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1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비판과 대안과 협력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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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비판과 대안과 협력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0.11.16 19:24  수정 2020.11.16 19: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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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잘 잤다. 오늘 아침 공기가 산뜻하고, 기운이 활기롭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기를 바랄 것이다. 옛날 같으면 새벽 일찍 배달된 신문을 넘겨본다거나 라디오를 듣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그것보다는 스마트폰을 켜고 거기에 들어온 여러 정보들을 탐색하여 본다거나,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나 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대치되어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할 때, 어떤 끔찍스런 일이나, 불쾌한 기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맘을 누구나 가질 것이다. 드라마 역시 좀 많이 웃고 즐겁고 명랑한 것이 많으면 좋겠다 싶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 나는 아침 가정드라마라는 것들이 이른 시간부터 쏟아내는 독기어린 말들이나 눈빛들이 쏟아지는 것을 볼 때 섬뜩하고 기분이 나빴다. 하루를 이런 것들로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맘이 들기도 하였다. 바라는 맘과는 달리 그런 것들이 생각 밖으로 많은 것을 본다. 그렇게 자극스러운 것이 아니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런 것들 말고 또 매우 우리를 짜증스럽게 만드는 소식들이 있다.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라면 그래도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지만 가까이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라면 아주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스럽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끝났지만 서로 버티고 승리와 패배가 분명하게 판명되지 않고, 또 졌다고 하는 사람이 끝까지 따져보겠다는 식으로 나갈 때, 그것을 보는 우리는 우습구나 하기도 하지만, 또 답답하고 짜증스러움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멀리 다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질이 별로 좋지 않구나 하는 정도의 비웃음으로 끝낼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길게 보면 강건너 불은 아니지만, 우선 우리 삶에 직접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에 연결되는 문제들이라면 누구나 촉각을 세우고 관찰할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이나 야당으로 일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공동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스스로 약속하고 나선다고 본다. 그래서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추진하려고 예산도 마련하고, 일을 밀고 나간다. 그런 일들은 어떤 객관화된 정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예상하여 그렇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할 때 분명히 여러 가지 의견이 있고, 정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런 저런 의견이 나오고, 논의하고, 그것을 서로 협의하고 합의하여 일단 실행하여보자고 결정하는 것이 정치가들이 할 일이라고 본다. 그런 과정에서 다툼과 타협을 통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는 사이에 어떤 것들은 채택이 되고 어떤 것들은 반만 받아들여지고, 어떤 것들은 폐기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이 바뀌어 받아들여지고 버려지는 것들도 새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정책이나 그것을 선택하고 실시하는 데에 언제나 적당한 것을 고르고 추진하는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 당시 그것을 그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적정한 선에서 선택하고 합의하여 시행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물론 그렇게 선택한 것이라 할지라도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고, 좋은 흐름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면 그에 따라 또 변경하여 나가는 것이 정치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거기 어떤 중간 것들이 개입할 수 없는 대립양상으로만 치달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 정부와 여당은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때, 야당과 시민사회는 그에 대한 비판을 날카롭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절대로 대안을 가지고 와야 한다. 대안 없이 비판이나 비난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책임한 일이다. 이 때 의미 있는 대안은 정부와 여당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 참고하고 반영하여야 한다. 이것이 정치다. 그러니까 비판하는 야당이나 시민사회는 언제나 대안을 가지고 비판하여야 한다.

지금 아무리 노력하여도 만족스럽게 되지 않는 주택정책, 교육정책, 사립학교들이나 유치원운영에 대한 것, 사법개혁, 특히 검경의 수사권과 기소권 조정과 검찰 개혁, 그것을 좀 더 낫게 하여 보겠다고 시작한 공수처법의 실행, 수명이 다된 원자력발전소의 폐기나 가동중단 문제 등은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정부와 시민사회의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의 삶에 직접 관련이 된 문제다. 그런 것들은 아주 밝게 토론하면서 힘을 합하여 결정하고 실행할 문제다. 그런 맘이 없다거나 능력이 없다면 책임을 맡아서 일을 하겠다고 나선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정치가는 도덕군자가 아니고, 모범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될 수도 없고, 그러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다만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삶을 통한 훈련에서 배워지는 것이지만, 어려서부터 배우지 못하였다면 그 일을 담당하는 데 들어섰을 때부터 열심히 배우고 훈련하여야 할 일이다. 가장 깊게 대화하여야 한다는 정치가들이 가장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부와 여당과 야당 그리고 시민사회는 대결을 넘어 비판과 대안과 협력의 일반상식의 자리에서 일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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