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에 대한 철학적 소논고(小論考)>
1. “진영논리”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 경우는 자기편이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태도를 지목한다. 진영의 경계선이 진실의 근거가 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얼핏 옳게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2. “진영논리”는 언제나 비판의 표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영논리라는 말을 비판의 대상으로만 쓰거나 그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사, 철학사에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3. 그런 관점의 진영논리 비판은 우리에게 도리어 절실한 진영논리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령 계급의식은 가장 중요한 진영논리 가운데 하나다. 1항과 같은 진영논리 비판은 계급의식 해체에 동원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4. 진실이 진영의 경계선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이 속한 진영 자체가 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그 진영이 진실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5. 이때 필요한 것은 도구적 이성에 기초한 논리가 아니라 역사적 이성에 충실한 논리다.
6. 도구적 이성은 역사발전의 복잡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피상적 비교에 매몰된다. 그래서 철도와 도로를 깐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가 조선을 위한 근대적 기여를 했다고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7. 단순하게 압축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둘은 동일한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 두 진영은 모순과 대립관계다. 지배하는 쪽의 논리는 지배받는 쪽의 논리와 결코 같지 않다. 진영논리라는 말로 비판되어야 할 쪽은 그야말로 지배진영이다.
8. 지배받는 쪽의 진영은 지배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진영논리”가 반드시 요구된다. “낡은 지배체제를 무너뜨리는 세력의 진영 자체가 역사발전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든 철학사의 진상이다. 철학은 치열한 진영투쟁의 산물이다.
9. 보기를 들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토로는 생각의 주권(主權)을 독점하고 장악하고 있던 중세 앙시앙 레짐의 지배체제에 대한 초기 부르주아 진영의 철학적 선전포고다. 데카르트는 17세기 자본주의 진영의 선두주자 네델란드에서 자신의 철학적 기초를 완성한다.
10. 상대를 관리와 지배의 대상으로 보고 억압하는 진영은 자신을 주체로 인식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와 반드시 적대한다.
11. 자신의 주체성을 지켜내고 확보하는 쪽(진영)이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논리를 갖지 못하면 지배진영의 논리에 지배받거나 흡수되어버린다.
12. 이때 진실은 진영에 따라 결정된다.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그 자체가 역사적 이성에 기초한 진실을 판명하는 기준이다.
13.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논리와 자신의 지배에 저항하는 자들을 진압하는 자의 논리는 오로지 진영의 차원에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14. 근대 사상의 핵심인 마르크스의 논리도 바로 이 진영논리의 산물이다. 1848년 프랑스의 격동은 유럽 전역을 노동계급의 혁명으로 몰고 갔다. 부르주와 혁명에 이은 프로레타리아 혁명의 고양이었다. 현실에서는 비록 실패했으나 그 실패가 도리어 미래 계급인 노동자들의 진영논리를 위한 싸움의 맹렬한 출발점이 되었다. “코뮤니스트 메니피스토(공산당 선언)”는 지배체제를 교체하려는 진영철학의 선언이다.
15. 우리가 지금 절실한 것은 촛불시민혁명을 끊임없이 붕괴시키고 낡은 기득권 체제를 다시 옹립하려는 세력과 진영에 맞서서 시민혁명 진영의 논리를 확고히 다지는 일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낡은 지배진영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격파하면서 시민혁명 진영의 역사적 진실을 다부지게 만드는 작업이다.
16. 시민혁명을 갈구하는 진영 자체가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17. 우리 현대사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는 모두 역사의 진보적 진행을 가로막고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복원한 자들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공과의 균형있는 평가는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 그건 기만일 뿐이다.
18. 진영논리를 비판하면서 진영을 오가고 그걸로 자신의 지적 균형과 공정성을 내세우는 자들은 역사이성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며 도구적 논리에 빠져 있다.
19. 이런 자들은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려는 진영에 속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진실에 끼어든 기만이자 혼돈을 야기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20. 우리는 지금 촛불시민 진영을 지켜내는 논리와 철학을 단호하게 지켜내야 한다. 혁명의 중심을 흐리는 자들은 드러난 적보다 더 위험하다. 전선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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