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5

이은선 - 정말 여신협의 최고 전성기에 역할하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이은선 - 정말 여신협의 최고 전성기에 역할하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수고에 감사합니다!



이은선
51m ·



정말 여신협의 최고 전성기에 역할하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수고에 감사합니다!


한국여신학자협의회Korean Association of Women TheologiansLiked
1h ·


<나와 여신협> - 한국염 전 총무

여신협과의 20년, 돌이켜보니 행복이더라.


1979년에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의 지원을 받아 초교파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여성들을 한자리에 모아 ‘교회의 민주화’라는 주제로 교회 현장과 교회에서의 여신학사의 자리와 과제를 모색해 보는 여신학사협의회를 열었다. 

나는 협의회에 참석한 이들중 가장 젊은 측에 속했다. 이 협의회에서 여성의 안수문제, 여교역자의 지위 개선, 가부장적 교회를 개선하기 위한 여성신학 교육과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종합토의에서 신학을 전공한 여성들이 가부장적 교회와 신학을 개혁하기 위해 여신학자협의회를 결성키로 하였다.

1980년 4월 21일 여신학사협의회 창립총회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이때 나는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간사로 일하던 때라서 나선정총무와 함께 창립총회에 참석하였다. 정관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회원 자격 문제로 난관에 직면하였다. 당시 여신학사는 문교부 인정을 받은 학사 학위 증 소유자에 지칭하는데 실제로 일선의 교회 여전도사들 중에는 학사학위가 없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석상에서 갑론을박하는 데 이때 아무도 예기치 않았던 이화여자대학교 박순경교수가 참석해서 '' 독일에서는 신학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던 신학자라고 부른다, 신학자는 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신학자다.'', 라고 명쾌하게 정리를 해주어 논의가 일단락되었다. ‘여신학사협의회’라는 회의 이름도 ‘여신학자협의회’로 바뀌었다. 회장선출시간이 되자 그 자리에서 분위기가 확 돌아 전형위윈들이 혜성처럼 나타난 박 교수님을 회장으로 선출, 박 교수님이 초대회장이 되셨다.

창립총회 후 그해 7월 14일에 여신학자협의회 첫 세미나를 공개강좌로 ‘세계교회의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열었다. 박순경회장의 주제강연, '한국교회와 여성'이라는 패널토의, 장상교수의 '성서와 여성' 발제, 종합토의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 세미나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회보>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홍보출판위원이던 내가 원고를 만들고 남편이 편집을 해서 타블로이드판으로 제작되었다. 이 타블로이트 판의 신문형태로 발행된 회보는 2호 이후 6호까지 6절지 회보로 발행되었는데, 이 회보가 ‘한국여성신학지’ 전신이다.

1998년 여신협의 총무가 되었다. 여신협 총무 시절에 큰 사건들이 많이 터졌다. 간 크게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교회내 성폭력문제’ 공청회를 열었다. 교회내 성폭력 공청회 사안이 얼마나 민감하였는지 안기부 종교담당요원이 전화를 해서 공청회를 취소하면 안되냐며 후유증을 염려할 정도였다. 안기부요원이 걱정할 정도로 종교지도자들의 성폭력이 많다는 입증이기도 했다. 우리의 투쟁으로 성폭력 가해 목사가 파직된 사건은 한국교회사상 처음 있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고, 5개 중대나 되는 경찰의 보호 아래 2차 교회 내 성폭력 공청회를 여는, 진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교회 얼굴에 먹칠했다고 남성 목사들로부터 욕을 엄청 먹었다. 교회내 성폭력 공청회를 마치고 부설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교회여성을 대상으로 성의식 실태조사를 하였는데, 결론이 기가 막혔다. 교회에 오래 다닐수록 가부장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여신협총무로서 간 크게 벌린 두 번 째 일은 2002년 통일운동의 하나로 분단 후 처음으로 ‘재일본조선민주여성동맹’ 여성들을 초청한 일이다. 간신히 안기부 허락을 받았는데 안기부 요원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여맹 측에서 노래를 하면서 대놓고 ‘김일성 주석’찬양을 하는 바람에 간이 오그라들기도 했다. 이 초청을 제안한 정숙자목사는 “한국염총무의 배짱 아니면 못해 낼 일이었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는데 나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새천년이 되는 2000년에 여신협 20주년을 맞았다. 기념예배와 축하잔치 외에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였다. 한국여성신학지를 무크지로 탈바꿈하고, 20년사를 역대 총무들이 집필해서 ‘여신협 이야기’라는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성서언어연구반에서 시편을 1편부터 150편까지 여성신학적으로 다시 써서 ‘여성 시편’을 발간하였다. 이 여성시편은 여신협 뿐만 아니라 기독여성들에 의해 좋은 예배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 중의 하나는 2002년 일 년 동안 예배반에서 준비하여 매달 “새 하늘·새 땅을 여는 예배를 드린 일이다. 여신협이 주창해 온 교회 개혁의 내용들, 평등한 교회공동체를 향한 염원들을 예배에 담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과 영성을 키워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예배반에서 워크숍을 하면서 정말로 행복했다. 여성신학을 하는 의미와 기쁨도 맛보았고, 신학화작업을 하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공동작업을 하면서 반원들과의 자매애에 흠뻑 취하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신학은 한 학자의 연구작업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하는 것이 살아있는 신학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가 희망하는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경험하는 이삭줍기의 은총도 맛보았다“고 당시 예배반 대표인 이숭리회원이 회고했다. 예배 참여자가 기성교회의 예배와는 달이 살아있는 예배를 맛보았다고 고백하는 소리도 들었을 때 참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일 년 동안의 예배 자료를 묶어서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예배’ 책으로 발간한 것을 끝으로 나의 여신협 총무시절을 마감하였다. 여신협에서의 20년을 회고하다 보니 참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한국여신학자협의회40주년기념축하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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