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Koreanists Vladimir Tikhonov Living like a Lost Child 미아로 산다는 것

Koreanists
어제 나온 저의 새 책입니다. '미아'는 여기에서 날로 커져 가는 뿌리 뽑힌 워킹푸어들의 새로운 '외로운 대중'들입니다. 과거에는 산업화된 나라라면 학교 졸업하고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애를 낳는 인생의 '정해진 커스' 같은 게 있고 노동자라 해도 대체로 적당히 소비해가면서 이 커스를 따를 수 있었지만, 이젠 한국이든 유럽의 많은 나라든간에 이 커스는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긱 노동자, 플래트폼 노동자, 무급 인턴 등등이 되고, 집 살 엄두도 못내고, 결혼은커녕 연애를 할만한 여력도 없고 아이 낳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고...어떻게 보면 노동계급의 상당 부분은 19세기 중반과 같은 '상대/절대적 빈곤' 상태로 돌아왔지만, 거기에다 덤으로 원자화와 가족 붕괴 등이 겹쳐져서 '뿌리 뽑힘'은 한 세대의 코드가 된 것입니다. 이 책은, 이 코드를 한 번 읽어보고 절망이 지배하는,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고 개개인이 다 '혼자' 되는 상황에서 그래도 타자들과 소통을 하고 새로운, 수평적 방식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대한 약간의 단상을 담은 것입니다.

미리 단서를 달고자 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는 조국 대전이나 추-윤 대격전 등등의 이야기를 그다지 쓰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는 친문도 반문도 없고 지배자들 사이의 '갈등'들을 중심으로 해서 쓴 건 아닙니다. 저의 관심사는, 한국이고 외국이고를 떠나서 지옥이 거의 다 된 이 세상의 대부분 사회에서 희망이 절단되고 미래를 빼앗긴 젊은이들이 어떻게 절망을 넘어 살아남아야 하는가, 어떻게 소통을 모색해야 하고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을 만들어나가야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저는 '시사 문제'라기보단 '장기 지속'의 문제들에 대해 요즘 관심이 훨씬 높고 이 책에서도 주로 그런 걸 위주로 해서 쓴 겁니다.

Sorry for rather shameless self-promotion....Below is the front page of my new book, <Living like a Lost Child>, published (in Korean, in Seoul, by Hangyoreh Publishers) yesterday. The book, a collection of popularly written essays, deals with the major issues of the late neo-liberal age, both in South Korea and Euroamerican societies (I attempt to focus on the issues rather than a particular country or 'culture'). It focuses most heavily on the emergence of precariat, a new underclass of mostly urban, casually employed, low-paid and unskilled or de-skilled workers, and generally on the lives, mores, desires and pains of the young working poor, both in South Korea and Northern/Western/Eastern Europe. It attempts to look at the personal and social consequences of the enforced rootlessness of the late neo-liberal age, and to understand how precariat is being fragmented, atomized and kept under control inside the framework of 'surveillance capitalism' typical of the recent years. Generally, it is an attempt to diagnose the conditions of neo-liberalism in the historical moment of its deepening crisis and increasingly obvious decay. One particular issue I tired to zero onto is the gradual disappearance of 'family' as institution in South Korea, where the majority of the people in the 20s no longer consider marrying somebody necessary. Yet another issue is increasing paucity/scarcity of intimacy/romantic relationship in general in a society of overworked, overstressed and atomized people living much of their lives in the virtual space....

Image may contain: text that says "미아로_ 산다는 것 박노자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ト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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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은이)한겨레출판2020-11-27

252쪽

책소개

우리가 돌아갈 집은 어디일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가난과 고독이 일상의 풍경이 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액체 같은 사회를 뿌리 없이 허우적댄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후 20년, “미아”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 박노자(朴露子)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본다. 소련에서 태어나고, 러시아에서 자라, 한국에서 공부하고, 노르웨이에서 가르치는 그는 어떻게 해서 “탈남(脫南)”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한국인 박노자는 스스로 집을 떠난 사람이 되어 2020년의 한국을 다시 사유한다. 저자에게 한국은 대다수 구성원이 ‘집’ 없이 미아로 살아가는 사회이다. 사회 구성원의 47퍼센트가 자기만의 집 없이 떠돌아야 하고, 대다수 청년이 자기만의 자리를 찾을 여유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아가 된 구성원들이 연대가 아닌 혐오로 고립을 벗어나려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안전한 ‘집’을 짓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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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 미아의 단상


1장 편안함의 대가
최악의 독약, 권력 | 떠나온 나라들이 남긴 환상통 | 나의 집은 어디인가
중독론 | 덕후라는 운명 | 도대체 술을 왜 마시는가 | 탈남脫南이라는 선택


2장 남아 있는 상처
내면의 풍경 | 공부의 의미 | 출산율 제로 사회 | 한국인 되기 | 가족의 종말
섹스의 실종 | 그들은 바보인가 | 추태의 수출


3장 한국, 급級의 사회
급級의 사회 | 죽음의 등급 | 굿바이, 서울공화국 | 70퍼센트짜리 국민
내가 낙관하는 이유 | 영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자기계발서 전성시대
전향의 나라 | 공적인 것을 지키지 못할 때 | 어느 20대가 꿈꾸는 세상
괴물을 낳는 피라미드 | 존엄할 권리 | 탈脫학벌, 완전하고도 철저한 파괴


4장 과거의 유령들
트라우마 해결의 전제조건 | 일본에 대한 기억의 지형 | 우리의 거울
과거가 돌아온다 | 세계사적 맥락에서 역사 보기 | 혁명의 조건 | 그래도 한국은
어떤 통일인가 | 폭력, 이 세계의 공통분모 | 상류층의 암호 더보기


책속에서
P. 26 반면 한국에 가끔 들어갈 때면 뭔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느낌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주 실감나게 일체감을 느끼게 되죠. 그것도 저절로 말이죠. 물론 일체감을 느끼는 만큼 괴리감도 바로 느껴집니다. 예컨대 사립 대학 등 한국의 ‘조직’ 속에서 혹시나 밥통을 갖고 살게 될 경우에는 할 말, 못 할 말을 아주 잘 걸러서, 두세 번 생각하고 내뱉어야 한다는 것부터 바로 느끼게 됩니다. 한국의 ‘조직’들에는 법률과 공식적인 ‘룰’ 외에도 여러 가지 불문율들이 많으니까요. 접기
P. 30 중학교 시절 가장 큰 관심사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 도시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형태였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가야사에 빠지고 말았죠. 참, 당장의 밥벌이나 입시 성적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유카탄 반도나 낙동강 유역의 고대사에 신경 쓸 수 있게 해준 구소련 체제에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대한민국에서 같은 방식으로 자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접기
P. 62 코로나19로 학교들이 문을 닫아 전국의 아이들이 워킹맘들의 24시간 일감이 되었었죠. 그렇다고 해서 그 워킹맘들의 직장 일을 누가 줄여주었나요? 사실 양성 평등 정책 차원에서 당연히 워킹맘의 업무를 줄여주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해준 직장이 있었나요?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입니다. 그러니 제게 놀라운 것은 한국의 세계 최저 출산율, 즉 0.9 수준의 출산율이 아닙니다. 제게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반여성적 환경에도 아직까지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것, 즉 출산율이 아예 0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접기
P. 80 생각해보면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죠. 남자가 ‘피해자’라고? 산업화된 국가 가운데 가장 반여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3퍼센트에 불과하고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 되어버린 이런 사회에서 남성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처음에는 거의 반신반의할 정도입니다.
P. 82 도대체 한국 남자들은 바보인가요? 신자유주의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면 신자유주의를 상대로 투쟁하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대량 가입해야 답이죠, 신자유주의로 인해 남성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보는 여성들에게 도대체 왜 한풀이를 하는 것일까요? 강자에게 얻어맞고 약자를 때리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물론 안 되죠.
P. 95 저는 가끔 이 세상이 죽도록 싫습니다. 정말 더는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싫을 때가 있습니다. 언제인가 하면, ‘죽음의 등급’을 실감나게 지켜볼 때지요. 사람이 사는 데에는 늘 ‘급’이 있지만 죽는 데에도 그 ‘급’이 늘 따라다닙니다. 고분에 묻힌 주인공, 그러니까 수장, 추장, 국왕 등의 이름은 가끔 알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순장당한 노예들의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윗사람’과 함께 의무적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했을 때의 가슴속 감정 같은 것도 우리가 그저 상상만 해봐야 하는 대목입니다. 수장, 추장, 국왕의 세계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노예들의 세계는 익명의 세계, 무기록의 세계입니다. 접기
P. 169~170 이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것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복수심 때문이 아닙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틀림없이 돌아오기 때문에, 그 과거가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청산을 해야 하는 것이죠. … 과거 청산은 예방 접종입니다.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지요.
P. 190~191 통일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 필요합니다. 세계적 수준의 참극인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북쪽 동포들에게까지 수출하고 싶은가요? 약자에 대한 차별, 1년에 약 1,700명의 노동자를 죽이는 최악의 산재 사망률, 만연되어 있는 과로사, 14퍼센트 이상의 직장 여성들이 당하는 성추행을 통일과 함께 수출하고 싶은가요? 접기
P. 193~194 아이들은 엄청나게 예민합니다. 그들은 어른들의 ‘말’을 보지 않고 그 ‘실천’, 그러니까 삶의 실질을 아주 잘 포착합니다. 제 큰아이(현재 18세)만 해도 아버지로부터 《자본론》 설교를 들을 때마다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기금을 통해 세계 각처에 투자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대기업이다. 그런 노르웨이 정부의 공무원으로서 호의호식하는 당신이 들려주는 좌파적 이야기는 가식일 뿐, 사실 당신도 자본 질서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아버지에게 촌철살인을 날립니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죠. 접기
P. 217~218 코로나19의 ‘진실의 순간’이 보여준 것은 질병에 대처하는 각국의 행정력과 준비력 그리고 정치적 의지의 ‘차이’뿐만이 아닙니다. 각국 내의 무서운 ‘사회적 격차’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내부자, 즉 중산층 이상의 구성원이나 공공 부문 및 대기업 종사자는 그저 ‘불편함’ 정도를 느끼는 반면, 외부자, 즉 중소기업 노동자나 불안 노동자 또는 자영업자 등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를 겪습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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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노자 (지은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박노자’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되었다. 스승 미하일 박 교수의 성을 따르고,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노자露子’를 이름으로 삼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하고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전근대성에 대한 근본 성찰을 가능케 하는 날카로운 칼럼들을 써왔으며, 역사학자로서 탈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한반... 더보기
최근작 : <미아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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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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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미아로 산다는 것>,<책 한번 써봅시다>,<풍요중독사회>등 총 416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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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후 20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박노자, 당신과 나, 우리의 오늘에 대해 질문하다


우리가 돌아갈 집은 어디일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가난과 고독이 일상의 풍경이 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액체 같은 사회를 뿌리 없이 허우적댄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후 20년, “미아”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 박노자(朴露子)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본다. 소련에서 태어나고, 러시아에서 자라, 한국에서 공부하고, 노르웨이에서 가르치는 그는 어떻게 해서 “탈남(脫南)”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한국인 박노자는 스스로 집을 떠난 사람이 되어 2020년의 한국을 다시 사유한다. 저자에게 한국은 대다수 구성원이 ‘집’ 없이 미아로 살아가는 사회이다. 사회 구성원의 47퍼센트가 자기만의 집 없이 떠돌아야 하고, 대다수 청년이 자기만의 자리를 찾을 여유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아가 된 구성원들이 연대가 아닌 혐오로 고립을 벗어나려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안전한 ‘집’을 짓자고 제안한다.


“저는 가끔 제 삶을 돌이켜볼 때면 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미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인간이 군중 동물인 만큼 그가 속해온 군중의 ‘문화’ 역시 인간에게 집이 됩니다. 저는, 제가 한때 태생적으로 흡수한 문화를 저의 물리적인 자녀에게도, 저의 제도적 자녀, 즉 학생들에게도 전해줄 수 없습니다. …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아’로 산다는 게 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많은 20대 한국인들이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를 중소기업에 다니고, 고시원, 원룸,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연애’ 같은 장기적 관계를 유지할 에너지마저 갖지 못합니다. 그들은 뿌리 뽑힌 채 그 어떤 보장도 없이 ‘액체 근대’의 노도를 혼자 몸으로 헤엄쳐 보이지 않는 육지를 찾아야 합니다.”_7~9쪽


한국, 서열과 급의 사회


저자는 한국을 “급(級)의 사회”로 규정한다. 어느 사회든 서열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서열은 그냥 수직적인 직선”이고 “노르웨이에 서열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서열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상대가 사는 거주지의 크기, 학벌, 직업을 기준으로 관계의 친소(親疏)와 존대의 정도를 결정한다. 우리 사회의 급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가난한 노인,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이름 없는 단신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다. 2007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무소 직원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잠긴 문을 열지 않았다. 그 결과 외국인 노동자 열 명이 화재로 사망했고, 한국 정부는 어떤 사과나 약속도 없이 1인당 1억 원을 유가족에게 보상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2018년 한국 노동연구원이 20~50대 직장인 2,500명을 조사한 결과 66.5퍼센트가 지난 5년 동안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대답했다. 직장 생활 중에 폭언을 한두 번 이상 들은 사람은 열 명 중 아홉 명이고, 폭력을 경험한 사람도 12~17퍼센트에 달했다.


새로운 가난, 관계 맺기 불능, 사색의 증발, 타자 혐오…
불안과 가난, 고독의 무게를 감당하며
미아 아닌 미아로 떠도는 시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본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이 되었지만, 노르웨이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저자는 자신이 왜 탈로(脫露, 탈러시아)와 탈남(脫南)을 선택했는지 돌아보며, 자신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담담히 서술한다. 더 이상 “갑질이 일상화된 한국 대학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교수님들이 벌이는 추태들”과 “조교들이 그들의 커피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데 해방감을 느끼지만, 모어로 말하고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2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내밀한 곳, 즉 가족 질서의 실상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은 “산업화된 국가 가운데 가장 반여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3퍼센트에 불과하고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저자는 한국의 “성난 남성들”에게 왜 “강자에게 얻어맞고 약자를 때리는지” 묻는다.
3장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를 “급의 사회”로 규정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의 존엄할 권리를 절실하게 요구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는 가구당 평균 6.5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상위 10퍼센트는 전체 부동산의 절반을 소유하지만, 47퍼센트는 집 없이 월세와 전세를 전전한다. 한 사람이 국내총생산 19퍼센트를 차지하는 대형 기업을 세습하고,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를 세습하고, 부동산을 세습한다.
4장에서는 역사적인 차원에서 한국 사회가 겪은 상처를 톺아본다. 저자는 “과거 청산은 예방 접종”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 청산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이나 집단의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원이 점점 커지듯이 ‘나’의 자리에서 시작된 사유가 5장에서 지구적 차원에 이른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질투의 감정을 신자유주의와 연결하고, 전쟁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휘발유와 자동차에 비유한다. 저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겪는 모든 사회가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불평등과 격차이다. 모든 나라에서 공공 부문 종사자, 대기업 직접 피고용자들은 코로나19로 큰 불이익을 보지 않은 반면, 서비스 부문과 유통 부문의 영세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 속담에 “Кому война, кому мать родна”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전쟁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어머니 같다는 말입니다. 즉 전쟁은 누구에게는 그야말로 참사일 뿐이지만, 누구에게는 자비로운 어머니처럼 필요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이야기죠. 자본주의적 성장은 늘 전장에서의 살상을 포함한 각종 참극을 기반으로 합니다.”_239쪽


변화는 안으로부터 온다. 저자는 이 디스토피아 같은 세계에서 혁명은 결국 나와 우리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을 “공감과 연대, 협력”을 통해서 지어야 한다. 접기

an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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