사의 ‘신냉전’을 피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지나친 과장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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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은 다소 넓어질 수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참여는 경제적 관점에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5세대(5G), ‘쿼드’(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가 참여하는 전략포럼), 사드, 남중국해, 대만 등 미-중 간 갈등 현안에 대해서도 실사구시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대북정책은 말할 것도 없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핵문제는 미-중 간 갈등 현안이 아니라 협조 사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당선자도 동맹국인 한국, 그리고 중국과 협조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선 북핵문제의 우선순위가 떨어지고 북한 인권을 중시하기 때문에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입장과 역할을 배제한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인 사고다. 또한 북한은 이미 6차 핵실험을 통해 100㏏ 규모의 수소폭탄 제조 능력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성공으로 미국 본토 도달 능력을 보여주었다. 북핵문제는 바이든 행정부에 결코 시급성이 떨어지는 사안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미-중 관계 맥락에서 우리의 대중정책 방향을 분명히 정립해둘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 지경학적 요소를 고려할 때 우리의 선택지는 ‘관여’(engagement) 외에는 없다. 사안별 견제는 필요하지만 반중 동맹이나 대중 봉쇄 동참은 우리의 전략적 이익에 반한다. 우리의 사활적 이익과 무관한 지역분쟁에 연루될 필요가 없다. 이 점을 미국이 분명히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외교적 딜레마’라는 프레임에는 소국의식과 패배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전통적 사대주의에 근거한 소국의식과 식민지-분단-냉전으로 이어지는 경험에서 유래한 피해 의식이 부지불식간 우리의 외교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케이(K)-컬처 등 한류 확산, 케이-방역,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에 따라 국민들의 자긍심은 날로 고양되고 있음에도 외교안보 여론 주도층은 패배주의적 담론만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제력 10위, 군사력 9위, 인구 5천만으로 결코 작지 않다. 트럼프에 의해 주요 7개국(G7) 확대개편 대상국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며 내년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도 초대받았다. 어쩌면 일본에 이어 ‘탈아입구’ 하는 두번째 아시아 국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나 캐나다 등 서구 선진국들도 미-중 갈등 현안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외교적 딜레마에 처한 것으로 스스로를 묘사하지는 않는다. 열강에 둘러싸인 우리의 지정학적 환경이 엄혹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지정학적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일부에선 ‘중견국 외교론’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도 국력이 성장한 만큼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어젠다 위주로 역할을 모색하자는 제안이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회의체인 믹타(MIKTA)를 가동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우리 외교부를 중심으로 지금도 여전히 채택하고 있는 노선이다.
그러나 ‘중견국 외교’도 ‘딜레마 프레임’처럼 우리의 상상력과 잠재력을 제한하는 또 다른 족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우리의 방역 경험을 공유하고 국제적 협조체제를 구축하고자 주요 20개국(G20) 화상 정상회의 개최를 제안하고 주도해 주목받았다. 중견국 외교의 틀에서 탈피하는 좋은 사례다.
변화는 닥쳐와야 실감하는 것일까. 구조적으로 변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주장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과 정치적 동학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다. 외교적 딜레마를 고민하기보다는, 외교적 딜레마를 깨고 중견국 외교를 넘어서는 과감하고 그랜드한 외교 비전을 고민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971017.html?fbclid=IwAR04uwpzdMTpaLHGyY94rijJHVEjlgQHfZXkaNmVBnUwJS_6QyyvlToGy5I#csidx3211f686331028fb1fe91c7520a82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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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성배 수석연구원의 <한겨레> 기고문을 공유합니다. 우리 사회의 전문가와 지식인들의 습관화된 사고방식과 언어가 얼마나 해로운지를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외교적 딜레마’라는 프레임에는 소국의식과 패배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전통적 사대주의에 근거한 소국의식과 식민지-분단-냉전으로 이어지는 경험에서 유래한 피해 의식이 부지불식간 우리의 외교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케이(K)-컬처 등 한류 확산, 케이-방역,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에 따라 국민들의 자긍심은 날로 고양되고 있음에도 외교안보 여론 주도층은 패배주의적 담론만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입에 익은 언어를 벗어날 필요성은 미-중갈등 문제에서만이 아니겠지요. 가령 김성배 박사 자신의 그 다음 단락에도 저로서는 찬동하기 힘든 표현이 나옵니다. 한국이 이미 작은 나라가 아니므로 한층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온당한 지적 끝에, "어쩌면 일본에 이어 ‘탈아입구’ 하는 두번째 아시아 국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거든요.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래 '탈아입구'를 추구해서 도착한 지점이 어디인가요? 과연 '입구(入歐, 유럽으로 들어가기)'에 성공했는지도 의문이려니와(유럽사람들에게 물어볼 일이지요^^), 아시아에 대한 침략에 이은 2차대전 패전의 참화, 패전 후 '입구' 대신 '입미(入美)'로 약간의 궤도수정만 했을 뿐 여전히 동아시와와 세계의 평화를 선도하는 국가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 현실 등,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국가목표가 '탈아입구' 아닌가요?
글의 한 부분에 대해 개인적 소견으로 이의제기를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공감되는 분석과 제안을 많이 담았습니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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