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뉴스1이 북한 전문가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의 글을 연재한다. [정창현의 북한읽기]는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코로나19사태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지도 10개월이 흘렀다. 북한은 올해 장기화한 대북 경제제재에 더해 코로나19 비상 방역, 잇따른 수해 등으로 경제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삼지연 시·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과 평양종합병원 등을 완공하려는 시도도 미뤄졌다.
일부에서는 제재, 팬더믹, 수해의 삼중고가 겹친 북한의 무역, 산업, 재정이 일시에 붕괴하는 대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실물경제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사용되는 쌀값, 환율, 유가 등은 비교적 안정돼 있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시장'이 그나마 북한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주민생활 속에 뿌리 내린 '시장'
북한의 '시장' 이야기가 나오면 17년 전인 2003년 2월 24일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학술회의 취재 차 방북했던 필자는 그날 버스를 타고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를 횡단하는 경험을 했다. 주요 거리마다 판매대를 펼쳐놓고 장사하는 주민들, 농촌 마을 입구에서 중국제 담배와 빵을 파는 할머니, 직장에 있어야 할 근로자들이 거리마다 넘쳐나는 모습 등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북한 주민들이 '시장'을 일컫는 크고 작은 '장마당'을 처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농촌의 어느 가정집에는 '모든 공업제품 팝니다'라는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불법 판매를 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버스에 동승한 안내원에게 그 모습을 가리키며 "저건 불법인데 왜 단속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니 "모두 다 어려운 조건에서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어떻게 단속하겠냐"고 대답했다. 차마 카메라를 꺼내 찍을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책 속의 북한'과 '현실의 북한'은 달랐다.
평양에서 돌아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북한은 '농민시장(장마당)'을 '종합시장'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농민시장에서 농산물 외에 합법적으로 모든 공산품까지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조치였다. 그리고 5개월 후인 2003년 8월 동평양지역에 현대적으로 건설된 '통일거리시장'이 문을 열었다. 이후 평양 시민들은 빠르게 새로운 '시장'에 적응해갔다.
2003년 10월 초 평양 고려호텔에서 중구역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성 봉사원을 만나 나눈 대화 속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시장에는 자주 갑니까?
▶중구역에는 시장이 없어 주로 인접한 평천구역 해운동에 있는 시장에 갑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갑니다. 쌀, 부식물 등은 국가의 배급체계를 통해 사서 먹기 때문에 국영상점에 딸리는(부족한) 야채, 잡곡류, 신발 등을 주로 시장에서 구입합니다.
-통일거리에 현대적인 시장건물이 들어섰다는데 가 보았나요?
▶통일거리 시장은 한 달 전쯤 문을 열었습니다. 시설이 잘 돼 있고, 근처에서 온 주민들로 붐볐습니다. 판매원들은 주로 가정주부나 나이 드신 분이 많습니다.
-시장의 물품가격도 국가가 정합니까?
▶물건가격은 품목별로 국가가 정한 기본가격이 있고, 품질에 따라 '합의가격'이 정해집니다. 물건값을 깎기 위해 흥정도 합니다. 시장경제를 한지가 얼마 안 돼 아직도 익숙하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민들이 '시장경제'란 말을 씁니까?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시장경제 아닙니까. 아직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데 익숙하지는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2002년 나온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 이후 시장이 많이 달라졌습니까?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생활비가 농민시장의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이제는 생활비가 많이 오르고 시장에서 다양한 물품을 살 수 있게 돼 편리합니다.
17년 동안 개설된 450여 개 '구역시장'은 모두 국영
지금은 모르겠지만 통일거리시장이 문을 열 당시까지만 해도 평양시민들의 인식은 '시장'과 '시장경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2004년 2월26일 통일거리시장 앞에 직접 갔을 때 시장 입구는 물건을 사고 온 시민들로 붐볐다. 그 사이 통일거리시장은 하루에 10만~15만 명의 시민이 찾는 대표적인 시장으로 성장해 있었다. 시장 안에는 1400여개의 매대(점포)가 영업하고 있다고 했다. 사용료(일종의 임대료)와 소득에 따른 국가납부금(일종의 소득세)을 내면 개인, 국영기업소나 협동단체가 시장에 입주할 수 있었다.
1년 후 농민시장이 없던 평양 중구역에도 '중구시장'이 새로 건설돼 문을 열었고, 이 같은 형태의 시장 건물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2010년에는 200여 개, 현재는 450여 개로 늘어났다. 통일거리시장이 '상설시장'이자 '종합시장'(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구역시장이라고 지칭)으로 처음 문을 연지 17년 흐른 현재 북한은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고, 또 장사를 해야 가계를 꾸려나갈 수 사회로 변모했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급증한데는 북한 당국의 정책도 한몫 했다. 2005년 북한의 최고 경제이론가 중의 한 명인 서재영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경제사상해설서'에서 "이미 국가적으로 투자하여 평양의 통일거리에 시장을 훌륭하게 꾸려놓았는데 이를 본보기로 시장을 잘 꾸리면 주민들이 생활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시장은 시, 군, 구역의 주민수와 지대적(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곳에 한 개 또는 몇 개씩 꾸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서 교수의 주장은 개인이 아닌 당국의 공식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북한은 전국적으로 450개 정도의 시장 건설을 추진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략적으로 북한의 시·군·구역이 220여 개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 당국은 지역별로 2개 정도씩 시장을 건설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변모된 배경에는 자연발생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종합시장이 전국적으로 구역시장 형태로 확산된 데는 실리를 취하려는 당국의 정책적 개입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구역시장의 확산을 단순히 시장 경제적 요소의 확대로만 볼 수 없고, 당국의 정책과 통제도 있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북한은 농민시장이 운영될 때 시장을 시나 군의 행정관리소에서 단순 관리하던 차원에서 새로 조성된 구역시장을 국영기업소인 '시장관리소'가 관리하는 수익기업으로 전환했다.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농민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기관이 투자해 시장건물을 짓고 구역시장을 국영기업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재영 교수는 "시장에서 상품을 파는 사람들로부터는 수입과 시장시설물 이용 등에 따르는 일정한 사용료를 받아 지방예산수입을 보장하고 시장관리소도 운영하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북한의 시장은 여전히 국영인 시장관리소가 운영하며, 운영과 상품 가격결정 등에서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농민시장의 합법화과정에서 시장을 계획경제의 공백을 메꾸는 방향에서 보충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보였고, 지역시장이 "국가계획권 밖에 있는 사회주의상업의 중요한 보조자"라는 인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시장 합법화과정에서 많은 논쟁과 혼선 거쳐
그나마 시장이 합법화되기까지 북한 내부에서는 수많은 논쟁과 혼선이 있었다. 2007년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가 간부층을 대상으로 발간한 <일군들을 위한 경제지식>에는 이러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자료에는 세 가지 '혼선과 편향'이 소개돼 있다.
첫째는 '시장'과 '시장경제'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개념상의 혼선이었다. 이것은 시장을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경제와 같은 말로 여기거나 시장을 시장경제에서 경제란 단어를 뺀 줄임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었다. 북한의 일부층에서 시장의 합법화를 중국식 개혁 개방의 신호로 이해하거나 시장과 시장경제를 동일한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는 계획경제와 시장의 결합을 계획경제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결합이 이뤄지는 혼합경제가 아니라 계획경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상품유통 공간인 시장을 활용하는데 초점이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둘째, 시장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편향이었다.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는 "일부 일군(간부)들은 인민들이 시장을 이용하는 것을 비사회주의를 조성하고 자본주의를 조장하는 우환거리로 생각하면서 단속통제하고 법적으로 문제시하는 데로만 나가는 편향을 범하였다"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시장 이용 자체를 비사회주의로 몰아가는 경향이 북한 내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경제연구소는 "만일 시장을 조금이라도 장려하면 자본주의를 조장시켜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면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다면 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조건에서 인민생활을 보장할 수 없고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제대로 해나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셋째, 시장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과대평가하는 편향"이었다. 시장 없이는 경제건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인민생활을 높일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경제연구소는 "적지 않은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국가적 이익이 아니라 개별적 단위와 근로자들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생산경영활동에서 계획경제의 테두리를 벗어나 시장가격을 비롯한 시장요소들의 이용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식과 정책상의 혼선들은 2009년 화폐개혁의 실패, 김정은 체제의 출범과 함께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구역시장의 역할과 이용범위, 성격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방식의 시장 통제 정책 모색
시장을 둘러싼 여러 내부논란과 혼선을 정리하면서 북한 당국이 내놓은 대안은 최대한 시장을 활용하면서 국영기업을 정상화 하고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었다.
북한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농업협동화와 산업의 국유화가 완성되고, 국가적 차원의 공급제가 전면 실시된 1950년대 후반~60년대에 농민시장의 소매상품유통액은 전체 유통액 중에서 1%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농민시장은 국영상업망을 보조하는 대단히 제한적인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었고, 북한주민의 개인 및 가구 소득에서 시장 활동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 64%, 최대 7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은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2000년대 중반 일부 시장을 폐쇄하는 조치하는 등 강력한 시장통제를 내놓았지만 실패하자, 김정은 체제 출범이후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시장의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쇼핑하기 편리한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전문종합상점을 확대해 매출 증대에 나선 것이다.
2012년 1월에 북한의 첫 대형마트인 '광복지구상업중심'이 평양의 광복백화점을 리모델링해 문을 열었고, 해당화관이나 대성백화점 등 새로 건설되거나 개건한 곳에는 생필품과 가정잡화를 파는 슈퍼마켓이 들어섰다. 2014년에는 체인점형태로 남쪽의 편의점과 유사한 '황금벌상점'이 문을 연 뒤, 매출 신장에 힘입어 평양시내에 20여 개의 점포를 열었다. 이들 업체들은 상품의 신뢰도, 싼 가격을 무기로 시장으로 향했던 구매자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모두 국영기업이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중국기업의 투자로 세워졌지만 2017년 운영권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2008년 평양에서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시장에서 구입해 사용한 중국산 화장품에 수은이 들어 있어 이를 사용한 평양의 봉사원과 해설강사들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이를 계기로 평양에서는 시장상품에 대한 기피현상이 생겨났고, 새로운 형태의 현대적 상점들이 생겨나자 이를 찾는 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아직까지 지방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 같은 형태의 상점들이 확산되고 있지 않지만 북한 당국의 정책방향은 분명한 것 같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확대해 자연스럽게 시장의 영역을 축소하려는 것이다.
최근 북한과 북한경제 분석에서 화두는 시장의 역할과 영향이다. 시장의 합법화와 확대가 북한에서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 확산과 일상생활의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향후 시장이 북한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장 경제의 활성화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성급한 분석도 나온다. 강력한 경제제재와 코로나19사태로 시장 활성화에 제동이 걸리고, 시장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북한 시장경제의 활성화가 아직까지는 김정은 체제에 결정적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북한에서 시장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진 건 맞지만, 아직까지 정권이 시장을 이용하는 단계이지 시장이 정권을 뒤흔들 지는 못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평가는 다르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시장에 인식은 시장의 자연발생성과 증가 추세 등에 주목했다. 반면 북한 당국 차원의 시장 확대정책과 활용 측면, 시장을 대체하는 슈퍼마켓 등 새로운 국영유통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측면이 존재한다.
북한이 여전히 시장과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펴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유통체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2000년대부터 전자상업(온라인 쇼핑몰)에 관심을 보인 북한이 '옥류', '만물상' 등 모바일 결제에 기반한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시장에 대해서도 더 심층적인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seojiba3@news1.kr
일부에서는 제재, 팬더믹, 수해의 삼중고가 겹친 북한의 무역, 산업, 재정이 일시에 붕괴하는 대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실물경제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사용되는 쌀값, 환율, 유가 등은 비교적 안정돼 있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시장'이 그나마 북한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주민생활 속에 뿌리 내린 '시장'
북한의 '시장' 이야기가 나오면 17년 전인 2003년 2월 24일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학술회의 취재 차 방북했던 필자는 그날 버스를 타고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를 횡단하는 경험을 했다. 주요 거리마다 판매대를 펼쳐놓고 장사하는 주민들, 농촌 마을 입구에서 중국제 담배와 빵을 파는 할머니, 직장에 있어야 할 근로자들이 거리마다 넘쳐나는 모습 등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북한 주민들이 '시장'을 일컫는 크고 작은 '장마당'을 처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농촌의 어느 가정집에는 '모든 공업제품 팝니다'라는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불법 판매를 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버스에 동승한 안내원에게 그 모습을 가리키며 "저건 불법인데 왜 단속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니 "모두 다 어려운 조건에서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어떻게 단속하겠냐"고 대답했다. 차마 카메라를 꺼내 찍을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책 속의 북한'과 '현실의 북한'은 달랐다.
평양에서 돌아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북한은 '농민시장(장마당)'을 '종합시장'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농민시장에서 농산물 외에 합법적으로 모든 공산품까지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조치였다. 그리고 5개월 후인 2003년 8월 동평양지역에 현대적으로 건설된 '통일거리시장'이 문을 열었다. 이후 평양 시민들은 빠르게 새로운 '시장'에 적응해갔다.
2004년 2월 물건을 사러 나온 평양시민들로 붐비는 통일거리시장 입구 모습. 통일거리시장은 2003년 8월 북한 당국이 건설해 문을 연 첫 '종합시장'이다. © 뉴스1 |
2003년 10월 초 평양 고려호텔에서 중구역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성 봉사원을 만나 나눈 대화 속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시장에는 자주 갑니까?
▶중구역에는 시장이 없어 주로 인접한 평천구역 해운동에 있는 시장에 갑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갑니다. 쌀, 부식물 등은 국가의 배급체계를 통해 사서 먹기 때문에 국영상점에 딸리는(부족한) 야채, 잡곡류, 신발 등을 주로 시장에서 구입합니다.
-통일거리에 현대적인 시장건물이 들어섰다는데 가 보았나요?
▶통일거리 시장은 한 달 전쯤 문을 열었습니다. 시설이 잘 돼 있고, 근처에서 온 주민들로 붐볐습니다. 판매원들은 주로 가정주부나 나이 드신 분이 많습니다.
-시장의 물품가격도 국가가 정합니까?
▶물건가격은 품목별로 국가가 정한 기본가격이 있고, 품질에 따라 '합의가격'이 정해집니다. 물건값을 깎기 위해 흥정도 합니다. 시장경제를 한지가 얼마 안 돼 아직도 익숙하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민들이 '시장경제'란 말을 씁니까?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시장경제 아닙니까. 아직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데 익숙하지는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2002년 나온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 이후 시장이 많이 달라졌습니까?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생활비가 농민시장의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이제는 생활비가 많이 오르고 시장에서 다양한 물품을 살 수 있게 돼 편리합니다.
17년 동안 개설된 450여 개 '구역시장'은 모두 국영
지금은 모르겠지만 통일거리시장이 문을 열 당시까지만 해도 평양시민들의 인식은 '시장'과 '시장경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2004년 2월26일 통일거리시장 앞에 직접 갔을 때 시장 입구는 물건을 사고 온 시민들로 붐볐다. 그 사이 통일거리시장은 하루에 10만~15만 명의 시민이 찾는 대표적인 시장으로 성장해 있었다. 시장 안에는 1400여개의 매대(점포)가 영업하고 있다고 했다. 사용료(일종의 임대료)와 소득에 따른 국가납부금(일종의 소득세)을 내면 개인, 국영기업소나 협동단체가 시장에 입주할 수 있었다.
2005년 평양 대동강변 김책공업종합대학 근처에 새로 문을 연 중구시장 전경. (사진 제공: 미디어한국학)© 뉴스1 |
1년 후 농민시장이 없던 평양 중구역에도 '중구시장'이 새로 건설돼 문을 열었고, 이 같은 형태의 시장 건물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2010년에는 200여 개, 현재는 450여 개로 늘어났다. 통일거리시장이 '상설시장'이자 '종합시장'(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구역시장이라고 지칭)으로 처음 문을 연지 17년 흐른 현재 북한은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고, 또 장사를 해야 가계를 꾸려나갈 수 사회로 변모했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급증한데는 북한 당국의 정책도 한몫 했다. 2005년 북한의 최고 경제이론가 중의 한 명인 서재영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경제사상해설서'에서 "이미 국가적으로 투자하여 평양의 통일거리에 시장을 훌륭하게 꾸려놓았는데 이를 본보기로 시장을 잘 꾸리면 주민들이 생활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시장은 시, 군, 구역의 주민수와 지대적(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곳에 한 개 또는 몇 개씩 꾸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서 교수의 주장은 개인이 아닌 당국의 공식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북한은 전국적으로 450개 정도의 시장 건설을 추진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략적으로 북한의 시·군·구역이 220여 개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 당국은 지역별로 2개 정도씩 시장을 건설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변모된 배경에는 자연발생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종합시장이 전국적으로 구역시장 형태로 확산된 데는 실리를 취하려는 당국의 정책적 개입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구역시장의 확산을 단순히 시장 경제적 요소의 확대로만 볼 수 없고, 당국의 정책과 통제도 있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북한은 농민시장이 운영될 때 시장을 시나 군의 행정관리소에서 단순 관리하던 차원에서 새로 조성된 구역시장을 국영기업소인 '시장관리소'가 관리하는 수익기업으로 전환했다.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농민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기관이 투자해 시장건물을 짓고 구역시장을 국영기업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새로 단장한 '해주거리시장'의 입구 모습. (사진 제공: 미디어한국학)© 뉴스1 |
서재영 교수는 "시장에서 상품을 파는 사람들로부터는 수입과 시장시설물 이용 등에 따르는 일정한 사용료를 받아 지방예산수입을 보장하고 시장관리소도 운영하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북한의 시장은 여전히 국영인 시장관리소가 운영하며, 운영과 상품 가격결정 등에서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농민시장의 합법화과정에서 시장을 계획경제의 공백을 메꾸는 방향에서 보충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보였고, 지역시장이 "국가계획권 밖에 있는 사회주의상업의 중요한 보조자"라는 인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시장 합법화과정에서 많은 논쟁과 혼선 거쳐
그나마 시장이 합법화되기까지 북한 내부에서는 수많은 논쟁과 혼선이 있었다. 2007년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가 간부층을 대상으로 발간한 <일군들을 위한 경제지식>에는 이러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자료에는 세 가지 '혼선과 편향'이 소개돼 있다.
첫째는 '시장'과 '시장경제'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개념상의 혼선이었다. 이것은 시장을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경제와 같은 말로 여기거나 시장을 시장경제에서 경제란 단어를 뺀 줄임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었다. 북한의 일부층에서 시장의 합법화를 중국식 개혁 개방의 신호로 이해하거나 시장과 시장경제를 동일한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는 계획경제와 시장의 결합을 계획경제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결합이 이뤄지는 혼합경제가 아니라 계획경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상품유통 공간인 시장을 활용하는데 초점이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둘째, 시장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편향이었다.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는 "일부 일군(간부)들은 인민들이 시장을 이용하는 것을 비사회주의를 조성하고 자본주의를 조장하는 우환거리로 생각하면서 단속통제하고 법적으로 문제시하는 데로만 나가는 편향을 범하였다"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시장 이용 자체를 비사회주의로 몰아가는 경향이 북한 내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경제연구소는 "만일 시장을 조금이라도 장려하면 자본주의를 조장시켜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면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다면 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조건에서 인민생활을 보장할 수 없고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제대로 해나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셋째, 시장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과대평가하는 편향"이었다. 시장 없이는 경제건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인민생활을 높일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경제연구소는 "적지 않은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국가적 이익이 아니라 개별적 단위와 근로자들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생산경영활동에서 계획경제의 테두리를 벗어나 시장가격을 비롯한 시장요소들의 이용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식과 정책상의 혼선들은 2009년 화폐개혁의 실패, 김정은 체제의 출범과 함께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구역시장의 역할과 이용범위, 성격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방식의 시장 통제 정책 모색
시장을 둘러싼 여러 내부논란과 혼선을 정리하면서 북한 당국이 내놓은 대안은 최대한 시장을 활용하면서 국영기업을 정상화 하고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었다.
북한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농업협동화와 산업의 국유화가 완성되고, 국가적 차원의 공급제가 전면 실시된 1950년대 후반~60년대에 농민시장의 소매상품유통액은 전체 유통액 중에서 1%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농민시장은 국영상업망을 보조하는 대단히 제한적인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었고, 북한주민의 개인 및 가구 소득에서 시장 활동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 64%, 최대 7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은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2000년대 중반 일부 시장을 폐쇄하는 조치하는 등 강력한 시장통제를 내놓았지만 실패하자, 김정은 체제 출범이후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시장의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쇼핑하기 편리한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전문종합상점을 확대해 매출 증대에 나선 것이다.
2014년 체인점 형태로 문을 연 황금벌상점의 평양역점 모습. (사진 제공: 평화경제연구소)© 뉴스1 |
2012년 1월에 북한의 첫 대형마트인 '광복지구상업중심'이 평양의 광복백화점을 리모델링해 문을 열었고, 해당화관이나 대성백화점 등 새로 건설되거나 개건한 곳에는 생필품과 가정잡화를 파는 슈퍼마켓이 들어섰다. 2014년에는 체인점형태로 남쪽의 편의점과 유사한 '황금벌상점'이 문을 연 뒤, 매출 신장에 힘입어 평양시내에 20여 개의 점포를 열었다. 이들 업체들은 상품의 신뢰도, 싼 가격을 무기로 시장으로 향했던 구매자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모두 국영기업이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중국기업의 투자로 세워졌지만 2017년 운영권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2008년 평양에서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시장에서 구입해 사용한 중국산 화장품에 수은이 들어 있어 이를 사용한 평양의 봉사원과 해설강사들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이를 계기로 평양에서는 시장상품에 대한 기피현상이 생겨났고, 새로운 형태의 현대적 상점들이 생겨나자 이를 찾는 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아직까지 지방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 같은 형태의 상점들이 확산되고 있지 않지만 북한 당국의 정책방향은 분명한 것 같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확대해 자연스럽게 시장의 영역을 축소하려는 것이다.
2019년 새로 단장해 문을 연 대성백화점 1층 슈퍼마켓에서 평양시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 제공: 평화경제연구소)© 뉴스1 |
최근 북한과 북한경제 분석에서 화두는 시장의 역할과 영향이다. 시장의 합법화와 확대가 북한에서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 확산과 일상생활의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향후 시장이 북한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장 경제의 활성화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성급한 분석도 나온다. 강력한 경제제재와 코로나19사태로 시장 활성화에 제동이 걸리고, 시장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북한 시장경제의 활성화가 아직까지는 김정은 체제에 결정적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북한에서 시장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진 건 맞지만, 아직까지 정권이 시장을 이용하는 단계이지 시장이 정권을 뒤흔들 지는 못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평가는 다르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시장에 인식은 시장의 자연발생성과 증가 추세 등에 주목했다. 반면 북한 당국 차원의 시장 확대정책과 활용 측면, 시장을 대체하는 슈퍼마켓 등 새로운 국영유통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측면이 존재한다.
북한이 여전히 시장과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펴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유통체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2000년대부터 전자상업(온라인 쇼핑몰)에 관심을 보인 북한이 '옥류', '만물상' 등 모바일 결제에 기반한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시장에 대해서도 더 심층적인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뉴스1 |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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