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0

Eung Gyo Kim -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자를 마주하면 전혀 편하지 않다.

(4) Eung Gyo Kim -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자를 마주하면 전혀 편하지 않다. 그가 50년 전에 근로기준법을 들고...


Eung Gyo Kim
10h ·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자를 마주하면 전혀 편하지 않다. 그가 50년 전에 근로기준법을 들고 외쳤던 인간의 권리가 아직도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건이나 구의동 전철역 사건, 아직도 15시간 이상 일하는 택배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가 쌓여있는 이 시기에 피하고 싶은 기표다. 피하고 싶으면서도 꼭 보겠다고 벼르던 다큐를 이제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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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인물을 형용하는 어떤 표현을 그리 놓아하지는 않는다. 자칫 그 인물의 넓은 영역은 그 표현이 좁혀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민족시인, 농민시인, 불교시인, 기독교시인, 이런 식의 표현이 그의 넓은 삶을 곽 안에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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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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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TV에서 제작한 전태일 50주기 특집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이 제목에도 비슷한 반감이 생긴다. '기독'이란 단어가 최근에 더 부정적인 이미지로 더렵혀졌기 때문이다. 왜 제목에 "기독청년"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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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TV의 주요시청자들은 비신자보다는 신자들이 훨씬 많다. 그러니 전태일을 예로 들면서 예수를 따르는 자의 한 예로 이름을 정했을까.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든 무리들에게 무엇이 진짜 예수의 삶을 따르고 밀알로 살아가느냐는 표본으로 내세우려는 의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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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개독교가 아니더라도, 그냥 기독교가 이 세상에 저지른 범죄들이 셀수없이 많은데, 왜 전태일 이름 앞에 하필 '기독청년'이라는 이름을 붙이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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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쓴 투정이 맞는 물음일까.
짜증스런 투정을 몰아내는 사진(https://tuney.kr/H87DdK)을 보자. '기독청년'이라는 표현은 CBS TV에서 만든 조어가 아니라, 전태일 묘비에 정확히 써 있는 단어다. 그의 가족과 어머니가 묘비석에 원해서 올린 단어다. 전태일 묘비 맨 위에는 "기독청년"이라고 가로로 새겨 있고, "삼백만 근로자 대표"라고 세로로 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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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다큐멘터리는 전태일(1948~1970)의 친구 김영문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들의 증언이 나온다. . 도봉동에서 7시 버스 타고 평화시장으로 가서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일 14~16시간 일하는 벌레 같은 미싱사와 시다들, 종일 쪽가위로 실밥을 뜯느라 손에 지문이 다 없어졌다. 천을 자르고 미싱을 박는 이들 콧구멍에는 실먼지가 들어앉고, 도시락을 열면 밥 위에 먼지들이 내려 앉는다. 깜빡 졸면 미싱 바늘이 손가락을 관통해서 잠을 몰아내려고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으면서 일하는 아이들, 닭장에 닭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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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아이롱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전태일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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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양말이 없는 아이들를 보면 자기 양말을 벗어준다. 자기 월급을 털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서 나눠 주고, 자신은 집까지 갈 버스비가 없어서 먼 길을 걸어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전태일을 떠올릴 때 그 마지막의 끔찍한 일만 떠올리면 안 된다. 그 과정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 과정으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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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고장나면 곧바로 수리라도 받을텐데, 그들은 병들면 그것으로 버림받았다. 기계보다도 못한 노예들이었다. 전태일은 어린 여공이 피를 토하며 각혈하는 것을 보고 부조리한 세상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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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 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 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전태일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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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 영광스러운 박정희의 제3공화국은 벌레가 된 인간에 의해 유지됐던 것이다. 쌍문동에 위치한 창현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전태일은 1968년 말경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재단사들의 모임을 만들자며, 모임 이름을 ‘바보회’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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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기계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살아왔기에 "우리는 바보들이며, 이것을 우리가 철저히 깨달아야만 언젠가는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재산사 10여 명이 서울 변두리에 있는 전태일의 판잣집에서 ‘바보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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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바보회 회장 전태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라고 쓰여 있는 명함(13분 52초)을 만든다. 이어 설문지 작업을 시작한다. 1969년 여름 어느 날 그는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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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설문지를 돌려 근로기준법을 지키는지 노동자 스스로 쓰도록 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다큐에서 전태일이 만든 질문지를 처음 봤다. 유튜브에 있는 다큐 14분 11초를 정지시켜 보시면 한다. 가령 질문 8번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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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건강상태는?
A 신경통. B 식사를 못한다. C 신경성 위장병, D 폐결핵, E 눈에 이상이 있다(날씨가 좋은 날은 눈을 똑바로 뜨지 못하고 눈을 바로 뜨려면 얼굴상이 정상적이 아니다). F 심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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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사회운동을 할 때 먼저 대중을 만나고 대중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신자였기에 기독교 표현도 나온다. 3번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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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주일마다 쉬지를 못하십니까?
A 수당을 더 벌기 위하여, B 기업주가 강요하기 때문에, C 공장규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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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아니라 "주일"이라 쓴 것은 주일학교 교사였던 그에게는 자연스러웠으리라. 수당이나 기업주나 공장규칙이라는 단어는 시다 생활을 했던 그 스스로 체험했던 밑바닥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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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고용주들은 전태일을 경계했고 여러번 마찰이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부조리한 시스템 뒤에는 업주 뒤에 근로감독관, 언론, 정치인이라는 거대한 클러스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사문제를 이제는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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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와 노동청에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호소문을 돌리고, 청와대에도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고 투서한다. 애를 썼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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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삼각산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공사를 하다가 마지막 기도를 일기에 남기고, 어린 동생들과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 짧은 생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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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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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전태일 평전>, 2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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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8월, 짧은 기도문이지만 충격적이다. 이후 4개월 동안 전태일은 고민한다. 이때 그에게 다가온 성경구절은 모든 이를 살리는 "밀알 하나"(요 12:24),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요한 15:13)을 다짐했을 것이다. 겟세마네에서 예수가 결단했다면, 삼각산 기도원에서 전태일은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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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산에서 내려와 다시 평화시장으로 간다. 다시 설문지 작업을 하여 150여 장을 받는다. 여러 언론사에 어린 노동자들의 실채를 알린다. 드디어 1970년 10월 7일 <경향신문>에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 소녀 등 2만여 명 혹사 .... 거의 직업병.... 노동청 뒤늦게 고발키로>라는 기사(18분 52초)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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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나왔으니 전태일과 '바보회' 친구들은 이제는 해결될 줄 알고 얼싸 않고 좋아했다. 말도 안 되게 근로감독관들은 "나라가 힘드니 서로 조금씩 희생하자"는 말로 얼버무렸다. 전태일은 이제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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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20분이었다.
시위하려는 친구들과 경찰과 기자와 시민 사이에서, 스물 세 살 한 젊은이가 불덩어리로 튀어나오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친구들아 내 죽음을 헛되이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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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다큐는 고 강원룡 목사(1917~2006)의 1970년 11월 22일 방송 당시 실제 육성이 첫 나레이션으로 흐르고, 31분 31초에 다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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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에 젊은 몸에다가 휘발유를 끼얹고 불타 죽어가면서 내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죽은 전태일 군의 죽음, 오늘의 기독교 교회가 단순하게 자살이니까 죄다 그런 카테고리 속에다가 집어넣을 수 있냐 말입니다.......... 스물세 살의 젊은 몸을 자기 주위에서 시달림을 당하고 천대를 받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다가 다 하다가 최후에 최후에 아무것도 할 길이 없는 때 자기의 몸을 불살라가면서 호소를 하고 죽어간 그가 죄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딱지를 붙여놓고 교회 문을 잠그고 들어가 있는 그들이 죄인입니까? 어느 쪽이 죄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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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에 오늘 이 한국땅에 정말 여기에서 우리들이 신앙의 눈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이 모습을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의 이와 같은 이 교회의 목사, 교회의 장로들에게 '아, 너희들이 참 잘했다. 내 몸된 교회를 그렇게 신성하게 지켜야지'라고 할 것입니까. 아니면 이 죽어가는 이 청년과 함께 그 처참한 희생을 당하는 현실에 들어가 자기 몸을 희생시킬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전태일 군이 죽어가면서 '아, 배고프다'하고 죽어간 그 목소리, 그리고 그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달라'고 한 그 슬픈 호소에 도대체 우리들은 뭐라고 대답을 할 생각을 가지고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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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참한 상황은 어떤 사람이 픽션으로 쓴 소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1970년 11월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슴 속에 메아리치고,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어떤 분노를 느끼고,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어떤 죄책감을 느끼고,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사명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밀알 하나가 아니라, 이미 돌멩이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있는 힘을 한데 모아서 진정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도록 죽어가면서도 우리에게 한 그 호소를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신 산 호소로 듣고, 그 죽음이 진정 헛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 살려나가는 밀알 하나로서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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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한국 교회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가난한 이를 외면한 지금 한국 대형교회가 죄인인가, 온삶을 통해 풀빨을 나누고, 설문지를 돌리고, 어린 시다들을 위해 애쓴 그가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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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는 "전태일 사망 후 청계피복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노동교실'이 개설된다. 노동교실이라는 단어가 이때 처음 쓰였다"고 증언한다(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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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 기도로 실천으로 살면서 구치소 형무소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살아온 이소선 여사는 교회에서 간증한다.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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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겪으면서 보니까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찬송이 떠올라요. 사람이 불쌍한 사람 보고 불쌍한 줄 모르면 하나님이 내 맘에 없는 거예요.(41분 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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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태일의 마지막 기도문을 만났을 때는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이 기도문을 읽고 그가 마지막 노가다를 했고, 마지막 결단을 했으리라고 생각한 삼각산 기도원을 찾아갔었다. 거기서 지은 노래가 <곁으로>라는 노래고, 그 생각을 확장해서 쓴 책이 졸저 <곁으로>(새물결플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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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김동민 피디님의 연출로 <전태일의 크리스마스 선물>(https://tuney.kr/H7Sdzx)을 제작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의 장점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과 신앙을 집중해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다만 이때 두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첫째 전태일의 친구들을 더 많이 영상에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태일과 함께했던 1차 증언자들의 증언을 담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둘째 전태일의 동생 전태삼 선생 집에서 <전태일 일기>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때 일기에서 수많은 성서 묵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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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메마른 심령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주십시오."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일찍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신의 은총만이 현사회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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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을 쓸 때 기독교적 요소는 생략하고 썼다는 사실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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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가지 아쉬움이 이번에 만든 <기독청년 전태일>(연출 이형출 PD)에서 명확히 본원되었다. 1차 증언자들의 증언을 주로 해서 제작했다. 전태일의 친구들 (최종인, 김영문, 임현재, 이승철 등)과 가족 (전태삼, 전순옥), 당시 여공들 (이숙희, 최현미, 신순애, 곽미순)을 통해 평화시장의 열악한 실제 환경과 전태일의 행동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들을 담아냈다. 아울러 <전태일 일기>를 꼼꼼히 화면에 클로즈업해서 재현한다. 실제 <전태일 일기>를 대하면 낡은 종이에 쓰여진 옛문장을 읽는 어려움이 적지 않은데, 영상에서 이렇게 확실하게 보여주니 얼마나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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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빠진 부분이 있는데, 내가 <전태일 일기> 원본을 봤을 때, 전태일이 소설을 쓰려고 구상했던 일기를 봤다. 소설을 써보려고 구상했던 메모도 있었다. 그 부분을 언젠가 <전태일 일기> 전편을 출판하면 누군가 연구하면 좋겠다. 전태일 기념관에 근무하는 유현아 시인이 잘 해주시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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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전에 독일 종교개혁가를 담은 다큐도 대단했다. 작년에 <북간도의 십자가>(연출 반태경 PD)에 이어 CBS TV에서 매년 명작을 제작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고 싶다. CBS TV는 '다큐 콜렉션'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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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 타임이 52분 55초인데 다 보는 데 거의 4시간 걸렸다. 어떤 책은 표지만 보고 안 읽지만, 좋은 시집이나 산문집은 한 권 읽는 데 석달 넉달이 걸린다. 페이지마다 아니 문장마다 깊은 주름이 있어, 빨리 읽을 수가 없다. 이 다큐들도 도대체 빨리감기를 할 수가 없다. 보다가 고개 숙이고, 보다가 기록해야 하니, 도저히 빨리 볼 수 없는 다큐다. 증언 하나 하나가 화면을 정지시키게 한다. 좋은 책을 빨리 읽지 못하듯이, 나는 이 다큐를 한번에 볼 수 없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멈춰가며 봐야 할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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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c5KzNHbgD1s&t=29s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24 1970년,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외치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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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 전태일 | 故 전태일 50주기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FULL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24 1970년,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외치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24 1970년,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외치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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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un Reu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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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아 저도 정말 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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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h

Lee San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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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h

Geo-Sung Kim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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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h

Yona Kim 저장하고 보고 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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