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5

알라딘: 미국 패권의 역사 - 바다에서 바다로 브루스 커밍스 Dominion from Sea to Sea: Pacific Ascendancy and American Power

알라딘: 미국 패권의 역사

미국 패권의 역사 - 바다에서 바다로   
브루스 커밍스 (지은이),김동노,박진빈,임종명 (옮긴이)서해문집2011-12-20원제 : Dominion from Sea to Sea: Pacific Ascendancy and American Power


양장본928쪽

책소개

브루스 커밍스, 태평양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를 다시 쓰다. <한국전쟁의 기원>(1986)과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2001)를 써 한반도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 내 몇 안 되는 한국전문가이자, 동아시아 관계에 정통한 역사학자다. 특히 한반도 내에서 미국의 역할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많은 연구업적을 쌓았다.

이 책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관점에서 미국사를 새롭게 바라보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커밍스는 이 책에서 미국사를 다루면서도 미국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태평양 연안 주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특히 현대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확보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다른 저자들이 분리해서 다루었던 미국 국내사와 세계사, 국제관계와 정치경제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경제를 하나로 묶어서 본다.

또 커밍스는 미국의 기술 혁신을 분석하고, 경제 발전의 급속한 도약이 어떻게 100년 넘게 세계를 이끌어온 양쪽 해안 중심의 경제를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커밍스는 이전의 미국사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시각의 미국사를 보여준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감사의 글

PART 1 정신의 개척자
1_정원 속의 기계
2_비교할 수도 없이 먼 곳: 캘리포니아를 찾아서

PART 2 바다로부터 빛나는 바다까지: 명백한 운명
3_쉽게 얻은 다섯 조각으로 만들어진 미 대륙
4_명백한 운명의 후손: 금, 대륙횡단철도, 텍사스
5_파괴해야 할 괴물을 찾아 해외로

PART 3 태평양 연안 주들, 뉴잉글랜드 사람들
6_에덴의 동쪽: 태평양 북서부 연안
7_에덴, 푸르고 차디찬
8_태평양 건너기: 새로운 주의 아시아인들

PART 4 ‘땅의 표면’ 변화무쌍한 캘리포니아
9_과일바구니정원
10_“저기 온다, 가져라”: 물과 권력
11_태평양의 섬 남부 캘리포니아

PART 5 분기점
12_국가다운 국가: 서부의 발전
13_전후 캘리포니아와 서부 공화당의 흥기
14_캘리포니아의 그림자 속에서: 전후 시기 서부의 다른 지역들
15_제국의 군도: 전 세계의 정원에 미국의 망상 조직을
16_실리콘밸리: 바다의 경계에 있는 새로운 세계
17_결론: 미국의 지배

부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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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미국 개척지 정착의 역사와 이민, 기술, 무역, 농업, 인종, 환경, 국제관계 등의 역사를 너무나도 잘 통합시킨 통찰력이 뛰어난 저서 - 멜빈 르플러 (버지니아 대학교수) 
커밍스는 풍부하고 화려한 서술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서부로 독자들을 데려다 준다. 한편에는 캘리포니아, 다른 한편에는 동아시아가 자리잡고 있는 태평양의 관점에서 미국의 역사를 재서술하고 있다. - 캐롤 글룩 (컬럼비아 대학교수)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1년 12월 17일 '200자 읽기'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1년 12월 16일
저자 및 역자소개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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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카고대학 석좌교수이며, 한국 근현대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해 왔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뒤 한국 현대사 연구에 몰두해 왔으며, 1981년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의 기원』은 국제정치학·사회학·역사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을 통해, 전쟁의 발발과 전개에 대한 천착을 넘어 한국전쟁의 역사적·사회적 기원을 파고든 역작으로서 국내외 한국전쟁 연구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전쟁의 기원』 1권으로 미국역사학회의 존 K. 페어뱅크 상을, 『한국전쟁의 기원』 2권으로 국제연구학회... 더보기
최근작 : <백년의 변혁>,<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미국 패권의 역사> … 총 41종 (모두보기)
김동노 (옮긴이) 

미 시카고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사회학회 총무를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작 : <한국 사회과학 연구의 지적 계보와 한국적 사회과학 이론 정립의 방안 자료집 2>,<식민지기 사회과학 연구의 체계화와 유산 (1910~1945)>,<한국 사회학의 미래> … 총 11종 (모두보기)
박진빈 (옮긴이)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박사. 대표 논문으로 <전후 미국의 쇼핑몰의 발전과 교외적 삶의 방식> <카트리나 재난이 알려 주는 미국 도시의 현재> <20세기 초 필라델피아의 인종 분리와 흑인 빈민 주거문제>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백색국가 건설사》 《도시로 보는 미국사》, 옮긴 책으로 《원더풀 아메리카》 《빅 체인지》 등이 있다.
최근작 : <제물포 각국 조계지 회의록 1>,<도시는 기억이다>,<서양사 속 빈곤과 빈민> … 총 10종 (모두보기)
임종명 (옮긴이)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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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애도의 문장들>,<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아우슈비츠의 치과의사>등 총 451종
대표분야 : 역사 8위 (브랜드 지수 302,641점), 고전 13위 (브랜드 지수 215,618점), 청소년 인문/사회 14위 (브랜드 지수 44,35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브루스 커밍스, 태평양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를 다시 쓰다
《한국전쟁의 기원》(1986)과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2001)를 써 한반도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 내 몇 안 되는 한국전문가이자, 동아시아 관계에 정통한 역사학자다. 특히 한반도 내에서 미국의 역할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많은 연구업적을 쌓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펴내는 《미국 패권의 역사》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관점에서 미국사를 새롭게 바라보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커밍스는 이 책에서 미국사를 다루면서도 미국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태평양 연안 주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특히 현대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확보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다른 저자들이 분리해서 다루었던 미국 국내사와 세계사, 국제관계와 정치경제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경제를 하나로 묶어서 본다. 또 커밍스는 미국의 기술 혁신을 분석하고, 경제 발전의 급속한 도약이 어떻게 100년 넘게 세계를 이끌어온 양쪽 해안 중심의 경제를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커밍스는 이전의 미국사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시각의 미국사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패권국가의 탄생

미국은 광대한 땅을 차지한 세계 최초의 패권국가다. 미국은 태평양 세기의 주권자임을 주장하는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제국주의 섬나라가 아니며,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대양을 향해 열려 있는 대륙국가다.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에 모두 긴 해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서양 국가이면서 동시에 태평양 국가인 유일한 강대국이다.
미국이 1941년 이후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아우르는 강대국으로 출현한 것, 특히 양 해안 지역과 그 사이에 있는 많은 곳(시카고, 휴스턴, 덴버)의 첨단 기술이 미국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논지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국은 우리 시대의 중반 이전부터 세계의 패권을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책의 중심 문제는 대서양 지역의 국제주의와 태평양 지역의 팽창주의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느냐다. 이 두 가지가 미국이 세계와 관계 맺는 두 측면이기도 하다.

골드러시부터 실리콘밸리까지

커밍스는 이 책에서 패권국가 미국을 다음과 같은 주제들로 분석했다. 첫째, 두꺼운 인구 층과 여전히 역동성을 지닌 대서양 해안과 중부의 경계 지역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면서 더 큰 활력을 지닌 태평양 연안을 포함하는 미국의 특이성. 둘째, 에덴의 정원 혹은 아르카디아처럼 훼손되지 않은 채 무한히 펼쳐지며, 백인이라는 비료를 통해 유토피아로 개발될 빈 대륙을 채워나간 이주민의 확장 그리고 거의 200년 전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그 정원을 변화시킨 끊임없는 산업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의 결여. 셋째, 유럽인과 미국인의 만남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백인 정착민과 유색 인종의 조우. 넷째, 150년 전 포크가 이끈 멕시코 전쟁 직후 페리에 의한 일본의 ‘개방’과 함께 시작되어 대서양주의의 담론과는 일치된 적이 없으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온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 다섯째, 미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 전체와의 상호 작용에서 1941년이 의미하는 전환기적 중요성.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은 대서양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행동했고, 이는 유럽과의 오래된 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1945년 승전 이후 미국과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국들 사이에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게 됐다. 여섯째, 서부 지역, 특히 캘리포니아를 개발하는 데 미치는 중부 지역의 역할. 일곱째, 한국전쟁과 냉전 시 군도群島의 형태로 만들어져 태평양에 강한 영향을 끼친 군사 기지의 국제적 배열. 여덟째,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탁월한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핵심 요소였던 국가 주도의 디지털 혁명. 이 책은 184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면서 이 주제들을 때로는 연대순으로, 때로는 시간 순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반복해서 논의한다.
특히 커밍스는 미국 중서부부터 태평양까지 서쪽으로의 이동이 어떻게 미국을 세계적으로 산업, 기술, 군사 강대국이 되도록 해주었는지 서술한다. 그는 국내사와 국제사, 국제관계, 정치경제를 결합시켜, 기술적 변화와 급속한 경제적 발전이 한 세기 이상 세계를 주도해온 국가 경제를 창출해왔음을 보여준다. 커밍스는 미국과 멕시코, 필리핀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은 대서양 중심주의와 태평양 관점을 결합시킨 미국사에 대한 양면적 접근을 통해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통합적 역사의 멋진 성과를 보여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힘은 ‘제국의 군도’ 즉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진 수백 개의 군사기지가 전쟁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구조를 통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이러한 패턴은 지난 15년간 특히 이라크전쟁 이후 비서구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다. 수십 개의 군사기지가 중앙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에 세워졌고, (특히 부시 통치하에) 외교정책의 일방주의가 명백해졌으며, (오바마나 부시처럼)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쉽게 군사력에 의존하였고, 놀랄 정도로 법치는 무시되었다. 부시가 선제공격을 받지 않은 채 이라크를 침공하여 유럽의 대부분 동맹국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면, 오바마는 살인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적으로 규정된 이들을 사살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 대다수 (가령, 오사마 빈 라덴)는 그러한 처벌을 마땅히 받아야겠지만 이것이 국제법의 규범으로부터 크게 벗어난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이는 미국역사에서 포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확장주의의 규범에 속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내가 한국에서 목격했던 것들이 점차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의 행동방식이 되고 있다.
미국의 외교관계를 설명할 때 또 다른 특징은 저자들이 동아시아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쉽게 말하지만 그 자신의 나라인 미국에 대해서나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파헤치지 않고 있다. 미국이 한국이나 동아시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인과 미국이라는 나라를 알 필요가 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뻗어나가던 확장은 우리 시대인 1950년대와 1960년대 들어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들이 보여준 반제국주의로 인해 마침내 막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거의 대부분의 미국 지도자가 동아시아 국가를 대함에 있어서는 대서양 건너편의 파트너를 대할 때 자연스럽게 보여준 평등과 상호존중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가지는 데 필요한 경험과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유감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이상적 생각이 태평양 건너편으로까지 빨리 전파되지 않는다면 21세기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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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책을 읽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최고의 쾌락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미국 패권의 역사 - 바다에서 바다로>가 바로 그런 책이다. 페이지도 가격도 신경 쓰지 마시라. 한 페이지만 읽어도 남는 장사니까.  구매
빙과 2013-04-0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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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과 태평양을 두고 양수겸장하며 세력을 팽창하는 미국을 내부자의 외부자적 시각으로 본 명저. 저자의 열정이 절로 느껴지는 분량의 압박.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상식화로 다분히 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 출판사에 반품이나 재고 문의를 해봄이 좋을 듯.  구매
피라미 2017-12-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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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권의 역사 / 브루스 커밍스 새창으로 보기 구매
"(미국 예외주의자인) 헌팅턴은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라 정착민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이들 정착민은 흔히 종교 박해를 피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리를 지어 떠난 사람들이었고, 이후 250년 넘게 프런티어가 확장됨에 따라 정착민 사회도 복제되어왔다." 정착민의 유산인 "대서양 문명을 다른 것과 구별 짓는 것은 '가치와 제도'로서 그 순서는 '기독교, 다원주의, 개인주의, 법치제도'인데, 이 모든 것이 모여 '서구의 근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헌팅턴은 유럽이 이러한 특성의 유일한 원천이며, 미국의 지도자는 "서구 문명의 독특한 특징들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라는 슐레진저의 주장을 인용했다. 헌팅턴이 보존하고 되살리고 싶어 했던 대서양 세계는 유일하게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명이고, 이를 지킨다는 것은 외부의 적에 맞서기보다는 국내외에서 쇠약해가는 문명의 원천과 자원을 아껴서 사용함을 의미한다."(52-3)

<정원 속의 기계>를 저술한 레오 마르크스가 보기에, "미국이 처한 핵심적 난제는 미국의 목가성 자체만의 이유라기보다 이와 동일한 무게로 미국 문화의 특성인 기술 숭배와 목가성 사이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전원은 '디자인된 것'이며 '생각과 감정의 커다란 구조물인데, 이 생각 속에는 이상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맞서는 힘은 '기계'다. 이때의 기계란 소로나 휘트먼에게는 기관차이고, 괴물 같은 고래를 쫓는 <모비딕>에 나오는 이슈마엘에게는 직물 기계였다. 이슈마엘은 이 기계를 '목가적 민족의 환상을 깨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침입자라고 했다. 이 미국 고전 문학의 주인공은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구원의 여정'을 밟았지만 '원초적인 것으로의 복귀'는 결국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이다. 또 다른 회귀에 이어 갱신 혹은 부활이 일어나고, 결국 이 귀환은 평점심으로의 귀환이기도 하다. 좀 더 흔하게는 현대 혹은 기계화된 일상으로 조용히 돌아오기도 했다."(70-1)

"오늘날 미국인은 근대사와 관련된 여러 이유로 인해 제국의 개념을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19세기 미국 지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의 기원이 분명히 반제국주의라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혹은 필요에 따라 제국을 재규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퍼슨은 자유의 제국, 포크는 운명의 제국, 루스벨트는 식민지의 제국, 윌슨은 가치의 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 '제국'의 의미는 오늘날과 달랐다. 19세기에 제국이란 커져가는 미국의 영토를 뜻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127) "제퍼슨은 '이 세상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믿으면서 목가적 이상향인 아르카디아를 처음 주장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소유욕이 강한 개인주의자(가장 선의로 해석하면 토지가 개인의 독립을 보장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가장 나쁘게 보면 그는 노예 소유자였다)로 아마추어 지리학자이며, 서부로 확장해야 한다고 믿는 초기 '서부주의자'였다."(129)

루이지애나 구입 이후 본격적으로 탐사된 서부 지역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다채로운 식물과 동물로 가득 찬 천국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서부는 '욕망의 대상' 혹은 '세계열강과 미국 사이에 놓인 1000마일의 빈 공간이자 황야의 처녀지'로 표현됐다."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팽창주의자였던 존 퀸시 애덤스도 "대륙의 존재를 확인하자 바로 이를 차지하려 했으며, 1811년에 미국은 "자연과 신의 섭리로 바다에서 다른 바다에 이르는 사이의 영토를 차지하게 될 운명을 지니고 있고, 사회 계약 아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강력한 곳이 될 것"이라고 썼다. 다만 제퍼슨과 달리 애덤스는 농경주의의 이상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뉴잉글랜드 상인의 해상 이권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영국을 철저히 불신했다. 내수 시장 확보뿐 아니라 세계 패권 대결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아우르는 대륙 국가를 원했다."(136-7)

"1840년대에 급속히 진행된 산업혁명은 '명백한 운명'의 화려한 수사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미 대륙이 완성됨으로써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무관세 무역 시장, 즉 내수 시장을 얻었다. 단순히 국경이 새로 정립된 것이 아니라, 모든 발전은 서부를 향해 진행되었고, 혁신이 더 큰 혁신을(그리고 모방은 더 많은 모방을) 낳았고, 거대한 대륙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됐다."(158-9) "시공의 한계를 축소한 철도와 증기 기관차가 '명백한 운명'의 수사학에 동반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전신만큼 팽창주의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도 없다. 무역의 오랜 장애물이었던 거리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전신 덕택에 리오그란데 근처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몇 분 만에 전해졌고, 새로운 윤전기가 수천 부씩 이를 인쇄하여 독자들은 전쟁의 진행 상황을 매일 접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포크 대통령의 발표는 순식간에 (덴버 동쪽에 이르러) 전국으로 퍼져나갔다."(160-1)

"캘리포니아는 새로운 프런티어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프런티어를 만드는 서곡이었다. 이는 즉각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한 세기 뒤에 미국의 핵심이 된 캘리포니아의 '발견' 혹은 획득은 곧이어 골드러시로 연결되어 세계가 주목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1853년에 페리 제독이 일본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대부분의 원거리 무역이 무관세 지역인 국내에서 이루어져 엄청난 이윤을 취할 수 있었다." "해군이면서도 풍부한 경험을 가진 외교관이었던 페리는 그가 맡은 임무의 역사적 중요성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콜럼버스에서 끊어진' 서쪽으로 전진하던 가닥을 다시 이어 '운명의 공'이 계속 굴러 일본을 '유럽 문명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전형적인 19세기 중반의 방식으로 말했다. 또한 캘리포니아를 합병하고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므로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진정한 '중심 왕국'이라 생각하기도 했다."(168-9)

1862년, 링컨 대통령은 급속히 도시화된 캘리포니아를 북부 연합군에 묶어두기 위해서 대륙횡단철도 법안에 서명했다. "동쪽과 서쪽에서 각기 철도를 건설하려는 경주가 시작된 것은 1865년부터였다. 이때는 미국인들이 남북전쟁의 대학살 기억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고, 링컨이 의회에 보낸 두 번째 메시지가 새로운 계시가 되기에 적절한 시점이었다. 이 메시지에서 링컨은 내전이 일어났던 곳이 아닌 서부의 자오선 지역에서 모든 사람이 꿈꾸던 미래를 선사하겠다고 말했다."(203) "19세기 중반의 미국인에게 이 '기계'(철도)는 그들의 정원에서 태어난 것이지, 그 정원을 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수많은 발명품과 새로운 장치들이 매우 드라마틱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지라도, 미국인들은 이것들이 거대한 기업과 독점 세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단한 땜장이나 농업 기계공 혹은 장인이 만들어낸 '유용한 기술', 즉 실용주의의 작동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으로 여겼다."(207-8)

1899년 2월부터 1902년 7월까지 이어진 필리핀 전쟁은 "미국의 대규모 식민지 취득의 첫걸음이었으며, 카리브 해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지역에 미국이 뛰어들게 되면서 대륙주의는 종말을 맞게 됐다. 미국은 쿠바, 푸에르토리코와 태평양에 있는 세 개의 전략 요충지를 점령(마닐라로 가는 길에 괌과 웨이크 섬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필리핀을 차지)했다. 쿠바는 1901년에 독립하였지만, 이는 미 해군이 이미 관타나모에 기지를 설치한 후였으며 플랫 수정안Platt Amendment으로 인해 1959년까지 미국의 실질적 보호령으로 남게 됐다." 이곳에는 미국인 소유의 사탕수수 농장, 니켈 광산, 카지노가 있었기에 워싱턴에서는 미국인의 '생명, 재산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카리브 해에 제국의 모습을 갖추었고 진주만과 마닐라, 괌, 웨이크 섬과 미드웨이 섬을 확보하여 태평양 곳곳에 징검다리를 놓음으로써 무한한 해양 제국이 됐다."(237)



"미국은 (멕시코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스페인을 물리친 전쟁과 마찬가지로)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아기날도가 이끄는 독립 투쟁 세력이 (700만 필리핀인의 절반 가량이 살던) 루손과 몇몇 주요 섬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이 세력을 진압하는 데 12만 6648명의 미군이 3년에 걸쳐 싸웠다. 이로 인해 적게는 20만 명, 많게는 70만 명의 민간인과 1만 6000에서 2만 가까운 반란군 그리고 4165명의 미군이 각종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에는 이 진압 작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리핀에서는 잊히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이 이후 한국,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일어났다. 쉽게 이길 것이라는 기대와 메시아적 구원의 시도로 정치적, 문화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덤불에 빠져 일어난 전쟁이 교착상태에 이르면서 대중의 지지를 잃고 최종적으로는 거의 패배하거나 불명확한 점령을 유지해야 했다."(245-6)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제국주의자였지만 (유럽의 방식이 아니라 미국 자체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그 시대 최고의 제국주의자였고, 1840년대와 직결되어 있었다(1893년에 "나는 명백한 운명의 원칙을 어느 정도 믿고 있다"라고 썼다). 그는 당시의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앵글로색슨의 우월성을 믿었다." "그는 미국의 힘이 대서양과 태평양에 모두 미치는 것으로 명확하게 인식한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더 나아가 미국이 거대 세력으로 부상할 곳이 바로 태평양이라고 인식하여 거대 규모의 해군을 세우려 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루스벨트가 보기에 "일본이 떠오르고 중국이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했다면 일본인은 남성적 정력이 넘치는 인종이고 중국은 그 반대여서 시간의 개념도 없이 빈둥거렸기 때문이다(따라서 루스벨트는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화하자 이를 문명화의 임무로 여겨 기꺼이 받아들였고, 미국은 1902년에 있었던 영일동맹의 숨겨진 서명국이었다)."(251-3)

"미국이 세계를 자신의 이미지대로 만들려고 하면서 더러운 권력 정치를 대신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의 계몽적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미국이 세워질 때부터 존재했던 자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재규정하면서 이제 전 세계를 그 영역으로 삼게 됐다. 문호 개방도 역시 행정적, 군사적, 강압적 수단을 적절히 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식민지 권력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었다." 중국을 '무능과 유능의 경계'에 놓인 상태를 유지하려는 "문호 개방이 절묘한 행동이긴 했지만, 이는 중국을 위해서 절묘한 것이 아니라, 미국식으로 세계를 쳐다보는 새로운 세계관이 이전의 낡은 세계 제국주의를 과거 속으로 밀쳐버린 것을 은유적으로 그러나 구체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러했다." "미국은 새로운 세기에 구세계의 잔인한 권력 정치를 쓸모없게 만들면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외교를 통해 세계의 리더로 자리 잡는 생각을 새롭게 가지게 됐다."(254-5)

루스벨트의 후계자인 "태프트의 국무장관인 녹스와 전형적인 팽창주의자인 스트레이트는 만주를 '경제적·과학적으로 그리고 공정하게 통치할 수 있는'(녹스의 표현) '거대한 비전'(노이의 표현)으로 만들었다. 이 비전은 열강, 특히 미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이 지역을 감독하는 것인데, 특히 철도에 관해서 그러했다. 이 계획의 목적은 모든 열강이 이득을 볼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여 '거대한 상업적 중립 지대'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 해군의 전략가들은 (함대가 주둔하면서 '태평양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마침내 1909년 진주만을 태평양의 해군 본부 기지로 결정했다. 그리고 태프트의 제너럴 보드General Board(1900년에 설립되어 1951년까지 유지된 미 해군의 자문 기구)는 '일본과의 전쟁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여, 1911년 3월에는 '오렌지 플랜'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입안했다."(263-4)

"필리핀에 미군 기지를 설치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육군과 해군은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했고, 진주만에 관한 1909년의 계획도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오렌지 계획'도 팽창보다는 방어에 중점을 두는 전략으로 1913년에 수정됐다. 그 와중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식민지 주둔 육군 병사들은 모두 유럽이라는 무대로 옮겨지고 말았다. "미 육군은 태평양에서 모두 사라진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전쟁이 끝나자 서태평양 전체를 잠재적으로 지배하게 되었고, 일본 해군은 쿠릴 열도에서 타이완과 그 아래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270) "1930년대까지 미국이 태평양에서 진정한 권력자가 아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호 개방이 중국의 와해를 막거나 미국을 중국의 특별한 친구로 만들지도 못했다. 필리핀에서 행한 미국의 행동, 의화단 운동에 대한 개입 그리고 수많은 다른 문제들로 인해 미국이 다른 제국에 비해 차별성이 있긴 했지만 그 차이는 아주 미미했다."(272)

"1940년 이후 하와이는 태평양지구총사령부CINCPAC로, 대규모 해군·육군·공군 기지이자 태평양에서 미 군사력의 핵심이라는 면에서 경쟁자가 없었다." "하와이는 지구 표면의 절반에 해당하는 1억 제곱마일의 땅과 바다에 대한 제압력의 분출을 가능하게 하는 진정으로 근사한 토대다."(310) "프랭클린 루스벨트(미국의 제32대 대통령.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는 진주만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태평양 중앙이라는 전략적 위치가 일본을 매우 억제하는 효과를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1939년 진주만을 방어 해양 지역으로 지정했고, 팬암 여객기를 제외하곤 모든 비행기의 운항을 금지했으며, 1940년 해양 기동 작전 이후 함대를 진주만에 남아 있게 했다. 1941년 5월에 루스벨트는 국가비상상황을 선포했고 해군 소장 니미츠를 선임 장교 50명을 건너뛰어 승진시켜 CINCPAC(원래 CINCUS였는데 이것이 '우리를 침몰시켜'라는 뜻의 'sink us'와 발음이 같아서 바꿈), 즉 태평양지구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326)

1867년 알래스카 매입은 러시아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그들이 아무런 전략적 위협도 가할 수 없게 밀어냈다(대륙간탄도미사일이 모두에게 위협이 되기 전에)." "알래스카가 태평양의 꼭대기에서 양쪽으로 길게 영토를 뻗침으로써, 남서쪽으로는 동토 알래스카 섬과 알류샨 군도로, 남동쪽으로는 앵커리지를 거쳐 은광이 있는 주노와 케치칸과 프린스오브웨일스 섬까지 연결되었다." "이제 미국의 환태평양 선은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는 해안을 따라 2000마일 정도 올라가고 북서쪽으로는 베링 해와 알류샨으로 향했다가 활처럼 젖혀진 형태로 캄차카, 일본, 한국의 해안을 따라 내려가게 됐다. 그런 다음 필리핀까지 이어지는데, 이로써 적도 이북의 태평양 선이 하나로 모아졌다." "1945년까지 미 육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들(일본, 남한, 타이완, 필리핀, 오키나와, 괌, 미드웨이, 웨이크 섬)을 모두 요새로 만들었고, 끝없어 보이던 태평양 북부를 미국의 호수로 만들어버렸다."(335-7)

"미국과 일본 간 전쟁의 가장 유명한 시나리오는 바이워터가 1925년에 쓴 책 <태평양에서의 해상력 : 미-일 해군 문제의 연구>였다. 전쟁은 일본이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공격하면서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그는 후일 명성(진주만은 아니지만 1941년 필리핀과 괌에 일본이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을 누리게 됐다. 일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필리핀, 미드웨이, 웨이크 섬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바이워터는 생각했는데, 이는 정말로 전쟁과 그 이후에 현실화되는 예언이 됐다. 진주만 공격의 기획자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함장은 젊은 시절 워싱턴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하던 시절 바이워터의 책을 신중하게 연구했고, 도쿄에 그에 대한 보고서를 보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백인 대 황인, 앵글로색슨 대 사무라이의 '인종 전쟁'이 될 것이었다. 육군원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인종 간의 묵시론적 충돌이라는 생각에 특히 몰입됐다."(355)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충격과 공포가 진주만을 뒤흔들어 '미국이 처음부터 압도되어 전쟁을 지속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2003년 3월의 경우(이라크 침공)에서와 마찬가지로 잘 실현되지 못했다. 일본은 진주만 이후 필리핀, 싱가포르, 말라야, 보르네오, 괌과 웨이크에서 보다 경이로운 승리를 거두면서, 곧 태평양 서쪽과 동남아를 석권했다. 그러나 6개월이 안 돼 진주만을 기습했던 여섯 척의 항공모함 중 아카기호, 가가호, 소류호, 히류호 네 척이 태평양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미드웨이 해전은 그렇게 결말지어지면서 바다에서의 최종 결과를 예언했다. 마치 과다카날 전투가 육상에서 일본의 소멸을 알렸듯이." "전쟁 이전의 태평양 연안, 다른 이들이 세계를 운영하도록 했던 것, 또 가장 좋은 의미에서 고립, 즉 지리적으로 태평양과 대서양, 두 개의 대양으로 둘러싸인 미주 대륙에 살면서 생긴 외부 세계에 대한 해롭지 않은 무관심, 이 모든 것이 전쟁 통에 사라지게 됐다."(500-1)

"남부의 흑인은 진주만 기습 이전에는 남북의 축을 따라 이동했다. 즉 텍사스나 아칸소 또는 미시시피 지역의 흑인은 뉴올리언스를 거쳐 시카고나 디트로이트로, 플로리다나 조지아 출신 흑인은 할렘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쟁산업이 서부에서 열리자, 태평양 남부와 샌타페이 간의 서던퍼시픽철도를 따라 또는 자동차로 66번 국도를 타고 대규모 탈출이 시작되어 거의 34만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태평양 지역의 산업체에 다다랐다." 로스앤젤레스 역시 다른 도시들처럼 인종 분리가 만연했지만 최소한 "전쟁 기간 동안 로스앤젤레스의 흑인은 다른 주민들처럼 좋은 직업, 학교, 자동차라는 아메리칸 드림 속에서 살았고, 그들에게 로스앤젤레스 생활은 앨라배마에서 소작인으로 오두막에 사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1940년대에 로스앤젤레스는 흑인을 경찰관과 소방관으로 고용한 최초의 도시 중 하나가 됐다."(519-21)

"정치경제학(거셴크론이나 슘페터)의 관점에서 볼 때 1940년대는 미국 역사에서 놀랄 만한 출발점이었다. 서부는 하룻밤 사이에 산업화되어 록히드나 보잉과 같은 세계 일류의 최첨단 기업, 캘리포니아 공대나 로스앨러모스의 실험실과 같은 최신식 기술 실험실과 연구 센터, 공장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기술을 갖춘 수백만 명의 남녀 근로자와 이후 제대군인원호법을 통해 대학 교육을 받은 수백만 명의 제대 군인들처럼 새로 흘러든 막대한 인적 자원으로 채워졌다. 그뿐 아니라, 전쟁은 세계 역사에서 최초로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통합된 경제를 갖춘 대륙국가를, 또 상처 입지 않은 채로 전쟁에서 빠져나와 세계 산업 생산 전체의 50퍼센트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유기적인 전체'를 창조했다. 또 미국 역사에서 최초로 태평양 연안 주들과 서부 지역이 석유, 철강, 공장, 투자 자본 부문에서 독립적이 되었다."(540)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산업 폭발은 종전 이후 공황에 대한 공포의 확산을 촉진했다. 수백만 노동자와 새로 이주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쟁이 증폭시킨 상품과 용역은 누가 다 구매할 것인가? 태평양 연안 주 전체에 승리의 날은 위대한 승리와 함께 닫히는 공장의 문소리를 의미했다." "상황은 마치 미국이 소규모의 상비군과 북미 대륙 내 고립이라는 '정상'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1947년에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이 그런 한가한 공상을 끝냈지만, 트루먼과 그의 보좌관들은 여전히 본격적인 방위 계획에 필요한 자금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이 모두를 끝장냈다." "전쟁에 돌입한 지 6개월 동안 국방비 지출 승인액은 130억 달러에서 540억 달러(현재 시세로은 6500억 달러 이상)로 증가하면서, 냉전 기간 전체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했다. '한국이 와서 우리를 구했다'가 이 전쟁에 바친 애치슨의 묘비명이었다."(548-50)

1952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낳은 "군산복합체에 관한 양당의 입장을 재조정한 시기였다. 짧은 쇠퇴 뒤에 한국전쟁은 군부와 산업의 연합을 되살렸으며, 또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시기의 국방 예산 증가와 대규모 상비군을 양산했고, 루스벨트 치하에 시작된 주로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에 있는 다수의 신사업을 영구적인 시설로 변화시켰다. 이와 같이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세력은 이후 전적으로 양당제 기초 위에서 지탱됐다. 그리하여 방위 예산의 실질적 삭감을 옹호하는 것은 정치적인 망각으로 가는 길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골드워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국가 최소주의와 연방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 증오에 가장 헌신적인 공화당 사람이었으나, 애리조나에 새로운 공군 기지나 방위산업 공장을 건설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닉슨과 레이건, 조지 워커 부시는 그보다는 훨씬 독자적이어서, 방위비 예산의 막대한 출혈을 주재해놓고도 연방 예산의 지출에는 반대하는 척했다."(564-5)

"20세기 후반기에 미국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있으면서 미국 내의 거대한 방위산업 집단과 연결되어 있는, 무수한 해외 기지에 영구히 주둔하는 미군이다. 근대 역사에서 처음으로 강대국 미국은 동맹국과 경제적 경쟁자인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한국 등 프랑스와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산업 강국의 영토에 광대한 군사기지 네트워크를 유지함으로써, 유럽에서의 힘의 균형과 이에 기초한 현실 정치의 운용이라는 지금까지의 인식·행위 양식과의 철저한 결별을 알렸다. 이는 미국 역사에서 급진적인 이탈을 의미하는 군도 제국an archipelago of empire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우세한 지위에 있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며, 투키디데스가 살던 시기 그리스어의 원래적 의미의 헤게모니 또는 비영토적 권력이라는 의미를 내포했던 고대 로마의 임페리움imperium(지배권, 명령권)과 일치하는 것이었다."(633)

"1947년, 케넌과 애치슨은 일본의 부활을 위한 전략을 개발했다. 이때 둘 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한 산업 강국인 것을, 따라서 유일하게 방심하지 못할 군사적 위협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케넌은 다시 일본이 군사적으로 강력한 나라가 되어 세기적 전환기, 그러니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동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이루기를 원했다. 반면에 애치슨은 좀 더 기민하게 일본의 산업이 부활해서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또 미국이 정의한 '경제적 동물'로, 그렇지만 전전戰前의 군사적·정치적 위력은 제거된 채 미국의 권역 내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일방주의는 "동아시아 지역의 비공산주의 나라들이 미국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비대칭적 관계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전후의 귀결은 동아시아가 유럽과 비교했을 때 다자가 참여하는 협력과 화해의 기구나 장치를 별로 갖고 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존재한다."(643-5)

정부와 기업 그리고 대학 간 협력의 역사와도 일맥상통하는 실리콘 밸리의 "첨단 산업은 지금까지 미국의 기술적 위용의 화신이자, 최고에 달한 미국 군사력의 근본적 기반이며, 또 미국의 산업적 경쟁자로 일컬어지는 나라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된 후에도 미국의 지위가 거의 변하지 않았던 까닭의 핵심 부분을 차지한다."(758) "산업 강국들이 전후 재건을 이룩할 무렵, 전 세계 GN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부분은 (루스의) 예측대로 1960년경에 35퍼센트로, 1970년경에는 30퍼센트로 떨어졌다. 러스트벨트 지역의 산업 쇠퇴와 베트남 전쟁의 패배는 미국의 비중이 계속해서 추락할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3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생산 분야에서조차 오늘날 미국의 비중은 본질적으로 1900년과 마찬가지로 세계 생산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제조업의 부가가치에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커다란 격차를 두면서 다른 주들보다 앞서 있다."(772)

"21세기 처음 몇 년간은 (유아론적唯我論的 이상주의 프로그램에 휩싸인) 미국의 민족주의와 일방주의, 침략과 주권의 절대주의가 폭발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은 이라크 침략에서 절정에 달했는데, 이 전쟁은 2002년 9월에 확정된 새로운 국가 안보 전략에 따라 시작됐다. 이 전략은 선제 공격이라는 것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거기에는 더 깊은 뜻, 즉 미국의 주권은 불가침이지만, 다른 국가들의 주권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778) "이는 대서양주의에서 이탈함과 동시에 서부로의 팽창주의와 태평양 제국주의 수법으로의 귀환이었다. 이와 같은 이탈과 복귀는 세계에 대한 미국 역사의 일방주의를 재정립하는 것과 같았다. 일방주의는 미국과 동아시아 관계에서 언제나 특징을 이루던 것으로, 가는 길에 원래 있던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서쪽으로 향하고 전진했던 1세기에 걸친 역사를 정교화한 것이었다."(780)

# 미국 일방주의의 원리

1. 미국이 가는 길은 아무도 막아서는 안 된다.

2. 미국만이 최선의 방법을 알며, 미국을 비판하는 자들은 이데올로기적 몽상가이다.

3. 군사력의 동원이 정치적 해결을 낳는데 효력이 있다.

4. 미군 기지와 군사 작전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설 기구화한다.

5. 복잡하게 얽혀 있는 외국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관계를 해결하는 방법은 미국식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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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18-10-1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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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책 새창으로 보기
 
2011년 12월 말에 이 책을 사 놓고서도 책이 너무 두꺼워(900쪽이 넘는다) 차일피일 미루어오다 이번 여름에 몇 주에 걸쳐 드디어 완독을 했다.

이 책은 독자를 압도하는 엄청난 정보량과 흥미롭기 그지없는 풍부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미국에 대한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명암을 함께 볼 수 있다. 미국은 천사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반대로 미국은 악의 화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은 필독의 책이다.

한 두 권의 책을 읽고 미국을 알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은 미국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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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돌 2013-08-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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