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2) 李昇燁 - 헛 참, 거 세상 인심하고는... 사백수십명이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曹長'이 중장(中将)이 아니라...

(2) 李昇燁 - 헛 참, 거 세상 인심하고는... 사백수십명이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曹長'이 중장(中将)이 아니라...


李昇燁
3h ·



헛 참, 거 세상 인심하고는...

사백수십명이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曹長'이 중장(中将)이 아니라 상사(上士)라는 걸 넌지시 알려 주는 사람이 하나 없네 그려. 😭


Yuji Hosaka is with Sungrye Han and 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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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제9차 국민행동 성명서]에 대한 호사카유지교수의 반박-2

* 국민행동의 주장 (2) : 
호사카는 『신친일파』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궁극적으로 현재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할 과거 일본 정부, 일본군, 조선총독부에 의해 저질러진 인신매매이자 집단 성폭행의 피해자’라고 하였다. 인신매매나 집단 성폭행은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나는 중대 범죄행위다. 대표성을 지니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어떻게 조선 여성을 사고팔며, 조선 여성을 집단으로 성폭행할 수 있었는지 호사카는 증거를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의 구성비에서 일본 여성이 가장 많고 그 다음 조선 여성이나 현지 여성으로 이어지는데, 어떻게 조선 여성만을 대상으로 인신매매를 하고 집단 성폭행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호사카교수의 반론(2) : 
우선 국민행동은 명백한 사실왜곡과 허위유포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성명문에서 “호사카는 『신친일파』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궁극적으로 현재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할 과거 일본 정부, 일본군, 조선총독부에 의해 저질러진 인신매매이자 집단 성폭행의 피해자’라고 하였다”고 적시했으나 본인은 책에 그런 문장을 쓰지 않았다. 사실왜곡과 허위유포에 해당된다.

본인의 쓴 글은 『신친일파』 270쪽에 

“독일이나 일본이 연합국에 입힌 침략이라는 전쟁범죄가 훨씬 컸기 때문에 두 나라는 심대한 전쟁범죄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여성강간과 원폭투하에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피해국이다. 그러므로 조선인 여성에 대한 일본정부, 일본군, 조선총독부의 집단 성폭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더는 왜곡해서는 안 된다.”

라고 썼다.

위 문장 중에서 제가 쓴 “조선인 여성에 대한 일본정부, 일본군, 조선총독부의 집단 성폭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는 문장의 주어는 ‘한국’이다. 국민행동은 제 문장을 교묘히 변형시켜 제 의도를 왜곡시키고 있다. 이것도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들이 문제 삼은 ‘집단 성폭행’이라는 말에 대해 말한다.
‘집단 성폭행’이라는 말은 국민행동이 이미 몇차례 다른 집회시위에서 사용한 말이다. 그들은 2020년 5월13일 정의연의 수요집회에 대항하는 집회를 열면서 “일본이 조선의 여성들을 강압적으로 동원해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증거 등을 여성가족부 장관이 직접 나와 제시할 것 요구”했다. (출처 : 펜앤드마이크, 2020.5.13. 기사)

그렇다면 여성가족부에서도 일본군 ‘위안부’를 일본군에 의해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성가족부에 질문했듯이 국민행동 측이 ‘위안부 집단 성폭행’에 대해 본인 호사카교수에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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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일본정부 내무성은 일본 각지에 나타난 여성 모집업자들이 유괴 등의 혐의가 있어 단속을 강화했다.(문서 『시국이용부녀유괴피의사건에 관한 건(時局利用婦女誘拐被疑事件ニ関スル件)』1938.2.7.)
그러나 중국에 주둔하는 일본군의 지시로 보내진 업자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내무성은 모집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도록 내무성경보국장 명의로 각 부처에 통첩을 보냈다.(문서 『중국도항부녀취급에 관한 건(支那渡航婦女ノ取扱ニ関スル件)』, 1938.2.23., 『중국도항부녀에 관한 건, 문의(支那渡航婦女ノ取扱ニ関スル件伺)』, 1938.11.4. 등)

아울러 일본 내무성은 비밀리에 신원이 확실한 업자(=인솔자, 포주)를 선정하라고 경찰에 지시를 내렸다. 내무성은 “비밀리에 적당한 인솔자(포주)를 선정해 그들에게 부녀자를 모집하게 하여 현지에 가도록 취급(密ニ適当ナル引率者(抱主)ヲ選定シ之ヲシテ婦女ヲ募集セシメ現地ニ向ハシムル様取計)”(『중국도항부녀에 관한 건, 문의(支那渡航婦女ノ取扱ニ関スル件伺)』, 1938.11.4.)하라고 지시했고, “인솔자(포주)는 현지에서 군 위안소를 경영하게 하는 자이므로 특히 신원이 확실한 자를 선정하라(引率者<抱主>ハ現地ニ於テ軍慰安所ヲ経営セシムル者ナルニ付特ニ身許確実ナル者ヲ選定スルコト)”(위와 같은 문서)고 경찰에 명령했다.

그러므로 일본 내무성과 경찰이 선정한 위안부 업자가 현지까지 여성들을 데리고 가는 인솔자가 되었고 그들은 현지에서 군위안소의 포주가 되었다. 일본정부-일본군-모집업자(=인솔자=포주)라는 여성 동원 시스템이 비밀리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업자들이 여성들과 맺은 계약은 사기계약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례를 아래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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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증언은 중국 남부의 난닝(南寧)에서 헌병대의 중장(일본에서는 조장<曹長>)으로 근무한 스즈키 타쿠시로(鈴木卓四郎)가 그의 전쟁체험기 『헌병하사관(憲兵下士官)』(1974)에 쓴 내용이다.

「1940년의 8월 중순이나 말쯤이 아니었을까. 난닝헌병대 근무를 명령받고 (중략) 닌닝 공로 길가에 있는 ‘북강향(北江郷)’이라 불리는 마을에 헌병대를 개설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군에서 위안소를 개설했으니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감시하라고 여단사령부 고급부관이 지시를 내렸다. (중략) 그것은 최초로 방문한 날이었다. 위안소는 사령부와 바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육군위안소 북강향’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보통민가를 개조한 위안소로서는 초라했다. 좁은 마루에는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작부의 인원수는 15~16명이고 15, 6세로부터 22, 3세 정도의 조선인이고 잘 못하는 일본어로 접객하고 있었다.
어떤 사정인지 어떤 처지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동서도 선악도 알지 못하는 소녀들에게 매춘을 시키다니... 그 심경을 생각할 때 전장의 치부를 역력히 보는 것 같았다. (중략)
“제가 가게 주인인데요.”라고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시골의 초등학교 선생님을 상기하게 하는 청년이었다. (중략) 작부들의 말에 의하면 가게 주인 황씨는 일본식으로 말하면 지주의 둘째 아들이고 학력이나 지위가 그 마을의 교장선생님보다 높았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라고 하여 당시 유행하던 외정 장교를 위문하기 위해 소작인 딸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도항해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가 생각한 위안소와 현실의 위안소는 너무 달랐다. 그가 상상한, 아니 중국 도항 시의 계약은 육군 직할의 다방, 식당, 혹은 장교 집회소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이 육군위안소, 바로 매춘업이라는 것을 현지에 와서 알게 된 것이다. 소작인의 아이들, 빈농의 딸들이라고 해도 소등학교도 만족하게 졸업하지 못해 선억의 구별을 잘 못하는 여자 아이들에 매춘을 강요해야 하는 책임을 깊이 느껴서 “오빠, 오빠”라고 그를 따르는 이들 젊은 여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하고 있는 듯했다.」 

일본군 헌병 스즈키 타쿠시로는, 조선 여성들이 중국 난닝에서 육군 직할의 다방이나 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계약하고 왔는데 현지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되기를 강요당했다는 말을 가게주인으로부터 들었다. 이 케이스는 소녀들을 데리고 있던 지주의 아들이 업자들에게 속은 케이스다. 도주를 시도하려고 해도 감시가 심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고액의 전차금을 이미 받은 상태이므로 일을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태였고 가게주인 황씨도 후회하는 것 외에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군은 이런 상황을 알고도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쓴 스즈키 타쿠시로 헌병중장도 당시는 이런 불법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헌병이므로 군의 부조리를 시정해야 할 입장인데도 그는 그런 업무를 외면했다. 군의 상부도 소녀들이 매춘을 강요당하고 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연행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도 분명하다.
일본군은 업자들이 여성들을 속여서 현지로 데려가 위안부로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일본 현지군 자체가 처음부터 여성들을 속여서 연행해도 된다고 양해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헌병이 명백한 불법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본군 윗선의 지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증언들이 많이 존재한다.
일본군의 양해 하에서 이루어진 취업사기는 환언하면 유괴다. 소녀들을 배에 태운 다음부터는 강제연행이 시작되었다. 이 증언에 나오는 소녀들은 15~16명이다. 이런 소녀 집단에 대한 취업사기와 유괴, 그리고 도주할 수 없는 환경 하에서 본인들이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한 사실, 이런 것들은 바로 ‘집단 성폭행’의 증거가 아닌가.



28You, 정혜경, Chee-Kwan Kim and 25 others

13 comments1 share

李昇燁 사실은 이 양반이 쓴 '친일파' 어쩌구 하는 책에도 똑같은 실수가 있는데, 그걸 보고 출판사(편집자)도 그 한마디를 안해줘서 망신을 당하게 하다니, 참 인정머리가 없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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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aewoo 李昇燁 아마 편집자들이 그 분야에는 아는 게 없어서 그랬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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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본문 바로 뒤에도 하사관이라고 나와있네요 ㅋ 근데 중장이라니--;; 오장-군조-조장 계급은 그리 어려운 것고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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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昇燁 급하게 비판서를 쓰다 보니 꼼꼼하게 검토를 못했겠지요.
한편으로 이분의 말과 글을 보면, 역사적 배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사료독해능력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공이 아닌데 너무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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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l Chong 솔직히 간혹 일본어를 (이해)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 적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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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昇燁 Soonil Chong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의심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맥을 못읽거나 엉뚱하게 읽곤 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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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l Chong 저도 농담 아닌데요.ㅜㅜ
별 관심 없다가 선배님께서 소개해주시는 걸 계기로 좀 유심히 검토해봤는데, 전우용과 더불어 해악 가운데 하나라 생각합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간혹 인용할 때도 참기 어렵지만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까 해서 스루~합니다만.. 제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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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Strain 제목이 헌병하사관인데 왜 중장이... 게다가 헌병대엔 中將(***)계급이 아예 없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와 사정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헌병(MP)이 준장(*)정도가 최고가 아닌가 싶어서요.
그나저나 유괴된 소녀들에 대한 기술은 참으로 마음이 아픈 이야기네요, 저 헌병부사관이란 책 번역본이 있다고 읽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좋은 링크 감사합니다, 선생님.



Lee Jaewoo Jimmy Strain 일본군에는 준장이 없었고, 전쟁 말기에 헌병 장교 출신자가 겨우 소, 중장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전까지는 대체로 전투병과 장교 출신 장성들이 헌병대 사령관을 지냈죠.



Jimmy Strain Lee Jaewoo 설명 감사합니다. :)


李昇燁 저도 회고록류를 많이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일본 군인들의 위안부를 보는 시선이 대개 측은함+대견함+쯧쯧쯧... 이런 게 섞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남성(주로 조선인) 포주를 보는 시각은 대개가 가시가 돋혀 있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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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Strain 李昇燁 "(같은)남자로서 총을 잡지는 못할망정 포주따위나 하는 거냐?" ...류의 시선인 걸까요?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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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昇燁 Jimmy Strain 그런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업자가 군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저자세이기 때문에 군인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깔보는 경향도 있는데다가, 형편이 어려운 여자들을 끌고 다니며 장사를 하는 걸 천하게 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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