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아마존숲 정령의 소리를 들어라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아마존숲 정령의 소리를 들어라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아마존숲 정령의 소리를 들어라

등록 :2018-05-24 
캐나다 인류학자가 보고 들은
아마존 오지마을 5년의 기록
숲 생태계 전체에 ‘기호’ 그물망
인간-자연 이분법 넘어 성찰을

숲은 생각한다-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옮김/사월의책·2만3000원

“반듯이 누워 자! 그래야 재규어가 왔을 때 그 녀석을 마주 볼 수 있어. 엎드려 자면 재규어는 너를 아이차(먹잇감)로 여기고 공격한다고.”


미국의 분석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은 일찍이 ‘(음파로 세상의 지도를 그리는) 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라며 화두를 던졌다. 그러나 아마존강에 사는 루나족에게 그 질문은 폼 잡고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다. <숲은 생각한다>의 지은이 에두아르도 콘이 사냥 캠프의 초가지붕 아래 엎드려 누워 있을 때, 원주민 친구가 다가와 경고했다는 이 말은 철학자를 앞지르는 이 책의 정수다. 동물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 재규어가 본 ‘웅크린 인간'은 그 동물에게 어떤 기호였는가?

인간-동물의 이원론적 인간중심주의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이 책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터널이다. 과학지식사회학에서 열풍을 일으킨 브루노 라투르의 ‘인간-비인간 행위자네트워크’(ANT)의 이론적 접근, 지리학계에서 일어난 ‘인간을 넘어선 지리학'의 실증 연구와 함께 이 책은 인류학에서 일군 ‘포스트 휴먼' 민속지학의 정점이다.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서는 루나족은 개가 짖는 몇 가지 소리를 이해한다. 숲에서 교환되는 기호 중의 일부다. 에콰도르 아마존강 상류의 아빌라 마을의 루나족 주민이 개와 함께 있다. 사월의책 제공

캐나다의 인류학자인 콘은 1996~2000년 에콰도르 동부 아마존강 상류의 아빌라 마을에서 루나족과 함께 먹고 자고 사냥하며 현장 연구를 했다. 그는 인류학의 전통적 주제인 인간과 인간적인 것에서 시선을 거두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냥을 따라가는 개, 사람들 대화의 분위기를 바꾸는 다람쥐뻐꾸기들, 숲 속에 사는 양털원숭이들, 재규어기도 하고 포악한 부족이기도 하고 백인이기도 한 ‘루나-푸마'(인간-재규어 혹은 재규어-인간) 같은 모호한 존재와 강력한 힘을 지닌 영들에 대해 듣고 관찰하고 기록했다.

루나족은 숲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데 익숙해 있었다. 퓨마의 눈으로, 개의 눈으로, 정령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줄 알아야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생존할 수 있다. 마치 낚시꾼들이 물고기의 머리로 생각해야 대어를 낚는 것처럼! 현대인이 동료 인간의 눈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타자화하며 행동하듯이, 숲에서는 이런 타자화 작용이 인간-동물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사냥에서 죽은 동물을 집으로 가지고 오면, 아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쓰다듬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한다. 사월의책 제공

이 책의 이론적 기여는 동물과 무생물 등 비인간 사이의 질적 차이를 고려 않고 네트워크 효과로 환원해 버리는 기존의 비인간 행위주체성(agency) 논의의 허점을 메우는 독창성에 있다. 콘은 이를 위해 찰스 샌더스 퍼스의 기호학을 불러왔다. ‘인간 언어’를 모델로 삼은 것이 소쉬르의 주류 기호학이라면, 퍼스의 기호학은 ‘기호를 사용하는 존재는 인간만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콘은 그동안 우리가 표상을 언어와 동일시하고, 인간적 활동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콘이 아마존에서 여러 차례 봤듯이 동물도 기호를 생산하고 해석하고 소통한다. 재규어에게 ‘엎드린 몸뚱이’는 공격해도 좋은 ‘고기’임을 표상한다. 루나족은 야자나무를 쓰러뜨려 원숭이를 숨어 있던 곳에서 뛰쳐나오게 하여 사냥한다. 야자나무의 추락음이 원숭이에겐 무언가 일어났으니 뛰쳐나가야 한다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그물망은 인간을 포함한 숲의 모든 존재들에 걸쳐 있다.



<숲은 생각한다>의 저자 에두아르도 콘. 사월의책 제공

사냥개들의 짖는 소리만으로도 상황을 이해하는 루나족의 일화도 재미있다. 수풀 너머에 사냥개 소리가 들린다. 맨 처음에는 ‘우악, 우악, 우악’ 하고 사냥감을 쫓을 때 흥분해 짖는 소리였다가 ‘야, 야, 야’ 하고 습격할 때 짖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런데 갑자기 반전! ‘아야~이, 아야~이’. 개들의 고통스러운 소리로 바뀐 것이다. 원주민은 콘에게 말한다. “개들은 틀림없이 퓨마를 사슴으로 잘못 보고 다가갔다가 당했을 거예요.”

숲은 생각한다. 인간과 동물은 표상하며 의미를 만든다. 서로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시끄럽다. 생명은 본래 기호적이다. 결국 이 책이 제기하는 것은 존재론적인 질문이다. 인간만이 세계를 해석하는 유일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 비인간의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들어보라는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46148.html#csidx68fc960c19a3a2ea45ed323fdcba4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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