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3

손민석 - 한국 화교의 역사

(8) 손민석 - 내가 이해하고 서술한 마르크스의 근대 자본제 사회론이 실제의 한국사에 있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을지를...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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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하고 서술한 마르크스의 근대 자본제 사회론이 실제의 한국사에 있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을지를 검토하는 와중에 주요하게 잡은 키워드가 '하급노동력'인데 도시빈민, 조직폭력배, (위안부를 포함한) 성매매 종사자, (화교 등의) 이민자 등의 일부 범주를 묶어서 글을 쓰고 있다. 그중 화교에 대해 꼭 한번 다뤄보고 싶었는데 다시 자료 검토를 하다보니 참 서글프다. 
화교 배제의 역사는 사실상 동아시아 전체에서의 근대적 민족국가의 건설과정 및 일본 자본주의의 확장 과정과 겹친다. 다른 화교의 역사도 그렇지만 한국 화교의 역사는 눈물없이 듣기 참 어렵다.

1920~40년대까지 번창하던 한국의 화교 집단은 일본제국의 반反화교 정책과 그 연장에서 이뤄지는 한국 정부, 특히 박정희 정부의 화교 배제 정책에 떠밀려 사실상 몰락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 정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화교들이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누리던 경제적 지위는 동아시아의 근대 민족주의 국가들의 배제 정책 속에서 상실되거나 혹은 정치적, 사회적 지위와의 괴리로 차별, 억압 등의 환경 속에서 반복적인 수탈을 당한다. 

국가정책도 중요하지만 그를 뒷받침하던 인민들의 적대적 태도도 중요하다. 조선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인 노동자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경쟁자들이었다. 조선인 노동자가 파업을 한다든지 할 때 대체인력으로 주로 투입되었던 이들이 중국인 노동자들이었으며 일본인 자본가들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성실함, 근면성 등을 강조하며 조선인 노동자들을 훈육하려 했다. 19세기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아일랜드 노동자, 중국인 노동자인 쿨리 등의 이민 노동력이 현지 영국인 혹은 미국인 노동력에 동일한 위협으로 작동하면서 민족문제를 낳았던 경험을 상기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조선인들은 중국인들을 노동시장에서도, 그리고 일반적인 시장에서도 상당한 위협이라 생각하며 적대시했다.

화교차별에는 근대 중국사의 전개도 있는데 청왕조 시절부터 중국 정부는 해외로 나간 인민들, 즉 화교들을 반역자로 인식하여 엄벌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고 그 이후에는 중국역사의 격변 속에서 화교는 '매판' 집단 혹은 부르주아적 친親국민당 집단으로 몰리면서 사실상 방치되게 된다
작금의 홍콩 시위대들이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을 들고 나왔듯이 동남아 화교집단들, 특히 인도네시아 화교 집단들은 자신들을 방치한 중국보다 보호해주려 노력한 미국을 선호하여 "중국의 인민이 되느니 차라리 미국의 개가 되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중국사의 전개 속에서 별다른 보호를 취하지 못하다가 등소평의 집권 이후 경제개발을 위한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화교 자본을 적극 유치하면서 화교집단에 대한 권익 보호 등이 많이 이뤄지지만 앞서 인도네시아 학살 사건에서도 중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실질적인 보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방기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방기 속에서 화교에 대한 차별은 아시아 지역 전체로 확장된다. 화교집단들은 나름대로 해외 현지의 조건에 맞춰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현지인들과의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여러 조건들이 무르익게 된다. 예컨대 식민지 정권들은 인종차별적 이중정책을 펼쳐 원주민과 화교 간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서구 제국주의가 화교를 중간매개자로 이용해 식민정책을 펼쳤다면 그 서구 제국주의와 전쟁을 하는 일본 제국주의는 반대로 원주민을 이용해 반중, 반서구 전쟁을 이끌고자 했다. 화교들이 갖고 있는 우월한 경제적 지위는 이러한 식민지 경험, 그리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 등과 겹치면서 일종의 계급적 - 민족적 적대로 발전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학살 혹은 배제가 동남아부터 동북아까지 대규모에 걸쳐 진행되었다.

일본도 빼놓을 수 없는데 서구제국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일본 제국이 동아시아로 진출하는 과정은 기존의 화교 집단이 갖고 있던 네트워크를 점차로 일본의 경제적 네트워크로 대체해 나가는 과정과 겹친다. 일본제국은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형성에서 화교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정책을 취했고 이것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중일전쟁, 2차세계대전, 냉전의 전개 등을 거치면서 전후에 독립한 민족주의 정권들의 정책과도 연속성을 지니게 된다.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민족주의 정권들은 화교집단을 적극적으로 차별하고 억압하면서 화교들이 경제권을 장악하는 것을 폭력적으로 막으려 했다. 한국의 화교는 그러한 탄압 속에서 사라지거나 주변화되었고 동남아에서는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화교 집단은 중국의 강대국화 속에서 다시금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사회를 예로 들자면 전인권의 지적처럼 개화기에 중국에 대한 경외가 점차 멸시로 바뀐 뒤에 상당 기간 한국인의 중국인에 대한 우월 의식이 유지되었다. 그러던 것이 중국의 강대국화 속에서 우월 의식은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화교 집단에 대한 공포는 조선족에 대한 혐오와 얽히면서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패권주의적 태도와 인민들의 내셔널리즘적 행태를 보고 있으면 이 두려움이 근거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근대 민족국가 건설 과정에서 내부에 존재했던 화교집단을 폭력적으로 거세했던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동아시아의 근대 경험이 앞으로 어떻게 변용될까. 민족공동체와 민족주의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폭력과 배제가 사라지는 걸 꿈꾸기는 너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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