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0

코로나 마스크의 다면성 – 과학의 지평

코로나 마스크의 다면성 – 과학의 지평


과학철학
코로나 마스크의 다면성2020년 7월 7일





Naheat(STUDIO E.M.E)


홍성욱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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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faces of COVID19 Masks

2020년 5월 19일, 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입실란티Ypsilanti에 있는 포드 공장을 방문한 뒤에 기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보도된 사진을 보면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하는 기자와 달리 트럼프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미시간 주지사는 트럼프가 공장을 방문하기 전에 트럼프에게 마스크를 쓰는 규정을 준수해줄 것을 특별히 부탁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트럼프의 행동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백악관은, 공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던 트럼프가 회견 직전에 기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더 잘 보도록 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벗었다고 해명했다.[1] 이보다 약 3주 전인 4월 28일에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는 코로나19COVID19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메이요 병원Mayo Clinic을 방문했을 때 혼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2]



마스크의 정치적 의미

트럼프나 펜스 같은 정치인들은 코로나19가 낳은 위기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특히 트럼프는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약하고 쉽게 굴복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위기 상황이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일 수 있는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보다 좀 더 복잡한 패턴을 볼 수 있다. 2020년 4월 초에 이루어진 ABC 뉴스와 입소스Ipsos 조사기관의 합동 조사에 의하면 “지난 1주일 동안에 집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47%만이 “그렇다”고 답을 했다. 절반이 넘는 53%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69%가 마스크를 했다고 대답했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한 사람들은 31%에 불과했다. 마스크의 착용에 대해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22%의 큰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3]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트럼프와 펜스의 행위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켰지만,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동의를 얻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이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행동으로 비쳤다.

이런 차이는 위험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인류학자 매리 더글러스Mary Douglas와 정치학자 아론 윌다브스키Aaron Wildavsky는 특정한 집단을 ‘위계-평등’ 축과 ‘개인-집단’ 축이라는 두 개의 축을 이용해서 4 가지 부류로 나눴는데, 개인적이고 위계적인 성향이 강한 ‘위계주의자’와 평등적이고 집단적 성향이 강한 ‘평등주의자’는 위험을 인식하는 데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위계주의자는 기후변화나 원자력 발전을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서, 평등주의자들은 기후변화와 원자력 발전을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위계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연의 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평등주의자들은 자연의 힘이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한다.[4] 위계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많고, 거꾸로 평등주의적 성향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더 많이 공유하고 있다. 위험에 대한 이런 인식 차이가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에 대한 차이를 낳은 중요한 원인이었다.





마스크를 둘러싼 동서양의 차이

독감, 신종플루, 사스SARS, 메르스MERS 같은 심각한 호흡기 감염 질환의 경우 마스크 착용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은 한결같았다.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은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 번 쓴 뒤에는 이를 안전하게 폐기처분해야 했으며,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집에 있거나 외출을 할 때 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권했다. 반면 건강한 사람들은 외출을 할 때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었다. 건강한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할 때는 증상이 있는 사람이나 환자를 돌봐야 할 때로 국한되었다. 환자들이 마스크를 쓴다면 세균으로 감염된 대부분의 비말은 환자의 마스크에 의해서 차단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건강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었다. 이런 지침에 의하면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슈퍼마켓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의료진에게 돌아가야 하는 마스크를 빼앗은 이기주의자들인 셈이었다.[5]

세계보건기구의 지침은 의사, 보건학자, 간호사 같은 의료전문가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었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계속 반복해서 강조되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각국은 물론 한국의 의료진들도 이런 관점을 공유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질병관리본부나 보건부는 이런 지침을 하달했고, 사태 초기에 미국과 유럽의 백인들 다수는 이런 지침을 따라서 마스크 없이 생활했다. 그렇지만 코로나19가 처음 발원되었던 우한과 중국의 다른 도시의 주민들은 물론, 한국과 대만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시민들은 너도나도 마스크를 착용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각국에 사는 아시아 사람들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일본의 패션 마스크

왜 아시아와 아시아 사람들이었을까? 우선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적으로 허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6] 독감이 유행하면 감기에 걸린 사람들만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마스크를 착용했고, 미세먼지가 조금만 심해져도 강력한 필터를 장착한 마스크를 사용하곤 했다. 일본의 경우 개인용 마스크 생산은 2011년에 5억 장에서 2018년에는 44억 장으로 9배 가까이 증가했다.[7] 이는 일본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수술용 마스크를 ‘패션’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경향이다. 2012년 초, 일본의 한 TV는 젊은 여성들이 패션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음을 보도하면서,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들을 인터뷰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질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화장을 하지 않아 얼굴을 숨기고 싶을 때.
얼굴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얼굴이 작아 보이게 하고 싶어서.
편안해서.
잠잘 때 목이 마르는 것을 막으려고.



이 외에도 군중 속에서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눈만 내놓음으로써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8]

한국의 경우 특히 연예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젊은 층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젊은 세대도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나 자신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을 때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나 일본과 차이가 났던 부분은 미세먼지였다. 미세먼지가 심했을 때 시민들 중 상당수는 길을 걸을 때나 출근을 할 때나 야외 활동을 할 때 강력한 필터를 장착한 KF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는 내가 나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결심의 뜻으로 읽혔고, 미세먼지 마스크의 효용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자를 비판하거나 조롱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대기오염이 심각해지고, 이런 환경에서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난 10여 년의 기간 동안에 얼굴을 가린다는 행위의 부정적인 의미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내가 아프거나 기침이 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몸에 해로운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9]

반면에 서양에서는 얼굴을 가린다는 것이 훨씬 더 부정적이고 심지어 “공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1970년대에 이미 신원을 확인하기 힘든 의복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프랑스는 2004년에 학교에서 얼굴을 가리는 스카프를 착용하는 것을 금했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캐나다에서는 2011년 이후에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니캅niqab이나 브루카burka를 쓰는 것을 금지했다. 최근에는 이런 “브루카 금지Burqa Bans”가 다른 방법으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까지 확대되었다. 이 조치는 “누구도 공공영역public sphere에서 얼굴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의복의 품목을 착용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물론 이 법안이 이슬람 여성을 표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법안의 문구는 민주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공공영역에서 서로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서구 사회의 암묵적인 전통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10]



마스크가 낳은 문화 전쟁Culture Wars과 물리적 공격

이러한 인식은 “얼굴은 곧 정치다”라는 주장을 한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élix Guattari의 철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에서 백인의 얼굴과는 다른 얼굴 특성을 기이한 것으로 치부하는 행위에서 인종차별주의의 시동이 걸린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주장을 “얼굴성”faciality이라는 개념으로 축약했다.[11] 『얼굴의 정치학』의 저자 제니 에드킨스Jenny Edkins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을 토대로 해서 서양의 전통 속에서 얼굴이 주체성과 인성은 물론 정치적 권력이 작동하는 인터페이스임을 설득력 있게 보였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을 한 병사의 얼굴을 찍은 사진 한 장이 큰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주면서, 이 논쟁의 원인이 사진과 병사가 가졌다고 간주된 ‘병사의 본질’이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12] 여기서 우리는 서구 사회가 얼굴성에 대한 독특한 가정―예를 들어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는―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서양인들에게 얼굴을 가리는 것이 소통을 거부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감추면서 타인을 관찰하는 위협적일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이런 문화적 차이가 크고 작은 사건과 인종차별적인 충돌을 낳기에 충분한 뇌관이 되었다.

2020년 이전에는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마스크가 일종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재미있는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이런 문화적 차이가 크고 작은 사건과 인종차별적인 충돌을 낳기에 충분한 뇌관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유색인들에게 부적절한 언행으로 경고를 하거나 체포를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병원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면마스크를 쓰도록 강제했지만, 니캅을 쓴 무슬림 여성은 병원 출입을 못 하게 막은 사건도 있었다. 백인 경찰의 눈에 니캅은 마스크가 아니라 금지된 종교적 의상일 뿐이었다. 뱅쿠버에서는 백인 남성이 마스크를 쓴 동양인 여성들을 연쇄적으로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자신이 동양인이고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폭행의 대상이 되었다고 진술했다. 영국의 도시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던 아시아인들이 따가운 눈총이나 욕설,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13] 영국에서 유학하던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폭력적인 공격을 연구한 사회학자 후앙Yinxuan Huang은 공격을 당한 중국학생들이 모두 당시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서, 이런 신종 인종차별주의에 “마스크혐오maskphobia”라는 이름을 붙였다.[14] 마스크는 공격의 대상을 확실히 구별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서양인들에게 이를 착용한 동양인들이 서양인인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확신을 심어준 징표였다.

한국, 중국, 대만, 그리고 조금 뒤에 일본 국민들이 마스크를, 그것도 바이러스 비말의 차단효과가 비교적 확실한 KF 마스크나 이에 준하는 마스크를 빨리 착용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앞서 얘기했듯이, 얼굴을 가리는 것에 대한 문화적 금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2020년 초에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이미 마스크를 생산하던 업체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KF 마스크는 2009-2010년에 신종플루가 유행한 뒤에 바로 만들어져서 유통되기 시작했다.[15] 신종플루의 위협이 지나간 뒤에 강력한 마스크의 수요가 줄었지만, 2013년에 WHO에 의해서 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되면서 마스크에 대한 요구가 다시 급증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시민들은 출근할 때, 산책할 때, 심지어 학교와 직장에서도 KF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가 미세먼지의 차단에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심해지고[16], 시민들이 점점 더 뜸하게 마스크를 착용하던 시점에 코로나19가 급습했다. 2020년 1월, 적지 않은 가정에는 미세먼지용으로 구입했다가 남은 마스크가 수십 장씩 있었다.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마스크는 개개인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방패로 인식되었다.





마스크의 효능에 대한 논쟁

문제는 이것이 얼마큼 믿을만했는가라는 것이다. 2020년 1월 29일,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마스크 생산업체를 점검하고 방문하는 자리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KF94’, ‘KF99’ 마스크를 쓰라”고 강조했다.[17] 그런데 이런 지침은 당시 WHO나 국내 질병관리본부의 지침과 큰 차이가 있던 것이었다. 2월 10일에 발표된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에 따른 감염병 예방수칙에는 “기침 등 호흡기 증상 시 마스크 착용하기”만 명시되어 있었다. 즉 질병관리본부는 증상이 있는 사람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는 WHO의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18]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언론과 인터뷰를 한 감염내과 의사는 마스크의 착용에 대해서 상반된 얘기를 했다.[19]

Q. 미국 정부는 일상 중 마스크 착용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A. 미국처럼 사람들이 밀접하게 생활하지 않는 곳에서는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의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고 사람이 밀집해 있는 곳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질병관리본부에서 마스크 쓰기를 권장한다. 원래 마스크는 자신에게 나오는 호흡기 비말(침방울)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최근에 제작된 마스크는 비말까지 걸러주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마스크 착용은 호흡기감염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도 지금처럼 환자 접촉이 높을 때는 마스크 착용이 효과적이라고 당부했다. … 일상에서는 일회용 덴탈 마스크(수술용 마스크) 혹은 KF80 정도로 충분하다.

위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몇 가지 상반된 정보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는 당시에 건강한 사람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의 당부는 “환자 접촉이 높은” 의료진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인터뷰를 한 의사 자신의 견해였다. 엉뚱하게 각색된 정보들이 합쳐져서 마스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제시되었던 것이다.



연재글


당시 이런 혼란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었다. 2020년 2월 29일에도 미국의 제롬 애덤스Jerome Adams 공중보건국장US Surgeon General은 마스크가 코로나19를 예방하는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건강한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사지 말라고 다시 당부했다. 심지어 그는 마스크를 잘못 사용할 경우에 코로나19에 더 쉽게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20] 애덤스의 당부와 경고는 당시 WHO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미국의 뉴스는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다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21] 전반적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나 의료기관들은 환자와 접촉하는 의사가 아닌 일반 시민의 경우에는 마스크 착용이 필요 없다는 WHO의 가이드라인을 반복했고, 개별 전문가들 중에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사람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곤 했다.

혼란이 계속되자 국내의 한 언론은 아예 ‘마스크 착용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발표해서 언제 어떤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알고리즘은 1) 기저질환이 있거나 건강 취약 계층의 경우에는 (일상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2) 밀폐된 공간에서 2미터 이내의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경우에는 N80 정도의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고했다.[22] 이에 따르면 증상이 없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도 마스크 착용이 권장되는 셈이었는데, 이는 WHO 지침에는 등장하지 않은 권고안이었다.

당시 시민들은 출퇴근 할 때는 물론, 쇼핑을 하거나 거리를 걸어갈 때, 심지어 산책을 할 때에도 마스크를 하곤 했다. 그렇다면 위의 알고리즘은 시민들의 일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스크 착용은 일부 의료 전문가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미세먼지와 관련해서도 마스크 사용의 자제를 권고했던 아주대학교 장재연 예방의학과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전염력이 있는 확진자를 대면하는 확률이 매우 극히 적음을 지적하면서, 코로나19를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당시 상황을 놓고 “마스크 착용에 대한 맹신은 주술이나 부적에 가깝다”며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23]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하게 시민들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마스크를 수매했고,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자 2월 하순부터는 ‘마스크 대란’이 왔다. 대통령은 마스크 수급을 원활하게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관련자들을 질책하고,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서라도 마스크를 시중에 공급하라고 명령했다.[24]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이렇게 등장했다. 그렇지만 마스크를 사기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섰지만 구입을 하지 못하고 허탕을 쳤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이렇게 국민들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마스크에 ‘집착’하는 장면은 외신의 보도거리가 되기도 했다.[25] 정부는 KF94 같은 마스크를 의료진에게 양보하고 면마스크를 쓰라는 운동을 벌였고, 문재인 대통령도 한때 노란 면마스크를 쓰고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26] 그렇지만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대량 생산하던 우리나라의 사정은 외국에 비해서 훨씬 더 양호한 편이었다. 마스크 수급난은 5월이 되면서 점차 가라앉았다.





무증상 감염과 마스크

마스크에 대한 집착은 바이러스의 공포가 낳은 집단 패닉의 일면에 불과한 것일까? 2020년 1월 하순에 우한의 감염사례에 대한 분석은 상당수의 감염자가 ‘무증상 감염자asymptomatic carrier’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당시까지의 호흡기 감염병의 연구와 상치되는 결과였고, 따라서 의료기관이나 연구자들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무증상 환자라고 간주된 사람들이 실제로는 증상이 거의 없거나 약한 잠복기 환자patients in incubation period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의 경우 잠복기가 최대 14일이나 되었기 때문에, 잠복기의 마지막 기간 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을 전염시키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잠복기 감염 외에 진짜 무증상 감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견해가 꾸준히 제시되었다. 국내에서는 3월 초에 세 명의 무증상 감염자의 사례가 확인되면서 이 문제가 다시 크게 부각되었다. 이후 무증상 감염은 코로나19의 가장 독특한 특성임이 여러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계속 확인되었다.

무증상 감염자가 전체 감염자의 몇 %가 되는지, 이들의 감염력이 얼마나 큰지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었고, 지금(20년 6월)도 그러하다. 3월 31일에 미국 질병관리본부 소장인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는 전체 감염자의 25%가 무증상이라고 발표했다. 4월 초에 이루어진 한 분석에서는 무증상 감염자를 전체 감염자의 5%에서 80% 사이로 잡고 있었고, 뉴욕의 한 병원에서 이루어진 검사 결과는 심지어 88%의 환자가 무증상 감염자임을 보인다고 보도되기도 했다.[27] 국내에서도 집단에 따라 8%에서 36%의 무증상 감염 비율이 나타났다.[28] 이런 큰 편차는 아직도 무증상 감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나 이해가 충분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증상 감염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마스크 사용의 유효성과 의미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무증상 감염자가 많이 있다면, 건강한 사람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전염병의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버밍엄 대학교의 보건학 연구소 소장인 쳉K.K. Cheng 박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초기부터 계속해서 마스크의 사용을 강조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무증상 감염의 존재가 거의 확실하게 밝혀진 2020년 4월에 마스크라는 것이 이제 개인의 이기심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solidarity와 이타심altruism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음을 강조했다. 증상이 없는 내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가 무증상 감염자일 수가 있고 따라서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무증상 감염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29] 한국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이 아니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눈총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마스크 미착용자들이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30] 이렇게 해서 서양에서는 이기적이었던 행위가 동양에서는 이타적인 행위로 그 자리를 바꾸었다. 마스크는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의 시기에 연대와 이타심이라는 휴머니즘의 이상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 존재였다.

무증상 감염의 존재가 거의 확실하게 밝혀진 2020년 4월,

쳉K.K. Cheng 박사는 마스크라는 것이 이제 개인의 이기심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solidarity와 이타심altruism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음을 강조했다.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에 의하면 인간은 비인간을 정복하고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대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 조화로운 관계가 깨졌을 때 비인간의 역습이 일어난다. 이번에 겪고 있는 코로나19 위기도 인간-비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이 깨졌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실천은 인간과 비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지만, 이것이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잘못을 빌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매일 확진자의 통계에 대한 뉴스를 보고, 다가오는 여행과 학회를 취소하며, 학생들과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이 위기를 넘겨야 할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코로나19 위기의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불완전하지만 이를 가능케 해 주는 것이 또 다른 비인간인 마스크이다. 내가 얼마나 제대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 내가 사용했던 수십 장의 마스크가 지금까지 얼마큼의 바이러스를 막아 주었는지, 이것이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부적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마스크는 바이러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인간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될 때까지 우리의 일상을 70% 유지하게 해 주는 또 다른 비인간이다.

2020년 6월 5일, 세계보건기구가 가이드라인을 바꿔서 건강한 사람도 사람이 밀집한 대중교통, 가게, 그 외의 다른 복잡한 공공장소에서 모두 마스크를 쓰리고 권고하면서, 각국의 정부가 이를 홍보해주길 바란다고 공표했다. 호흡기 감염병과 관련해서 마스크 사용의 가이드라인이 최초로 바뀐 것이었다.[31] 비슷한 시기에 <뉴욕타임스>는 일본에서 코로나19 감염이 잘 통제된 원인으로 시민들 대다수가 마스크를 썼다는 것을 꼽았다.[32] 코로나19 위기의 초기부터 마스크를 쓴 동아시아 시민들이 공동체와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에서 마스크를 쓰지는 않았겠지만, 무증상 감염이 가정에서 현실로 바뀌면서 지금(20년 6월) 마스크는 연대와 이타심의 상징, 동양적인 미덕을 담은 인공물, 그리고 성공적인 방역의 도구로 새롭게 평가되는 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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