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30

일그러진 근대-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 한국경제연구원



일그러진 근대-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 한국경제연구원




제목일그러진 근대-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저자박지향조회/평점2954 / -
발간일2003.05.19ISBN8987787710
출판사푸른역사가격13,000
발간형태A5 334쪽


서평  이병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100년 전 한국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일그러진 근대: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은 100년 전 영국인이 본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을 비교사적 시각에서 평가한 저서다. 영국은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 제도, 시민사회, 과학적·합리적 사고방식, 산업화와 교통통신의 발달 등 근대화의 범례로 평가되고 있고, 근대세계의 축을 이루는 여러 제도들을 가장 많이 만들어낸 근대성의 본향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당시 세계 최강의 국가였던 영국은 일본을 문명의 떠오르는 별로 평가한 반면 한국을 문명퇴화의 본보기로 간주하였고, 또 한국을 정체(停滯)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the Morning Calm)로 칭한 반면에 부지런히 근대화에 앞장선 일본은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Land of the Rising Sun)로 보았다. 떠오르는 태양 일본은 서양문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일본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반면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은 정체 그 자체로 본 것이다. 1백년이 지난 지금 영국인의 이러한 평가는 그 이후 걸었던 양국의 역사적 행보를 볼 때, 지금 되새겨 보아야 할 귀중한 목소리이다.

19세기말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자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과 조지 커즌(George N. Curzon)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을 방문한 사람들은 보통 한국도 방문하였는데 이들의 견해는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철저히 서양문물이라는 척도로 일본을 예찬하고 한국을 비하하는 집단과 일본의 어설픈 서구화보다는 한국의 원시성을 예찬하는 집단이 그것이다. 한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비해 한국이 뚜렷한 특징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의 애국심과 한국인의 무관심, 효율적으로 통치되고 있는 일본과 부패와 착취로 점철된 한국, 가난하지만 예의바르고 깨끗한 일본인과 무례하고 게으른 한국이 그것이다. 이러한 영국인의 대한(對韓) 인식은 일본의 한국지배를 영국이 용인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되새겨 볼만한 가치가 있다.


첫째로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였던 비숍과 커즌은 예의범절, 청결, 근면성 등 서양사회의 기준을 가지고 동양사회를 바라보았다. 비숍은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계층에서 발견되는 무례함에서 야만성을 발견한 반면에 일본에서는 산간마을이나 기차안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발견하였다. 일본식 예의범절과 행동양식은 일본을 문명사회로 평가되도록 하는 결정적 요소 중의 하나였다. 또 다른 요소는 청결이었다. 비숍은 당시 서울을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라 하였고, 커즌은 서울은 눈과 코가 다 같이 괴로운 장소라 하였다. 반면에 일본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깨끗한 곳으로 묘사하여 양국간 평가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더구나 당시 한국인들은 시간관념이 박약해서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고 관찰함으로써 정체된 동양사회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고, 이러한 정체성은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조차 발견된다고 쓰고 있다. 예절바름, 청결, 근면, 시간관념 등 영국인들이 당시 근대성의 근거로 삼았던 기준에 한국은 많이 뒤쳐져 있었다.



둘째로 당시 일본은 효율적으로 통치되고 있었던 반면에 한국은 부패와 착취가 횡행하고 있었다. 비숍과 커튼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게으름의 화신이고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의 전횡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커즌은 1893년 한국을 방문한 이후 “이 작은 나라는 독립을 유지하기에 너무 부패했고 독립을 통해 이득을 얻어내기에는 너무나도 쇠약했다”고 진단하였다. 그는 한국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근본원인은 무엇보다도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 때문이라고 확신하였다. 한국 관리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부패하고 행정은 썩을 대로 썩어 착취가 만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할 동기를 잃었으며, 그 결과 나태가 만연하고 좋은 땅들이 놀려져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었다. 영국인 관찰자들은 한국인들의 게으름이 부패한 정부의 탓이라고 확신하였다. 반면에 영국인들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메이지 지도자들의 단결과 국민들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였다. 영국인들은 일본의 놀라운 진보와 중세적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근대 서양 문명으로의 성공적인 변화의 원인을 애국심에서 찾고 있다. 일본이 1867년 메이지 유신이래 단 한 차례의 내적 갈등만을 겪은 사실은 당시 분열상태에 있었던 한국의 지도층과 큰 대조를 이루었다.


셋째로 문호개방을 서둘러 빠른 서구화를 이룬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쇄국정책의 지속으로 문호개방이 일본에 비해 늦었다. 일본은 1854년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서양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여 급속한 서구화를 추진하였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천왕옹립파들을 중심으로 100여년에 걸친 지방 할거시대를 끝내고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 유신이후 5년째에는 조선보다 한 세대나 앞서 최초의 철도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개항 10년째에 일본은 영국ㆍ미국 등 서구 열강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를 조선에 적용, 가장 먼저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깨웠다.

넷째로 영국인들의 이러한 한국 인식은 결국은 일본의 한국지배를 인정하기에 이르고 이것이 한일합방의 과정을 용이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이다. 영국인들은 한국을 3천 마리의 소를 키우면서 30년 동안 한번도 청소한 적이 없다는 그리스신화 속의 “아우게이아스 왕의 마구간”에 비유하고 이를 청소할 수 있는 자는 일본이라고 보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민족감정이 없다고 판단하였다는 점이다. 왕이나 엘리트는 무능과 부패에, 일반국민들은 무지와 무관심에 찌들어 있는 한국은 희망이 없고 자립하지 못하는 나라이며,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전형적인 영국인의 견해를 피력한 영국의 소설가 드레이크는 “어떤 민족이 강압적으로 통치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내부에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멸망한 민족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조선이 악의 무고한 희생자라고 심약하게 동정해서는 안된다.” 조선이 망하게 된 것을 모두 서구 외세와 이에 결탁한 일본의 탓 만이라고 돌릴 수 있을까, 17ㆍ8세기 실학사상과 상업활동에서 나타난 근대성을 향한 잠재된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민족의 운명을 노회한 사대부들에 저당잡힌 채 백여 년을 허송한 우리들에겐 책임이 없을까라고 필자는 지적한다. 19세기 후반 외국의 밀려오는 압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근대화에 실패함으로써 국권을 빼앗기고 뒤이어 분단과 전쟁을 겪은 것은 그 어떤 요인보다도 내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 드레이크의 민족멸망론은 우리에게는 쓴 소리이지만 역사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100년이 지난 지금 영국인들이 본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정당하였는가? 과거에 비해 어떤 것은 많이 변화하였고 어떤 것은 아직 변화하지 않았는가? 여전히 변화하지 않은 것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한국은 그동안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변모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은 비행기 기내에 비치된 한국 안내서에서 한국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무척 놀란다고 한다. 1백 년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우리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변모하였다. 모두들 지나치게 분주하다 못해 “빨리 빨리”가 우리나라 사람을 대표하는 단어로 친숙하다. 무엇이 이토록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는가? 그러나 아직도 변화하지 못하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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