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4

알라딘: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 식민지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의 탈향, 망향, 귀향의 서사 차은정

알라딘: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 식민지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의 탈향, 망향, 귀향의 서사> 차은정 (지은이) 2016


양장본378쪽

책소개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풍의 음악을 들으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호감과 반감을 동시에 품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수수께끼를 ‘한국 출신 일본인’의 귀환 후의 기억과 실천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기억과 실천은 저자의 아버지의 기억과 실천과 동일한 어떤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제국-식민지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식민지를 살아가게 하는 식민지의 기억의 정치학이며 그 기억을 떠안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목차
서론_ 외지인의 고향, 식민지
20년만의 귀향
‘한국 출신 일본인’의 조선화(朝鮮化)와 후루사토
‘식민자’의 조선화와 역사의식
외지에서 식민지로: 내부의 타자에서 외부의 타자로
연구방법론과 책의 구성

1부_ ‘한국 출신 일본인’의 조선화와 제국의식

[1] ‘한국 출신 일본인’의 원류: 연구과정 및 연구대상 개괄

[2] 경성의 기억과 조선의 표상
‘원체험(原體驗)’의 자각
‘원체험’의 시공간, 경성의 기억도(記憶圖)
‘다민족’의 풍경
‘조선적인 것’의 경험, 조선화의 구축
조선인의 표상: ‘어머니’의 기억
‘식민지배의 무자각’의 조건
외지의 내지인에서 내지의 외지인으로


[3] 조선화의 신체와 타자성
기억의 신체화
‘경성내기(京城っ子)’의 놀이
‘경성내기’의 조선의 놀이: 놀이의 전래구조와 변용
‘경성내기’의 놀이의 민족별 범주와 식민지적 혼종성
조선의 놀이와 신체화의 서사
조선의 놀이의 재인식: ‘조선적인 것’에서 한국의 문화요소로
조선화의 타자성

[4] 내선일체의 이상과 모순: 훈육의 서사와 제국의식
훈육의 서사와 ‘마음의 고향’
황민화교육과 내선일체
경성의 일본인 소학교의 황민화교육
군국소년의 이상과 모순
‘마음의 고향’의 균열과 봉합: 선택되는 기억

2부_ ‘한국 출신 일본인’의 한국방문과 역사의식

[1] 한국인의 환대를 받은 일본인들: 연구과정 및 연구대상 개괄
[2] ‘사범’의 사명의식과 지속되는 사제관계
식민지와 ‘스승’의 의미
경성사범학교 개요
경성사범학교의 ‘자치’
‘사범’의 사명의식과 농촌의 ‘계몽’
보편적 교사상과 역사의식
[3] ‘경중회’의 ‘모교’ 방문과 식민지적 타자성
식민자의 기억, 귀환자의 실천
경성중학교 및 동창회 개괄
훈육의 기억
패전 후 동창회 활동과 한국인
기억의 관성과 역사의식: ‘마음의 고향’과 식민지적 타자성

결론_ 기억의 영토와 실천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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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차은정 (지은이)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규슈대학교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대학교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2016)이 있으며,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조너선 프리드먼, 공역),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오카모토 유이치로), 
《숲은 생각한다》(에두아르도 콘), 
《부분적인 연결들》(메릴린 스트래선), 
《부흥문화론》(후쿠시마 료타, 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최근작 : <북한의 민속>,<21세기 사상의 최전선>,<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제는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식민지조선에는 적지 않은 일본인이 살았다. 1945년 제국일본의 패전 당시 조선의 일본인은 군인을 제외하고 민간인만 70만여 명에 달했고 서울에서만 인구의 약 30%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종결 직후 조선의 거의 모든 일본인들은 연합군총사령부(GHQ)에 의해 ‘본토’로 귀환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가늠할 뿐이다. 이 인구규모는 20세기 식민지 가운데 ‘백인 이민 국가’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본토’ 인구가 유입되었던 프랑스령 알제리의 다음 가는 수준이다(우치다 쥰 2008). 

조선의 일본인들 가운데에는 관공리, 정치가, 군인 등의 ‘정책적 식민자’와는 별도로 민간 차원에서 조선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서 그들 중 일부는 ‘새로운 생활조건으로의 적응과정’으로서 조선인과 접촉하고 조선문화를 습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들은 스스로 조선으로 건너온 1세와 달리 조선문화를 주어진 환경으로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실제로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들 중에는 ‘본토’로 귀환한 후에 ‘본토’의 문화를 이질적인 것으로 느끼면서 조선문화를 ‘원체험’으로 인식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조선시절을 기억하는 그들의 ‘지금’, 즉 귀환 후의 삶이다. 그들은 1945년 제국일본의 패전과 함께 ‘본토’로 귀환한 후 조선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그들은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사회에 새로이 적응해야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출신의 일본인으로 자신을 재인식해야 했다. 일본인이되 ‘본토’ 출신이 아니라는 자기인식은 그 반대급부로 조선시절의 기억을 환기시켰다. 이 속에서 그들은 식민지조선에 있었던 일본인 학교의 동창회를 조직하고 그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며 한국방문과 ‘모교’ 후원 등의 교류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왔다. 요컨대 그들의 조선시절에 대한 ‘지금’의 기억은 지난한 실천의 결과물이다.

자, ‘조선 출신의 일본인’ 또한 제국-식민지의 역사를 말끔하게 청산했을까? 그들은 왜 ‘조선인과 잘 지냈다’고 강변하는 것일까? ‘전후일본’의 맥락 속에서 그들은 식민지조선의 어떤 기억을 토해내야 했으며 또 어떤 기억을 감춰야 했을까? 이 기억의 정치학이야말로 식민지 이후에도 식민지가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전후일본’에서 ‘식민지조선’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제국-식민지의 역사를 청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른 ‘정산’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제국-식민지의 기억을 선별하고 망각을 부추기는 논리를 밝혀냄과 동시에 그 논리에 휘말려 제국-식민지를 청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춰진 기억을 풀어내는 일일 것이다. 최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된 제국-식민지의 ‘정산’을 ‘모의’하는 한국과 일본 양국정부의 정치적 협잡은 여전히 그러한 역사적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나는 이 책에서 일본풍의 음악을 들으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호감과 반감을 동시에 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의 수수께끼를 ‘한국 출신 일본인’의 귀환 후의 기억과 실천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기억과 실천은 나의 아버지의 기억과 실천과 동일한 어떤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제국-식민지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식민지를 살아가게 하는 식민지의 기억의 정치학이며 그 기억을 떠안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책을 내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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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이후의 식민자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을 읽고 나의 생각과 유사하면서도 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직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대신해 내가 다른 논문에서 일부 언급한 글을 붙여둔다. 이른바 '식민 2세'의 식민지 이후 식민지 인식에 관한 글이 이 책이라면 나의 글은 '식민 2세'의 식민지 생활에 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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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식민통치기간이 길어지면서 처음 50명 남짓의 재조일본인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거주 집단이 되었다. 그런 만큼 이주 시기와 거주 지역과 상태에 따라 ‘조선인식’과 ‘제국의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독 다양한 차이 중 확실한 구분을 전제로 하는 것이 세대 간 구분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직 식민 1세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도 않고 있고, 1세대조차 ‘도래자’와 ‘신도래자’로 스스로를 구분하고 있으며, 식민 2세대(조선에서 태어난) 또는 식민 1.5세대(조선에서 자라난) 중 일제 말기에 성인이 되는 세대와 패전 후 성인이 되는 세대로 구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식민 2세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식민 1세와의 차이가 언급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연구의 대부분은 문화 및 문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 패전 이후 고착화된 식민지 지배의 망각과 봉인, 그리고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그동안 숨겨왔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재조일본인으로서의 식민지 경험을 하나 둘 씩 말하기 시작한 세대가 식민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거나 자라나 패전에 의해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일본에서 일본인이 아닌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패전 이후 망각의 매커니즘 속에서 부유하던 이들은 1970년대를 전후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출판한 체험기, 수기, 소설, 그리고 인터뷰를 토대로 식민 2세들에 대한 연구들이 21세기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식민 2세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성과는 니콜(Nicole Leah Cohen)이라고 할 수 있다. 니콜은 이 연구에서 1940년대 식민지 조선, 그 중에서도 경성의 재조일본인 상류계층에서 자라난 ‘京城子’를 ‘제국의 아이들’로 명명하며 그 경계적인 정체성과 문화적 혼종성을 통해 탈민족주의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있다. 그 외 문화, 문학계에서는 식민 2세 작가들의 작품 분석을 통해 식민 2세의 경계자적 위치와 내셔널리즘 비판의 테제로 삼고 있다.



이들 연구에서 식민 1세대와 식민 2세대가 구분되는 첫 번째 이유는 고향이 달랐다는 점이다. 즉,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으로 이주해 거주한 식민 1세대는 한국을 집으로 간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일시적인 거주지이며 돌아갈 곳을 염두에 두었다. 반면, 식민 2세대는 식민지 조선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들의 부모처럼 일본이 고향일 수 없으며 도리어 조선이 고향이 됨으로써 돌아갈 조국도 없는 일본과 조선의 낀 세대일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식민 1세대는 식민지에 거주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본토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했고 따라서 그렇게 생각하며 조선인 앞에 군림하는 ‘제국의식’ 속에서 살았고 그들의 자식에게도 ‘일본인다움’을 지속적으로 교육시켰다. 반면, 식민 2세대는 그러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거의 비슷’하기는 했지만 ‘완전하지 않’는 위치였고 이 때문에 이들은 ‘반일본인 반조선인’이라는 경계적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세대 구분론은 먼저, 식민 2세대가 자신이 태어난 조선을 그리워하며 그들 일본인들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식민지배의 실상을 반성하든 아니면 단순히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든 사후적인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즉,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자적 삶이나 ‘반일본인 반조선인’이라는 인식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으로서 느끼며 품었던 생각과 인식이 아니라 패전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그리고 정착하면서 느끼며 가졌던 복합적인 감정인 것이다. 물론 식민 2세 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주의와의 만남이든 고통 받는 재일조선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든 전후 반성 없이 기억을 봉인하고 망각하는 일본의 과거 인식을 문제 삼으며 스스로가 식민자였으며 일본인과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고 느끼는 감정과 인식이 전후 각각의 국가에 만연하는 내셔널리즘에 따라 과거를 한 방향으로만 보는 시각을 해체할 수 있는 탈민족적이고 트랜스내셔널한 시선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세는 여전히 주목해야할 긍정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인식이 식민 1세대와 식민 2세대를 구분할 수 있는 사실적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세대 구분을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조선에 이주하는 시기적 차이와 더불어 지역별, 계층별, 젠더별로 더욱 세밀하게 구분하여 다양한 재조일본인 상을 확인하고 이를 구축하는 것이 역사에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군다나 식민 1세대는 물론 태어난 고향이 일본이기에 돌아갈 조국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조선에 뿌리박고 ‘제국의식’ 속에서도 ‘조선본위’ 또는 ‘지역본위’, 예를 들어 ‘경성의식’ 또는 ‘부산의식’을 앞세우면 살아갔다. 그들은 살아서 돌아갈 고향을 일본에 두고 있었지만 죽어서도 자신들이 일구어 놓은 조선에 눕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에서 성공한 재조일본인들은 더욱 그랬다. 패전이 되었을 때 자신이 모은 농장과 재산을 조선에 두고 갈 수 없어서 한국인으로 귀화하고자 했던 군산의 일본인 지주 시마타니 야소야의 일화는 상징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식민 1세대가 고향으로 귀환을 생각하며 조선에서 거주했다면 일본인 거주지마다 조성된 무덤들은 어떤 의미일까. 오히려 이들은 조선에 건너와 뼈를 묻을 각오였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재조일본인 상층부의 인물들도 조선에서 죽으면 자기가 거주한 조선의 거주지와 일본의 고향에서 각각 장례 의식을 거행했지만 결국 조선에서 묻힌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단순히 1세대와 2세대를 태어난 고향과 조국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식민 2세대는 오히려 ‘일본인다움’ 또는 ‘본토 일본인’이 되기 위한 교육과 활동에 앞장섰다. 그들은 본국과 같은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동일한 여가의 대부분과 소비를 추구했고 자주 일본 스타일의 집에서 사는 동시에 신사와 사찰에 예배하거나 일본 상점에서 쇼핑하거나 다른 일본인들과 클럽이나 이웃 단체에서 관계를 맺었다. 물론 이들은 일본의 각 지역 사람들이 섞이기도 하고 조선이라는 풍토적 속성도 가지고 있었기에 절충적인 문화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이 또한 일본 문화라고 여기며 살았다. 또 다른 식민 2세 연구에서 언급한 것처럼 식민 2세들 중 성인으로 조선에서 활동하거나 조선과 일본문단에 등단한 사람들은 스스로 내선일체의 선봉에서 활동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과 패전 이후 일본에서 등단한 작가들은 등단의 차이와 전후 조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 세대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식민 2세로서 ‘제국의 딸’이 된 아사노 시게노를 볼 때, 이들은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그리고 ‘제국의 딸’이라는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악전고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재조일본인들의 다양한 모습과 정체성은 세대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이미 언급한 것처럼 조선으로 건너온 시기적 차이, 태생적 차이, 계층적 차이, 지역적 차이, 젠더적 차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가 축적되고 난 이후 이들 차이를 통해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재조일본인 연구는 보다 다양한 군상들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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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2016-09-14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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