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1

도산 안창호를 읽고(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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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를 읽고(독후감)
TJYKA 2003-09-24 22: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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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안창호를 읽고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일본의 실력을 모르는가?"

  "나는 일본의 실력을 잘 안다.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나라다. 나는 일본이 무력 만한 도덕력을 겸하여 갖기를 동양인의 명예를 위해서 원한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인 대한을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니될 것이다. 원한 품은 2처만을 억지로 국민중에 포함 시키는 것보다 우정있는 2천만을 이웃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득일것이다. 내가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 " 

  도산을 취조하던 검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도산 안창호는 일생을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헌신하다가 1938년 3월 10일 옥고로 인한 병으로 순직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애국자요, 지도자요, 수양인이었으며 선각자였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외교활동을 하여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였고, 김구선생은 무력을 통해서라도 독립을 이루어 보겠다고 했지만, 안창호 선생은 보다 장기적인 방법, 즉 국민들을 교육하고 계몽함으로써 독립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그는 사(思), 언(言), 행(行)에 있어서 모든 사람의 본보기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대동강 하류에 있는 도롱섬의 농가에서 가난한 선비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대동강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꽃 가꾸기를 즐겨하며 모란봉과 구월산을 오르내리며 대 자연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뛰어난 웅변가였다.

  "오늘 대한에 주인이 되는 이가 몇이나 되십니까. 대한인이 된자는 누구든지 명의상 주인은 될 것이되, 실상 주인은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 주인이 아니면 여객인데 주인과 여객을 무엇으로 구분할까요? 그 민족과 사회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심이 있는 자는 주인이요. 책임심이 없는 자는 여객입니다. "

  그는 평양의 쾌재정의 연설에서 그 당시의 탐관오리의 행색을 낱낱이 열거하며 낡고 그릇된 풍조를 개탄하고 이를 비판하여 민중의 새로운 자각을 호소하였습니다. 압박과 세금징수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철이 들면서 그는 조국의 현실을 보며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외세의 난무장이 되어 가는데 힘은 없고 이름뿐인 대한의 독립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없구나!'
  '외국이 마음대로 우리강토에 들어와서 설치는 것은 우리나라에 힘이 없는 까닭이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청일 전쟁을 치름으로써 어찌하여 청나라와 일본이 우리나라에 군대를 몰고 들어와서 전쟁을 하게 되었는가는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도처에서 동학의 불길이 치솟는가 했더니, 이듬해 1895년 봄 전봉준이 처형되고 4월 17일에는 마관조약이 조인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난 것은 18세의 일이었습니다. 조선은 국호를 대한으로 고쳐 독립국임을 자처하게 되었지만, 동서열강의 각축전 앞에서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습니다. 이때 한국이 할 일은 러시아와 일본이 덤벼들기 전에 국력을 서둘러 배양하여 독립의 기초를 굳건히 함에 있다고 직감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관리들의 생각은 외세에 아첨하며 세력을 오래 누리려는 데 급급할 따름이었습니다.

  '힘이다. 힘이다!'

  '힘이 독립의 기초요 생명이다. 힘이란 뭐냐? 국밍이 사는 길인 힘은 도덕, 지식 단합으로 국민다운 국민이 되어야 함에 있다. 그러자면 국민 중에 덕과 지식과 애국심 있는 개인이 많이 생겨야 하고, 그러자면 나 자신부터 솔선해서 그러한 사람이 되어 이 나라에 힘을 더해야 한다. 공부하여 힘을 길러야 한다.'  청년 도산은 비장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등의 강대국들은 경제로 개발도상국들을 탄압하고 견제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개방되고 세계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이때, 우리 젊은이들이 실력이 없고 비젼이 없이 현실문제에 매이고 오락과 쾌락 문화, 안일문화에 젖어 있는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어두울 뿐입니다. 우리가 당당하게 강대국과 맞서고 친구로서 그들과 겨루려면 힘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힘을 기르려면 배워야 하며 실력을 실러야 합니다. 개인 개인이 실력있는 자로 자라게 된다면 우리학과가 우리 대학이 우리나라가 실력있게 됩니다. 점진 점진 점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땅 대학에서 우리도 세계를 품으며 학과에 전문하고 어학에 전문합시다. 영적 실력을 키우고 세계지성인들을 말씀으로 섬기며 당당히 공부할 수 있는 열국의 아비요 어미들로 자라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도산 안창호는 나이 17세때 서울 가서 공부할 결심을 하고 상경하여 예수교 장로회에서 건립한 구세학당(뒤에 언더우드 학교로 불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세계관과 인생관, 기독료 사상에 접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믿으며 이웃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기본정신을 터득하고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는 황국협회와 독립협회가 유혈 난투극을 벌이고 있을때 22세의 나이로 점진학교를 고향에 세우고 교육에 몰두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초등교육기관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최초의 사립학교였고 또한 남녀공학이었고 근대화의 선구적인 불꽃이었습니다. 점진은 실력을 길러 때를 기다리는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출발점입니다. 기회는 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잡으려면 먼저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러한 점진공부는 도산의 수학 태도였고 교육의 근본 이념이었습니다. 다음은 점진 학교의 교가입니다.

점진 점진 점진 기쁜 마음과
점진 점진 점진 기쁜 노래로
학과를 전문하되 낙심말고
하겠다 하세 우리 직무를 다.

점진(漸進)이란 안창호의 세계관이요 인생관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운 점진학교를 본궤도에 올려놓자면 교육자 자신이 먼저 새롭고 전문적인 교육학을 연구하고 기독교 교육이념도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미국 선교사인 밀러의 주선으로 도미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향하여 한 걸음 한걸음 나가야 하는데도 두걸음을 가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다. 또한 두 단계씩 비약하려는 데 우리의 좌절이 있다. 착실한 발전은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그리고 벽돌을 한 장씩 쌓아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참의 인간이었다. 그가 미워한것은 거짓이었다. 그는 참과 진실을 추구하였다. 그가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우고 청년들을 교육할때도 "참"을 그의 교육이념으로 삼았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꿈에서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고 했다. 그는 거짓이 우리나라를 죽인 원수라고 했다. 거짓이 협잡을 낳고, 협잡이 불신을 낳고, 불신에서 모든 불행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는 사랑의 사람이었다. 사랑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릭프롬은 그의 유명한 책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도 훈련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도산은 서로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친히 사랑을 실천하였다. 도산은 민족독립운동을 하다 반신불수로 고생하던 동지 아갑이란 사람에게 약값과 치료비 1,000달러를 보내느라고 운하공사에서 인부가 되어 수개월 동안 힘든 일을 했고, 도산의 부인도 삯빨래를 하여 그 돈을 보탰다고 한다.
그는 미소를 공부하고자 했다. 우리들은 서양인에 비해 아직 미소짓는 훈련이 덜 되어 있다. 도산은 스마일이란 말을 퍽 좋아했다. 갓난애의 '방그레', 늙은이의 '벙그레', 젊은이의 '빙그레', 모두 아름다운 표정이다. 빙그레 웃는 미족을 만들자고 했다. 오늘날은 도산이 살았던 시대보다 더욱 웃음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의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야 하며 어린이들에게 웃는 모습을 가르쳐야 한다.

그는 극기 수양의 인간이었다. 그는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 모두를 아무렇게나 하지 않았다. 그는 얼렁뚱땅하기를 매우 싫어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얼럴뚱땅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최선이 되기 어렵거늘, 하물며 얼럴뚱땅으로 천년대업을 세울 수가 있으랴?"

그는 높고 완전한 인격의 경지를 향해서 부단히 자기를 반성하고 정성껏 수양하고 쉼없는 훈련을 했다. 사도바울과 같이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 극기훈련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인 모두가 인격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이 되라."

그는 자아혁신과 자기 개조를 통해 민족 혁신과 민족개조의 운동을 하자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안창호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그의 지도자적인 자질입니다.

도산은 어려서부터 자기의 좁은 세계를 극복하고 넓은 세계를 품었습니다. 세계정세에 밝았고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였습니다. 미국에 유학의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도 이민 동포들을 둘러보고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까지 미칩니까? 우리가 지도자가 되려면 좁은 자기 마음을 찢고 찢어야 합니다. 우리마음이 하나님중심으로 온전히 바뀔때,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파도처럼 넘쳐날때 우리는 세계의 참다운 지도자가 될수 있습니다.

도산은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며 자기개혁과 실력을 먼저 쌓습니다. 대학의 이념은 사회의 지도자 양성에 있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며 학문을 탐구하며 더불어 더 중요한 인격을 도야하는 것입니다. 인격의 도야는 깊은 자기 성찰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거울앞에 나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듯이 하나님앞에 우리의 내면을 아름답게 회개의 작업을 통해 이루나가야 합니다. 또한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도산은 그 당시의 신학문과 기독교 사상을 몸으로 습득하고자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당대 석학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습니다. 도산의 배우고자 하는 자세 또한 배울만 합니다. 


도산은 또한 힘없는 이론가가 아닌 행동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몸소 솔선 수범하였고 궂은 일을 먼저 앞장서서 하곤 하였습니다. 또한 자기 혼자만의 이론이 아닌 다른 동지들과 힘을 모으고 뜻있는 사람들을 잘 얻었습니다.

이렇듯 일개 약소국의 한 젊은이의 힘은 민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도 이나라의 주인이요 지도자들입니다. 우리 젊은 우리들이 하나님안에서 뭉치고 하나가 될때 전 세계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산 안창호의 위대한 삶과 인격과 지도자의 자질을 배워 한 영혼의 목자요 실력있는 목자요, 장차는 세계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도자로 자랄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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