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왜 트럼프와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가…신학적·정치적 논란과 맹점들
트럼프 현상과 2020년 미국 대선, 그리고 기독인의 선거 참여②
기자명 이인엽
승인 2020.11.20 09:00
"대통령 당선부터 재선 실패까지, '트럼프 현상' 분석하다" 기사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3. 기독인의 시각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백인 복음주의자들 중 81%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이번 2020년 대선에서도 출구 조사 결과를 보면 76~81%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이들의 지지도는 후보와 상관없이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존 맥케인, 미트 롬니, 도널드 트럼프 등 최근의 공화당 대선 후보는 모두 백인 복음주의자들에게서 70~80%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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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트 롬니는 복음주의자들이 이단으로 여기는 몰몬교 출신이다. 트럼프는 2번 이혼하고 3번째 부인과 살고 있으며, 플레이보이 포르노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고, 2016년 대선 전에 음담패설 녹취록이 공개되는 등 기독교적 삶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런 경험이 없으며, 잘못을 하면 스스로 고치지, 하나님을 끌어들이지는 않는다(I am not sure I have. I just go on and try to do a better job from there. I don't think so. I think if I do something wrong, I think, I just try and make it right. I don't bring God into that picture. I don't.)"고 대답해, 복음주의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점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신앙적 원칙에 의해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인지, 자신들의 인종적·계층적 이익을 위해 공화당을 지지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신앙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주로 낙태, 동성애 문제 등이다. 그러한 신앙적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리 신앙적으로 보이지 않는 트럼프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선택해서 쓰신다는 논리를 펼친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에 매우 많은 신학적·정치적 논란과 맹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낙태나 동성애 문제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아주 제한적이다. 이 두 가지를 투표의 절대적 기준으로 제시한다는 것도 바른 성경 해석인지 논란이 있다.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다. 생명 윤리는 절대적이라며 낙태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생명 윤리와 관련되는 다른 이슈들, 예를 들어 미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총기 규제에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반면 사형제도는 절대적으로 찬성하고(특히 흑인 죄수들 안에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사형당한 경우가 많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 이라크 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오바마 케어도 문제가 많지만, 그전까지 인구의 15%가 넘는 4600만 명이 보험 없이 살고 있었다. 거기다 매년 의료비로 파산하는 사람이 200만 명인데도,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한 대안을 무조건 사회주의라며 반대해 왔다. 실제 낙태 문제를 조사해 보면, 상당수의 원치 않는 임신이나 낙태 결정은 빈곤 문제(2013년 연구에 따르면 낙태 여성의 69%가 빈곤층), 복지나 의료보험의 부족, 성교육과 피임 교육의 부재 등과 관련 있다. 그런데 많은 기독인은 낙태를 범죄화하는 데만 관심 있을 뿐, 낙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에는 오히려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독인들이 정말 낙태를 줄이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낙태 문제를 내세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화당에 투표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이도 많다.
또한 낙태 문제는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차원에서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동성애 문제도 성에 대한 관점을 넘어, 세속 사회에서의 개인의 선택권과 동등한 권리라는 차원에서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성경 해석을 내세워 낙태나 동성애를 심각한 죄라고 규정할지라도, 우리는 신앙인인 동시에 정교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다문화·다종교의 세속 사회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내가 믿는 기독교적 윤리를 바로 법으로 적용할 수 없으며, 법률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다. 술 취함이나 간음, 이혼이 신앙적 기준에서 죄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법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미국에서 금주법을 무리하게 실시했다가 밀주업과 마피아의 성장에만 기여한 것이 좋은 예이다.
버지니아대 사회학과 교수인 제임스 헌터는 <문화 전쟁 Culture Wars: The Struggle to Define America, Basic Books>(1995)이라는 책을 통해 보수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1979년 '도덕적다수'(Moral Majority)를 만들어 레이건의 당선과 재선에 영향을 끼친 제리 폴웰과, 기독교연맹을 만들었고 각종 사회적인 실언들로 유명한 팻 로버트슨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로 대표되는 기독교 우파는, 기독교의 총체적 가르침을 낙태·동성애 등 몇 가지 윤리적 주제로 환원시키고 끝없는 문화 전쟁에 집착하며, 공화당과 노골적으로 결탁해 우파 정치인을 선출하고 대법원에 보수적 판사를 임명하여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강요하고 권력과 헤게모니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미 수십 년간 낙태·동성애 문제를 내세워 공화당에 투표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결국 낙태나 동성애는 상당히 개인적인 삶의 문제이다. 이것을 정치권력과 법적인 판결로 해결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도 질문해 봐야 한다. 트럼프는 과거 낙태나 동성애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트럼프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4번 당적을 왔다 갔다 한 전력이 있고, 주로 리버럴한 뉴욕에서 기독교적인 생활 방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가 보수적인 대법원 판사들을 임명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낙태·동성애 관련 판결들을 뒤집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 관저 백악관.
하나님은 트럼프를 선택하셨고, 그 근거는 낙태와 동성애 문제라는 식의 매우 단순한 논리에는 많은 신학적·정치적·논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보고, 충분히 설명해 주는 기독교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결국, 트럼프를 지지하는 최종적 선택에도 논란이 있지만, 그런 선택에 이르기까지 매우 단순한 논리를 충분한 성찰과 고민 없이 확신하는 기독교인들의 사고 체계 자체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학에는 기표와 기의라는 개념이 있다. 실제 그 대상·의미를 지칭하는 것이 기의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문자·상징이 기표이다. 이 두 가지에는 필연적 연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기독교적 상징물과 기독교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성탄절에 낭만적인 말구유 탄생 모습을 재현해 놓고 좋아하지만, 그것을 내 주위의 난민, 가난한 자, 의료 혜택을 못 받는 자 속에 예수님이 있다는 생각으로는 전혀 연결하지 못하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트럼프가 지지한 앨라배마 상원의원 후보 로이 무어(Roy Moore)는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을 지내던 2003년, 주법원 청사에 설치된 십계명 기념비를 철거하라는 연방법원의 명령을 거부해 처음 해직될 정도로 기독교적 상징과 문화에 집착한 인물이다. 그는 선거 캠프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여러 명의 여성이, 자기가 미성년자였을 때 검사였던 로이 무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주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시위가 한창일 때, 트럼프는 백악관 회견을 마친 후, 대통령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평화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쏴 해산시키고는, 핵심 참모를 대동하고 인근 세인트존스교회를 찾아 성경을 들어 올리는 뜬금없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사건을 보고, 복음주의자의 40% 이상이 트럼프 대통령이 신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문제는 신앙적 상징만 있으면, 심지어 그것을 신앙의 본질과 대치되는 인물이 사용하더라도 분별하지 못하고 무조건 지지하는 신앙인이 많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신앙인은 기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세력에게 가장 손쉽게 동원될 수 있다.
세인트존스교회 예배당 앞에서 성경을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 중인 트럼프. 사진 출처 플리커
결국 이들이 사회 속에서 지혜롭고 성숙한 신앙인이자 시민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수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역할에 충실한 건지, 심각하게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제임스 헌터는, 이런 이유로 보수 기독교인들이 "공화당의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조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트럼프 현상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낙태·동성애 문제 외에도, 미국의 장기적인 경제 불평등과 중산층의 좌절감, 다인종·다문화 현상에 대한 반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년간 트럼프의 정책을 보면서, 과연 신앙인의 이름으로 그를 지지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가 질문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현상을,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합의와 원칙이 무너져 온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미국에서는 현실에서 차별이 존재할지언정, 정부 지도자가 인종이나 종교, 신분 등을 이유로 공공연하게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민자나 소수 인종을 범죄자, 해충 취급을 하며 백인 중산층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어린아이들을 케이지에 가두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우 인종주의 세력을 부추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주지사에 맞서라고 트윗을 날려 극우 세력이 납치 계획을 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소한 선거 과정과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미국의 관례였는데, 트럼프는 자신이 패배했을 경우에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언급을 반복했다. 우편투표를 비롯한 선거 방식에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선거 이후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특히 대통령 토론회에서 극우 인종주의 세력과 선을 그을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물러나서 대기하라(stand back and stand down)"라는 발언을 해 많은 이를 경악시켰다. '프라우드보이즈'(Proud boys) 같은 극우 신나치 조직에게, 자신이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무기를 들고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퍼져 갔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패자가 승복 메시지를 내는 전통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깨고, 아직까지 불복 의사를 견지하고 있다. 가장 신기한 점은 코로나19로 25만 명이라는 엄청난 국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정치적인 책임 공방에만 몰두할 뿐, 지도자로서 그에 대한 애통이나 아픔을 표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필자를 포함해 미국에서 이민자요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위협감으로 다가왔다.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오른쪽).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일했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경제적 양극화로 많은 백인 중산층이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신앙관과 투표 행태를 보면서 질문하게 된다. 이들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이들의 불만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약한 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희생양 찾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신앙적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제조업의 몰락 등으로 백인 중산층이 영향을 받기 전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이들은, 노예제와 인종적·경제적 차별 속에 미국 정착 역사가 시작되어 부동산이나 현금 자산이 없고 도심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흑인들이었다. 흑인들의 거주지가 슬럼화할 때, 백인들은 안전한 교외로 빠져 나갔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처럼 구조적 인종차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통계에 따르면 흑인 남성은 20명 중 1명이 수감되어 있고, 인생에서 3명 중 1명꼴로 감옥에 다녀올 가능성이 있으며, 흑인들은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감옥에 가는 비율이 타 인종보다 훨씬 높다고 나올 정도로 구조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중남미의 이민자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와, 미국 경제의 하부에서 백인들이 원하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로 연명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망자를 보더라도, 흑인과 히스패닉들의 사망률이 높다.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대면 업무에 주로 종사하고, 의료 보건 서비스를 수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사회적 거리 두기나 감염자 격리 등이 불가능한 주거 환경에서 살기 때문이다.
예수는 본인이 제국의 치하에서 차별받는 식민지 백성이자 정치적 박해의 희생자였고(헤롯의 영아 학살), 난민이었고(이집트로 피난), 가난했으며 교육받지 못했다. 그러한 출신과 배경으로 차별을 당했으며, 억울하고 잘못된 재판으로 고문과 사형선고를 받고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사랑한다는 이들이, 이민자를 악마화하고 난민을 돕기를 거부하는 일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낙태와 동성애를 강조하며 생명과 가족의 윤리를 강조하는 이들이,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고아와 과부, 난민의 호소를 거부하고, 심지어 어린아이를 부모와 갈라서 철창에 가두는 가혹한 정책까지 지지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양 1마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고, 99마리를 위해 약한 1마리를 희생시키는 것이 세상의 논리라면 미국 복음주의 신앙인들의 행태는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인가?
예전에 어떤 분이, 성경 공부 모임에서 구약의 룻기를 공부했는데, 룻의 이야기를 소수 인종이자, 난민,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과부 여성의 사회적 문제로 연결시키자, 다른 분들이 그런 관점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관점으로 해석했냐고 묻자, 자신이 힘들고 외롭고 배우자를 찾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시고,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하시고, 자녀를 낳고 물질적으로 축복을 주신다는 등의 해석 이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나의 구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계획에 집중하는 것은 복음주의 신앙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모든 신앙의 핵심이 되어 버려서, 나의 문제와 고통에만 집착한 채,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와 내 가족, 나와 비슷한 사람 이상으로는 뻗어 나가지 못하고, 타인, 특히 나와 다른 약자, 소수자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모습의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며, 앞에서 언급한 대로 트럼프 현상에는 경제적 요인을 포함해 다양한 배경들이 깔려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는 인종차별주의적 발언들과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정책에도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앙인들에게 약자의 고통과 구조적 불평등이, 절박한 신앙의 문제, 신앙적 가치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낙태·동성애로 대표되는 윤리적인 이슈에 집착하지만,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고 돈·섹스·권력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온 트럼프 같은 인물도 자신들과 정치적인 입장이나 정체성이 같다면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송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윤리라는 가치와 그 범위가 무엇인지, 정말 기독교 윤리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인종적 이해관계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인가도 질문하게 된다.
4. 마치며
개인적으로, 선거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적인 조언자(Faith Adviser)인 폴라 화이트(Paula White)가 한 기도 모임에서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택하신(?) 트럼프에 맞서 악마가 선거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적 기도를 하면서, 현재 전 세계에서 천사들이 동원되어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하면서 방언 기도를 했다.
이 기이한 장면과 상반되는 다른 장면 하나는, 정치 평론가인 밴 존스의 선거에 대한 소감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재선되지 않은 결과를 접하며,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는 부모 노릇하기가 쉬워졌습니다. 아빠 노릇이 쉬워졌어요. 아이들에게 사람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졌어요.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졌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쉬워졌어요. 당신이 무슬림이라면 미국 대통령이 당신이 미국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이민자라면 미국 대통령이 당신의 아이를 빼돌리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드리머'(dreamer)를 추방할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지금까지 고통을 겪어 왔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벗겨 주는 것입니다. '나는 숨을 못 쉬겠다'는 말은 단지 조지 플로이드에게만 해당되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이 숨을 못 쉬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예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가? 매우 조악하고 의심스러운 신학적·정치적 논리로,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참칭하고, 복잡한 현실의 정치적 문제들을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으로 단순화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남발하는 모습에서인가? 아니면 신앙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평등과 정의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소수자·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인가?
이인엽 / 미국 버지니아주 워싱턴앤리대학 교수.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외교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부터 재선 실패까지, '트럼프 현상' 분석하다
트럼프 현상과 2020년 미국 대선, 그리고 기독인의 선거 참여①
기자명 이인엽
승인 2020.11.20 09:00
이번 미국 대선은 미국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관심이 매우 높았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에 따라 국내적·세계적 정책 변화와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지난 1900년 선거 이후 120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할 정도로, 보수·진보 양측이 물러설 수 없이 사력을 다한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배경과 시사점을 생각해 보고, 선거 와중에 드러난 기독인들의 정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트럼프는 개인적으로도 특이한 인물이고, 정책적으로도 타 정치인들과 차별되는 점이 많다. 특히 고립주의 외교정책과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대중 무역 전쟁 등은 기존의 공화당 정치인들과도 큰 차이가 난다. 반이민 정책, 인종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들은 미국 사회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트럼프가 부상해 2016년 대통령까지 되게 된 배경에는 미국 사회의 장기적인 문제들이 깔려 있다. 먼저 1980년대에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행되고, 1990년대 빌 클린턴 정부에서 세계화가 가속화되며, 미국 산업의 근간이 제조업에서 금융·IT 등으로 전환된다. 신자유주의 고용 유연화와 함께 제조업 공장들은 먼저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의 러스트벨트(Rust Belt)에서 노조가 약하고 임금이 저렴한 남부와 서부의 선벨트(Sun Belt) 지역으로 이전하고, 이후 더 싼 임금을 찾아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게 된다. 경제성장은 지속되지만,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은 정체되고, 노조는 약화된다.
유명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 Roger and me'(1989)는, 미시간 플린트에서 GM의 공장이 사라지면서 어떻게 공동체가 붕괴하고 범죄율이 치솟는지를 보여 준다.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책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는, 이렇게 쇠락한 미국의 백인 하층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가난과 약물중독에 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여기에 더 충격을 가한 것은 조지 W. 부시 정부 시기에 벌어진 두 가지 큰 사건이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간전을 시작한 부시 정부는, 충분한 근거나 정당성 없이 9/11과도 무관하고 결국 대량 살상 무기도 발견하지 못한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다. 후세인 정권을 쉽게 무너뜨렸지만, 후세인을 지지하던 수니파와 다수의 시아파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고, 주변국들까지 가세하면서 이라크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서 부시 행정부는 또 다른 엄청난 사고를 치게 된다. 인위적으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의 로비를 받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버린 것이다. 신용 등급이 낮고 빚을 갚을 수 없는 이들에게 엄청난 대출이 이루어졌다. 대출 회수가 이루어지지 않자, 전체 경제의 3% 규모에 불과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주택 시장과, 은행과 보험업을 비롯한 전체 경제로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면서 미국 경제가 붕괴할 위험에 처한다. 결국 부시 정부는 천문학적 세금으로, 경제 위기의 주범인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의 금융 기업들을 구제해 주는데, 반면 중산층과 하위층은 집이 차압되고 실직하는 등,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금융 산업의 탐욕과 황량해진 미국 중산층의 풍경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2016)의 첫 화면에 비치는 "이라크에 3번이나 파견되어 목숨 걸고 싸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구제금융은 없다(3 tours in Iraq, but no bailout for people like us)"는 문구는 냉소적인 중산층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Yes We Can'이라는 희망찬 구호로 등장했으나, 거대 은행과 금융 산업을 규제하려던 계획은 강력한 로비로 흐지부지되고 만다. 의료보험 개혁도 보수 정당, 언론의 공격으로 상당한 난항을 겪는다. 중동에서는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에서도 내전이 시작되는데, 이 혼란 속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는 ISIS로 진화하며 세력을 넓혀 가고 중동 전체를 뒤흔들게 된다. 공식적으로 ISIS의 패퇴를 선언한 것이 2019년이니 거의 20년간 중동에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부은 셈인데, 2017년 브라운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4조 달러가 넘는 돈이 중동에서 소모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오바마가 8년의 임기를 마치고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가 맞붙었다. 샌더스는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 문제들에 집중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산업을 규제하고, 부자 증세로 복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며,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등, 보다 선명한 진보 정책을 추진하기를 원했고, 이라크 전쟁 같은 무분별한 군사 개입을 반대했다.
힐러리는 영부인·상원의원·국무장관 등 다양한 경험을 갖췄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는 의미는 있었으나, 기성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더욱이 미국의 경제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보여 주지 못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진보의 바람이 불어 기층에서 샌더스를 통한 선명한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민주당의 경선 제도는 샌더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고, 샌더스를 지지했던 진보층은 큰 실망을 하게 된다.
트럼프는 고만고만한 경쟁자들을 쉽게 물리치고 공화당의 대선 주자가 되는데, 백인 중산층의 좌절감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무역이 불공정하다며 중국 때리기로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찾아 오겠다고 공언했고, 이민자들의 증가로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범죄가 증가한다는 식으로 반이민 정책을 표방했으며,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군사 개입을 비판하고 미국의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고립주의를 내세웠다. 결국 어떤 방향으로든 강력한 변화를 내세웠던 것은 트럼프와 샌더스였는데, 최종 후보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되면서, 경제문제와 변화를 이야기한 트럼프가 승리하게 된다.
오바마가 재선된 2012년 선거와 트럼프가 이긴 2016년 선거를 비교하면, 트럼프는 오바마가 승리했던 6개 주를 뺏어 왔다. 플로리다를 제외하고, 5개 주(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아이오와)는 모두 러스트벨트/중서부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즉, 인종주의적 발언 등,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이 공화당 주를 민주당으로 뒤집지는 못했으나, 경제 공약에 반응한 러스트벨트를 공화당이 가져오면서 승리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스티브 배넌 같은 전략가의 역할도 컸다. 그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위기를 일으킨 부시 정부보다는, 이후 뒤처리를 하기 위해 정부 재정을 많이 지출했던 오바마 정부를 더 비판했다. 기존의 정치인들을 싸잡아 워싱턴 엘리트라고 규정하며,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국을 구할 수 있다고 묘사했다. 사실, 트럼프는 미국의 중산층과는 전혀 비슷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는 1%의 일원이었음에도 말이다.
2. 트럼프 정부의 정책
그렇다면 트럼프 정부 4년의 정책은 어떠했는가? 가장 심각한 것은 반이민 인종주의 정책이다. 갑자기 중동의 7개 국가 출신에 대해 입국 금지를 내려 논란을 일으키고, 오바마가 사인했던 DACA 프로그램(16세 이전에 부모를 따라 입국해 범죄 기록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추방을 유예하고, 교육과 취직, 운전면허를 허가해 주는 제도)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유학생들과 취업 비자 소지자들에 대한 심사나 영주권·시민권 수속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까다롭게 만들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받아들이던 난민의 숫자를 대폭 축소했고,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속·추방했으며 국경 검문을 강화했는데, 심지어 이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을 분리해 어린이들을 철창에 가두는 비인도적 처사까지 벌어져 많은 항의를 받았다.
멕시코인들을 대놓고 강간범이라고 묘사하는 등, 대통령이 이민자를 악마화하는 언급을 반복하자 인종 혐오 범죄가 급증했다. 주요 대도시에서는 매년 20% 증가했고, 혐오 단체들도 전국적으로 늘었다. 2017년 버니지아 샬러츠빌에서 흑인 교회에 난입해 총격을 가한 인종주의자의 혐오 범죄 이후, 남부 연합기, 남부의 리 장군 동상 등, 인종주의 상징물을 제거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이에 맞서 네오 나치, 백인우월주의자, 극우 세력들이 시위를 일으키고, 한 극우 청년의 차량 돌진으로 사망 사건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트럼프는 "시위대 양측에 모두 좋은 사람들이 있다(very fine people, on both sides)"라고 말하면서 인종주의 극우 세력과 거리 두기를 거부했다. 이들 상당수가 트럼프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대통령의 행태로, 그전까지 공공 영역에서 대놓고 나타나지 못했던 극우 세력들이 힘을 얻고 조직되기 시작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 인종 갈등의 상징이 되었다. 조지 플로이드가 식당에서 사용한 20달러가 위조지폐로 의심받아 신고된 단순한 사건이었다. 이 일로 플로이드는 저항 없이 수갑까지 채워진 상태였는데,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은 "숨을 쉴 수가 없어요(I can’t breathe)"라고 말하는 그의 목을 8분 46초간 무릎으로 압박했다. 의식불명에 빠지고 심정지로 사망하는 과정이 행인의 스마트폰에 그대로 촬영되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고질적인 인종차별을 개선하고 갈등을 풀어내기보다 시위대를 비난하기 바빴다.
이런 극단적인 정책 뒤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는 '희생양 만들기'(scapegoating)로, 백인 중산층의 불만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자와 어린이에 대해서는 보호하고 관용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부모와 분리해 철창에 가둘 정도로 가혹한 집행이 벌어졌다. 이들을 마치 해충이나 인간 이하의 존재로 묘사한 대통령의 표현에 더해, 사회적 불평등과 위기감에 몰린 미국 백인 중산층의 희생양 찾기가 작용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마치 평소에 다소 너그러웠던 부잣집 아들이 가세가 기울면서 다른 사람에게 가혹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문제는 정말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현재 미국의 위기를 가져왔느냐는 점이다. 사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오히려 이민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값싼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남미 이민자들은 백인들이 원하지 않는 값싼 노동력(캘리포니아의 땡볕에서 밭일을 하거나, 식당 주방일, 모텔 메이드 등)을 제공해 미국 경제의 하부를 받쳐 올려 왔다.
다른 차원에서 중남미의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데는 미국의 과거 책임도 존재한다. 냉전기에 미국이 반공 차원에서 독재 정부를 지원하면서 벌어진 내전과 정치적 불안, 그리고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들어가는 마약과 미국에서 나오는 돈과 총기 때문에 벌어지는 중남미의 마약 전쟁으로, 치안이나 경제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생지옥이 되어 버린 나라가 많다. 결국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넘어온 난민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을 마치 범죄자나 해충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시장으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드블라지오는 "경제 위기를 일으킨 것은 상위 1%와 대기업들인데, 왜 이민자들을 비난하고 있냐(For all the American citizens who feel you are falling behind and the American dream is not working for you, the immigrants didn’t do that to you, The big corporations did that to you. The 1 percent did that to you)"고 일갈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트럼프가 줄이려는 것은 서류 미비자나 불법 이민뿐 아니라 '합법 이민'이라는 주장이 있다. 미국의 인종별 인구 비율과 증가율을 계산하면 2044년이면 백인 인구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2060년이면 백인은 전체 인구의 20%에 불과해진다는 예측이 나온다. 백인 중심 국가의 정체성이 깨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수 공화당은 집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은 기존의 선거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1992년부터 2020년까지 8번의 대선 중 공화당 후보가 3번 이겼지만, 2번(2000년과 2016년)은 다수 투표를 받지 못하고 선거인단 제도로 겨우 이겼다. 결국 공화당이 다수 투표를 얻은 것은 2004년 단 1번뿐이다. 결국 백인 남성, 개신교 중심의 미국이라는 정체성과 공화당 집권 가능성은 현재와 같은 인구 변화가 지속되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당선과 정책은, 불법 이민뿐 아니라 합법 이민까지 줄여, 인위적으로 백인 중심 사회를 유지하려는 시도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은 합법 이민을 50% 줄이자는 RAISE라는 이름의 법안을 상정한 적도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는 '미국을 다시 백인 중심 국가로(Make America White Again)!'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대외 경제정책에서는 보호무역주의에 입각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에 타격을 주는 데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세계화로 옮겨 간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찾아 온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적었다. 낮은 임금을 따라 기술집약적 제조업이 옮겨 간 것인데, 그것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기도 쉽지 않고, 가져와도 임금이나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산업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 제품에 부과되는 수입으로 정부 관세가 늘어난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그것은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매기는 것과 같고, 기업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일을 권장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을 주는 것도 결국 세납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8년 트럼프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문제는 실제로 미국에서 철강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8만 명에 불과한 반면(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림), 철강과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산업(예를 들어 자동차)에는 약 650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관세정책으로 원자재 단가가 올라가 후자의 산업들에 부담을 주었다. 그래서 GM에서는 고용을 감축하고, 할리데이비슨 같은 기업은 유럽의 보복관세를 피해 공장을 유럽으로 옮기겠다고 결정하기까지 했다.
또한 중서부의 농가에서는 콩을 비롯해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는데, 무역 전쟁에 대한 중국의 보복관세로 20%의 수입이 감소하고, 관련 종사자가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 왔다. 피터 나바로처럼 트럼프 정부에 들어간 이들 외에, 주류 경제학자들 중에 트럼프의 무역 전쟁을 지지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는 점도, 무역 전쟁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2020년 선거에서 필라델피아·미시간·위스콘신이 민주당으로 돌아선 것은, 2016년의 선택으로 중국에 타격을 주었을지언정, 경제적으로 확연한 이익을 보지 못했음을 방증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국내 경제정책은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주고,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려고 노력하고,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등 전형적인 공화당의 보수주의 정책에 가까웠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와 샌더스 둘 다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했으나, 해결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샌더스는 경제 위기의 주범인 금융 산업을 규제하고, 부자 증세로 분배와 복지를 강화하자고 했다. 반면 트럼프는 대외적으로는 중국 때리기, 대내적으로는 반이민자 정책 등으로 외부의 적, 내부의 희생양을 찾고, 부자에게는 감세 정책을 추진했으며, 금융 산업에 대한 개혁이나 빈부 격차 해소는 실종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월스트리트 출신의 므누친을 재무장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의 렉스 틸러슨을 국무장관, 암웨이 가문 출신의 베치 디보스를 교육부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정부 각료들을 기업인 출신 백만장자들로 채웠다. 트럼프가 공개를 미뤄 오던 세금 보고서가 폭로되었는데, 백만장자인 그가 2017년에 소득세를 단지 750달러밖에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결국 1% 출신의 트럼프가 정말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했는지, 자신과 같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에 위기를 가져온 것은 코로나19 사태였다. 11월 현재 감염자와 사망자 모두 미국이 세계 1위이며, 인구 대비 사망자를 계산해도 세계 12~13위가 되며, 전 세계 코로나19 총 확진자와 총 사망자 수의 1/5이 미국에서 나오는 등,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가 무색할 정도로 대응에 실패해 왔다. 트럼프 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힘든데, 초반에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브리핑하면서 각종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고, 코로나19 이슈를 정치화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공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봉쇄 조치를 추진하는 미시간이나 미네소타 등의 주지사에게 맞서라고 반대 시위대를 자극하는 트윗을 날리기까지 했고("liberate Michigan, Liberate Minnesota"), 심지어는 나중에 극우 조직이 미시간 주지사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다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한 비난을 중국 정부에 전가하려고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라는 표현을 고집해, 트럼프 지지자들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 혐오 공격이 증가하기도 했다. 이제 거의 미국 사망자가 25만 명에 다가서고 있다. 이 숫자가 감이 오지 않는다면, 9/11사태가 100번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또한 1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걸프 전쟁의 미군 사망자를 다 합친 숫자보다도 많고, 조만간에 2차 세계대전의 미군 희생자(40만 5399명)까지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모든 문제점에도, 사실 트럼프에 대한 지지층의 여론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리얼리티 쇼 경험 등을 통해 대중의 심리를 꿰뚫은 트럼프가, 학력 수준이 낮은 백인 중산층을 확고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로 투표하는 부유층과, 정체성 문제로 트럼프에게 애착을 느끼는 저학력 중하위층이 함께 트럼프의 지지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고, 반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과 인종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강력한 반트럼프 세력이 되었다. 미국 사회는 트럼프에 대한 찬반으로 격렬한 분열을 경험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기독인들, 한인 기독인들이 보이는 입장은 어떠했는가?(계속)
이인엽 / 미국 버지니아주 워싱턴앤리대학 교수.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외교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3. 기독인의 시각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백인 복음주의자들 중 81%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이번 2020년 대선에서도 출구 조사 결과를 보면 76~81%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이들의 지지도는 후보와 상관없이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존 맥케인, 미트 롬니, 도널드 트럼프 등 최근의 공화당 대선 후보는 모두 백인 복음주의자들에게서 70~80%의 지지를 받았다.
뒤로멈춤앞으로
그런데 미트 롬니는 복음주의자들이 이단으로 여기는 몰몬교 출신이다. 트럼프는 2번 이혼하고 3번째 부인과 살고 있으며, 플레이보이 포르노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고, 2016년 대선 전에 음담패설 녹취록이 공개되는 등 기독교적 삶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런 경험이 없으며, 잘못을 하면 스스로 고치지, 하나님을 끌어들이지는 않는다(I am not sure I have. I just go on and try to do a better job from there. I don't think so. I think if I do something wrong, I think, I just try and make it right. I don't bring God into that picture. I don't.)"고 대답해, 복음주의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점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신앙적 원칙에 의해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인지, 자신들의 인종적·계층적 이익을 위해 공화당을 지지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신앙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주로 낙태, 동성애 문제 등이다. 그러한 신앙적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리 신앙적으로 보이지 않는 트럼프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선택해서 쓰신다는 논리를 펼친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에 매우 많은 신학적·정치적 논란과 맹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낙태나 동성애 문제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아주 제한적이다. 이 두 가지를 투표의 절대적 기준으로 제시한다는 것도 바른 성경 해석인지 논란이 있다.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다. 생명 윤리는 절대적이라며 낙태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생명 윤리와 관련되는 다른 이슈들, 예를 들어 미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총기 규제에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반면 사형제도는 절대적으로 찬성하고(특히 흑인 죄수들 안에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사형당한 경우가 많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 이라크 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오바마 케어도 문제가 많지만, 그전까지 인구의 15%가 넘는 4600만 명이 보험 없이 살고 있었다. 거기다 매년 의료비로 파산하는 사람이 200만 명인데도,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한 대안을 무조건 사회주의라며 반대해 왔다. 실제 낙태 문제를 조사해 보면, 상당수의 원치 않는 임신이나 낙태 결정은 빈곤 문제(2013년 연구에 따르면 낙태 여성의 69%가 빈곤층), 복지나 의료보험의 부족, 성교육과 피임 교육의 부재 등과 관련 있다. 그런데 많은 기독인은 낙태를 범죄화하는 데만 관심 있을 뿐, 낙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에는 오히려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독인들이 정말 낙태를 줄이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낙태 문제를 내세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화당에 투표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이도 많다.
또한 낙태 문제는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차원에서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동성애 문제도 성에 대한 관점을 넘어, 세속 사회에서의 개인의 선택권과 동등한 권리라는 차원에서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성경 해석을 내세워 낙태나 동성애를 심각한 죄라고 규정할지라도, 우리는 신앙인인 동시에 정교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다문화·다종교의 세속 사회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내가 믿는 기독교적 윤리를 바로 법으로 적용할 수 없으며, 법률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다. 술 취함이나 간음, 이혼이 신앙적 기준에서 죄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법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미국에서 금주법을 무리하게 실시했다가 밀주업과 마피아의 성장에만 기여한 것이 좋은 예이다.
버지니아대 사회학과 교수인 제임스 헌터는 <문화 전쟁 Culture Wars: The Struggle to Define America, Basic Books>(1995)이라는 책을 통해 보수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1979년 '도덕적다수'(Moral Majority)를 만들어 레이건의 당선과 재선에 영향을 끼친 제리 폴웰과, 기독교연맹을 만들었고 각종 사회적인 실언들로 유명한 팻 로버트슨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로 대표되는 기독교 우파는, 기독교의 총체적 가르침을 낙태·동성애 등 몇 가지 윤리적 주제로 환원시키고 끝없는 문화 전쟁에 집착하며, 공화당과 노골적으로 결탁해 우파 정치인을 선출하고 대법원에 보수적 판사를 임명하여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강요하고 권력과 헤게모니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미 수십 년간 낙태·동성애 문제를 내세워 공화당에 투표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결국 낙태나 동성애는 상당히 개인적인 삶의 문제이다. 이것을 정치권력과 법적인 판결로 해결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도 질문해 봐야 한다. 트럼프는 과거 낙태나 동성애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트럼프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4번 당적을 왔다 갔다 한 전력이 있고, 주로 리버럴한 뉴욕에서 기독교적인 생활 방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가 보수적인 대법원 판사들을 임명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낙태·동성애 관련 판결들을 뒤집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 관저 백악관.
하나님은 트럼프를 선택하셨고, 그 근거는 낙태와 동성애 문제라는 식의 매우 단순한 논리에는 많은 신학적·정치적·논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보고, 충분히 설명해 주는 기독교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결국, 트럼프를 지지하는 최종적 선택에도 논란이 있지만, 그런 선택에 이르기까지 매우 단순한 논리를 충분한 성찰과 고민 없이 확신하는 기독교인들의 사고 체계 자체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학에는 기표와 기의라는 개념이 있다. 실제 그 대상·의미를 지칭하는 것이 기의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문자·상징이 기표이다. 이 두 가지에는 필연적 연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기독교적 상징물과 기독교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성탄절에 낭만적인 말구유 탄생 모습을 재현해 놓고 좋아하지만, 그것을 내 주위의 난민, 가난한 자, 의료 혜택을 못 받는 자 속에 예수님이 있다는 생각으로는 전혀 연결하지 못하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트럼프가 지지한 앨라배마 상원의원 후보 로이 무어(Roy Moore)는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을 지내던 2003년, 주법원 청사에 설치된 십계명 기념비를 철거하라는 연방법원의 명령을 거부해 처음 해직될 정도로 기독교적 상징과 문화에 집착한 인물이다. 그는 선거 캠프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여러 명의 여성이, 자기가 미성년자였을 때 검사였던 로이 무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주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시위가 한창일 때, 트럼프는 백악관 회견을 마친 후, 대통령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평화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쏴 해산시키고는, 핵심 참모를 대동하고 인근 세인트존스교회를 찾아 성경을 들어 올리는 뜬금없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사건을 보고, 복음주의자의 40% 이상이 트럼프 대통령이 신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문제는 신앙적 상징만 있으면, 심지어 그것을 신앙의 본질과 대치되는 인물이 사용하더라도 분별하지 못하고 무조건 지지하는 신앙인이 많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신앙인은 기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세력에게 가장 손쉽게 동원될 수 있다.
세인트존스교회 예배당 앞에서 성경을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 중인 트럼프. 사진 출처 플리커
결국 이들이 사회 속에서 지혜롭고 성숙한 신앙인이자 시민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수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역할에 충실한 건지, 심각하게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제임스 헌터는, 이런 이유로 보수 기독교인들이 "공화당의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조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트럼프 현상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낙태·동성애 문제 외에도, 미국의 장기적인 경제 불평등과 중산층의 좌절감, 다인종·다문화 현상에 대한 반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년간 트럼프의 정책을 보면서, 과연 신앙인의 이름으로 그를 지지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가 질문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현상을,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합의와 원칙이 무너져 온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미국에서는 현실에서 차별이 존재할지언정, 정부 지도자가 인종이나 종교, 신분 등을 이유로 공공연하게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민자나 소수 인종을 범죄자, 해충 취급을 하며 백인 중산층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어린아이들을 케이지에 가두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우 인종주의 세력을 부추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주지사에 맞서라고 트윗을 날려 극우 세력이 납치 계획을 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소한 선거 과정과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미국의 관례였는데, 트럼프는 자신이 패배했을 경우에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언급을 반복했다. 우편투표를 비롯한 선거 방식에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선거 이후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특히 대통령 토론회에서 극우 인종주의 세력과 선을 그을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물러나서 대기하라(stand back and stand down)"라는 발언을 해 많은 이를 경악시켰다. '프라우드보이즈'(Proud boys) 같은 극우 신나치 조직에게, 자신이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무기를 들고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퍼져 갔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패자가 승복 메시지를 내는 전통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깨고, 아직까지 불복 의사를 견지하고 있다. 가장 신기한 점은 코로나19로 25만 명이라는 엄청난 국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정치적인 책임 공방에만 몰두할 뿐, 지도자로서 그에 대한 애통이나 아픔을 표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필자를 포함해 미국에서 이민자요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위협감으로 다가왔다.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오른쪽).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일했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경제적 양극화로 많은 백인 중산층이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신앙관과 투표 행태를 보면서 질문하게 된다. 이들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이들의 불만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약한 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희생양 찾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신앙적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제조업의 몰락 등으로 백인 중산층이 영향을 받기 전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이들은, 노예제와 인종적·경제적 차별 속에 미국 정착 역사가 시작되어 부동산이나 현금 자산이 없고 도심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흑인들이었다. 흑인들의 거주지가 슬럼화할 때, 백인들은 안전한 교외로 빠져 나갔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처럼 구조적 인종차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통계에 따르면 흑인 남성은 20명 중 1명이 수감되어 있고, 인생에서 3명 중 1명꼴로 감옥에 다녀올 가능성이 있으며, 흑인들은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감옥에 가는 비율이 타 인종보다 훨씬 높다고 나올 정도로 구조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중남미의 이민자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와, 미국 경제의 하부에서 백인들이 원하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로 연명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망자를 보더라도, 흑인과 히스패닉들의 사망률이 높다.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대면 업무에 주로 종사하고, 의료 보건 서비스를 수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사회적 거리 두기나 감염자 격리 등이 불가능한 주거 환경에서 살기 때문이다.
예수는 본인이 제국의 치하에서 차별받는 식민지 백성이자 정치적 박해의 희생자였고(헤롯의 영아 학살), 난민이었고(이집트로 피난), 가난했으며 교육받지 못했다. 그러한 출신과 배경으로 차별을 당했으며, 억울하고 잘못된 재판으로 고문과 사형선고를 받고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사랑한다는 이들이, 이민자를 악마화하고 난민을 돕기를 거부하는 일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낙태와 동성애를 강조하며 생명과 가족의 윤리를 강조하는 이들이,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고아와 과부, 난민의 호소를 거부하고, 심지어 어린아이를 부모와 갈라서 철창에 가두는 가혹한 정책까지 지지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양 1마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고, 99마리를 위해 약한 1마리를 희생시키는 것이 세상의 논리라면 미국 복음주의 신앙인들의 행태는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인가?
예전에 어떤 분이, 성경 공부 모임에서 구약의 룻기를 공부했는데, 룻의 이야기를 소수 인종이자, 난민,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과부 여성의 사회적 문제로 연결시키자, 다른 분들이 그런 관점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관점으로 해석했냐고 묻자, 자신이 힘들고 외롭고 배우자를 찾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시고,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하시고, 자녀를 낳고 물질적으로 축복을 주신다는 등의 해석 이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나의 구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계획에 집중하는 것은 복음주의 신앙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모든 신앙의 핵심이 되어 버려서, 나의 문제와 고통에만 집착한 채,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와 내 가족, 나와 비슷한 사람 이상으로는 뻗어 나가지 못하고, 타인, 특히 나와 다른 약자, 소수자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모습의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며, 앞에서 언급한 대로 트럼프 현상에는 경제적 요인을 포함해 다양한 배경들이 깔려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는 인종차별주의적 발언들과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정책에도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앙인들에게 약자의 고통과 구조적 불평등이, 절박한 신앙의 문제, 신앙적 가치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낙태·동성애로 대표되는 윤리적인 이슈에 집착하지만,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고 돈·섹스·권력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온 트럼프 같은 인물도 자신들과 정치적인 입장이나 정체성이 같다면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송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윤리라는 가치와 그 범위가 무엇인지, 정말 기독교 윤리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인종적 이해관계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인가도 질문하게 된다.
4. 마치며
개인적으로, 선거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적인 조언자(Faith Adviser)인 폴라 화이트(Paula White)가 한 기도 모임에서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택하신(?) 트럼프에 맞서 악마가 선거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적 기도를 하면서, 현재 전 세계에서 천사들이 동원되어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하면서 방언 기도를 했다.
이 기이한 장면과 상반되는 다른 장면 하나는, 정치 평론가인 밴 존스의 선거에 대한 소감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재선되지 않은 결과를 접하며,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는 부모 노릇하기가 쉬워졌습니다. 아빠 노릇이 쉬워졌어요. 아이들에게 사람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졌어요.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졌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쉬워졌어요. 당신이 무슬림이라면 미국 대통령이 당신이 미국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이민자라면 미국 대통령이 당신의 아이를 빼돌리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드리머'(dreamer)를 추방할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지금까지 고통을 겪어 왔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벗겨 주는 것입니다. '나는 숨을 못 쉬겠다'는 말은 단지 조지 플로이드에게만 해당되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이 숨을 못 쉬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예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가? 매우 조악하고 의심스러운 신학적·정치적 논리로,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참칭하고, 복잡한 현실의 정치적 문제들을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으로 단순화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남발하는 모습에서인가? 아니면 신앙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평등과 정의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소수자·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인가?
이인엽 / 미국 버지니아주 워싱턴앤리대학 교수.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외교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부터 재선 실패까지, '트럼프 현상' 분석하다
트럼프 현상과 2020년 미국 대선, 그리고 기독인의 선거 참여①
기자명 이인엽
승인 2020.11.20 09:00
이번 미국 대선은 미국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관심이 매우 높았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에 따라 국내적·세계적 정책 변화와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지난 1900년 선거 이후 120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할 정도로, 보수·진보 양측이 물러설 수 없이 사력을 다한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배경과 시사점을 생각해 보고, 선거 와중에 드러난 기독인들의 정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트럼프는 개인적으로도 특이한 인물이고, 정책적으로도 타 정치인들과 차별되는 점이 많다. 특히 고립주의 외교정책과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대중 무역 전쟁 등은 기존의 공화당 정치인들과도 큰 차이가 난다. 반이민 정책, 인종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들은 미국 사회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트럼프가 부상해 2016년 대통령까지 되게 된 배경에는 미국 사회의 장기적인 문제들이 깔려 있다. 먼저 1980년대에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행되고, 1990년대 빌 클린턴 정부에서 세계화가 가속화되며, 미국 산업의 근간이 제조업에서 금융·IT 등으로 전환된다. 신자유주의 고용 유연화와 함께 제조업 공장들은 먼저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의 러스트벨트(Rust Belt)에서 노조가 약하고 임금이 저렴한 남부와 서부의 선벨트(Sun Belt) 지역으로 이전하고, 이후 더 싼 임금을 찾아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게 된다. 경제성장은 지속되지만,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은 정체되고, 노조는 약화된다.
유명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 Roger and me'(1989)는, 미시간 플린트에서 GM의 공장이 사라지면서 어떻게 공동체가 붕괴하고 범죄율이 치솟는지를 보여 준다.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책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는, 이렇게 쇠락한 미국의 백인 하층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가난과 약물중독에 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여기에 더 충격을 가한 것은 조지 W. 부시 정부 시기에 벌어진 두 가지 큰 사건이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간전을 시작한 부시 정부는, 충분한 근거나 정당성 없이 9/11과도 무관하고 결국 대량 살상 무기도 발견하지 못한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다. 후세인 정권을 쉽게 무너뜨렸지만, 후세인을 지지하던 수니파와 다수의 시아파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고, 주변국들까지 가세하면서 이라크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서 부시 행정부는 또 다른 엄청난 사고를 치게 된다. 인위적으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의 로비를 받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버린 것이다. 신용 등급이 낮고 빚을 갚을 수 없는 이들에게 엄청난 대출이 이루어졌다. 대출 회수가 이루어지지 않자, 전체 경제의 3% 규모에 불과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주택 시장과, 은행과 보험업을 비롯한 전체 경제로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면서 미국 경제가 붕괴할 위험에 처한다. 결국 부시 정부는 천문학적 세금으로, 경제 위기의 주범인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의 금융 기업들을 구제해 주는데, 반면 중산층과 하위층은 집이 차압되고 실직하는 등,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금융 산업의 탐욕과 황량해진 미국 중산층의 풍경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2016)의 첫 화면에 비치는 "이라크에 3번이나 파견되어 목숨 걸고 싸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구제금융은 없다(3 tours in Iraq, but no bailout for people like us)"는 문구는 냉소적인 중산층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Yes We Can'이라는 희망찬 구호로 등장했으나, 거대 은행과 금융 산업을 규제하려던 계획은 강력한 로비로 흐지부지되고 만다. 의료보험 개혁도 보수 정당, 언론의 공격으로 상당한 난항을 겪는다. 중동에서는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에서도 내전이 시작되는데, 이 혼란 속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는 ISIS로 진화하며 세력을 넓혀 가고 중동 전체를 뒤흔들게 된다. 공식적으로 ISIS의 패퇴를 선언한 것이 2019년이니 거의 20년간 중동에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부은 셈인데, 2017년 브라운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4조 달러가 넘는 돈이 중동에서 소모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오바마가 8년의 임기를 마치고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가 맞붙었다. 샌더스는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 문제들에 집중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산업을 규제하고, 부자 증세로 복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며,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등, 보다 선명한 진보 정책을 추진하기를 원했고, 이라크 전쟁 같은 무분별한 군사 개입을 반대했다.
힐러리는 영부인·상원의원·국무장관 등 다양한 경험을 갖췄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는 의미는 있었으나, 기성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더욱이 미국의 경제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보여 주지 못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진보의 바람이 불어 기층에서 샌더스를 통한 선명한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민주당의 경선 제도는 샌더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고, 샌더스를 지지했던 진보층은 큰 실망을 하게 된다.
트럼프는 고만고만한 경쟁자들을 쉽게 물리치고 공화당의 대선 주자가 되는데, 백인 중산층의 좌절감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무역이 불공정하다며 중국 때리기로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찾아 오겠다고 공언했고, 이민자들의 증가로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범죄가 증가한다는 식으로 반이민 정책을 표방했으며,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군사 개입을 비판하고 미국의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고립주의를 내세웠다. 결국 어떤 방향으로든 강력한 변화를 내세웠던 것은 트럼프와 샌더스였는데, 최종 후보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되면서, 경제문제와 변화를 이야기한 트럼프가 승리하게 된다.
오바마가 재선된 2012년 선거와 트럼프가 이긴 2016년 선거를 비교하면, 트럼프는 오바마가 승리했던 6개 주를 뺏어 왔다. 플로리다를 제외하고, 5개 주(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아이오와)는 모두 러스트벨트/중서부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즉, 인종주의적 발언 등,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이 공화당 주를 민주당으로 뒤집지는 못했으나, 경제 공약에 반응한 러스트벨트를 공화당이 가져오면서 승리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스티브 배넌 같은 전략가의 역할도 컸다. 그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위기를 일으킨 부시 정부보다는, 이후 뒤처리를 하기 위해 정부 재정을 많이 지출했던 오바마 정부를 더 비판했다. 기존의 정치인들을 싸잡아 워싱턴 엘리트라고 규정하며,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국을 구할 수 있다고 묘사했다. 사실, 트럼프는 미국의 중산층과는 전혀 비슷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는 1%의 일원이었음에도 말이다.
2. 트럼프 정부의 정책
그렇다면 트럼프 정부 4년의 정책은 어떠했는가? 가장 심각한 것은 반이민 인종주의 정책이다. 갑자기 중동의 7개 국가 출신에 대해 입국 금지를 내려 논란을 일으키고, 오바마가 사인했던 DACA 프로그램(16세 이전에 부모를 따라 입국해 범죄 기록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추방을 유예하고, 교육과 취직, 운전면허를 허가해 주는 제도)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유학생들과 취업 비자 소지자들에 대한 심사나 영주권·시민권 수속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까다롭게 만들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받아들이던 난민의 숫자를 대폭 축소했고,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속·추방했으며 국경 검문을 강화했는데, 심지어 이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을 분리해 어린이들을 철창에 가두는 비인도적 처사까지 벌어져 많은 항의를 받았다.
멕시코인들을 대놓고 강간범이라고 묘사하는 등, 대통령이 이민자를 악마화하는 언급을 반복하자 인종 혐오 범죄가 급증했다. 주요 대도시에서는 매년 20% 증가했고, 혐오 단체들도 전국적으로 늘었다. 2017년 버니지아 샬러츠빌에서 흑인 교회에 난입해 총격을 가한 인종주의자의 혐오 범죄 이후, 남부 연합기, 남부의 리 장군 동상 등, 인종주의 상징물을 제거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이에 맞서 네오 나치, 백인우월주의자, 극우 세력들이 시위를 일으키고, 한 극우 청년의 차량 돌진으로 사망 사건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트럼프는 "시위대 양측에 모두 좋은 사람들이 있다(very fine people, on both sides)"라고 말하면서 인종주의 극우 세력과 거리 두기를 거부했다. 이들 상당수가 트럼프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대통령의 행태로, 그전까지 공공 영역에서 대놓고 나타나지 못했던 극우 세력들이 힘을 얻고 조직되기 시작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 인종 갈등의 상징이 되었다. 조지 플로이드가 식당에서 사용한 20달러가 위조지폐로 의심받아 신고된 단순한 사건이었다. 이 일로 플로이드는 저항 없이 수갑까지 채워진 상태였는데,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은 "숨을 쉴 수가 없어요(I can’t breathe)"라고 말하는 그의 목을 8분 46초간 무릎으로 압박했다. 의식불명에 빠지고 심정지로 사망하는 과정이 행인의 스마트폰에 그대로 촬영되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고질적인 인종차별을 개선하고 갈등을 풀어내기보다 시위대를 비난하기 바빴다.
이런 극단적인 정책 뒤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는 '희생양 만들기'(scapegoating)로, 백인 중산층의 불만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자와 어린이에 대해서는 보호하고 관용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부모와 분리해 철창에 가둘 정도로 가혹한 집행이 벌어졌다. 이들을 마치 해충이나 인간 이하의 존재로 묘사한 대통령의 표현에 더해, 사회적 불평등과 위기감에 몰린 미국 백인 중산층의 희생양 찾기가 작용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마치 평소에 다소 너그러웠던 부잣집 아들이 가세가 기울면서 다른 사람에게 가혹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문제는 정말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현재 미국의 위기를 가져왔느냐는 점이다. 사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오히려 이민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값싼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남미 이민자들은 백인들이 원하지 않는 값싼 노동력(캘리포니아의 땡볕에서 밭일을 하거나, 식당 주방일, 모텔 메이드 등)을 제공해 미국 경제의 하부를 받쳐 올려 왔다.
다른 차원에서 중남미의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데는 미국의 과거 책임도 존재한다. 냉전기에 미국이 반공 차원에서 독재 정부를 지원하면서 벌어진 내전과 정치적 불안, 그리고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들어가는 마약과 미국에서 나오는 돈과 총기 때문에 벌어지는 중남미의 마약 전쟁으로, 치안이나 경제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생지옥이 되어 버린 나라가 많다. 결국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넘어온 난민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을 마치 범죄자나 해충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시장으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드블라지오는 "경제 위기를 일으킨 것은 상위 1%와 대기업들인데, 왜 이민자들을 비난하고 있냐(For all the American citizens who feel you are falling behind and the American dream is not working for you, the immigrants didn’t do that to you, The big corporations did that to you. The 1 percent did that to you)"고 일갈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트럼프가 줄이려는 것은 서류 미비자나 불법 이민뿐 아니라 '합법 이민'이라는 주장이 있다. 미국의 인종별 인구 비율과 증가율을 계산하면 2044년이면 백인 인구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2060년이면 백인은 전체 인구의 20%에 불과해진다는 예측이 나온다. 백인 중심 국가의 정체성이 깨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수 공화당은 집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은 기존의 선거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1992년부터 2020년까지 8번의 대선 중 공화당 후보가 3번 이겼지만, 2번(2000년과 2016년)은 다수 투표를 받지 못하고 선거인단 제도로 겨우 이겼다. 결국 공화당이 다수 투표를 얻은 것은 2004년 단 1번뿐이다. 결국 백인 남성, 개신교 중심의 미국이라는 정체성과 공화당 집권 가능성은 현재와 같은 인구 변화가 지속되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당선과 정책은, 불법 이민뿐 아니라 합법 이민까지 줄여, 인위적으로 백인 중심 사회를 유지하려는 시도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은 합법 이민을 50% 줄이자는 RAISE라는 이름의 법안을 상정한 적도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는 '미국을 다시 백인 중심 국가로(Make America White Again)!'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대외 경제정책에서는 보호무역주의에 입각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에 타격을 주는 데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세계화로 옮겨 간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찾아 온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적었다. 낮은 임금을 따라 기술집약적 제조업이 옮겨 간 것인데, 그것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기도 쉽지 않고, 가져와도 임금이나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산업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 제품에 부과되는 수입으로 정부 관세가 늘어난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그것은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매기는 것과 같고, 기업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일을 권장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을 주는 것도 결국 세납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8년 트럼프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문제는 실제로 미국에서 철강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8만 명에 불과한 반면(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림), 철강과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산업(예를 들어 자동차)에는 약 650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관세정책으로 원자재 단가가 올라가 후자의 산업들에 부담을 주었다. 그래서 GM에서는 고용을 감축하고, 할리데이비슨 같은 기업은 유럽의 보복관세를 피해 공장을 유럽으로 옮기겠다고 결정하기까지 했다.
또한 중서부의 농가에서는 콩을 비롯해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는데, 무역 전쟁에 대한 중국의 보복관세로 20%의 수입이 감소하고, 관련 종사자가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 왔다. 피터 나바로처럼 트럼프 정부에 들어간 이들 외에, 주류 경제학자들 중에 트럼프의 무역 전쟁을 지지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는 점도, 무역 전쟁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2020년 선거에서 필라델피아·미시간·위스콘신이 민주당으로 돌아선 것은, 2016년의 선택으로 중국에 타격을 주었을지언정, 경제적으로 확연한 이익을 보지 못했음을 방증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국내 경제정책은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주고,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려고 노력하고,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등 전형적인 공화당의 보수주의 정책에 가까웠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와 샌더스 둘 다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했으나, 해결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샌더스는 경제 위기의 주범인 금융 산업을 규제하고, 부자 증세로 분배와 복지를 강화하자고 했다. 반면 트럼프는 대외적으로는 중국 때리기, 대내적으로는 반이민자 정책 등으로 외부의 적, 내부의 희생양을 찾고, 부자에게는 감세 정책을 추진했으며, 금융 산업에 대한 개혁이나 빈부 격차 해소는 실종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월스트리트 출신의 므누친을 재무장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의 렉스 틸러슨을 국무장관, 암웨이 가문 출신의 베치 디보스를 교육부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정부 각료들을 기업인 출신 백만장자들로 채웠다. 트럼프가 공개를 미뤄 오던 세금 보고서가 폭로되었는데, 백만장자인 그가 2017년에 소득세를 단지 750달러밖에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결국 1% 출신의 트럼프가 정말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했는지, 자신과 같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에 위기를 가져온 것은 코로나19 사태였다. 11월 현재 감염자와 사망자 모두 미국이 세계 1위이며, 인구 대비 사망자를 계산해도 세계 12~13위가 되며, 전 세계 코로나19 총 확진자와 총 사망자 수의 1/5이 미국에서 나오는 등,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가 무색할 정도로 대응에 실패해 왔다. 트럼프 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힘든데, 초반에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브리핑하면서 각종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고, 코로나19 이슈를 정치화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공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봉쇄 조치를 추진하는 미시간이나 미네소타 등의 주지사에게 맞서라고 반대 시위대를 자극하는 트윗을 날리기까지 했고("liberate Michigan, Liberate Minnesota"), 심지어는 나중에 극우 조직이 미시간 주지사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다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한 비난을 중국 정부에 전가하려고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라는 표현을 고집해, 트럼프 지지자들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 혐오 공격이 증가하기도 했다. 이제 거의 미국 사망자가 25만 명에 다가서고 있다. 이 숫자가 감이 오지 않는다면, 9/11사태가 100번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또한 1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걸프 전쟁의 미군 사망자를 다 합친 숫자보다도 많고, 조만간에 2차 세계대전의 미군 희생자(40만 5399명)까지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모든 문제점에도, 사실 트럼프에 대한 지지층의 여론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리얼리티 쇼 경험 등을 통해 대중의 심리를 꿰뚫은 트럼프가, 학력 수준이 낮은 백인 중산층을 확고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로 투표하는 부유층과, 정체성 문제로 트럼프에게 애착을 느끼는 저학력 중하위층이 함께 트럼프의 지지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고, 반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과 인종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강력한 반트럼프 세력이 되었다. 미국 사회는 트럼프에 대한 찬반으로 격렬한 분열을 경험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기독인들, 한인 기독인들이 보이는 입장은 어떠했는가?(계속)
이인엽 / 미국 버지니아주 워싱턴앤리대학 교수.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외교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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