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에 보내는 진정서>
Jungok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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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24 August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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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에 보내는 진정서>
나의 외가는 토지신고를 하지 않아 그 많던 땅을 일제에 빼앗겼고 외조부님은 독립자금을 운반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가 내려져 감옥에서 힘든 고초를 겪기도 하셨다.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외조부님은 짐승같은 일제의 손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이제 당신들에게 우리 민족의 뼈아픈 사연을 들려주고자 한다
<고향>의 그는 넉넉하진 않으나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자 그의 고향 대부분의 땅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가 되어버렸다. 겨우겨우 살아가기도 힘들었던 농민들은 하나 둘 고향을 등졌고 그의 가족도 서간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그곳의 생활 역시 힘들기는 매한가지. 부모님마저 세상을 등지게 되자 혼자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던 그가 다시 찾은 고향은 이미 페허가 되어 있었다. 그와 혼삿말이 오갔던 그녀의 기구한 삶은 말을 잇기 어려울 만큼 참혹했다. 비단 그와 그녀만 이리 비참했을까? 일제 강점기때 우리 농민들 대부분은 말할 수 없는 음울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여자네집>의 만득과 곱단은 동네에서도 인정해준 짝이었다. 일제가 침략야욕을 불태우며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동네 남자들은 모조리 징병으로 끌려가거나 징용으로 끌려갔다. 만득이 역시 징병에 끌려가게 되었고 그들의 사랑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게다가 일제는 마을처녀들까지 위안부로 끌고 갔다. 곱단은 이를 피하기 위해 한번 장가갔던 중년남자와 혼인을 치르고 멀리 신의주로 떠나갔다. 만득은 억울하고 절망적이었을 그 때의 곱단을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 곱단을 가슴에 묻고 사는 만득과 혼인한 순애의 불행은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당신들은 정신대문제를 대수롭잖게 여기며 그것이 강제였다는 증거를 대보라고 말하고 있다 .유엔에서 위안부동원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공식선언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이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 없다. 뿐만 아니라 일제 때 강제동원 되었던 사람이 700만이었다. 이는 우리 국민의 3분의 1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배상받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인 강제 징용의 한이 서린 하시마섬을 포함한 산업시설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으니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우리에게 땅이란 삶의 터전이고 고향인데 그 땅을 빼앗아갔으니 당신들이 천인공로할 범죄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당신들은 36년간 우리 땅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하길 바란다. 어떻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하는 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오늘도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계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물어보길 권한다. 당신들 때문에 망가진 몸과 마음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과 고향을 어떤 식으로 배상받아야 할지도 한번 물어봐 주길 바란다. 그리고 며칠 전 진정한 사과와 정당한 배상조차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위안부 할머니 두 분의 명복을 빌어주길 바라며 이제라도 살아계신 5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정당한 배상을 해 드리길 간곡히 바란다.
2015.06
<근래 역사논술수업을 받으며 작성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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