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중앙일보] 입력 2001.10.27 00:00 | 종합 41면
"뛰어난 법력(法力)의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물구 참선', 그러니까 물구나무 선 참선으로 죽음을 맞았다. 열반 며칠이 지나도 그랬다. 밀어도 까딱 않고 송곳처럼 꼬장꼬장했다. 소문을 듣고 누이가 달려왔다.'너, 또 장난질이구나!'. 누이가 살짝 밀쳤다. 그제서야 송장은 바로 누웠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독자들께서는 환히 웃으실 줄로 믿는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마지막 장의 매듭을 저자는 이런 선가(禪家)의 속 깊은 유머 한토막으로 처리하고 있다. 군더더기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죽음을 삶의 막다른 골목이자 돌연한 단절로 보지않고, 새 것과 묵은 것 사이의 교환이자 '전체로서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권면. 이런 멋진 암시가 이 책 전체를 관류하는 주제다.
따라서 여기서 다뤄지는 죽음이란 사람들이 항용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와 다르다. 외려 반대다. 즉 라틴어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책제목으로 적극적으로 내건 것은 이런 뜻을 갖는다."현대 사회는 '죽음의 위기', 즉 비인간화된 죽음을 맞고있다. 죽음을 잊으면, 즉 제대로 맞대면하지 않으면 삶마저 덩달아서 잊어진다. 반대로 죽음에 대해 제대로 눈을 뜬다면, 삶이 제값을 찾는다."
그러나 오해는 말 일이다. 국문학자 김열규(69.인제대)교수의 이 책은 추상적 담론과 구별된다. 신화학과 민속학의 모티브를 활용한 풍부한 에피소드가 분위기를 딱딱하지 않게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미문(美文)에 가까운 문학적 서술도 장점이다. 이런 미덕은 김교수의 기존 저작물 '한국인의 신명''아리랑, 역사여 겨레의 소리여' 등에서도 확인했던 바이지만, 고희(古稀)에도 글솜씨는 여전하다.
저자의 의도는 실은 야심만만하다."한국 인문학 최초의 죽음론(thanatology)단행본". 본인의 입을 그대로 빌면 이 정도의 원력(願力)의 소산인 '에세이풍의 인문학적 죽음론'은 읽기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현재 이 땅 '죽음의 위기.파국', 그리고 허깨비 삶에 대한 고발로 읽힌다.
그의 표현대로 삶이 찢기고 할퀴고 있는 이상으로 죽음이 결딴나면서 이제 죽음은 대형사고.사건.사태의 일부로 값 싸고 천박해졌다. 여기에 6.25 등 '대량화된 죽음'도 가세했다. 그 결과 위엄을 잃은 죽음 앞에 사람들은 "오만을 부리고 건방을 떠는" 결과를 빚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지역에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해괴한 기사가 신문에 났다. 주변 공원묘지를 철거하라는 시위였다. 마치 무허가 건물이라도 헐어내는 듯한 기세였다. 내겐 그 시위가 '죽은 자를 없애라' '죽음을 치워 없애라'는 말로 들렸다. 공원묘지를 혐오시설로 본 것이다."(2백73쪽)
그가 볼 때 장례식 역시 죽은 이와의 단절을 뜻하는 청산절차로 변했다. 돌아가신 어른을 사당에 모시거나 신주를 바쳐 가신(家神)반열에 올리는 통과의례(initiation)의 예(禮)로 치러지기 보다는, 사무적 효율성이 중시된다.관(棺)을 크레인으로 매달아 아파트 밖으로 실어나르는 염량세태에 저자는 절망한다.
여기엔 문화사적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인의 민간신앙 속에 죽음이란 곧 부정(不淨)을 의미했다. 부고를 집안에 들여놓는 것을 금기로 하는 풍습, 상가(喪家)다녀온 뒤 그곳의 부정이 묻어오는 살(喪門煞)을 경계하는 심리 등이 그 흔적이다.'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현실주의적 사고가 한국인에게는 분명코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북방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아 무속(巫俗)의 바리데기 설화에서 보듯 한국인에게 죽음이란 곧 '고향으로의 회귀'라는 관념이 섞여들었다. 또 조선조 들어 정교한 관혼상제 유교문화의 강렬한 세례도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삶과 죽음에 관한 정교한 성찰을 채 마련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비판적 시선이다. 여기에 현대 이후 대량화된 죽음을 겪으며 동전의 앞뒷면 처럼 한짝을 이루는 '조야하고 날뛰는 삶, 위엄을 잃은 죽음'이란 이상(異常)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런 죽음의 쇠락은 실은 지구촌 모더니티의 보편적 현상이라는 측면이 암시된다. 저자는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인용한다."보드리야르는 서양 중세에서 죽음은 집단적 사회활동의 중추였음을 규명한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죽음이 극도로 개인화되고 억압됨으로써 사회생활에서 배제되는 극적인 변화를 맞았다고 말한다."(1백82쪽)
기본적으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서점가의 흔한 명상서적들보다 순도 높은 '삶과 죽음에 관한 고품위 문화론'으로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기증운동.안락사.존엄사 등 현실의 현안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암시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다음 인용문은 책을 읽는 이에게 시종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 질문으로 다가온다.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 말이다.
"다른 생물은 죽지 않는다. 다만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 뿐이다. 인간 만이 오직 죽음을 죽을 수 있다. 인간은 그 죽음을 생물학적 사실에서 자유롭게 풀어놓은 유일한 존재다.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인간은 명료하게 정신 및 영혼 앞에 나가게 된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이 삶의 최종적인 여행 목적지였다고 생각할 것이다."(11~12쪽 요약)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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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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