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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⑤] 인민대중제일주의 - ‘인민’을 정치와 외교에 활용 < 북한바로알기 < 기획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⑤] 인민대중제일주의 - ‘인민’을 정치와 외교에 활용 < 북한바로알기 < 기획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⑤] 인민대중제일주의 - ‘인민’을 정치와 외교에 활용

기자명 정창현 소장
입력 2020.10.22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첫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김정은이 자신의 인민을 무척 사랑한다”라고 발언했다. 대단히 논란이 된 정치적인 발언이었다. 그는 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이렇게 평가했을까?

스스로 밝힌 것처럼 트럼프는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무척 거칠게 밀어붙였다. 당장 핵을 포기하라는 요구였다. 이때 김 위원장은 “인민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로 대응했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만든 핵인데, 아무런 대가없이 내놓는다면 인민이 납득할 수 있겠냐는 반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을 포기하려면 인민을 설득할 수 있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이를 두고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재미있고 매우 똑똑하며 뛰어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김정은시대 새로운 정치구호로 등장
지난 10월 10일 새벽에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 연설에서도 김 위원장은 시작부터 끝까지 50여회에 걸쳐 ‘인민’을 언급하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강력한 국제적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수차례의 자연재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인민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하늘같고 바다같은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 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다”라는 자책 발언을 이어갔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촉구하는 북한의 선전포스터. 간부들의 형식주의, 관료주의를 없애고, 대중의 살림살이를 잘 살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5년 전 열린 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때도 김 위원장은 연설문에서 ‘인민’을 무려 90번 넘게 언급했다.

이렇듯 김정은시대 북한에서 ‘인민’은 정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됐다. 북한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명명했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원칙에서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옹호보장하기 위해 당원이든 관료든 이를 위해 멸사복무(滅私服務)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시대의 ‘인민의 심부름꾼’, 김정일시대의 ‘인민을 위해 복무함’ 이란 구호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시대어로 ‘인민대중제일주의’가 나온 셈이다.

이 용어는 김정은체제 출범 2년차인 2013년 1월 제4차 당세포 비서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김 위원장을 비롯한 고위간부들의 연설, 북한의 언론매체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김정은체제의 우선 덕목으로 강조되고 있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우선 부족한 주택 보급과 물자 공급망 확장에 나섰다. 이에 따라 평양의 경우 창전거리, 미래과학거리, 려명거리 등에 고층아파트단지가 들었다. 지방도시와 군의 재정상황에 따라 차이가 확연하지만 신의주, 함흥, 청진 등 주요 대도시를 비롯해 일부 군(郡)지역에도 아파트와 살림집들이 건설되고 있다. 특히 2016년 함경북도, 2020년 황해북도와 강원도 지역에 수해가 발생하자 다른 지역의 건설사업을 중단하고 모든 건설역량을 수해복구에 투입한 것은 인민대중제일주의의 구호 아래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권차원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또한 상업유통망을 확충해 국영상점에 없는 상품들을 주민들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평양에는 대형슈퍼마켓을 비롯해 전문상점, 체인점 등이 새롭게 들어섰고, 종합시장도 2배 이상 확충돼 지방 시, 군(郡)에 대략 2개 정도씩의 구역시장(총 450개 이상)이 개설됐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촉구하는 북한의 선전포스터. 간부들의 형식주의, 관료주의를 없애고, 대중의 살림살이를 잘 살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주민들의 의식주 생활 개선에 관심
둘째로 고아, 노년층 등 취약계층의 생활개선에 예산을 투입했다. 평양에 양로원, 고아원(육아원과 애육원)이 새로 건설되고, 이를 모델로 지방에도 양료원과 고아원이 속속 신설됐다. 2014년에는 전국의 육아원, 애육원, 초등 및 중등학원(장애인학교), 양로원들에 물고기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수산사업소를 새로 건설하고, 이를 “인민사랑의 결정체”라고 선전했다.

셋째로 주민 편의시설과 놀이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평양의 종합봉사시설인 창광원(목욕, 미용 등)을 본 따 각 군과 협동농장 등에 ‘은덕원’이란 이름의 편의시설을 건설하는 한편, 지방에도 물놀이장, 로라스케이트장, 휴양시설, 공원 등을 신설하거나 개건했다. 이러한 놀이시설은 문명국가 건설을 표방하며 이뤄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의 재정수입을 늘리는 효과도 있었다.

이외에도 북한은 과수농장과 온실농장 확장, 물고기 양식과 육류 사육 시설 확충 등 식생활의 질적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10년 전쯤 북한을 방문해 지방에 사는 친척을 만난 한 재미교포는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희망사항’ 3가지를 들었다고 한다. 겨울철 난방과 온수 문제, 채소와 육류 공급 부족, 지방 학생들의 평양 소재 대학 입학 어려움 등이었다. 김정은시대에 북한이 수재학교를 축소하고 일반학교의 시설 현대화에 나서고, 주민들의 의식주와 편의시설 개선에 힘을 쏟는 데는 이러한 주민들의 불만을 다소나마 해소해야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2018년 원산구두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근로자들과 과거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외형적인 것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당, 정, 군의 일꾼(간부)들에 대한 사업태도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검열이다. 간부들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행위 근절에 나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5년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연설을 끝내면서 이례적으로 “전체 당원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해 나갑시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후 지속적으로 간부들에 대한 검열(사정)을 실시해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언론매체들도 “인민들이 느끼는 애로에 대하여 못 본 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꾼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며, 간부들이 인민들의 목소리에 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과 함께 손님들의 의견을 세심히 청취한 결과 품질 향상과 판매량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강원도 원산구두공장 등 모범사례 등을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행정’과 ‘갑질 근절’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인민대중제일주의’ 구호를 통해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가 주민들의 삶 개선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인민을 보살피는 국가, ‘어머니 당’이라는 이미지를 쌓고, 정권과 체제를 안정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 그칠지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0년 10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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