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과 정의연 스캔들 ③:위안부 운동 내 논쟁: 배·보상 문제와 ‘성노예’ 용어
김승주
323호 | 2020-05-21 | 주제: 공식정치, 주류정치, 한반도 주변정세, 제국주의
윤미향·정의연 논란 ―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이후: 위안부 문제 접근법이 핵심 쟁점이다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윤미향·정의연 부정 의혹, 어떻게 볼 것인가
① 부정의 본질적 성격은 무엇인가
②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정대협의 노선
③ 위안부 운동 내 논쟁: 배·보상 문제와 ‘성노예’ 용어수요집회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었다ⓒ이미진
배·보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배상
국가 또는 단체가 피해자에게 범죄, 불법 행위였음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발생한 권리 침해나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보상
배상과 달리, 범죄나 불법임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갚아 주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가끔 어떤 일본 사람들이 물어 봐요. ‘돈을 얼마나 받고 싶냐’고. 그럴 때는 그 사람 얼굴에 침 뱉고 싶어요. 돈을 암만 많이 받은들, 일본 전체를 다 나에게 준들, 그 문제가 해결됩니까? 내 상처가 낫습니까? 진실을 올바로 밝히고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것은 우리 인권을 살려 달라, 우리 명예라도 세워 달라는 것이지 어떤 다른 것을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겁니다.”
이 말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고도 그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국가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을 자칫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돈은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을 사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위안부 경험의 후유증 때문에 신장의 기능이 극히 약해져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강덕경 할머니(1929~1997)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벌면 뭐해. 다 치료비로 들어가는걸. 어린 나이에 워낙 심하게 당해 놓으니까 힘들게 돈 벌면 병원에 다 갖다 바치고 그랬지 뭐. 그러니 지금껏 돈 한 푼 없이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이런 금전적 어려움 때문에, 1995년 일본 정부가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을 내놓자 그 기금의 위로금 수령 여부를 놓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진통과 분열을 겪었다.
2004년 심미자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33인은 ‘세계평화무궁화회’(이하 무궁화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당시 정대협 대표였던 윤정옥 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을 받는다면 자원해 나간 공창이 되는 것’이라고 공개석상에서 떠들어 댔던 일, 그것이 인권회복을 위한 발언이었나요? ...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위로금을 당신들이 뭔데 공창 운운하며 우리를 두 번 울리는 것입니까.”
〈조선일보〉 등 우파 언론이나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는 이 글을 인용해 정대협을 공격한다. 그러나 이는 당시 분열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곪고 다친 심정을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하는 위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정대협이 비판적으로 돌아봐야 할 문제는 분명히 있다. 예컨대 정대협은 결국 김영삼 정부를 압박해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게끔 만들었는데, 그때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을 받은 피해자들을 배제하게 했다. 이것은 무궁화회 위안부 피해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어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을 내놓은 일본 정부의 의도와 별개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보상금을 수령하는 것 자체를 도덕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다. 도덕주의는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실천하기 어려운 ‘올바름’이나 ‘의지’를 지나치게 내세움으로써 실제로는 위선의 효과를 내고,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반목·분열하게 만들기 쉽다.
그래서 1995년 보상금 수령 문제에서 지나치게 강경하던 정대협의 태도는 2015년 합의의 결과물인 10억 엔(108억 원) 중 절반 가까이를 이미 위안부 피해자나 유족이 수령했다는 것에 대해 사실상 침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재 화해·치유재단은 해산됐다. 하지만 10억 엔 중 44억 원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지급돼, 합의는 폐기도 유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일본 국가의 책임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인 상태로 말이다.
이런 모호한 현실이 지난 30년간 정대협·정의연에 남아 꿋꿋하게 활동해 온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큰 답답함과 낙담을 안겨 줬을지 이해해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일에 학생들이 나와서 집회하지만 [아무런] 공부가 안 된다”며 수요집회를 그만 열자고 한 것은 윤미향 씨를 비롯한 운동의 대표들이 이런 좌절스런 현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노기를 띠어 표현한 것일 수 있다.정대협은 유엔에서 결의문 통과시키기를 중시했다ⓒ출처 Basil D Soufi
‘성노예’ 용어가 채택된 배경
정의연의 정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다. 오랫동안 통용되던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 대신 성노예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대협이 이 용어를 국내에서 전면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출범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용수 할머니는 5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성노예’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위안부라는 명칭은 바꾸면 안 된다. 성노예라고 하는데, 너무 더럽고 속상하다. 윤미향한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야 미국이 무서워한다’고 (하더라).”
이런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미 위안부 피해자들의 거부감을 고려해 정대협과 위안부 운동, 한국 정부는 성노예라는 용어 대신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위안부’는 일본군이 1930년대 후반부터 문서에 직접 쓰기 시작한 명칭이다. 일본군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래서 ‘위안부’도 피해자들에게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는 용어다. 그러나 ‘성노예’ 용어는 이 괴로움을 더하면 더했지 덜어 주지 못한다.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데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윤미향 씨는 자신의 책에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이 저지른 범죄의 역사적 실상을 드러내기 위해 일본군이 썼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인용부호를 붙여서 쓴다.”
한자권이 많은 아시아 지역 일제강점 피해국 여성 시민단체들의 연합인 아시아여성연대회의도 2004년 이런 용어법을 공식 결정한 바 있다.
반면, 성노예는 인신매매 등 다양한 형태를 포괄한다. 전시 성범죄의 경우를 일컬을 때도 성노예는 “군대에 의해 자행되는 성범죄뿐 아니라 전쟁기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민간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종 성범죄도 포함하는 단어이다.”(위키피디아)
이 때문에 성노예라는 용어 또는 전시 여성 인권 침해 문제로의 ‘확장’은 사실상 위안부 문제의 핵심적인 역사적 맥락(일본 국가의 전쟁 범죄)을 다른 문제들과 섞어 버린다. 즉, 당시 일본 국가가 주도하고 체계적으로 벌인 성범죄인지 군인 개인들이나 특정 군부대가 일탈적으로 벌인 성범죄인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실체를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이지도 않은 단어가 피해 당사자에게 더한 모욕과 괴로움만 준다면 그 명칭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정대협이 1993~1999년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최초의 위안부 문제 관련 결의문을 통과시키려 개입하는 과정과 맞물렸다. 당시 유엔 위원들이 결의문의 초점을 배상(즉, 국가 범죄)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로 이동시킨 것이다.
또한 정대협은 유엔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 여성단체들과의 협력 도모를 중시했다. 2005년 정대협 공동대표이자 정대협이 유엔에 개입할 때 참여했던 정진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문제를 전시 하 여성 [인권] 침해 문제로 위치 짓게 된 것은 여성단체들과의 연대가 보다 범위가 넓고 지속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여성단체들과의 연대 문제가 결정적이었던 듯하다. “1992년 제1차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일본 측에서 참석한 한 변호사는 한국 측에서 민족적인 문제를 거론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압도 다수가 식민지나 점령지 여성들이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 문제를 일반적인 성범죄나 남성 일반의 문제로 넓히면 누구를 대상으로 싸우고 책임을 물을 것인지가 불분명해진다.
정대협이 유엔에서 인권 결의문을 통과시키기 위해 애쓰던 1990년대 미국은 유엔 평화유지군 및 나토군과 함께 “보편적 인권”, “인도적 개입’을 운운하며 소말리아와 보스니아, 발칸반도에서 전쟁을 벌였다. 특히, 구 유고 슬라비아(보스니아와 발칸반도) 지역의 “성노예” 문제를 명분 삼아 잔혹한 군사 개입과 전쟁을 자행했다.
1990년대에 유엔 결의문이 여러 번 나오고 2007년에는 미국 하원 의회에서도 결의문이 통과됐지만,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던 한국 외교부 장관 출신 반기문은 “합의 환영” 입장을 밝혔다.
성노예 용어 사용 논란에는 이처럼 정대협이 해 온 ‘국제 실천’의 한계가 놓여 있다.
윤미향·정의연 논란 ―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이후: 위안부 문제 접근법이 핵심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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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부정의 본질적 성격은 무엇인가
②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정대협의 노선
③ 위안부 운동 내 논쟁: 배·보상 문제와 ‘성노예’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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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과 정의연 스캔들 ①부정의 본질적 성격은 무엇인가
윤미향 민주당 비례 국회의원이자 전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이사의 부정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기자의 일주일 전 기사, “윤미향·정의연 논란의 진정한 쟁점은 무엇인가” 글에서는 부정 의혹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기사 발행 직후 의혹이 다각도로 빠르게 터져나왔다. 그래서 기자는 윤미향 씨와 정대협·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위안부 운동과 진보진영 흠집내기에만 관심이 있는 우파의 위선적 비판과 달리 좌파적 비판은 운동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의를 계속 고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윤미향 씨와 정의연·정대협의 해명, 그리고 그들을 변호하는 단체들의 설득력 없는 해명과 오만한 대응이 진보 염원 대중 다수에게도 냉소와 외면을 낳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정 운용의 부실함과 그릇됨
정의연은 8억 원 상당의 정부 지원금(국고보조금)을 회계·공시에서 누락했다. 정의연과 통합한 것으로 알려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여전히 남아 별도로 정부 지원금을 받았고, 이 돈도 마찬가지로 누락됐다. 회계 부실 문제는 심각해, 정대협 회계에서는 매년 수천만 원이 뭉텅이로 사라졌다.
윤미향 씨는 법인 계좌를 놔두고 개인 계좌로 해외 사업비나 피해자 장례 비용 등을 수시로 모금했다. 이것은 공익법인으로서 국세청에 공시해야 할 의무를 피한 것이다. 윤미향 씨는 이렇게 모인 돈을 모두 모금 명목에 맞게 사용하지 않고 자신과 가까운 단체들에 ‘재기부’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2012년 경기도 안성에 설립된 쉼터 ‘평화와 치유의 집’은 장소 선정과 부지·건물 매입, 운영 과정에서 애초 현대중공업에게 기부를 받아 만들 때 밝힌 취지와 전혀 다르게 운영된 것이 드러났다.
핵심적인 사안 3가지만 봐도, 정대협·정의연과 그 대표자인 윤미향 씨가 단체 활동과 재정을 얼마나 독단적으로 운영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공표한 목표대로 일을 추진하고, 회비나 기부받은 돈을 약속대로 집행하고, 재정을 포함한 사업계획의 변동이 생길 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비영리단체 운영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고(故)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을 개인 계좌로 받은 것, 그 과정에서 단체와 윤미향 씨의 해명이 처음에 달랐던 것, 남은 조의금을 자신들과 가까운 단체들에게 임의로 기부한 것, 김복동 할머니가 재일교포 학생들을 지원하라며 평생 모은 돈을 내놓아 만든 김복동 장학금을 자신들(특히 윤미향 씨 부부)과 가까운 활동가들의 자녀 장학금으로 지급한 의혹도 운동과 단체를 농단한 사례로 보인다.
회계 부실 해명도 부실하다. 정의연과 정의연 초기 리더들은 활동가 부족으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며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단체 재정이 수십억 원에 이르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서 국세청에 공시할 의무가 생긴 단체가 할 만한 변명은 아니다.(기업 정보 사이트 ‘크레딧잡’에 따르면, 정의연 직원들의 연봉은 정의연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보다 많다.)
방탄소년단 팬클럽이 기부한 방한 점퍼를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받지 못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정의연이 신속하게 명확한 증거들을 공개한 것을 보면, 다른 회계 의혹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의 집약판이 안성 쉼터 문제인 듯하다. 정의연의 해명을 그대로 믿어도 문제가 많다. 해명에 따르면, 김복동 할머니를 통해서 정대협이 현대중공업 정몽준에게 서울 마포구에 쉼터를 만들도록 기부금을 요청한 것이 2011년이었다. 그런데 정대협은 이것이 빨리 진행되지 않자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에게 또다시 쉼터 마련 지원을 요청했다.
명성교회 측이 2012년 1월 1일에 쉼터 지원을 공개 약속하고 집행했으니, 현대중공업이 다시 공동모금회를 통해 쉼터 구입 지원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이미 마포구에 쉼터가 마련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포구에 할머니들 쉼터를 마련하기에는 돈이 부족해서 경기도 안성을 선택했다니?
2012년까지도 빈 공터였던 경기도 안성 부지에는 바로 이 시점에 주거용 주택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대협은 시세보다 최소 두 배로 값을 쳐서 건물을 구입했다.
이 과정에는 올해 안성시 국회의원 당선자 민주당 이규민과 윤미향 씨의 남편 김삼석, 그리고 부지의 주인이자 쉼터용 주택 시공사 사장인 김모 씨가 연루됐다. 철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리베이트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게다가 윤미향 씨는 이 건물의 관리를 유급으로 친아버지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신들을 포함한 여러 단체들과 개인들에게 쉼터를 대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위안부 피해자들이나 보통의 운동 지지자들은 재정의 운영에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배제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폭로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에 관한 안타까운 기사도 최근에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시에 난방(온수매트)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해결을 미뤘고,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민주당 대구시당 사무처장이 대신 온수매트를 설치해 줬다는 소식이 “훈훈한 소식”으로 보도된 바 있다.
돈의 용처도 문제지만 출처도 문제
지난 20년간 윤미향 씨는 정대협의 대표 또는 주도적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점차 정부 부처나 유엔 등 국제 기구의 대화 파트너로서 정치적 위상이 올랐다. 그랬으니 박근혜 정부도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를 앞두고 (합의 내용을 잘 설명했느냐와 별개로) 미리 양해를 구하는 연락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의 비례대표 당선권(7번)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것도 한 사례다.
정대협·정의연은 불가피하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뜻을 “대행”(대리)한 면이 있다. 위안부라는 멍에를 숨기며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조력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나 〈허스토리〉를 보면 그 구실이 잘 나온다.(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이 모두 윤미향 씨를 공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기업인, 유엔 위원들을 주로 상대하며 후원을 받거나 로비하는 것이 단체의 주요 업무가 될수록 그 단체와 운동은 전문가적 성격이 강해지고 그 속에서 엘리트주의와 대리주의가 싹트기 쉽다. 보통의 회원들이나 후원자들은 지지금과 응원을 보내는 수동적 처지가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자신들이 이 운동 안에서 그런 처지가 됐다고 느낀 듯하다.
돈의 용처에 대한 의심스러운 정황과 불투명한 해명에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지만, 돈의 출처 문제도 우리는 성찰해 봐야 한다. 즉, 천대나 차별 받는 사람들의 운동이 정부와 기업에 재정을 의존하는 것의 문제점을 돌아봐야 한다.
정의연은 2019년 전체 수입 중 47퍼센트인 약 7억 4000만 원을 정부 지원금으로, 주로 여성가족부의 공모 사업으로 충당했다. 2018년에는 약 7억 6000만 원으로 38퍼센트였다(공시에서 누락된 부분과 정대협이 이중으로 지원받은 금액 포함).
재벌(현대중공업)과 초대형 교회(명성교회)로부터 10억 원, 15억 원씩 받아 그들의 이미지 세탁에 위안부 운동이 이용되게 한 것도 문제적이다. 이후 김삼환 목사는 800억 원대 비자금 조성을 한 혐의와 목회 세습을 하려 한 일로 지탄을 받게 된다.
이것이 낳는 문제는 운동이 점점 국가와 기업 기부자들의 의중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지속돼야 한다는 압력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위안부 운동은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과거의 제국주의뿐 아니라 현재의 제국주의에도 저항해야 하는 운동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오는 압력은 운동의 전망을 왜곡시키고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에 의존하는 문제도 그렇다. NGO들은 정부와 밀접해졌고, 특히 민주당과 오랫동안 협력 관계를 맺어 왔다.
정대협의 주요 인물들도 민주당을 통해 정계로 진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아래서 민주당 소속으로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미경,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여성부 장관을 지낸 지은희가 대표적이다. 정대협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이 단체의 대표들은 현재 정의연 이사들이기도 하다)를 거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 하에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한 뒤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노무현 정부도 위안부 문제 해결보다 한·일 외교 관계를 우선했다. 2004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은 “내 임기 동안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안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 정부가 명백하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외면할 때, 정대협·여성단체연합 등 NGO 출신 정치인들은 그것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도 윤미향 씨는 이번 21대 총선에서 이 실패한 길로,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소통도 없이 급히 들어섰던 것이다.
5월 7일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씨를 향해 “자기 사욕 차리려고 위안부 문제 해결 안 한 다음에, 어디 엄한 데 가서는 ‘지금 해결하려고 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하고 일갈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수세적 태도는 생산적이지 못하다
정부 지원금과 기업의 기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2000년 김대중 정부는 ‘비영리단체지원법’을 제정해 NGO에 대한 재정 지원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도 청와대와 총리실과 각 부처에 각종 위원회를 둬 NGO 관계자들을 적극 흡수했다.
정부에 대한 NGO의 독립성 문제는 논쟁 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NGO 운동의 주창자들은 이것을 “거버넌스 전략”이라고 부르며 정당화했다. 정부가 만드는 기관이나 사업에 참여하면서도 정부의 나쁜 정책을 제3자적이고 객관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부’기구(NGO)의 정부 의존 문제는 해소되지 못했고, NGO 활동가들은 점차 그런 환경에 적응해 갔다. 우파 정부들도 어느 정도는 이 구조를 활용했다.
2015년 국세청 공시 자료를 보면, 시민단체(비영리법인, 비영리단체)의 평균적인 정부 지원금 의존도는 28퍼센트에 이른다.
한편, 경기도 안성 쉼터는 현대중공업 재벌 정몽준에게, 마포 쉼터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에게 정대협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요청해서 마련한 것이다. 전자에게선 10억 원을, 후자에게선 14억 7500만 원을 받았다.
현대중공업의 쉼터 지원은 현대 계열사들 전반의 이미지 메이킹과 함께 정몽준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걸려 있었을 것이다. 정몽준은 2012년 봄에 총선에서 당선했고, 2012년 대선에도 나가려고 했었다. 박근혜에 밀려 진작에 출마를 포기했지만 말이다.
현대 일가는 2011년에 삼성 이건희 일가가 만든 것과 같은 거대 기부 재단을 만들었다. 그것이 아산나눔재단인데, 초기 출연액 5000억 원 중 2000억 원을 정몽준이 사비로 댔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친기업 언론들은 정몽준의 이런 활동들을 “기업의 진화하는 사회 공헌”으로 치장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2006년 이후 노동단체들이 선정하는 최악의 산업재해 살인 기업에 두 번이나 선정된 나쁜 기업이다.
재벌 닮은 행태로 유명한 메가처치의 하나인 명성교회는 김삼환 목사가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교회의 담임목사 직을 넘겨주는 세습 시도로 지탄받은 바 있다. 그런데 기독교방송 CBS는 명성교회의 정대협 지원을 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의 자세”로 추켜세웠다.
기업도 정부도 아닌 ‘시민의 영역’(정치적 독립)을 표방하는 NGO(‘비’정부기구)가 기업과 정부로부터 거액을 받는 것은 NGO 활동에 모순을 낳는다.
지난 수십년간 NGO 운동은 대체로 이 모순을 기꺼이 자신의 길로 받아들여 왔다. 정부·기업과 진행하는 거버넌스(협치)에 참여하는 것,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사업비를 따내는 것이 이제는 단체의 역량과 위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NGO 운동이 우경화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윤미향과 정의연 스캔들 ②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정대협의 노선
정대협은 1990년 11월,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가 이끌던 정신대문제연구회와 여성단체연합의 결합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고 김학순 할머니(1924~1997)를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와 증언할 수 있게 도왔다. 이후 국내에서는 수요집회 등 운동과 함께 언론, 출판, 연구 활동을 주로 했다.
때로는 국외 활동이 더 중시됐다. 유엔 인권(소)위원회나 미국 의회가 위안부 문제 관련 결의문을 채택하도록 개입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일본이 인정하지 않으려 한 이유
1992년 1월 8일 정대협은 첫 수요집회에서 6개 요구가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첫째 요구는 이렇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서 강제연행한 사실을 인정하라. 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라.”
이것이 지난 30년간 위안부 피해자들이 죽는 마지막 날까지 간절하게 바란 소원이었다. 강제로 또는 속아서 끌려간 것이지 결코 원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는 것과, 일부 군인·군대의 일탈이 아니라 일본 국가의 조직적인 전쟁 범죄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사과와 배상이라는 법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결코 국가의 강제성을 제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윤미향 씨는 자신의 저서 《25년간의 수요일》에서 “왜 일본은 인정하려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그 답을 일본의 식민주의 사상에서 찾고 있다. “극단적 민족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식민주의 혹은 제국주의라고도” 하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그대로 계승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남성성’의 문제로 설명하는 듯한 대목도 있다. “[일부 일본 우익 인사들의 말을 빌려] 남자들의 성욕 충족을 위해 강간과 성매매를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페미니즘 성향이 더 급진적인 이나영 현 정의연 이사장은 2020년 5월 1일 이사장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와 ‘여성혐오’를 연결지었다. “물론 위안부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체제의 산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여성 혐오적 문화가 있[다.]” 이어서 당시 뜨거운 이슈였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 안의 가부장적 문화, 여성 혐오적 문화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운동에서 반식민주의 관점과 페미니즘 관점의 이러한 조합은 미묘한 긴장을 낳기도 했지만, ‘인권’이라는 좀 더 넓고 좀 더 모호한 개념 안으로 포섭될 수 있었다.
정대협은 한국 정부(의 대표자)를 설득해서 견인하기, 유엔이나 미국 의회가 인권 결의문을 채택하게 해 그것을 매개로 일본 정부에 압력 넣기, 연구·교육 활동 중시하기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1992년부터 유엔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해, 1990년대 말에는 유엔인권(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보고서들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2000년에는 아시아여성연대회의 차원의 민간법정을 열어 피해자들의 증언과 법적 판단을 총망라한 기념 사업을 추진하는 등 역사 규명 활동을 진척시켰다.
2007년에는 7년간의 노력 끝에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게 했다.(그러나 이 결의안은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면서도 “미일동맹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에 초석이며 지역안정과 번영의 근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윤미향 씨는 《25년간의 수요일》에서, “의회의 결의안이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이후 미국이나 유럽이 “법을 제정하거나 정책 결정을 할 때 반영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신경질은 부렸지만) 위안부 문제의 핵심인 국가의 책임 인정 문제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1993년 “군의 가담”과 “강제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가 발표됐지만, 국가의 주도성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한을 풀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일 정부는 1995년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이라는 위로금(보상금)으로 위안부 문제를 종결시키려 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일본 정부의 입장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했다. 우익 인사들은 모욕적인 망언을 해댔고, 역사 교과서 왜곡도 시도됐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그 연장선 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아베 정권은 또다시 10억 엔이라는 위로금을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지급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하려 했다.
당시 유엔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은 한일 양국 관계의 개선을 기대한다며 합의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직전에 노무현 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고(2004~2006), 친미적 입장으로 미국 정부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 낸 박근혜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며 한일 합의를 추켜세웠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위안부 문제가 단지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여성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제국주의는 단지 “식민주의 가치관” “극단적 민족주의’(윤미향 씨의 표현) 같은 이데올로기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정치경제와 군사 차원에서 벌어지는 세계적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경쟁과 그에 따른 갈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가 제2차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 벌어진 전쟁 범죄였고, 일본 국가가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이 패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과 문재인 정부
미국은 급속히 부상하는 경쟁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동맹을 공고히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은 전쟁을 벌이거나 군대를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국주의화에 속도를 내려 해 왔다.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미국의 입장은, “과거를 돌아보기도 해야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말)하다며 늘 한일 관계의 개선을 우선하는 것이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외교부 장관 윤병세도 협상 과정에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역대 한국 정부는 한·미·일 동맹 강화에 협조하면서도, 동시에 일제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해 왔다.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역사적 상흔과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가 여전히 권력을 누려 왔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인들은 일본 우익의 망언에 분노했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 서린 호소에 깊이 공감했다. 이명박, 박근혜 같은 우파 정부조차 이런 압력으로 대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대 한국 정부들의 최종 선택은 언제나 위안부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 미국·일본 정부에 협력하는 것이었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우파 정부보다 좀 더 시간을 끌면서 줄타기를 하다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서만 차이가 있었다.
이것(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지속)이 박근혜 정부가 남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적폐’를 문재인 정부가 청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약속했다. 2018년 1월 문재인은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지난 정부의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상당수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이미 지급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 외에 문재인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급성장한 주변 강대국인 중국의 눈치도 보지만 여전히) 한미동맹을 확고히 지지하고, 제국주의 질서의 부차적 일부가 돼 한국 지배계급 나름의 이해관계(‘국익’ 또는 ‘국민의 이익’이라는 이름을 가진)를 추구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재연장한 것도 이런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또한 위안부 문제에서 매우 위선적인 행보를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하고 한·일 양국이 협조하는 국제 질서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정대협의 온건한 운동 방식,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에 기대를 거는 방식은 진정한 문제 해결과 커다란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본가 계급의 정당인 민주당과의 협력을 추구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대해서도 진정한 항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윤미향·정의연 논란 ―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이후위안부 문제 접근법이 핵심 쟁점이다
5월 7일에 이어 5월 25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윤미향 씨를 강하게 비판하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당사자이자 또 오랜 기간 일본 국가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용수 할머니는 쏟아져 나온 윤미향·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관련 부정 의혹들에 대해 분노하면서 앞으로 “꼭 지켜져야 할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 공개”다. 위안부 운동의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투쟁한 지 30년이 되도록 “양국[한·일]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위해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일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들 간 공동행동 등”을 계획하고 추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모두 매우 고령이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와서 나를 용서해 달라고 빌랍니다.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기자회견 다음날인 5월 26일, 또 한 분의 위안부 피해자가 눈을 감으면서 현재 생존자는 17명이다.
정대협이 걸어온 길
이용수 할머니가 제시한 다른 하나는 “[정의연과 그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그동안 일궈 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지 끝내자는 것은 아니”라며 우파와 선을 그었다.
우파들은 이용수 할머니의 일부 표현을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뽑아내 위안부 운동 자체의 대의에 흠집을 내려 한다.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들은 ‘위안부 운동이 피해자를 팔아 돈벌이만 했다’는 식으로 보도를 쏟아냈다.
30년간 위안부 문제를 알려 온 정대협은 주로 국내에서는 피해자를 찾아서 증언하도록 돕는 등 주류 언론을 통해 사안을 알렸고, 대외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나서도록 압력을 넣는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일본에게 압력을 가하려면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서방세계의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국제인권기구에 개입하는 일을 크게 중시했다.
이런 일들에서 정대협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꽤 성과를 거뒀다. 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렸고, 영화도 나오고, 유엔인권위원회와 미국 하원의회, 유럽연합 의회에서 인권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어제 이용수 할머니 자신도 한 구실을 했던 지난 30년간의 성과를 무로 돌릴 수 없다고 했을 때 그 성과는 아마도 이런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수 할머니는 동시에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고도 했다. 실제로 앞서 말한 정대협의 성과들이 국제 여론을 달구기도 했고 일본 정부를 화나게 만들기도 했지만 금세 동력이 사라져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정대협의 개입으로 유엔에서는 계속 위안부 관련 인권결의문이 나왔지만, 1995년 일본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 성금으로 이 문제를 끝내려 했다. 2007년 미 하원과 유럽의회에서 인권결의문이 통과됐고, 한국인 반기문이 유엔사무총장이 됐지만, 2015년 기만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미 대통령 오바마와 반기문은 모두 이 합의를 환영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제국이 조직적·체계적으로 여성들을 강제 동원해서 벌인 전쟁 범죄다. 오늘날 일본 국가는 강력한 경제력에 걸맞게 군사력을 강화해 그 때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는 단지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군사대국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그런 일본을 동맹 삼아, 그리고 한국을 그 하위 파트너 삼아 세계 패권의 경쟁자인 중국(한때는 소련이었다)을 견제하려 한다. 미국이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정부가 갈등해 안보 동맹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다. 한국 정부도 이런 질서에 편승해 이익을 거두려 한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추상적인 인권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자본주의 강대국 간 군사적 갈등과 그에 따른 세계적 질서) 문제인 것이다. 미국(특히 미국 민주당)과 유엔에 기대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정대협의 노선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다.
정대협은 국내에서는 민주당과 그 정부에 의존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정대협과 여성단체연합의 주요 인물들이 정관계로 진출했다. 5선 의원이었던 이미경 씨나 김대중 정부 초대 여성부장관이자 노무현 정부 총리였던 한명숙 씨, 노무현 정부 여성부 장관 지은희 씨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두 정부는 피해자들의 기대와 달리 한일 외교 관계를 우선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고 정대협 출신 정치인들도 그것을 견제하지 못했다. 결국 우파 정부가 들어서 2015년 기만적인 한일위안부합의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위안부합의를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집권 후에 말을 바꿨고, 일본이 지급한 위로금 10억 엔(114억 7000만 원)을 관리하는 화해치유재단을 2018년 말에나 느즈막히 해산했다. 돈은 여전히 한국 정부에 있고, 더욱이 그 돈의 절반 가까이는 이미 피해자나 유족에게 지출됐다. 일본 측은 2015년 합의를 여전히 내세우면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바로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또 윤미향 씨가 집권당으로 들어간 것이다. 윤미향 씨는 8년 전 이용수 할머니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할 때, “국회의원을 안 해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며 반대한 바도 있었다. 그런데 말도 없이 집권당의 위성정당 후보가 됐으니, 이런 일들이 이용수 할머니에게 준 좌절감과 당혹감, 상실감을 한 번 역지사지해 봐야 한다.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해서는 안 된다
윤미향 씨와 정의기억연대의 부정 의혹들에 대해 이용수 할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었다며, 검찰이 수사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미향 씨는 ‘잠적’ 상태로 침묵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미향 씨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여전히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당 대표 이해찬)며 방어하고 있다. 불법 의혹 수사를 “신상털기”로 모는 것은 조국 논란 때 많이 봤던 진영논리다.
정의연은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고 정의연 사무실과 서울 마포 ‘평화의 집’을 압수수색한 데 대해 “위안부 운동과 피해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며 인권 침해”라고 규탄했다. 일각에서는 이용수 할머니의 윤미향·정의연 비판이 일본 극우파에게 빌미를 주고 있어, 운동에 악영향만 끼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진영논리는 위안부 운동의 지속·강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환멸을 자아낸다.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공안검사 출신 통합당 곽상도가 참여했다는 식의 가짜뉴스까지 동원하는 것이 특히 그렇다.
이번 논란은 우파나 검찰의 공격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위안부 운동 내 주요 인물들이 운동의 방향과 방식을 놓고 벌인 갈등이 출발이었다. 또한 후원금이 대부분인 회계를 부실하게 운영하고 해명도 제대로 안 하는 것 자체가 이 운동의 지지자들과 할머니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진영논리에 기초한 수세적 태도가 아니라 운동이 얻어야 할 교훈을 반제국주의적·좌파적 관점에서 도출해야, 그래야만 윤미향, 정의연 부정 의혹이 낳을 환멸로부터 운동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의 의미를 윤미향 씨와 정의연의 위법 여부나 자질 문제로 축소하는 것도 본질에서 벗어난다.
조계종 산하 ‘나눔의 집’도 부정 의혹
‘나눔의 집’은 경기도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시설로 위안부 피해자 쉼터다. 그런데 이 곳에서도 조계종이 막대한 후원금과 보조금을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쓰지 않았다는 내부 고발이 터졌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지출에는 야박하게 굴면서, 피해자들이 모두 사망한 뒤 고급 요양원을 지어 돈벌이할 계획을 벌써부터 세우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한편, 일부 주요 시민단체들은 나눔의 집 부정 의혹은 질타하면서 윤미향 씨와 정의연은 방어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중잣대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분하자고 한 이유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군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정의연은 기자회견 직후 이런 입장을 밝혔다. “정신대는 ‘근로정신대’의 줄임말로 일본의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한 피해자임. [반면] ‘위안부’는 일제에 의해 성노예를 강요당한 피해자임.
“정대협이 1990년대 초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용어의 혼용이 존재했음. [그러나] 정대협은 일관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활동해 왔고, 단체 명칭에 포함된 ‘정신대’ 명칭은 역사적 산물에 불과함.”
그러나 이런 답변은 다소 형식적이다. 그보다는 정신대(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가 다뤄져 온 궤적을 살펴 보면 이용수 할머니의 의중을 좀더 이해할 수 있다.
정신대(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 모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끔찍한 범죄다. 일본 정부는 두 범죄 모두 국가의 직접적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전범 기업인 신일철주금,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018년 최종 승소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2019년을 뜨겁게 달군 한일 갈등의 발화점이 됐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이 같은 근거로 201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은 일본 측이 재판의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지연되고 있다.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와 달리 위안부 문제는 화해·치유재단 해산 이후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돼 버렸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2015년 박근혜-아베 정부의 기만적인 한일위안부합의로 인한 피해를 배상해 달라며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2018년 패소했다. 과거사 적폐 청산을 약속하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말이다.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항일 투사인 양 행세할 때 느꼈을 커다란 씁쓸함과 소외감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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