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7

식민사관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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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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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대표적 이론들
2.1. 타율성론
2.1.1. 반론2.2. 일선동조론
2.2.1. 반론2.3. 당파성론
2.3.1. 반론2.4. 정체성론
2.4.1. 반론2.5. 기타3. 일제 식민사관의 폐해4. 어떻게 볼 것인가5. 주요 식민학자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강점국가가 식민지를 정신적으로까지 굴복시키기 위해 식민지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역사를 식민지 주민에게 가르쳐 세뇌하기 위해 만든 역사관점. 대한민국북한에서는 주로 일제강점기일제가 한국역사를 대상으로 만든 사관을 가리킨다.

하지만 단순히 신라나 조선을 비판했다고 해서 식민사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조선왕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왕조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있어서 조선의 부패한 후기의 모습은 당연히 보기 좋을 리 없었고, 때문에 독립운동가 중에도 조선을 가루가 되도록 까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조선시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는데, 이것을 전부 식민사관의 탓으로 보기보다는 조선 말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조선에 대한 관점이 혼재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 조선사 편수회에서 펴낸 조선사


"식민사관의 집대성"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각종 사료를 발췌, 정리한 사료집의 성격이 강하다. 고려가 망한 뒤 세종대왕~문종 때 "고려사"를 펴냈듯이 조선(대한제국)이 망한 뒤 전대의 왕조로서 펴낸다는 명분은 있었다.[1] 그러나 서문을 읽어보면 박은식한국통사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일제가 정치적 의도로 집필한 책인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조선사편수회 조선사가 어떤 방침으로 사료를 발췌, 요약해서 한국사를 왜곡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작 조선사에는 일본측에 불리한 사료가 수록되어 있기까지 하다. 하루 빨리라도 신속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부분 .

2. 대표적 이론들[편집]
2.1. 타율성론[편집]

"한국역사는 타국, 즉 중국과 일본에 의하여 좌지우지되었다"는 이론.

한반도 북부의 역사는 중국인 위만의 집권과 한사군의 설치로 시작되었고, 한반도 남부의 역사는 고대 일본의 지배[2]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왜곡하여, 한국을 근본없는 놈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의 주변에서 받게 된 압력과 영향을 모조리 '한민족이 타율적이기 때문이다'라고 규정하는 식이다. 한편 1930년대 이후 조선인의 전쟁 동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배포된 내선 일체론 또한 임나일본부설을 비롯한 타율성론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2.1.1. 반론[편집]

이것은 인류가 당연히 서로 교류하게 되는 상황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기면 수메르 문명 빼고는 전부 타율적인 문명이 된다. 또한 고대역사를 19세기 말에 등장하는 민족국가 개념으로 왜곡하고 있는데, 고대로 올라갈수록 민족이라는 개념은 흐려지고 사람들의 집단으로 이주하는 수준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3] 단순히 중국인 위만이 한국인들을 지배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2.2. 일선동조론[편집]

"일본과 조선의 뿌리는 같다"는 이론.

일본 침략의 정당성을 고대사의 오랜 연원에서 찾는 논리이다.

2.2.1. 반론[편집]

이 역시 궤변에 불과하다. 애초에 인종적인 혹은 혈연적인 뿌리가 비슷하다고 해서 오랜 시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살아온 서로 다른 두 집단이 합쳐져야 할 당위성은 전혀 없다. 이렇게 따지면 영국,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 모두 게르만족 내지는 바이킹의 혈통적 연원을 공유하고 있으니 이 국가들은 모두 (그것도 가장 경제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강한 국가가 지배하는 형식으로) 합쳐져야 하는가? 인종의 유사성과 민족적 정체성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또한 한국인일본인의 생물학적인 유사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한반도의 여러 국가와 일본에서 세워진 국가(들)이 명확히 분리된 것은 적어도 초기 삼국시대 이전이며, 이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보다도 이른 시점이다. 한반도의 민족집단과 일본의 민족집단은 1900년대까지 거의 1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를 타자로 인식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일선동조론의 근간이 되는 양국의 "동질성"은 일본이 제국주의를 적극적으로 체화하면서 고안해 낸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허황된 상상일 뿐이다.

2.3. 당파성론[편집]

"조선인은 항상 분열하여 당파를 만들고 서로 싸운다"는 이론.

삼국시대에는 3국으로 분열되어 싸우고, 고려 때는 호족으로 분열되어 싸우고, 조선 때는 붕당으로 분열되어 싸운다는 논리. '조선왕조는 내내 당파 싸움질만 했다'는 주장은 정체성론과도 연결되어 있다.

2.3.1. 반론[편집]

우선 삼국시대에 관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는 스스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 북부지역까지만 미쳤기 때문에 한반도 남부에 있던 삼한 등 다른 고대국가들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이후의 신라와 백제도 마찬가지다. 기록상 삼국 간에 통역사 없이 소통한 것으로 보아 언어는 매우 유사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이들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고려시대로 추측한다. 남북국시대이후 남국에 "신라인"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후삼국시대가 벌어졌다는 것자체가 이미 완벽한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론한다. 중국의 경우 자국의 문자를 한자(漢字, 한나라의 글자)라고 부르고 삼국지에서 유비 정통론이 등장한 것이 원나라때인데, 이는 몽골의 지배를 당하면서 역으로 우리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도 마찬가지로 고려의 통일과 원나라와의 항쟁을 거치면서 정체성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 간의 싸움을 당파싸움이라고 볼 수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 이전에 일본인들 간에 피터지게 싸운 것도 당파싸움인가?

무엇보다도 정치에서 당파가 안 생기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독재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다른 주장을 모두 묵살하더라도 그 밑에서 파벌 싸움은 항상 일어난다. 세상 어디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당파를 유독 한국역사에서만 생기는 악습으로 왜곡하는 논리는 사실 어처구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조선왕조 정치를 말하면 "전하~ 아니되옵니다~" 수준으로 알고 있는 우매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붕당의 폐해도 있었으나, 조선사에서 폐해가 심했던 시기는 붕당이 완전히 붕괴된 시점인 세도정치 시기였다. 붕당일 때는 오히려 건강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민주당과 공화당이 싸우는 미국이 건강한 사회인가? 로동당 하나로 당파싸움이 전혀 없는 북한이 건강한 사회인가?

한편 당파 싸움을 비난하는 일본도 정작 정치기구 내에서 파벌을 지어서 권력다툼을 벌이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아예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 내 육군과 해군이 서로 다른 나라처럼 대립해다 결국 둘 다 망했는데, 한국은 아무리 당파싸움이 심하다 어쩌다 했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간에 기업 파벌문화가 비교된적이 있었는데, 한국 대기업은 기업 소속의 파벌들이 기업 전체의 이익을 위해 대체적으로 협력하는 반면 일본 기업은 기업내 파벌들이 기업 전체의 이익은 제쳐두고 자기 파벌의 경영권 장악을 놓고 다투기만 한다고 일본인들 스스로가 깠다.

다른 나라만 보더라도 영국에서는 찰스 1세 재위 시절 의회파와 왕당파로 갈려 올리버 크롬웰청교도 혁명(내전)이 벌어졌고 미국도 건국 초기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 간의 대립이 나중에 남북전쟁으로 터졌고 프랑스말 할 것도 없다. 심지어 고대 로마옵티마테스포풀라레스의 대립 등 당파 싸움이 내전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었고, 내전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반면 조선은 최소한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당파 없이 협력했고, 당파 싸움이 전쟁으로 치달은 것은 무신년란(이인좌의 난) 정도다.



2.4. 정체성론[편집]

"한국 역사에는 진보가 없다"는 이론. 여기서 '정체'란 자아를 뜻하는 게 아니라 "느리다", 즉 '교통정체' 할 때 그 정체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중세 부재론이 있다. 또는 봉건사회 결여론이라고도 부른다. 시대구분론에 있어서 고대는 노예제사회이고, 중세는 봉건제 사회인데 단선적 역사발전 이론에 따르면 각시대는 순서대로 오는 것이다. 그런데 에도막부전국시대처럼 확실히 중세의 봉건제로 치환할 수 있는 시대가 있는 일본에 비해서, 한국사에서는 이렇게 중세의 특징인 봉건제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은 봉건사회라는 중세를 거치지 않았으니 조선시대도 고대사회라는 것이다.

그 외에 조금 마이너한 형태도 있다. 이 인간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사에는 무인(武人)이 왕위를 찬탈한 적은 이성계역성혁명뿐이므로 일본사와 비교했을 때 중세가 없다고 볼 수 있단다. 이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 역시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유신을 비롯한 여러 개혁을 시도하면서 유럽 열강과 자기들을 동일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연구하며 동아시아에서의 우월감을 강조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사무라이=봉건기사론, 바쿠후(막부)=의회론 등이다. 일본의 세계사적 발전 틀은 강조하며 단지 무인집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선 양반 체제를 폄하했던 것.

어느 쪽이건 조선은 고대이고, 일본은 중세를 거쳐서 근대에 진입한 국가이므로 수준의 차이가 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조선은 스스로 역사적 발전을 통해서 중세로 진입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내용.

2.4.1. 반론[편집]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는 고려시대를 중세, 조선시대를 근세로 규정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정체성론에 대항하기 위해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한민족의 주체적인 발전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맹아론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국정 국사 교과서에는 근대 태동기라는 시대적 구분이 존재하며 한국근현대사과목에서도 본격적인 근현대사를 다루기 이전에 근대의 태동이라는 단원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4]

그런데 굳이 역사의 흐름을 반드시 고대, 중세, 근대의 틀로 규정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서양사관의 아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고려시대를 고려시대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중세라는 서양개념에 때려맞출 필요가 있느냐는 것. 다만 이러한 왕조사적 시대구분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순환론적 역사관의 함정에 빠지게 되므로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그렇다고 아직 고대-중세-근대의 3시대 구분법을 대체할 만한 확실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편 종교에 기반한 귀족중심적 국가 체계는 다양한 부족들이 가장 강력한 세력을 중심으로 연합을 했던 고대 국가 체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 구분을 단순히 서양 중심의 역사관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서양적인 관점에서의 '중세 봉건제'의 모습은 애초에 카톨릭 문화권 중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일각에나 들어맞는 것이고, 당장 신성로마제국만 해도 이들의 사회상과는 일정한 차이점이 있었다. 게다가 그 중요한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이탈리아만 해도 사회적으로 고대 이래의 공화정적 도시국가 전통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상태였다(베네치아 공화국이라던가). 특히 이런 점에서 근래 주목받고 있는 게 동로마 제국의 사회상이다. 하물며 폴란드나 헝가리와 같은 동유럽의 역사는 어떨까? 즉 일국사에 기초한 정형화된 틀로 중세를 해석하는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중세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중세의 핵심은 농노의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봉건제[5]이다. 이걸 거친 곳은 전세계 역사에서 유럽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시대발전론을 기반으로 한다면, 저런 시기를 거쳐야 다음 시기로 나간다는 것인데 유럽을 제외한 국가들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귀족제 국가'는 역사속에서 막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역사속에서 종교가 없는 나라가 없고, 민주주의가 나오기 이전 시대에 중앙집권이 안되면 나오는게 귀족정이기 때문이다. 막말로 이 조합은 고대 전제국가 등장 이전의 부족국가 시대에 집어넣어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그리고 강력한 중심으로 연합한 국가체제는 유럽만 해도 절대왕정시대가 있다. 이 때는 또 왜 고대가 아닌가? 이 때문에 역사학계는 정치형태나 종교에 따른 시대발전론을 폐기한지 오래이다. 괜히 마르크스식 시대구분론이 현대 시대구분론의 대세가 된 것이 아니다. 이 경우는 다시 초기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농노와 같은 비효율적인 경제구조를 모든 사회가 거쳐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공교롭게도 일본은 에도막부의 봉건제 이후 메이지유신로 넘어가는 구도가 봉건제의 중세→자본제의 근대로 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6] 고중근 역사관을 덮어씌우기가 쉽지만, 세계의 역사를 획일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더욱이 조선왕조는 관료제 사회였으므로 정치체제만 놓고 보면 근대국가다.

애초에 일본이 근대화를 하게 된 배경은 자산가 계급의 자발적인 각성과 시민 운동이 아니라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끌어낸 개항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후에 자산가들이 주가 되어 의회를 구성하기도 했지만 막부 체계를 붕괴시키고 나서 귀족 체계를 모방해 도입함으로써 만민 평등에 기반하는 서양의 시민 사회와는 거리를 두게 되었고 재산 수준에 따라 차별적인 투표권을 부여해 어정쩡하게 모방한 수준에 그치게 되었다.

당장 그 후쿠자와 유키치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것을, 왜 현실은 그렇지 못한가"하고 개탄한 현실이 당시 일본 사회가 실질적인 불평등 사회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되려 당시 일본은 근대가 아니라 근대와 중세의 중간 쯤에 있었고, 다이쇼 시대를 거치고 나서야 근대적인 평등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고, 결국 패전에 이르고 만다.

2.5. 기타[편집]


영웅 죽이기


3. 일제 식민사관의 폐해[편집]

한마디로 엄청나다.

위와 같은 주장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60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7] 이 때문에 8.15 광복 이후 한국 역사계는 민족주의와 반식민사관적 성향을 강하게 띄게 되었으며, 때문에 최근에는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비판으로, 1980년대 이후 통계학적인 분석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맹아'가 과장과 비약이 심했다는 점을 비판을 많이 받았다.

민족주의 사관을 이끌어간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사학자 계통보다는 오히려 이병도를 위시한 실증주의 계통이 많다.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학설의 체계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편이고(때문에 의의는 높게 사더라도 학문적으로는 많은 비판을 하는 학자들이 많다.) 독립운동과 광복 직후 정치 격변기에 엮여 학자 자격의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박은식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사망, 신채호는 독립 운동하다 옥사, 안재홍정인보는 납북 등)이다. 물론 실증주의 계통이 모 씨들 말처럼 반민족적이라는 이야기는 죽어도 아니다. '식민사관의 극복'은 일본의 개드립을 묻어버리는 고고학적 발견과 문헌 실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식민사학에 반대하기 위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역으로 자신들이 마치 역사에 정통한것 마냥 행패부리는 이들이 등장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으며 민족주의적인 기준에 안맞거나 자기에게 눈에 가시 같은 학자를 앞뒤안가리고 이단 취급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식민사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진실된 역사를 숨겨왔다는 음모론적인 마법의 단어가 되어버리니 어찌보면 식민사학의 폐해는 아직까지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8]

그런데 민족주의 사학이 꼴보기 싫다고 다시 식민사학적인 발언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있으니[9] 이건 이거대로 상당한 문제다.[10] 게다가 이러한 민족주의 사학의 성장은 1970년대에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비판까지 나오면서[11] 군사 정권기에 대한 비판이 이와 얽히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말만 나오면 무조건 학을 떼면서 그런거 없다라는 강경한 반대파가 나오는가 하면, 자기가 민족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적인 우월감을 표현하는 형태까지 나타나는 것도 문제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국까는 양반이고, 외국빠로 변신하는 것이고.

이렇게 없던 사실을 지어낸다고 식민사관이 극복되는 것이 절대 아니며 그런 짓은 한국은 비정상적인 반일 민족주의를 가지고 낙인을 찍어 탄압한다고 비난할 수 있는 무기를 갖춘 식민사관학자들을 더욱 기세등등하게 만들어주는 행동이 될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 종북계열의 학자나 지식인들 중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 같은 식민사학과 같은 방식으로 좋은 점은 감추거나 축소하고 나쁜 점은 부풀리거나 조작하여 대한민국을 정통성이 없는 국가로 매도하고 있다. 이른바 환빠에 대비하여 식빠라고 부른다. 친일파나 일제라면 학을 때는 자들이 그들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익계열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이승만 정권을 띄울 목적으로 조선사를 필요이상으로 폄하하고, 나아가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움직임까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작 독립운동가에, 혐일에 가까운 스텐스였던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한 면이 아닐수 없다. 아마, 광복초기, 현실적인 이유로 이승만이 손잡을수밖에 없었던 친일파들을 띄움으로서 부족했던 친일정당이었던 한민당계의 정당성을 채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들이 주장하는 역사라는게, 식민사관과 접점이 아니라 그자체로 볼수 있는데, 그 폐해가 매우 심각하다.

4. 어떻게 볼 것인가[편집]

식민사관을 대함에 있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식민사관의 중점이 당대의 한국인에게 말 그대로 식민지인 수준의 열등감을 갖게 만드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제는 단순히 한국 고대사를 비하하는 것만을 식민사관의 방향으로 삼지 않았다. 만주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단군 = 스사노오 설을 내세우고 단군을 오히려 높이 사기도 했으며,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북방 민족 - 한반도 - 일본에 걸친 문화권이 '불함문화권'[12]으로 묶일 수 있다는 최남선의 사관은 후에 내선일체론, 만선 사관 등과 부합해 친일 사관으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로인해 '신라 때문에 우리는 대륙을 잃고 이 좁은 반도에 갇혔으니 안 된다'는 식의 생각으로 생겨나는 신라나 조선 등에 대한 비난은 딱 만선사관에 부합한다.일제로부터 국권을 찬탈당한 조선이라는 나라를 한국인 스스로 어리석은 나라라 부정하게 만들어서 일제강점기의 정당화를 선전하려는 용도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굳이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과장과 허위를 거듭하며 한국사를 재단할 필요는 없다.

또 상술된 식민사관과 조금이라도 맥이 닿는다고 '식민사관'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태도 역시 지양해야 한다.[13] 이를테면 '보니까 조선 도시 발달이랑 화폐 경제 측면에선, 동아시아 3국 중 미진한 것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라고 한다해서 정체성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일제의 식민사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래서 미개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했다.' 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사에 대한 고의적인 폄하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어떤 주장이 함부로 식민사관으로 치부되어선 안되며 해석상 이견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옳다.

2012년 한국사 과목이 신설되기 이전의 국사 교과서는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한 안티테제로서 쓰여진 측면이 다분하다.

타율성 ↔ 내재적 발전론
정체성 ↔ 내재적 발전론(특히 자본주의 맹아론)
공리공담 ↔ 실학
사대 ↔ 민족주의
당파 ↔ 붕당정치

결론적으로, 역사를 놓고 벌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싸움들은 서양의 역사발전도식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현재를 가지고 과거를 왜곡하는 등의 수준에서 벗어나 한국역사와 동아시아역사를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새로운 사관이 성립되어야 근원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5. 주요 식민학자[편집]


미시나 아키히데


쓰다 소우키치


아유카이 후사노신


이마니시 류

6. 관련 문서[편집]


간도회복



[1] 전근대 중화세계에서는 이것을 왕조교체에 따르는 당연한 의무로 인식했다. 일본은 왕조교체가 없었으므로 전례가 없지만 중국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며, 근현대에도 이는 계승되어 중화민국은 청사고를 편찬했으며 현재 중국 정부도 '청사'를 편찬 중이다.[2] 임나일본부 자체는 17세기 이후 일본 국학파가 일본서기, 고사기를 연구하면서 만든 개드립으로 정한론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대한제국 시기 현채 등이 쓴 교과서에도 이런 개드립을 생각없이 그대로 등재하기도 했다. 이를 비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학계에 대두된 인물이 바로 신채호.[3] 고대에는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쫓으러 이동하는 게 아니라 먹을 거 찾으려고 이동한 거다. 구석기 시대 참고.[4] 다만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자본주의 맹아론 항목만 보아도... 일단 현재로서는 틀린 주장이다. 하지만 아래에서 서술하듯, 고중근대 구분은 서구라는 특수한 역사 상황 하에서 형성된 사관일 뿐이라 할 수 있다.[5] 고대는 노예 노동이 주요한 수단인 사회이다. 노예가 존재했다를 기준으로 하면 남북전쟁 시기 미국이 고대가 되고, 전제군주가 있었다가 기준이 되면 절대 왕정 유럽이 고대가 된다.[6] '가는 듯' 으로 보이나, 일본의 봉건제와 중국 주나라의 봉건제, 중세 유럽의 봉건제는 다 같은 '봉건제' 이지만 그 실상은 많이 다르다. 중국 주나라는 혈연적 봉건제, 중세 유럽은 쌍무계약적 봉건제인 반면, 일본의 봉건제는 상하관계가 뚜렷한 체제이기 때문. 유럽의 봉건제에서, 주군이 봉신에게 '할복하라!' 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자[7]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이것 때문에 한국인들이 자기 색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8] 대표적으로 만선사관을 들 수 있다. 이는 만주와 한반도가 단일한 역사, 문화적 지역이었고 한반도는 만주에 종속됐다고 보는 관점이다. 일제의 만주 진출에 학문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다. 그런데 재야사학이나 일반 시민들도 "만주의 '고토'를 회복하지 않는 이상 한국은 강대국이 되기 어렵다"거나 "만주를 영유하고 있을 때가 전성기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넓은 국토를 지닌 군사적 강대국, 다시 말해 위대한 고대사를 말해야 비로소 식민주의 역사학에서 탈피한다는 강고한 믿음이 오히려 식민주의 역사학의 사유인 것이다.[9] '백의민족은 무슨 염색 기술 없었던 거지'(흰색 참조), '자생적 근대화론이 말이 되나 일제가 키워준 거지' - 식민지 근대화론을 식민지 시혜론으로 연결한 것, 등등...[10]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식의 양자택일만을 하려는 데서 생긴 문제로서 이는 논리학에서도 다루는 문제이다. 꼭 이거 아니면 저거일 필요는 없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논리적 오류이며 매우 협애한 사고력을 드러낸다. 세상은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무수히 많은 명도의 회색들이 있으며 심지어 무채색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색깔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11] 대표적인 예가 이순신을 군사 정권 시기 의도적으로 과하게 밀었다면서 등장한 원균 맹장설.[12] 여기서 불함은 '밝음(明), 빛'을 의미한다.[13] 윗 경우가 식민사관자들의 지향하는 바라면 이것은 환빠와 같은 에스노센트리즘의 유사역사학자등리 지향하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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