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홍 선배 뵌 지 한 2년 됐나? 심정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지!! 아니 도반!! 진짜 운동권. 나는 NL/주사를 한 적이 없지만, 한 선배는 NL/주사이 핵심이었던 듯. 그래서 1997년까지 철도청을 다녔다.
나는 1983년 5월 13일 시위로 무기정학을 맞았기에, 대학 2학년 때부터 (학내활동을 접고) 야학을 하고, 노동/민중 교회를 나갔다. 그 때문에 이후 여름방학, 겨울방학은 1~2주간 공장에 반드시 갔다. 물론 위장취업. 다른 가투는 빠져도 11월13일 가투와 청계피복 합법화 가투 등은 필참이었다.
그래서 1985년 11월 13일 청량리-제기동 시위 주동이었다. 원래 이 날 감옥을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시위대가 최루탄, 지랄탄에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나도 상가로 잠시 피했다. 그런데 다시 대오가 형성되지 않으니, 제발로 걸어서 경찰서로 갈 수도 없고..... 이후 사당동 가투 까지 더 하고 2월에 구속되었다.
그 땐 운동에 낭만 아니 사치가 있어서, 감옥 가기 전에 대체로 면회 와서 책 넣어줄 여자(약혼자라고 해야 면회가 허용 되었다)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 아내가 그 역할을 했지만, 선배의 부탁으로 가짜 약혼자 노릇을 한 여학생도 제법 있었다.
나는 전태일을 불우한 이웃,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몸을 불사른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자칭 진보)들은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권 강화를 주장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노동권 강화가 진보요, 개혁이요, 전태일 정신인 줄 안다.
최저임금 급상향, 비정규직 제로화, 근로시간 단축, 산재 엄벌 등 노동규제가 과도하면, 노동권이 강화되는 사람도 있지만, 노동권 자체가 없어지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다.
1985년 11월13일 가투 주동했던 선수들 지금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나처럼 바다에 쟁기질 했다는 느낌일까?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예수처럼 전태일도, 장사하는 인간들에 의해 시멘트 감옥에 갇혔다.
"예수님, 누가 예수님을 감옥에 가두었습니까? 그들이 누구입니까?"라는 문둥의 질문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오직 저희들만을 위하여, 저희들만의 신전에 나를 가두었다. 내가 너 같은 가난한 백성들에게로 가지 못하도록 그들은 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 그러나 나의 이름으로 그들은 나를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들은 나의 제자임을 자랑한다. (…)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고, 박해받는 의로운 사람들의 고통스런 외침에 귀를 막는다. 그리고 그들은 세속의 안락과 부귀와 영예와 권세에 너무나 가까이 있는 탓에 그들의 귀에는 나의 말도, 너희들 가난한 백성의 외침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이 나를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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