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독립선언’ 현장서 3·1절 알리기
도쿄 YMCA서 주 4회 수업
처음엔 어색해하던 日주부들
韓 독립역사 진지하게 경청
‘2·8 자료실’엔 책 1000여권
독립운동 알리미 역할 톡톡
日시민 모금·설립 고려박물관
신주쿠 복판서 ‘3·1 특별展’
중고생들 매주 200여명 찾아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일본에서는 일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근대기 한·일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배우면서 불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일제 징용 배상판결과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의 관계로 휩싸이고 있지만 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나라인 만큼 과거의 갈등을 딛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대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치인들과 달리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자는 태도다.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일본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입장,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한 과제 등에 대해 ‘평범한 일본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도쿄에서 시작한 2·8독립선언은 한국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을 넘어 인도의 독립운동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간다(神田)에 위치한 재일본한국YMCA(도쿄YMCA) 회관 3층. 3·1운동의 역사를 설명하는 한국어 강사인 최명숙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10여 명의 일본 주부가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 있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지난 21일 한국어(상급반) 수업에서 최 씨는 일본 주부들에게 독립운동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수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일본 주부들이 3·1운동에 관해 듣기는 처음이다. 초반에는 생소한 역사 수업에 어색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바로 진지한 얼굴로 변한 주부들은 연신 어색한 한국말로 “정말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10년 전 한국 드라마를 본 후 도쿄YMCA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마쓰모토 지즈(松木千津) 씨는 “학교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배운 적이 없어 정말 몰랐다”며 “일본이 한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망언을 계속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강의를 맡은 최 씨는 “이곳에 온 분들은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려고 온 것인데 독립운동 역사까지 진지하게 들어줘 놀랐다”며 “앞으로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에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100년 전 2·8독립선언을 이끌며 한국의 3·1운동을 만들었던 도쿄 YMCA는 최근 들어 일본 내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는 곳으로 통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에 온 한국 유학생들이 정착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는 곳이었지만 요즘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알리며 동시에 문화와 역사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올해는 수·목·금·토요일에 재일동포들이 일본 사람들을 상대로 한국어 강의를 열고 있으며, 다른 강사들도 최 씨처럼 이 시간을 활용해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고 있다. 1906년 만들어진 도쿄YMCA는 올해로 창립 113년째를 맞는다. 초창기에는 조선인 유학생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했고 해방 직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재일동포 2·3세들이 한국어를 배우거나 일본으로 유학을 간 한국 학생들이 일본어를 배우는 장소였다.
최근 재개관한 도쿄YMCA 2층의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 또한 일본인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배우는 중요한 공간이다. 자료실에는 한국과 일본 내 독립운동 서적 1000여 권이 비치돼 있고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영상자료실 또한 갖추고 있다. 도쿄YMCA 측은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자료실을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배우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 젊은이들이 주로 다니는 신주쿠(新宿)구의 다이니칸코쿠히로바(第二韓國廣場) 빌딩에 위치한 고려박물관도 지난 6일부터 ‘3·1운동 100년을 생각하며’란 주제로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문화일보 취재진이 찾은 박물관 내에는 10여 명의 일본 학생이 ‘시라나캇타(知らなかった·몰랐어요)’를 연발하며 자료를 관람하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는 한국 문화 체험공간을 포함해 50여 평 규모에 불과하지만 한국 독립기념관에서 기증받은 당시 간행물과 한국과 일본의 교과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고려박물관은 정부·기업의 지원 없이 일본 시민들의 회비로 지난 2001년 12월 만들어진 한국 역사 박물관이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기 위해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모아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 모두가 자원봉사자로 급여 없이 일하고 있다.
박물관 측은 3·1운동과 1919년 4월 15일 일본 헌병들이 29명의 화성 제암리 주민을 살해한 ‘제암리 학살사건’의 자료를 모으기 위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특별전은 오는 6월 23일까지 열리며, 6월 8일에는 가토 게이키(加藤圭木) 히토쓰바시(一橋)대 교수가 ‘일본의 조선침략·식민지 지배와 3·1운동’이란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일주일에 200여 명 정도의 중·고등학생이 특별전을 찾으며, 70명의 자원봉사자는 이들에게 일본 교과서에 담기지 않은 3·1운동을 포함해 과거 식민시대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일본 학생들이 배우는 식민시대 내용은 교과서 한 페이지 분량”이라며 “특별전을 통해 일본 사람들이 과거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 = 글·사진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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