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알라딘: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가? 진중권

알라딘: [전자책]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가?  epub 
진중권 (지은이)천년의상상2020-11-18 

전자책정가
11,900원
종이책 페이지수 296쪽,

책소개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마다 언론들의 기사화로 뉴스메이커가 되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정의의 사도를 자임했던 촛불 정권의 타락과 위선을 더 심도 높게 비판하는 책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강양구 권경애 김경율 서민 진중권)가 조국 사태부터 2020년 2월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2020년 2월 이후 집권 세력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파헤친다.

목차
서문
제1부 진리 이후의 시대
01 대안적 사실
실재보다 강렬한 허구
02 실재의 위기
지루한 현실과 재밌는 허구
03 매트릭스와 저지전략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04 세계를 만드는 방법
공작정치, 세계를 날조하다
05 음모론의 시대
과학을 대신하는 이야기

제2부 팬덤의 정치
06 팬덤 정치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07 소비자 민주주의
유권자에서 소비자로
08 게이미피케이션
인간장기, 게임이 된 정치
09 은유와 환유의 정치
노무현이 어쩌다 조국이 됐나
10 개인의 해체
한 입으로 두말하는 분열자들

제3부 광신, 공포, 혐오
11 종교적 광신
‘이 세상의 신’ 노릇을 하는 그들
12 정치적 주술
왕의 목을 베라
13 파니코스
공포와 혐오의 정치학
14 파르마코스
만인의 평화를 위한 마이너스 1
15 코로나 독재
K방역과 코로나 보안법

제4부 민주당의 연성독재
16 프레임 전쟁
중도층은 미신이다?
17 선전선동
“진리는 국가의 적이다”
18 기억의 정치
기억을 지워버린 기억의 연대
19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자살
20 원칙이성과 기회이성
그들은 왜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제5부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21 원한의 정치
짓밟힌 노무현의 꿈
22 포스트 노무현
노무현의 시대가 왔는데 노무현이 없다
23 대통령의 철학
대통령은 어디로 갔는가
24 편 가르기 정치
지도자란 무엇인가
25 문재인 정권의 영상전략
우상이 된 대통령

제6부 진보의 몰락
26 포스트-윤리의 시대
진보는 왜 보수보다 뻔뻔해졌는가
27 오인으로서 정체성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28 부친살해의 드라마
이제 우리가 살해당해야 한다
29 앙가주망
지식인의 묘비
30 진보의 종언

박원순의 죽음은 진보 전체의 죽음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2017년 1월 미국 백악관의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매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 인원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P. 7 논객도 다르지 않다. 그의 사명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직하는 데에 있다. 논객은 나팔수가 아니라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심오한형이상학적 진실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져야 한다. 정론(政論)의 임무는 ‘보는 자’의 눈으로 본 것을 문학적 언어로 분절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데에 있다. 여당 지지자들은 나를 ‘극우 논객’이라 부르나, 예이츠 시 속의 아일랜드 비행사처럼 “나는 내가 맞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위해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한쪽의 비난이 나를 슬프게 하지도, 다른 쪽의 환호가 나를 기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할 때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접기

P. 26~27 대안 매체는 레거시 매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레거시 매체가 전하는 ‘사실’이 자기들이 만드는 ‘대안적 사실’의 허구성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레거시 매체가 가하는 이 ‘팩트의 폭력’에 대안 매체는 또 하나의 음모론을 꾸며내 맞선다. ‘알릴레오’ 송년 특집에서 유시민은 레거시 매체의 ‘기레기들’이 검찰과 유착하여 그들이 흘리는 기사만 받아서 쓴다고 매도했다. 레거시 매체들에서 하는 보도를 싸잡아 신뢰해서는 안 될 ‘검찰괴담’으로 격하해버린 것이다.  접기

P. 37~38 솔직히 나는 ‘촛불정권’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외려 권력이 이 방식을 사용해 그 환상을 계속 유지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했다면 ‘촛불혁명’이라는 권력의 연극을 도울 의향까지 있었다. 하지만 권력은 부패한 자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기들을 맹신하는 40퍼센트 지지자만을 위해 ‘그 부패한 자들이 부패하지 않은 대안세계’를 날조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60퍼센트의 시민들은 권력이 ‘촛불정권’이라는 번거로운 허울을 벗어던지고 아예 이익집단으로 제 알몸을 노출하는 민망한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접기

P. 48 개혁한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고작 검찰을 다시 권력의 개로 길들여놓았다. 그래도 자기들이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것은 아나 보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애써 변명을 한다. “검찰은 중립성을 지켜야지, 독립성을 지켜야 할 조직이 아니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검찰에 독립성이 필요한 것은 그것이 중립성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독립성 없는 조직이 어떻게 중립적일 수 있겠는가.  접기

P. 53 ‘음모(conspiracy)’라는 말에는 ‘함께(con)+숨 쉬다(spirare)’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음모란 소수의 사람들이 숨 닿을 거리에서 끼리끼리 속닥인다는 뜻이다. 사회란 각 개인·계층·계급의 욕망이 필연적 법칙이나 우연적 계기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합력(合力)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고대에는 사회과학이 없었기에, 그시절 사람들은 모든 사회현상을 신화로, 즉 신들이 끼리끼리 속닥거려 세상을 움직인다는 ‘이야기’로 설명하곤 했다. 음모론은 인간의 의식을 과학에서 신화의 시대로 되돌려 보낸다. 하지만 현대의 음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 신화와 달리 나름 합리적 추론과 과학적 논증의 외양을 띠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절반은 사실, 나머지 절반은 상상이다. 절반의 거짓이 그냥 거짓이듯이 절반의 사실도 실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허구는 사실의 자격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반박하는 것은 아주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접기

======
진중권 (지은이)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인문학이라는 올드미디어는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뉴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로 정의해야 한다”라는 구상 아래 다양한 기획을 해왔으며 이와 연계된 교육·연구·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교수, 문화비평가, 시사평론가, 시대의 부조리에 독설을 날리는 우리 시대의 대표 논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스스로는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더보기
최근작 :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철학 오디세이 1> … 총 174종 (모두보기)
SNS : http://twitter.com/unheim

출판사 제공 책소개

1. 진중권의 비판의 칼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 ‘대안적 사실’, ‘대통령의 철학’, ‘진보의 종언’ 등 30가지 키워드로 보는 정권의 민낯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마다 언론들의 기사화로 뉴스메이커가 되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그가 정의의 사도를 자임했던 촛불 정권의 타락과 위선을 더 심도 높게 비판하는 책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를 펴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강양구 권경애 김경율 서민 진중권)가 조국 사태부터 2020년 2월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2020년 2월 이후 집권 세력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파헤친다. 그의 날카로운 비평은 인문적 사유를 바탕에 깔고 현실 문제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어 “날카로운 통찰력”, “냉철한 비판”, “완벽한 글”, “시원시원하다” 등의 찬사와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많지만, 그를 못마땅해하는 이들은 “변절자”, “극우논객”, “척척석사”라 비아냥대기도 한다.
애초 그는 촛불 정권이라는 긍정적인 환상을 권력이 유지하기를 바랐고, 거기에 협조하려 했다고 〈서문〉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후안무치가 도를 넘었다고 결론 내리고 싸움을 시작한다. 당사자를 도려내 부패를 감추려 한 역대 정권들과 달리 현 정권은 오히려 그들을 끌어안고 아예 그들에게 맞춰 세계를 날조하려 한다는 게 그의 의심이었다.
진중권의 진보 비판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존경하는 노무현 정부 당시 맹목적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여권과 대립하며 황우석 신화 깨기의 선봉에 섰고, “누구도 ‘디워’에 관한 반대 의견을 꺼내지 않을 때 이 일에 나서며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인가?” 일갈하며 영화 <디워> 비판에 나섰으며, 이명박 정부 때는 <나는 꼼수다>와의 ‘음모론’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와 열여덟 권의 책을 함께한 편집자(선완규)에게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의 〈서문〉은 유독 애잔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서문은 조국 사태부터 현재까지의 마음을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문체와는 다르게 담담히 써내려가고 있다.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 …… 그때만 해도 싸울 생각은 없었다. 이미 황우석·심형래·조영남 사건을 거치면서 대중에 맞서 싸우는 일에 신물이 난 상태. 팔로워 86만에 달했던 트위터 계정마저 닫고 3년 동안 조용히 지내던 차였다. 게다가 이번엔 대중의 뒤에 권력이 있기에 아예 싸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즈음에 낸 책의 서문에 이렇게 쓴 것으로 기억한다. “불의를 정의라 강변하는 저 거대한 맹목적 힘 앞에서 완벽한 무력감을 느낀다.” …… 싸움을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주변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가방 속을 구르다가 찢어진 사직서를 테이프로 붙여 팩스로 보내고, 정의당에도 아직 처리되지 않은 탈당계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직과 탈당을 마치고 10년간 놀렸던 페이스북 계정을 되살려 글 질을 시작했다. …… 최근 세상이 많이 낯설어졌다. 얼마 전 한 가수가 고대 철학자를 불러내 물었다. “세상이 왜 이래?” 그만의 느낌은 아닐 게다.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바로 그 물음에서 출발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는가. 사회는 왜 아직 이 모양인가. 정권의 지지자들은 왜 저렇게 극성스러운가. 민주당은 어쩌다 저 꼴이 됐는가. 대통령은 대체 뭐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서문〉에서

2.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 진중권이 이 싸움을 시작한 이유

그는 지금 여기의 시대상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었던 ‘1930년대 독일 사회’ 같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현재의 한국 사회 역시 자기가 속할 진영부터 정한 다음, 거기에 입각해서 참․거짓의 기준과 선악의 기준을 다 바꿔버리기 때문으로 본다. 당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사회 혼란을 잠재우고 경제적 번영과 위대한 독일을 실현시켜주겠다며 국민들을 세뇌했고, 그 결과 집권에 성공해 전체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그들처럼 진영 논리에 매몰된 결과 “한 입으로 두말을, ‘내로남불’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라는 것이다.
거짓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진실이다. 진실은 그 자체로 강하다. 아무리 많은 거짓말을 해도, 또 그 거짓말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해도, 어떤 거짓이든 그것은 결코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 진중권은 바로 그런 이유로 자신의 싸움의 끝을 믿는다. 그가 언론에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2020년 1월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때만 해도 분위기는 무서웠다고 한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속으로 긴장부터 해야 했다는 것이다. 말을 잘못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던 시절 우연히 생각이 같은 이를 발견하면 마치 우글거리는 좀비들 틈에서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고도 했다. 무섭고 외로웠던 시절을 그들 덕에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랭보는 시인을 ‘보는 자(le voyant)’로 규정한 바 있다. 논객도 다르지 않다. 그의 사명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직하는 데에 있다. 논객은 나팔수가 아니라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심오한 형이상학적 진실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져야 한다. 정론(政論)의 임무는 ‘보는 자’의 눈으로 본 것을 문학적 언어로 분절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데에 있다. 여당 지지자들은 나를 ‘극우 논객’이라 부르나, 예이츠 시 속의 아일랜드 비행사처럼 “나는 내가 맞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위해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한쪽의 비난이 나를 슬프게 하지도, 다른 쪽의 환호가 나를 기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할 때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서문〉에서

3. ‘진중권 스타일’에 주목한다
- 단검 같은 글, 인문학과 현실의 찐한 랑데부

2019년 8~9월경, 편집자는 그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과 담배 한 개비를 나누며 나에게 물었다. “나 어떻게 해야 할까?” 사적인 인연과 공적인 판단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공적 판단으로 사적 인연을 끊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그는 공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했고 편집자에게는 그런 그의 결단이 매우 크게 보였다. 이후 그의 페이스북 글과 매주 연재하는 글에서 이전의 ‘논객 진중권’의 글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더 주도면밀히 정치를 관찰하는 것 같았고 그것을 인문학적 글쓰기로 표현하고 있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시대와 대면하여 몇 날 며칠 숙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글의 정신’이 보였습니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28년간 그의 글을 읽어왔지만,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2020년 그의 글을 읽으며 미학자 진중권의 인문학과 논객 진중권의 정치사회 비평이 하나의 사유로 엮이는 새로운 체험을 합니다.” - 편집자 선완규

진중권의 비판에서 그가 언어로 추는 칼춤은 경탄스럽다. 다이아몬드를 훔쳐 달아나다 열린 맨홀에 빠지는 바람에 감옥에 가서는 맨홀 탓만 하는 도둑을 조국 전 장관 부부에 빗대는 풍자나, 전 청와대 대변인과 여당 대표의 가상 대화를 신파극으로 각색하는 해학은 일품이었다.
거기서 편집자는 디지털 미학의 관점에서 미디어 이론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는 그의 인문학과 현실의 ‘찐한’ 융합을 볼 수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글은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원용해 문재인 정권의 위기관리 전략의 특성을 분석한 글이다(<03. 매트릭스와 저지전략,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재인 정권은 실은 촛불 정권이 아니라 촛불 정권의 허상을 쓰고 있었을 뿐이며, 이제는 그 허울마저 벗어버렸다는 날카로운 고발이다.

보드리야르는 저지전략의 실례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제시한다. 이 사건은 원래 미국식 민주주의의 추악함을 폭로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이 사건은 거꾸로 미국식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예로 기억된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권력이 이 사건을 철저히 ‘개인의 스캔들’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즉, 타락한 것은 권력 자체가 아니라 닉슨 개인이라는 것이다. 고로 그만 물리면 권력은 계속 깨끗한 척할 수 있다. 심지어 ‘대통령도 잘못하면 물러나야 하는 나라’라고 칭송까지 받는다. 미국의 대통령은 아마 누구나 도청을 했을 것이다.
닉슨의 전임자도 후임자도. 그저 들키지 않았을 뿐. 부패는 권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기자가 폭로해버렸다. 이것이 돌발사태다. 실재계에서 들어온 요소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상의 가상성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결국 권력은 그 사건을 닉슨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프레이밍 했고, 그로써 자신의 부패한 본질을 감추고 위대함의 후광까지 얻었다. 이것이 저지전략이다.
문재인 정권의 위기관리 방식은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정권은 감추려다 실패한 비리 사건의 경우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로 치부해 당사자를 도려내는 식으로 처리해왔다. 이 정권은 다르다. 그들은 부패한 자들을 도려내는 대신 외려 끌어안고, 아예 그들에게 맞추어 세계를 새로 날조하려 한다. 거기에 늘 노골적 선동과 대중의 자발적 동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정권의 전략은 다분히 전체주의적이다. 민망한 일이다.(본문 32~33쪽) 접기
북플 bookple
     
좋은책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을게요.  구매
망망구리 2020-11-09 공감 (12) 댓글 (0)
Thanks to
 
공감
     
새로운 기득권층이 되려는 진보라 자칭하는 무리들의 온갖 기만과 음모 조작 선동을 예리하게 파헤친책
역시 진중권님  구매
wolf 2020-11-10 공감 (10) 댓글 (0)
Thanks to
 
공감
     
신랄하다~! 통쾌하다~!!

작년 가을부터 답답증을 앓아오던 벙어리 냉가슴이 한방에 뻥 뚫린다~~!!  구매
시마과장 2020-11-24 공감 (8) 댓글 (0)
Thanks to
 
공감
     
이번 새로운 작품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구매
아우구스티누스 2020-11-10 공감 (6) 댓글 (0)
Thanks to
 
공감
     
감사합니다
이들이 데체 왜저러는지 를 잘알게 되었습니다
신망있는 소설가 물론 소설을 팩트라고 주장하는 그래서 믿고 보아야 한다는 . .
그들의 이상한 행위 어느센가 신뢰있는 공중파 방송에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보도 등등을
덕분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구매
haein 2020-11-26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구매자 (1) 
     
진보가 이지경이 되기까지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는 부패 경찰이 경찰대 수석 출신 신입 파트너를 만나면서 이 둘이 상대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입 경찰 박중훈은 순식간에 부패 경찰이 되고, 여기에 질린 선임 안성기가 '남들 20년 걸려 썩은 걸 넌 1년도 안되어서...' 대충 이런 말로 비판한다.

 

지금 그 말이 어울린다. 새누리당이 - 그 전신을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 그 적폐가 쌓이는 데에는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대안세력으로 집권한 민주당은? 똑같이 되는 데 3년도 안 걸렸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되기 위해 집권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진보'를 자처하는 권력의 빠른 부패와, 그럼에도 지지자들이 지지를 거두지 않는 현상을 지적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 한국일보 칼럼을 정리한 것이다. 흥미로운 접근법을 시도한다. 다양한 인문학적 이론이나 현상들을 집권세력의 현실에 대입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월터 옹, 발터 베냐민, 조지 레이코프, 브레히트 등이 언급된다. 그렇기에 설득력이 상당히 높다. 다만,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글을 썼는지, 그리고 저자의 인용이 적절했는지는 앞으로 내가 독서를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다.

 

저자는 한국일보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진보를 비판한 반면, 주간동아에서는 대안으로서의 보수의 전략을 제안하는 연재 칼럼을 썼는데 이것도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주당이 부패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이념'이 아닌 '시스템'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제대로 된 견제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몰락한 것은 그들이 쌓아온 산업화라는 서사가 수명이 다 된 것이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정통 보수, 애국 보수, 도덕적인 보수, 존경받는 보수가 '육성'되어야 함을 실감한다. 그래야 부패하지 않은 진보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는 것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 지겹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하고도 싶다. 그럼에도 굳이 구입하여 읽은 것은, 그가 지금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한 표를 행사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로부터 민·형사 소송을 당하고 있는 그를 후원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싸움이 되길.

 

(아래에 몇몇 문장 인용)


버티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눈을 믿지 말고 계기를 믿으라.‘ 인간에게 그 계기는 물론 ‘이성‘이리라.- P29

대중이 매트릭스 안에서 허황하게 평등사회의 꿈을 꿀 때, 그 세계의 아키텍트들은 매트릭스 밖에서 야무지게 ˝강남에 건물을 소유해 편히 살˝ 꿈을 꾼다. 대중의 꿈이 관념론적이라면, 아키텍트들의 꿈은 유물론적이다. 이것이 매트릭스의 기능이다.- P38

민주당은 팬덤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자위 도구가 되었다. 팬덤을 쫓아 그들의 망상 속으로 따라 들어가버렸다.- P71

마케팅 정치는 공적 사안을 사적 용무로 바꾸어놓는다. 공적 활동으로서 정치가 사적 소비행위로 사라질 때 위기에 처하는 것은 공화국의 이념이다.- P79

기억하라. 히틀러는 43.9퍼센트의 지지로 집권했다.- P189

- 접기
芽月 2020-11-14 공감(13) 댓글(0)
------------------

“윤석열은 민주당이 만든 치명적 버그” 진중권이 본 진보의 몰락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신간 낸 진중권 심층 인터뷰
곽아람 기자
입력 2020.11.18 
16일 서울 연남동 독립서점에서 인터뷰중인 진중권./박상훈 기자


현정권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는 진중권(57) 전 동양대 교수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상상)라는 책을 냈다.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주장하며 진보 좌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최근 서민 단국대 교수 등과 함께 장안의 베스트셀러가 된 정권 비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일명 ‘조국 흑서’를 내기도 한 진중권은 이번 책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오류)’”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우상화에는 팬덤 문화 외에 NL(민족해방)의 개인숭배 문화가 있는데 북한식 정치문화가 남한의 부르주아 정치에까지 투영된 것”이라 분석했다. “지식인이 정치와 결탁하면 어용으로 변하며 ‘기생충’ 되는 것”이라는 독설도 잊지 않았다. 16일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항공점퍼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진중권을 서울 연남동의 한 독립서점에서 만났다.

◊ “윤석열은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

-당신더러 사람들이 ‘제1 야당’이라는데 투사로 사는 것, 힘들지 않나.

“욕 먹는 게 힘든 게 아니다. 옛날엔 내가 소수여도 우리의 ‘지성적 동지’라는 그룹이 있었다. 이제 그들이 없다. 그런 완벽한 고독감 때문에 육체적·정신적으로 좀 힘이 든다.”

-진보 좌파의 다른 부패·비리 사건도 많은데 유독 ‘조국 사태’에 실망한 까닭은.

“그 전엔 부정이나 부패나 비리 사건이 나오면 사과나 반성을 한다든지 사과하는 척은 했는데 이번엔 그 기준 자체가 무너졌다. 조국은 평소 소셜미디어를 통해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상징자본을 쌓았다. 지식인이란 말을 하게 되면 ‘버든 오브 커미트먼트(burden of commitment)’라 해서 공약의 부담을 지는 거다. 그 부분의 컨트라스트(contrast⋅대비)도 있었고… 그 친구를 굉장히 신뢰했었다. 한 때 같이 트위터의 쌍포 떴었는데… 그냥 그렇게 사는 것도 실망이었지만, 그건 사람이 별 반성 없이 살다 보면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친구로서는 용서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의 행동이다. 그런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 친구로서 도와주려면 그가 진실을 말해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다.”

-책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라 지칭했다. 윤석열은 어떤 사람일까.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고 검찰 조직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사회의 거악을 척결하는 것이 검찰의 의무이고 이 쪽이든 저 쪽이든 공정하게 칼을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검찰에 너무 많은 권력이 모인 건 사실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 같은 게 있는 사람은 아니다. 금태섭 의원은 검찰에 대한 사명감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윤 총장 임명을 반대했는데 조국 전 장관이 적폐청산 때문에 억지로 관철시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치려면 날카로운 칼이 필요하니 썼는데, 다음에 그 칼이 자신을 향하니 감당이 안 된 거다. 그들의 프로그램에선 버그(오류)였던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공격할수록 윤석열의 지지율이 올라간다.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 건 의미 없다. 그렇게 몰고 나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은 검사고 끝까지 남아 정의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그가 검찰로서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자신들의 수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퇴임하느냐가 시민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한 관심사다. 그 사람이 후에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는 그 때 따지면 된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나도 동의하지만 지금 저 사람들의 목표는 검찰 독립성 자체를 없애 자신들이 통제하려는데 있다. 독립성 아니라 중립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독립성 없이 어떻게 중립성이 있나.”

-이번 책에 작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썼다. 모든 사태가 못된 참모들이 착한 대통령의 눈을 가려 생긴 일이라 믿었다고 했는데.

“그랬다. 그런데 대통령은 재미있게도 철학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에 대한 비전과 남북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자기만의 비전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분은 비전이 없다. 자기가 대통령하려고 했던 분이 아니다. 친노세력이 폐족 상태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때 필요한 카드로 사용했고 지금도 거기 얹혀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역할이 없다. 윤리적 이슈를 놓고 사회가 분열됐을 때 통합하고 기준을 세워주는 기능을 대통령이 해야 하는데 조국 때는 오히려 기준을 무너뜨렸고, 윤미향 때도, 이번 추미애 장관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강요 때도 정리를 해주지 않는다. 국민을 통합시켜야 하는데 갈라치기 한다. 대통령이 없는 거다.”

-왜 그럴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수평적 네트워크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렇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NL의 개인숭배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수령님 문화’ 비슷한 것이다. 문 대통령 숭배는 전대협 ‘의장님’이 행사장에 가마 타고 입장하던 봉건적 문화의 습속이 낳은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다. 이걸 대통령 본인이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감 자체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년의상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쓴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천년의상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쓴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단독] 윤석열 감찰에 평검사 2명 보낸 秋… “노골적 모욕주기”
[단독] 윤석열 조사 거부한 법무부 파견 부장검사, 하루만에 검찰 복귀
◊ “민주당,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학습 없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도 많이 실망한 것 같다. 최근엔 그가 밀의 ‘자유론’을 거론하며 광복절 집회 금지를 위한 차벽을 옹호한 걸 공격하기도 했다.

“그 전부터 많이 싸웠다. 그 후론 친해지기도 했다. 그 분이 원래 자신을 ‘소셜 리버럴’이라 했는데 소셜하지 않다는 건 진작에 알았다. 이번에 딱 보니 리버럴하지도 않더라. 상당히 저 쪽으로 가 버린 것 같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위해 원칙(harm principle)’은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사람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나. 그러면 헌법 위반이 되는 건데. 밀의 자유론을 제약론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 교주가 성경서 한 구절만 딱 따다가 제멋대로 해석해 써먹는 양상이다. 재미있는 건, 지금까지 민주당이 해온 일련의 입법들이 다 반자유주의적이란 거다. 친일파 파묘법, 역사왜곡금지법,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 박형순 금지법부터 최근의 한동훈 금지법까지 하나같이 반자유적이다. 민주당의 당 정체성이 반자유적으로 바뀌었다. 그걸 계속 지적했더니 변명하려고 ‘자유론’을 들고 나온 것 같다.”

-민주당에 어떤 말을 하고 싶나.

“너희들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이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다. 그건 너희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없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라며 우습게 알았다. 민중주의와 민족주의 같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다. 그걸 반성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라진 다음에 민주당의 리버럴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져버렸다. 자유주의적 가치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진보든 보수든 중도든 기본적으로 합의한 규칙이다. 일단 그걸 지킨 다음 진보와 보수가 합리적으로 논쟁하고 경쟁해야 한다. 그 기반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게 위기라 본다. 지금 웃기지 않나. 내가 좌파인데, 자유주의적 가치의 한계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게 뭐야, 도대체. 지금 내 심정이 옛날 레닌이 이야기했던 그거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일반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 하하하!”

-책 서문에 당신의 역할을 ‘논객’으로 규정하며 “나는 내가 맞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위해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예이츠의 시구를 인용했다. 궁극적으로 뭘 위해 싸우는 건가.

“먹물의 의무. 먹물은 기본적으로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켜야 한다. 노동자들이 해주는 옷을 입고 농민들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있는데 밥값 해야 한다. 다들 자기 영역에서 자기 일들만 하면 사회가 잘 굴러가게 돼 있다. 지식인이 갑자기 정치와 결탁하면서 기득권 공유하며 어용으로 변해간다든지 하면 ‘기생충’이 되는 거다. 나도 인생이 서너 개 되면 조국처럼도 한 번 살아보고 싶고, 그놈의 사모펀드도 한 번 해 보고 싶고, 여자 나오는 술집 가서 카드도 한 번 긁어보고 싶다. 그렇지만 인생은 한 번밖에 없는데 자기를 배려해야지.”

-결국은 우국(憂國)인가?

“‘사회’에 대한 우려다. 나는 ‘국(國)’ 자 싫어한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 이 나라에 태어난 것 아니다. 아, 태어나보니 XX, 한국이네… 그렇지만 태어나 속한 곳에 대해 공동체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국가에 대한 뭐 그런 건 없다. 국가관은 투철하다. ‘국민이 고분고분하면 국가가 싸가지가 없어진다’는 국가관을 갖고 있다.”

-좌파 지식인의 대표주자인 진중권이 태극기 세력의 열렬한 성원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 사람들이 내게 환호하는 건 저 쪽을 때리기 때문이다. 좋아해주는 것까지 말릴 수 없다. 다만 진정으로 보수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장 훌륭한 비판은 대안이니까. 자기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맨날 정치싸움하는 게 야당 역할인가. 지금 ‘국민의 힘’은 자기개혁을 해야 한다. 기존 보수 전략의 문제가 무엇이며 새로운 주체 세력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입을 막으면 돌들이 일어나 외치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진중권이 나오고 내가 잠잠하니 조은산이 나오지 않나. 저 쪽을 까는 건 시원하지만 사람이 사이다만 마시고 살 수는 없다. 냉정하게 보수에 대한 비판을 들어보고, 유튜브 보며 속 푸는 게 아니라 젊은 보수 중 탁월한 아이들 발굴해 장학금 주며 키워야 한다. 사회라는 것이 한 쪽이 잘 나간다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가 망가지면 진보도 망가지고 보수가 정신 차리고 잘 하면 저 쪽도 잘하려고 경쟁하게 된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도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


아직도 主流라 착각하는 대한민국 보수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

“지피지기가 안 된다는 거다. 아직도 자기들이 메이저라 생각한다. 그 시대는 지났다. 옛날에 보수는 ‘집에다 돈 벌어주는 아버지’였는데 지금은 ‘돈 쓰는 할아버지’가 된 거다. 아마도 대한민국 보수 중 최상층은 1% 정도일 거다. 나머지는 저소득·저학력·고령층이고, 더 이상 주류가 아닌데 아직도 다수자 전략을 쓴다. ‘빨갱이’라 낙인 찍으면 저들이 고립될 거라 생각하는데 이젠 오히려 자신들이 고립된다. 저들이 ‘토착왜구’라며 그 전략을 쓴다. 무조건 세금은 줄여야 하고 규제는 풀어야 하고, 법질서는 세워야 한다는 옛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장만능주의와 권위주의, 극우반공주의 세 개를 결합해 고집하며 보수의 정체성으로 생각하는데 이제 먹히지 않는다. 실제로 보수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연금, 의료보험, 그린벨트, 고교 평준화를 도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해체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했다. 국가에 필요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는 유연함과 역동성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지고 정책의 ‘이름’만 남았다. 이걸 하면 보수고 안 하면 빨갱이라 하다 보니 정체성의 덫에 걸려 버렸다. 보수의 새로운 상을 그려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버스 중앙차선 만들었지 않나. 이는 좌파적 정책이다. 이런 식의 정책적 상상력을 내야 하는데 무슨 정책만 내면 이념 딱지를 붙이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집권층은 거꾸로다. 자신들이 거악 앞에서 늘 정의로울 수밖에 없었던, 사소한 악 정도는 용서가 됐던 야당 시절 생각을 계속 한다. 집권해 주도권을 잡았는데도 주위가 기득권층으로 포위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렇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 없이 진영을 떠나 자기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개인으로서의 시민을 키워야 하는데 멀쩡했던 시민마저도 정당의 신민을 만들어 버리니까. 사실 나는 보수에 대한 애정은 없다. 그 쪽에 속해본 적도 없고 그 정서도 내게 없다. 진보적 가치가 무너져버린데 대한 절망감을 굉장히 느낀다. 보수 쪽에선 ‘진중권 쟤는 우리 편 아니야’ 하더라. 맞아, 니네 편 아니다.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너무 좋아해 주면 나중에 당신들 뒤통수 때릴 때 미안하니까. 하하하!”

-책에서 ‘코로나 독재’를 우려하고 K방역의 인권침해 소지를 비판했다.

“코로나 사태라는 건 각국 지도자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다. 외계인의 침공을 받은 거기 때문에 지도자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볼 땐 전생에 나라를 세 번 정도 구한 거 같다. 촛불 때문에 사실은 거저 대통령 되고 두번째 지지율 떨어질 때 되니 갑자기 김정은이 만나자 하질 않나, 그리고 또 다시 떨어질 때쯤 되니 코로나가 들어와 버리고…. 코로나에 사실 잘 대처한 것도 실은 전 정권에서 당해서 그렇다. 메르스, 사스 하면서 쌓인 게 있기 때문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건데 어쨌든 그 공은 그들이 차지할 수밖에 없는 거다. 어쩔 수 없는 거고, 그건 우리가 뭘 한다 해서 바꿀 수 있는 변수는 아닌 것 같다. 상수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코로나 같은 문제는 정쟁화해서는 안 된다. 자꾸 언급해서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면 아무래도 방역을 하는 사람들이 유리하다. 우리나라 방역이라는 게 성공적인 거고 그건 인정해야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꾸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거니까… 아예 모든 사람들이 강력하게 모두가 협력함으로써 이 사안이 정치 쟁점이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 이슈를 중립화해야 한다. 무조건 때리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때리고도 욕 먹을 수 있다. 정부를 무조건 때린다고 지지율 오르는 게 아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협력하는 게 지지율 오를 수도 있고 때리면 때릴수록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미학 오디세이'(1994) 등 베스트셀러 미학 책을 내며 유명해졌고,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 등을 비판한 정치평론집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1998)를 출간하며 정치평론가로서 본격 주목받았다. 안티조선 운동도 했다. 이번에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출판사에서 하라면 해야지. 출판사가 시켜서 나왔다고 꼭 써 달라.(웃음)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자유주의 원칙에 따른 비판은 좋은데, 많은 부분의 기사가 정치적 비판이라 부담스럽다.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안 보는 이유가 정치성이 부담스러워서다. 기자는 팩트만 주면 된다. 팩트가 가장 위대한 비판이라 생각한다. 기자가 하는 최대의 비판은 팩트이고 그 다음 나 같은 논객들이 비평하고 판단하는 거다. 약간은 쿨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보수적인 점잖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진보지는 날카롭고 보수지는 둔탁하고 묵직하게 가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날카롭다는 느낌이 있으니 선뜻 인터뷰하는 것이 꺼려지는 거다.”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어릴 때부터 혼자 노는 것 좋아해…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 글 써”

진중권은 서울 강북의 17평 빌라에서 7년 전 입양한 고양이 ‘루비’와 둘이 산다. 아내와 아들은 독일에 있다. 야행성이라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 글 쓰고, 야식으로 라면에 밥 말아먹고 네시에서 여섯 시 사이 잠든다. 열 시에서 정오 사이에 기상해 15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다이어트 콜라로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먹는다. 드물게 사람을 만나지만 보통 종일 집에 있는다. 대학 때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아 영어, 불어, 독어, 일어, 러시아어를 섭렵한 그는 최근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스페인에 가서 한두 달 살며, 20년 전부터 호기심을 가져온 18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솔로 고야’(오로지 고야만을)라는 책 제목도 이미 정해놨다.

-진중권은 한국 특유의 패거리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있다.

“어릴 때부터 다락방서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또래 친구들이 짖궂고 무지막지하다 느꼈다. 전화해 먼저 연락하는 사람들이 손가락 안에 든다. 가족들도 거의 안 만난다. 누나들(음악평론가 진회숙, 작곡가 진은숙)이 독일서 왔다는 건 신문 보고 안다. 고등학교(양정고) 친구들을 작년 봄 사십 몇 년만에 우연히 만났다. 요즘은 그 팀에 합류했다. 역시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다. 대학 친구와는 ‘이 새끼, 저 새끼’가 안 된다. 처음엔 서먹했는데 두 번 세 번 만나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에 탈당계를 내고 동양대에도 사표를 냈다. 가장이 할 법한 선택은 아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들판의 백합과 하늘의 새도 돌보시는데 너 하나 돌보지 못하겠느냐는 구절이 있다. 나는 어떻게 보면 무신론적 유신론자인데, 꼭 기독교적 입장이 아니더라도 옳은 일을 옳은대로 하면 그 다음엔 모든 게 다 풀릴 거라는 믿음이 신앙이라 생각한다. 굳이 하얀 수염 단 존재가 있어서 나쁜 놈 지옥 보내고 착한 사람 천당 보내고 하는 판타지를 믿는 게 아니라, 신앙이라는 게 하나님을 존재하게 만드는 거니까. 그런 관점들과 함께 돈 쓰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디 갖다 놓아도 번역하건 원고 쓰건 이 정도로는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영웅적인 것은, 그런 대책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조직에서 갖은 더러움을 다 참고 견디는 분들이라 생각한다.”

-586은 자기들이 죽인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고 책에 썼다. 당신도 586(서울대 미학과 82학번)인데 운동은 좀 했나.

“지도부가 되거나 감옥을 간 건 아니었지만 지하서클에도 있었고 데모는 열심히 했다. 명함을 내밀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가 멸망했을 때 우리가 갖고 있던 이론이 실증적으로 반박됐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마르크스를 종교적으로, 예수 대하듯 했다는 걸 깨달았다. 독일 유학 가서 좌파 리버럴이 됐다. 자유민주주의적인 기본 질서를 인정하고 유럽식 사회주의를 배웠다. 그럼에도 아직은 혁명적 열정이라는 게 남아있다. 인터내셔널가를 들으면 피가 끓고 가끔씩 혁명가도 부른다. 대의를 위해 내 인생을 바쳐야겠다는 순수한 혁명적 열정이 있었는데, 그런 나도 벌써 부르주아 속물이 다 되어 버렸지만… ‘진짜 586’들은 다 죽었다. 운동하다 죽고 고문하다 맞아서 죽었다. 지금 정치권 586이라 하는 사람들은 물론 운동을 했고 기여도 있겠지만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이다. 조국 사태 나고 옛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찾아 페이스북에 들어가봤다. 자기 생활하면서 인권운동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들 도운다든지 곳곳에서 자그마한 실천들을 하며 말짱한 정신으로 살고 있더라. 나는 이 사람들이 진정한 586이라 생각한다. 저들이 아니라 이들과 연대하고 싶다.”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