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알라딘: 부흥 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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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문화론 - 일본적 창조의 계보   
후쿠시마 료타 (지은이),안지영,차은정 (옮긴이)리시올2020-02-24

정가
27,000원
판매가
24,300원 (10%, 2,700원 할인)
마일리지

488쪽

책소개

흔히 일본 정신의 핵심에는 세상을 덧없게 여기는 '무상관'이 있다고들 말한다. 사회 전체를 휩쓸 정도의 커다란 상실도 결국 무상한 것이고, 인간은 찰나와도 같은 사건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 있다는 세계관이다. 무상관에 바탕을 둔 일본론은 오랫동안 일본에서도 일본 바깥에서도 특별히 의문에 부쳐지는 일 없이 수용되어 왔다. 이 책은 그러한 세계관이 일본적인 것을 설명하는 유일한 원리로 여겨지는 경향을 반박하고자 한다. 일본 문화의 전통 속에는 사실 체념적 관조와는 정반대인 '부흥'의 원리가 생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흥 문화'를 규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유구한 일본 문화사의 전통을 면밀히 읽어 나간다. 7세기 <만엽집>을 필두로 하는 고중세 문학들이 영민한 젊은 비평가의 참신한 시선에 의해 '부흥 문화'를 싹틔운 묘판으로 되살려지고, 일본 근대 문학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등이 가졌던 부흥 문학가로서의 면모가 생생히 드러난다. 만화.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이끈 데즈카 오사무와 미야자키 하야오 또한 이 계보의 계승자이며, 이들 모두는 자기 시대의 상처를 직면하고 문화의 힘으로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시도한 부흥기의 천재들이었다.

이 책은 '일본'을 특권화하는 흔한 일본론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지난 부흥 문화의 맹점들을 분명히 짚고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의미를 길어 올리고자 힘을 쏟는다. 고도화된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난과 상실은 점점 더 일상화되어 간다. 한국 사회 역시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흔도 여전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1400년 일본 부흥 문화의 계보에서 우리는 어떤 부흥과 쇄신의 자원을 발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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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장 역사의 웅덩이

1장 부흥기의 ‘천재’: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와 그 외부
A 히토마로적인 것 / B 히토마로적인 것의 외부

2장 수도의 중력, 중력의 도시: 이야기의 존재 이유
A 수도의 중력 / B 중력의 도시

3장 멸망이 만들어 낸 문화: 중국의 경우
A 복고와 부흥 / B 유민 내셔널리즘

4장 가상 국가: 근세 사회의 초월성
A 가상 국가 / B 고스트 라이팅

5장 전후/진재 후: 일본 근대 문학의 내면과 미
A 전후=<나>의 문학 / B 진재 후=<우리>의 문학

6장 혼이 돌아갈 곳: 전후 서브컬처의 부흥 사상
A 자연의 말소(디즈니/데즈카 오사무) / B 자연의 회귀(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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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P. 20 따라서 셀 수 없는 상처=비밀을 짊어진 현재의 문명에서는 그 상처들에서 출발해 무엇을 건설할 것이냐는 질문이 더욱 중요해진다. 달리 말하면 어디에도 상처 없는 존재는 없고 인간에게도 사회에도 오류나 실패가 상례화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로부터 어떻게 다시 일어설지가 문명론적인 과제로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상처를 미학적으로 관상?賞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실천적 철학을 길러 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이 ‘다시 일어서기’ 철학의 단서가 일본 부흥 문화의 역사 속에 충분히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반복하면 일본의 부흥기란 단순한 치료 요법이나 치유의 시간대 혹은 원래의 기준선으로 돌아가고자 덮어놓고 달려드는 시간대가 아니라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대다.  접기
P. 167 아무리 기술적으로 진보한 사회라 해도 재액의 가능성을 피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술 혁신이 이루어질수록 만에 하나 닥치는 재액이 한층 더 비참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오로지 문명을 위협하는 재액의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명에 예측 불가능한 위기가 잠재해 있더라도 일본의 이야기 문학은 의기소침해지거나 단념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악한 것(재액)으로도 선한 것(문학)을 만들 수 있다. 『헤이케 이야기』부터 나카가미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이 단순한 희망을 몇 번이나 가리켜 왔으니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세계에서 가장 선한 것, 가장 아름다운 것(풍아!)을 알고 있기에 이야기는 불합리와 오욕 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이다.  접기
P. 227~228 이처럼 『수호전』은 시민 사회의 실용주의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호송 관리, 카니발 관객, 한가한 사람)을 기점으로 예기치 않은 악행을 발생시키고, 그로써 중국이라는 광대한 네이션을 일종의 ‘범죄적 공간’으로 결합시킨다. 역으로 이는 온건한 시민적 양식으로는 중국 국토 전체를 온통 뒤덮는 ‘상상된 공동체’의 에너지가 도저히 생길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건전한 사회는 재밌는 매개를 조금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을 결합시켜 풍부한 결실을 맺게 하는 매개는 오히려 범죄적 공간에 흘러넘친다. 이로부터 우리는 카니발 문학의 걸작 『수호전』의 근간에 놓인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접기
P. 371 가와바타의 불능적 관객이 말하자면 허초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임의의 <우리>를 그곳에 대입할 수 있는 데 비해, 미시마는 불능적 관객에게 다시금 신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관객은 결코 대단한 자가 아니다. 미조구치는 말을 더듬기 때문에 외계로의 ‘문’을 잘 열지 못하고 그저 “신선하지 못한 현실, 거지반 썩은 냄새를 풍기는 현실”만을 체험할 뿐이다. 당연히 금각사로 통하는 문도 닫혀 있다. 금각사는 미의 극장임에도 불구하고 미조구치라는 관객을 차갑게 뿌리친다. 그렇기 때문에 미조구치는 <우리>를 수용하는 미를 갈망하면서도 실제로는 추한 현실에 던져진 <나>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접기
P. 406 동료였던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추축국들과 달리 일본의 미에는 국가를 움직일 만한 ‘힘’이 깃들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현실태가 빈곤한 일본은 예술 작품이 될 수 없었기에 <전후> 예술가는 종종 가능태가 풍부한 일본을 예술 작품에 근접시키고자 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미는 그것을 위한 절호의 소재가 되었다. 즉 디즈니의 화려하고 풍성한 인공 세계가 <전후> 부흥기에 ‘미래의 일본’, 즉 또 하나의 일본을 본뜨기 위한 이미지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접기

추천글
이 책은 『만엽집』, 『헤이케 이야기』 등 고전부터 미시마 유키오, 무라카미 하루키, 데즈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본 근현대 문학과 대중 문화의 산물에서 나타난 문화적 혁신에 주목하면서, 2011년 3?11 대진재 이후 일본 사회 최대의 키워드로 부상한 ‘부흥’을 중심으로 일본 문화사를 야심 차게 재구성하고 있다. 이를 일본을 이상화한 또 하나의 ‘일본 문화론’으로 일축하는 것은 부당하리라. 이 책의 숨은 의도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정신사를 다시 쓰는 데 있기 때문이다. - 박규태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영국만 아는 사람이 어떻게 영국을 알겠는가?”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책의 지은이 후쿠시마 료타는 중국의 역사와 문학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본 바깥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 관점을 통해 일본이 지난 1,400여 년간 전쟁과 재난을 겪으며 이룬 문화적 성취의 역사적 맥락을 조망한다. 그의 관점은 수많은 기존 일본 문화론과 뚜렷이 구분되며 힘 있는 통찰로 가득하다. 중국에 대한 이해를 얼마간 가진 한국 시민이 이 책을 읽으면 전근대와 근대의 일본 문화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경계에 태어난 연구자 요나하 준의 『중국화하는 일본』과 함께 읽기를 권한다. - 김시덕 (문헌학자·작가) 
이 책은 국가를 황폐화하는 전란과 재액 이후에 그것을 ‘무상관’이나 ‘체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으키는’ 데 일본 문화의 독창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의욕적인 논고다. - 2014년 산토리 학예상(사상/역사 부문) 선평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SUNDAY 
 - 중앙SUNDAY 2020년 3월 14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후쿠시마 료타 (福嶋亮大)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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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교토시에서 태어났다. 교토대학교에서 중국 근대 문학을 전공했고 2012년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릿쿄대학교 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4년 메일 매거진 『파상언론』에 마이조 오타로론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8년부터 잡지 『유리이카』에 연재한 「신화 사회학」을 바탕으로 2010년 첫 단독 저서인 『신화가 생각한다: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론』을 펴냈다. 2013년 출간한 역저 『부흥 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는 2013년 기노쿠니야서점 인문서 30선에 선정되고 2014년 36회 산토리학예상(사상·역사 부문)을 수상하며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후 발표한 『성가신 유산: 일본 근대 문학과 연극적 상상력』(2016)으로 2017년 야마나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계속해서 『울트라맨과 전후 서브컬처의 풍경』(2018), 『변경의 사상: 일본과 홍콩에서 생각하다』(2018, 장위민張彧暋과 공저), 『백 년의 비평: 어떻게 근대를 상속할 것인가』(2019) 등을 펴내며 활발히 저술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2019년에는 문화 예술 활동에 공헌한 개인 및 단체에 수여하는 와세다대학교 쓰보우치 쇼요 대상 장려상을 수상했다. 고전부터 현대 서브컬처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시선, 과감한 문제 설정과 논리 전개, 힘과 리듬을 겸비한 문체로 독서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부흥 문화론>,<신화가 생각한다> … 총 5종 (모두보기)
안지영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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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틀어막혔던 입에서> <천사의 허무주의>를 썼고, <부흥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를 함께 옮겼다.
현재 청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작 : <틀어막혔던 입에서>,<천사의 허무주의>,<2016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큰글씨책)> … 총 6종 (모두보기)
차은정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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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규슈대학교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대학교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2016)이 있으며,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조너선 프리드먼, 공역),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오카모토 유이치로), 《숲은 생각한다》(에두아르도 콘), 《부분적인 연결들》(메릴린 스트래선), 《부흥문화론》(후쿠시마 료타, 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최근작 : <북한의 민속>,<21세기 사상의 최전선>,<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상처 입어 쓰러진 사회를 다시 일으키는 문화의 힘

『만엽집』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까지
1,400년 역사의 굴곡을 누비며
대담한 필치로 다시 써 나가는 21세기의 일본 문화론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1년 6월 카탈루냐 국제상 수상 연설에서 3/11 대진재라는 거대한 재해를 겪은 일본인들이 빠르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던 근거로 ‘무상’無常의 정신성을 말했다.

“이 ‘무상’이라는 사고 방식은 종교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일본인의 정신성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으며, 민족적인 심성으로서 …… 말하자면 체념의 세계관입니다. 이는 사람이 자연의 흐름에 역행해 봤자 모두 허사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그러한 체념 속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미의 존재 방식을 찾아내 왔습니다.” (445쪽)

나아가 그는 이 ‘무상’의 정신이 대재해로 상처 입은 일본의 ‘부흥’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연설은 국제적으로 많은 호평과 일본을 향한 응원을 이끌어 냈는데, 사실 ‘무상’이나 ‘체념’ 같은 개념으로 일본 문화를 설명하려 한 것이 하루키가 처음은 아니다. 실제로 일본 고전 문학에서도 무상을 말한 사례를 무수히 찾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일본인 스스로 만들어 낸 일본론뿐 아니라 일본 사회를 ‘낯선 것’으로 발견한 서구인 또한 일본 정신의 특질을 ‘무상’으로 말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후쿠시마 료타의 『부흥 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 역시 일본의 ‘부흥’을 말한다. 그러나 지은이가 방대한 문학적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부흥의 원리는 하루키가 말한 무상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그는 하루키의 연설이 “서양인의 구미에 맞는 일본의 이미지를 재강화한 것에 불과”하며, “신비화된 개념”을 “자신의 미학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명멸하는 무상의 세계를 넋 놓고 바라보는 것만이 미에 대한 일본적 감상 태도라고 여기는 풍조에는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하겠다. 히토마로와 구카이, 『헤이케 이야기』와 나카가미 겐지, 바킨과 아키나리,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 혹은 데즈카 오사무와 미야자키 하야오?이들이 수행한 ‘부흥’을 알고서도 과연 그처럼 두루뭉술한 ‘무상관’의 미학이 일본 문화의 주류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444쪽)

이처럼 반문한 지은이는 일본의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세와 근현대로 이어지는 도저한 문학사를 짚어 나가며 일본 문화의 창조성이 ‘무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활기 띤 부흥의 실천들로 실현되어 왔다고 힘주어 주장한다(아울러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그 자신의 말과 별개로 20세기 후반 일본 부흥 문화의 실행자로 평가한다). 일본 문화는 상흔을 그저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데서가 아니라 만성적인 상실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서 그 창조성을 발휘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좀처럼 의심받거나 반박되지 않아 온 주류 일본 문화론을 대담하게 거부하는 선언이다. 『부흥 문화론』에서 그는 위에 열거된 일본 문학사 속 ‘천재’(“미래의 현실이 될 만한 씨앗을 미리 한 아름 지닌 사람”)들의 작품을 전쟁이나 지진 같은 ‘재액’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 수행한 ‘부흥’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계보를 면밀히 독해하고 재평가함으로써 일본 부흥 문화의 동력을 규명하고자 한다.

주류에 과감히 반기를 든 젊은 비평가의 대표작
새로운 문명의 자화상을 그리다

일본 문화사 전체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선과 독창적인 문제 의식, 자신감 넘치는 필치로 이 야심 찬 책을 세상에 선보인 후쿠시마 료타는 누구인가. 놀랍게도 이 책을 발표한 2013년에 그의 나이는 32세에 지나지 않았다. 교토대학교 중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4년, 비평계의 스타 아즈마 히로키가 운영하는 인터넷 잡지 『파상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 소개된 이래 그는 동서양의 고전부터 장르 문학과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현대 사회의 특질을 통찰하는 평론을 왕성하게 써 냈고, 2010년에는 전통 있는 비평 잡지 『유리이카』에 연재한 「신화 사회학」를 대폭 개고해 묶은 첫 비평집 『신화가 생각한다: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론』을 출간하며 독서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인 2011년 3/11 대진재가 일본을 덮쳤을 때 그는 당장 발언에 나서기보다는 신작의 집필에 진력했고, 2년여 후 전작으로 각인된 ‘포스트모던 이론에 밝은 영민한 젊은 비평가’라는 인상을 일신하는 『부흥 문화론』을 발표하게 된다.
3/11 대진재 이후 ‘부흥’은 일본의 전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동일본 대진재 부흥 기본법’을 공포하고 ‘부흥청’을 설치하는 등 ‘부흥 내셔널리즘’의 형성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 출간된 『부흥 문화론』은 단순히 기성 일본 문화론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부흥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일본 문화의 긴 전통을 굽어보며 “힘내라 일본” 같은 캠페인 구호를 훨씬 넘어서는 진정 창조적인 부흥의 모습을 찾아내고자 한 것이다. 물론 그 부흥들의 모습은 몇 마디 말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일본사 속 부흥 문화들은 각각의 부흥기에 특유한 실천들로 구성되었으며, 또 그에 따른 맹점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부흥 사례를 그대로 현재에 되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부흥 문화의 관점에서 과거는 현재적 비평 의식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 지은이의 입장이다.

[아래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고전을 독해하는 참신한 시각
중국에 비추어 일본 문화의 맹점을 조명하고
쇄신의 길을 찾는 비교 문화적 시선

이런 입장으로부터 지은이는 우선 고대와 중세, 근세, 근현대를 망라하는 구도 속에서 부상 당한 사회를 다시 일으켰던 문화적 실천들을 섬세하게 읽어 내며 ‘일본 부흥 문화’의 주요 테마들을 추출한다. 예를 들어 일본 고전 문학을 주로 다루는 1~2장에서는 7세기 『만엽집』을 대표하는 가인歌人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의 시가를 읽으며 거듭된 왕권의 교대와 내란, 천도로 황폐해진 나라를 진혼한 문학의 주술성을 논하는 한편, 일본사에서 유례없이 치열했던 내전인 겐페이 전쟁(1180~1185)으로 멸문당한 ‘헤이케’ 가문의 성쇠를 그린 『헤이케 이야기』를 살피면서 역사서가 남긴 공백 지대를 감싸 안은 일본 이야기 문학의 산문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본에서는 문학이 정치 체제가 온전히 수용할 수 없었던 상실의 정념을 처리하는 메커니즘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지은이는 이러한 부흥 실천들이 내포했던 맹점 또한 선명히 드러낸다. 문학에서의 진혼은 살아남은 자의 시점에서 이루어지거나 승자에게 바치는 봉헌물의 성격을 가지므로, 결국 패배자=당사자가 스스로 발화할 기회를 빼앗는 효과를 갖기 마련이다. 또 이야기(픽션)에는 대중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지만 이데올로기에 휩쓸리기 쉽고 역사서와 달리 문명의 소산을 후세에 전하는 기능이 빈약하다.
그렇다면 현대에 요청되는 부흥을 수행하려면 부흥 문화의 전통은 어떻게 쇄신되어야 할까? 이 길을 제시하기 위해 그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채택하는데, 첫째는 이단적 전통의 발굴(히토마로보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나 강렬한 자기 변론의 산문 문학을 펼쳤던 구카이, 왕조 문학 전통 바깥에서 재액을 기록한 이야기 작가 나카가미 겐지 등)이고 둘째는 중국이라는 대조 사례를 통한 문명 비교의 시선이다. 특히 춘추전국 시대의 공자(『논어』, 『사기』)와 『수호전』 등을 경유해 일본이 갖추지 못한 “너른 품의 문학”을 요청하는 3장, 거듭된 멸망 체험이 길러 낸 중국 내셔널리즘이 세속화의 혼란을 겪던 근세 일본에 ‘이식’됨으로써 형성된 일본 내셔널리즘을 말하는 4장은 지은이가 중문학자로서 보유한 역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이때 일본 내셔널리즘은 국가 규모 차이에 따른 “축척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반면 그로 인해 『우게쓰 이야기』의 우에다 아키나리 같은 이야기의 ‘해커’가 등장할 무대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논의는 이제 근대를 향해 나아간다.

러일전쟁 ‘전후’로 개막된 근대 문학의 시대
나쓰메 소세키와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
‘나’의 폐역에서 ‘우리’의 문학으로 나아갈 길을 찾다

“일본 부흥 문화의 계보에서 러일전쟁 <전후>의 근대 문학은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제까지 검토한 것처럼 일본의 부흥 문화는 종종 전쟁이나 혼란 이후에 <우리>를 수용할 새로운 장소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러일 <전후> 문학은 그와 반대로 불쾌 혹은 광기의 밀실에 유폐된 <나>를 강하게 욕망했다.” (334쪽)

러일전쟁은 일본사에 드문 승리한 대외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일본에 영광이 아니라 불황을 가져왔고, 국가가 공적 영역을 잠식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었던 문학가들은 우울한 ‘나’의 폐역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지은이는 이러한 폐쇄감을 이른 시기에 형상화한 작가로서 오늘날에도 일본 국민 작가로 손꼽히는 나쓰메 소세키를 든다. 불황으로 중간 계급이 붕괴된 사회 현실을 가감없이 그린 『그 후』(1908)에서 주인공 다이스케는 형제나 마찬가지였던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와의 불륜에 몸을 던진 결과 파멸을 맞는다. 지은이는 일본 근대 문학이 호모소셜한 우정에 기반한 ‘남성 연대’ 이상의 연대성을 그려 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그 후』에서는 그런 빈약한 연대성마저 파괴되어 형제와 같았던 ‘우리’가 서로에게 낯선 ‘나’로 분해되는 것이다(이런 측면에서 그는 일본인의 본질을 집단주의에서 찾는 것이 얼마나 뻔한 오해인지 꼬집는다). 그리고 이 불황 속에서 태어난 낭만주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사회로부터 ‘나’를 격리한 끝에 작품을 넘어 작가 자신까지도 파멸시키는 폭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지은이는 이러한 근대 문학, 자연주의 문학의 고립성을 근세 문학으로부터의 후퇴로 보기도 한다(그러나 이 덕에 문학이 정치 프로파간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곤 했다는 역설도 있다).
그렇다면 문학이 ‘나’의 폐역을 벗어나 ‘우리’로 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국가적 통합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공적 ‘우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 구심점이 될 ‘미’美의 탐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재건된 도시를 극장 삼아 출현한 대중 문화의 ‘관객’이라는 새로운 ‘우리’ 이미지를 제시하며, 특히 대지진 후 도쿄 아사쿠사를 주무대로 작품 활동을 벌였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에도가와 란포가 이 ‘우리’의 구심점이 될 ‘미’의 형성에 진력했던 부흥 문학가임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등장한 ‘우리’가 오늘날 일본 문학에 성공적으로 계승되었을까?
지은이는 적어도 근대 문학에서는 이런 시도들이 결실을 맺지 못했음을 가와바타의 비판적 계승자인 미시마 유키오 작품 세계를 독해하며 보여 준다. 그에 따르면 미시마는 ‘나’와 ‘우리’를 자기 문학 안에 공존시키며 가와바타 등이 만들어 낸 ‘우리’에 내재된 맹점을 예리하게 간파한 작가다. 미시마는 관객이라는 존재 양식의 한계(2차 대전 패전 후의 비참한 ‘나’라는 실체)를 직시한 끝에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사라는 미의 극장을 향한 테러에 나서게 만든다. 그리고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풍요의 바다』 연작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에 의해 기각되었던 ‘우정’의 문학을 다시 불러내며 극장적 미의 시대에 종언을 고했고, 연작의 종결과 함께 희비극적 자살로 자기 생애도 마감함으로써 ‘우리’를 향한 근대 문학의 모험에도 종언을 고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를 단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2차 대전 후 부상한 새로운 미디어인 서브컬처가 ‘미’와 ‘우리’의 문제를 이어받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지도적 미디어, 서브컬처의 등장
데즈카 오사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로

“2차 대전 후 일본을 뒤덮은 서브컬처는 일본 부흥 문화의 최신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자체는 전쟁 전부터 일본 사회에 있었지만, 전후에 데즈카 오사무가 등장한 이래 더욱 중층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394쪽)
“미시마 문학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서브컬처가 <전후> 일본 사회에서 양적으로 확대되어 새로운 미와 관객을 길러 냈다. 아니, 이런 말로는 불충분하리라. 우리는 전후 사회에 만화가 퍼졌다고 하기 전에 이미 전후 사회 자체가 만화와 닮아 있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395쪽)

이 책이 다루는 마지막 부흥기는 2차 대전 전후다. 이 전쟁 이전까지 일본이라는 나라는 멸망의 위기를 직접적/전면적으로 체험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미증유의 전후로부터 일본을 일으켜 세운 부흥 문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지은이는 그것이 “숭고한 예술”을 해체하는 “유치한 엔터테인먼트”로서 싹튼 서브컬처였다고 말하며, 나아가 전후 일본 서브컬처는 전승국인 미국에서 수입한 ‘풍요’의 이미지를 번안한 “문화적 식민화의 산물”이라고 자못 냉소적으로 들리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즉 이 부흥 문화의 첫머리에 위치한 데즈카 오사무부터가 월트 디즈니가 일군 반자연적 기호의 제국을 초토화된 일본에 옮겨 심으려 시도한 작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뿌리의 부재와 가벼움이 혼란에 빠진 전후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기에는 오히려 적합했다. 특히 디즈니적 반자연주의의 도입은 패전으로 폐허가 된 일본이라는 현실=자연을 부정하고 미래 세계를 그리는 데 더없이 시의적절한 조치였다.
그리고 부흥 문화로서 전후 서브컬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등장과 함께 다시 한번 전기를 맞게 된다. 미야자키는 데즈카=디즈니가 기호의 세계에서 축출하거나 축소시켰던 ‘자연’을 반대로 현실을 초과할 정도로 흉포하게 만들어 자신의 작품 속에서 부흥시켰기 때문이다(「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속 ‘부해’腐海와 거대화한 벌레, 「모노노케 히메」의 짐승과 신 들, 「벼랑 위의 포뇨」에서 마을을 덮치는 해일 등). 한편 지은이는 미야자키가 부흥 문화의 계보에 가져온 새로운 기여를 충분히 평가하면서도, 그의 작품 세계 속에서 과잉되어 있는 ‘자연’의 가상성이 대동아공영권의 제국적 상상력과도 맞닿아 있음을 짚어 보인다. 새로운 시대의 부흥은 이로부터도 참조점을 얻어야 할 것이다.

회귀하는 상실의 기억과 일상화된 상실 체험
그리고 다가올 부흥의 예감으로

“틀에 박힌 무상관의 더께를 걷어 내면 그 속에서 ‘고쳐 하기’ 혹은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격려하는 부흥기의 천사가 환한 얼굴을 내비칠 것이다. 그리고 독 기운에 휩싸여서도 한낮의 미소를 잃지 않는 이 자그마한 천사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다시금 미래로 나아간다.” (461쪽)

이 책에 담긴 논의는 실로 방대하다. 주로 일본 문화사에서 제재를 찾지만 책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문화와 문명에 대한 보편적 통찰을 만나게 된다. 지은이도 언급하듯 부흥 문화가 일본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나아가 이 책이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 속 ‘상실의 일반화’라는 보편적 문제 의식 또한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지은이가 이 책에 새 시대의 부흥은 과거의 부흥을 단순히 반복revival하는 것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는 점 또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명이 지속되는 한 상실 체험 또한 끊일 수 없으므로 부흥의 과제는 바로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곧 3/11 대진재의 기억이 회귀한다. 이 기억 앞에서 ‘다시 일어서기’로서 부흥이 과연 수행되었는지 혹은 되고 있는지가 다시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더불어 한국 역시 사회 전체적으로, 또 내부의 균열과 갈등으로 인해 수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흔도 여전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부흥 문화의 계보가 존재할까?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부흥 혹은 쇄신을 진정한 문화적 과제로 삼은 적이 있었나?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이웃나라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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