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0

이종구 - 201109 : ‘공정’ 담론의 과잉과 사회정의

(2) 이종구 - 201109 내일신문 신문로칼럼 제목: ‘공정’ 담론의 과잉과 사회정의 ‘공정’을 얘기하는...

이종구
19h · 
201109 내일신문
신문로칼럼

제목: ‘공정’ 담론의 과잉과 사회정의

‘공정’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주로 청년들이 힘들어 하는 사건이 벌어질 때 ‘공정’이 거론된다. ‘공정’의 가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는 기본적인 규칙을 어겨가며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얌체를 규탄하는 의미를 가지고 등장했다. 2016년 가을에 촛불 시민 항쟁이 시작된 중요한 계기도 최순실의 딸이 ‘공정’하지 않게 대학 입시를 통과했다는 의혹이었다. 작년에 세상을 뒤흔든 ‘조국 대전’의 쟁점도 ‘공정’의 기준이었다. ‘공정’은 절차와 기준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의 개입으로 ‘공정’이 훼손되면 누구나 분노하게 마련이다.

현실 사회에서 ‘공정’은 약자를 보호하는 규범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한국 사회에서 강자들도 ‘공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표방하고 실행에 나서자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논리로 ‘공정’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들의 주장은 치열한 입사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동료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진짜 이유는 저임금으로 활용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 사원이 되면 기업의 인건비 지출이 약간이라도 증가할 테니 노조 가입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는 계산일 것이다. 이미 대학에서도 농어촌이나 소외 계층 출신 학생의 입장을 감안하여 입학 정원의 극히 일부를 할당한 사회적 배려자 전형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정식으로 입시 절차를 거쳐 입학한 학생의 일부가 사회적 배려자 전형으로 입학한 학우를 조롱하고 차별하는 추태를 저지른 사실도 보도되었다.

표면적으로 경쟁은 ‘공정’을 보장한다. 그러나 경쟁의 승자가 되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자원이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경쟁이 ‘공정’을 담보할 수는 없다. 더구나 경쟁을 통해 확인하는 내용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경력이 많고 평판이 좋아도 기간제 교사는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교사가 될 수 없으며 호봉 상승도 기대할 수 없다. 대학의 시간강사는 업적, 능력과 무관히게 주기적으로 재계약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무능하고 나태한 교수가 생트집을 잡아 유능한 시간강사를 배제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번 정규직으로 입직하면 사실상 정년을 보장하는 관행도 ‘공정’의 잣대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없애겠다는 좋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집단의 인사노무관리 관행도 같이 개혁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많은 사용자들이 노동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하는 일은 같은데 시간이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급료가 올라가는 호봉제가 아직도 타당한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근속기간이 오래된 종업원은 일을 잘하고 기여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니 생활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 호봉제의 근거였다. 사회복지라는 말도 듣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호봉제가 정당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사회복지 예산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술혁신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장기 근속자가 반드시 유능하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나이 지긋한 간부가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젊은 후배의 도움을 받는 광경은 직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공정’ 담론의 과잉은 사회정의의 실현을 가로막는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사노무관리 체제를 전반적으로 개편하는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호봉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일을 기준으로 급료를 책정하는 직무급을 도입하고, 노동자의 재교육 기회를 보장하며, 재취업도 적극적으로 알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복지가 충실해야 설득력이 있다. 노동개혁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지 않고 인기도 없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를 시도해야 돌파구가 열린다.
36정승국 and 3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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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수
양관수 대단히 유익한 공정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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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5h
이종구
이종구 일본의 노동자를 혹사해 갈아버리는 블랙기업도 만만치않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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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1h · Edited
양관수
양관수 이종구 최근에 많이 늘어서 대학과 매스콤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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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9h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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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김영곤 저는 교원인 교수와 비교원인 강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의 구도가 공 패스를 뒤로하는 럭비, 미식축구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같아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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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4h · Edited
이종구
이종구 선배님 말씀대로 대학이 퇴행하니 학문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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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1h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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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김홍열 " 공정담론의 과잉은 사회정의의 실현을 가로막는다". 정말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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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1h
최혁배
최혁배 미식축구에서는 전방패스가 주요 공격 수단입니다. 다만 공격팀의 공격 시작 만큼은 스크럼 중앙에 위치한 센터가 뒤에있는 쿼터백에게 백 토스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다음 동작은 자유입니다. 러닝백에게 토스하든 와이드 리시버에게 전후방으로 패스를 하든 자신이 들고 러쉬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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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0h
이종구
이종구 전방 패스가 안되는 럭비와 룰이 약간 다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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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8h
최혁배
최혁배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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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h
김 형근
김 형근 20 여년전 연봉제도입반대 호봉제 유지 를 위해 파업까지 해가며 투쟁했었는데
한시기의가치 가 공정 이라는 불변의 가치 를 뛰어넘을수는 없는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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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8h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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