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 항일 무장투쟁의 영웅,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장렬한 삶
- 김삼웅 (지은이)현암사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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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3년 10월 25일은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년이다. 그의 유해는 지금까지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망각과 메아리조차 없는 망향가 속에 묻혀 있다. 일제가 가장 겁냈던 의병대장, 부하들과 주민들이 믿고 아끼고 따르던 대한의용군 사령관, 정통 무관 출신이 아닌 산포수 출신의 의병장이지만 누구보다 우수한 지략과 전술로 일제와 싸웠던 홍범도 장군은 해방 70년이 가까운 세월에도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군이 되어 있다.
홍범도는 머슴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다.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누구의 지시나 부름도 없이 스스로 의병이 되었다.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서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해 국치 이래 최초로 국내 진입작전을 펴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비범한 지휘력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를 주도한 그는 해방 이후 남쪽에서는 좌파로 배척되어 잊힌 인물이 되었다. 우리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들의 참모습을 복원하는 평전 작업에 매진해온 김삼웅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은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 홍범도의 뜨거운 삶을 진혼하며 젊은 세대에 전하고자 한다.
홍범도는 머슴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다.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누구의 지시나 부름도 없이 스스로 의병이 되었다.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서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해 국치 이래 최초로 국내 진입작전을 펴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비범한 지휘력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를 주도한 그는 해방 이후 남쪽에서는 좌파로 배척되어 잊힌 인물이 되었다. 우리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들의 참모습을 복원하는 평전 작업에 매진해온 김삼웅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은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 홍범도의 뜨거운 삶을 진혼하며 젊은 세대에 전하고자 한다.
책속에서
- 장세윤 박사는 청산리 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가 아닌 홍범도라는 주장을 편다.
…
홍범도 부대는 김좌진 부대와 같이 청산리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어떤 면에서 청산리 독립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 부대가 아니라 오히려 홍범도와 그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로군정서 군대가 독립군의 단위부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추고 있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군과의 전투 직전에 수백 리에 이르는 길을 강행군하여 이동하였고 도착 직후는 심한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홍범도 부대는 9월 하순 가장 먼저 청산리 일대에 도착하여 훈련과 식량조달 등 적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
청산리 전쟁의 ‘3주역’이라 할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걷다가 청산리에서 연합군 지휘자의 위치에서 일제와 싸워 대첩을 이루었다. (184쪽) 접기 - bookholic
추천글
- 한겨레 신문- 한겨레 신문 2013년 10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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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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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분야 : 철학 일반 4위 (브랜드 지수 102,537점), 음악이야기 7위 (브랜드 지수 16,431점), 불교 10위 (브랜드 지수 41,22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독립전쟁의 전설’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년 기념 출간
비범한 용기와 지휘력, 우리 현대사의 숨겨진 영웅을 되찾다!
2013년 10월 25일은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년이다. 그의 유해는 지금까지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망각과 메아리조차 없는 망향가 속에 묻혀 있다. 일제가 가장 겁냈던 의병대장, 부하들과 주민들이 믿고 아끼고 따르던 대한의용군 사령관, 정통 무관 출신이 아닌 산포수 출신의 의병장이지만 누구보다 우수한 지략과 전술로 일제와 싸웠던 홍범도 장군은 해방 70년이 가까운 세월에도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군’이 되어 있다.
홍범도는 머슴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다.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누구의 지시나 부름도 없이 스스로 의병이 되었다.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서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해 국치 이래 최초로 국내 진입작전을 펴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비범한 지휘력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를 주도한 그는 해방 이후 남쪽에서는 ‘좌파’로 배척되어 잊힌 인물이 되었다. 우리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들의 참모습을 복원하는 평전 작업에 매진해온 김삼웅 선생의 신작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은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 홍범도의 뜨거운 삶을 진혼하며 젊은 세대에 전하고자 한다.
최근 ‘역사 교과서’ 파동을 비롯해 현대사를 둘러싼 ‘인정투쟁’이 격심하다. 특히 항일과 친일의 사실과 기억은 아직까지 금기와 왜곡의 장막을 두르고 '백년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때마침 ’여천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주최로 카자흐스탄에서 ’70주기 추모식과 학술대회‘를 비롯하여 이 책의 봉헌식이 열린다. 모시는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의 영웅 홍범도를 기억하기 위해.
■ ‘하늘을 나는 장군’ 여천 홍범도 장군은 누구인가!
항일 무장투쟁의 독보적 존재 여천 홍범도 장군(汝天 洪範圖, 1868~1943). 홍범도는 일본군이 ‘하늘을 나는 장군(飛將軍)’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출귀몰한 유격전술로 일본군을 격파해 명성을 날렸다. 당시 평안도 지방에서는 ‘축지법을 구사하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전설’이 나돌 만큼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홍범도는 일제의 총포화약류 단속법을 거부하면서 최초로 산포수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조선독립은 무장투쟁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한평생을 일관했다. 그의 척살 대상은 왜적뿐만이 아니었다. 민족을 배반한 일진회 회원과 친일파도 가차 없이 처단해 민족의 의기를 살리고자 했다.
일제강점기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 게릴라 전술 즉 ‘빨치산’ 투쟁으로 일제와 싸웠다. 홍범도는 그러한 항일 빨치산 전투의 주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홍범도의 주도로 승리할 수 있었다. 홍범도는 자신의 권위나 이익을 내세우지 않는 비범한 인격, 열세를 극복하는 탁월한 지휘 능력과 기발한 전술 작전으로 항일투쟁의 전설이 되었다.
홍범도는 불행하게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밀려가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그곳에서 서거했다. 홍범도의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그는 ‘존재는 낯익지만 실체는 낯선 인물’로 묻혀 있다. 해방 후 반공을 국시로 한 남쪽에서 홍범도는 ‘사회주의’ 계열로 들씌워져 배제된 데다, 독립운동 연구가 지역적으로 편중되고, 머슴 출신인 그를 기릴 만한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았던 까닭도 크다. 해방 70주년을 앞둔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군의 유해는 천만리 먼 이역에 쓸쓸히 누워 있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은 헌신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지휘한 홍범도 장군의 파란의 삶을 생생히 복원한다. 전문가들의 평가와 역사적 자료를 더해 홍범도 장군의 활동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1부에서는 ‘빨치산 대장’으로 항일투쟁의 주역으로 활약한 청장년 시기를 조명한다. 곡절 가득한 성장사와 청년기의 방랑, 산포수 의병대의 조직과 혁혁한 전과, 일제에 의한 아내와 아들의 죽음, 간도와 연해주에서의 숱한 항일 전투, 대한독립군 창설과 국내진공 작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전투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2부는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이후 시련 속의 노년기를 기술한다. 청산리 전투 이후 일본군의 보복과 1920년 경신참변의 전말, 대종교에 심취한 단학회 활동, 고려공산당 내의 주도권 파쟁으로 발생한 자유시참변 이후의 고난, 레닌.트로츠키와의 만남,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강제이주와 쓸쓸한 말년이 장렬하게 펼쳐진다. ‘통일조국의 사표’로서 홍범도를 기리는 필자는 70주기를 기념하고 현재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계기로써 ‘홍범도 장군 유해 귀환 운동’을 제안한다. 접기
비범한 용기와 지휘력, 우리 현대사의 숨겨진 영웅을 되찾다!
2013년 10월 25일은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년이다. 그의 유해는 지금까지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망각과 메아리조차 없는 망향가 속에 묻혀 있다. 일제가 가장 겁냈던 의병대장, 부하들과 주민들이 믿고 아끼고 따르던 대한의용군 사령관, 정통 무관 출신이 아닌 산포수 출신의 의병장이지만 누구보다 우수한 지략과 전술로 일제와 싸웠던 홍범도 장군은 해방 70년이 가까운 세월에도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군’이 되어 있다.
홍범도는 머슴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다.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누구의 지시나 부름도 없이 스스로 의병이 되었다.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서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해 국치 이래 최초로 국내 진입작전을 펴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비범한 지휘력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를 주도한 그는 해방 이후 남쪽에서는 ‘좌파’로 배척되어 잊힌 인물이 되었다. 우리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들의 참모습을 복원하는 평전 작업에 매진해온 김삼웅 선생의 신작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은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 홍범도의 뜨거운 삶을 진혼하며 젊은 세대에 전하고자 한다.
최근 ‘역사 교과서’ 파동을 비롯해 현대사를 둘러싼 ‘인정투쟁’이 격심하다. 특히 항일과 친일의 사실과 기억은 아직까지 금기와 왜곡의 장막을 두르고 '백년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때마침 ’여천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주최로 카자흐스탄에서 ’70주기 추모식과 학술대회‘를 비롯하여 이 책의 봉헌식이 열린다. 모시는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의 영웅 홍범도를 기억하기 위해.
■ ‘하늘을 나는 장군’ 여천 홍범도 장군은 누구인가!
항일 무장투쟁의 독보적 존재 여천 홍범도 장군(汝天 洪範圖, 1868~1943). 홍범도는 일본군이 ‘하늘을 나는 장군(飛將軍)’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출귀몰한 유격전술로 일본군을 격파해 명성을 날렸다. 당시 평안도 지방에서는 ‘축지법을 구사하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전설’이 나돌 만큼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홍범도는 일제의 총포화약류 단속법을 거부하면서 최초로 산포수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조선독립은 무장투쟁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한평생을 일관했다. 그의 척살 대상은 왜적뿐만이 아니었다. 민족을 배반한 일진회 회원과 친일파도 가차 없이 처단해 민족의 의기를 살리고자 했다.
일제강점기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 게릴라 전술 즉 ‘빨치산’ 투쟁으로 일제와 싸웠다. 홍범도는 그러한 항일 빨치산 전투의 주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홍범도의 주도로 승리할 수 있었다. 홍범도는 자신의 권위나 이익을 내세우지 않는 비범한 인격, 열세를 극복하는 탁월한 지휘 능력과 기발한 전술 작전으로 항일투쟁의 전설이 되었다.
홍범도는 불행하게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밀려가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그곳에서 서거했다. 홍범도의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그는 ‘존재는 낯익지만 실체는 낯선 인물’로 묻혀 있다. 해방 후 반공을 국시로 한 남쪽에서 홍범도는 ‘사회주의’ 계열로 들씌워져 배제된 데다, 독립운동 연구가 지역적으로 편중되고, 머슴 출신인 그를 기릴 만한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았던 까닭도 크다. 해방 70주년을 앞둔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군의 유해는 천만리 먼 이역에 쓸쓸히 누워 있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은 헌신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지휘한 홍범도 장군의 파란의 삶을 생생히 복원한다. 전문가들의 평가와 역사적 자료를 더해 홍범도 장군의 활동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1부에서는 ‘빨치산 대장’으로 항일투쟁의 주역으로 활약한 청장년 시기를 조명한다. 곡절 가득한 성장사와 청년기의 방랑, 산포수 의병대의 조직과 혁혁한 전과, 일제에 의한 아내와 아들의 죽음, 간도와 연해주에서의 숱한 항일 전투, 대한독립군 창설과 국내진공 작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전투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2부는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이후 시련 속의 노년기를 기술한다. 청산리 전투 이후 일본군의 보복과 1920년 경신참변의 전말, 대종교에 심취한 단학회 활동, 고려공산당 내의 주도권 파쟁으로 발생한 자유시참변 이후의 고난, 레닌.트로츠키와의 만남,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강제이주와 쓸쓸한 말년이 장렬하게 펼쳐진다. ‘통일조국의 사표’로서 홍범도를 기리는 필자는 70주기를 기념하고 현재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계기로써 ‘홍범도 장군 유해 귀환 운동’을 제안한다. 접기
북플 bookple
마이리뷰
마이페이퍼
저녁을 먹기 전에 '이주의 저자'도 골라놓는다. 이번주에도 국내 저자로만 골랐다. 먼저 봄에 <저항인 함석헌 평전>(현암사, 2013)과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현암사, 2013)을 거푸 펴냈던 김삼웅 선생이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현암사, 2013)까지 출간했다(그래서 또 한번 '이주의 저자'로 꼽는다). '항일 무장투쟁의 영웅,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장렬한 삶'이 부제. 개정판으로 펴낸 <녹두 전봉준 평전>(시대정신, 2013)과 <약산 김원봉 평전>(시대정신, 2013)까지 포함하면 올해 낸 평전만 다섯 권에 이른다(이 정도면 거의 강준만 교수에 견줄 만한 필력이다). 올해가 서거 70주기라은 홍범도 대장은 어떤 인물이었나.
홍범도는 머슴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다.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누구의 지시나 부름도 없이 스스로 의병이 되었다.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서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해 국치 이래 최초로 국내 진입작전을 펴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비범한 지휘력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를 주도한 그는 해방 이후 남쪽에서는 좌파로 배척되어 잊힌 인물이 되었다.
그렇게 망각 속에 묻힌 생애를 다시금 복원한 노작이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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