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8

박노자 글방 :: 한국: 개혁과 혁명

 박노자 글방 :: 한국: 개혁과 혁명

만감: 일기장 2017/01/08 02:04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92402

한국사를 공부하게 되면 식민지 시대의 한 가지 특징은 바로 눈에 띕니다. 20-30년대가 "사회주의"가 조선에서 유행하게 된 시기이었는데, 급진주의인 볼셰비즘과 아나키즘은 국내에 널리 퍼져도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민주의란 거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죠. 물론 사민주의에 관심을 보인 일부 개인들, 예컨대 연희전문학교의 이순탁 같은 인테리들은 있었죠. 또한, 김명식처럼 1920년대 중반 이후 지하 당 활동과 거의 무관하게 된 일부 좌파 지식인들을 코민테른 계통의 정간물에서 "사민주의자"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예컨대 조소앙 선생의 그 유명한 삼균주의는 분명히 사민주의와 통하는 점이 만만치 않았지요. 그건 다 그렇지만, 식민지 조선에서의 사민주의는, 공산주의와 거의 비교 못할 만큼 매우 미미한 경향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부 요인들은 아주 자명합니다. 일본 공산당이야 당연히 조선의 독립을 외쳤지만, 일제 시대의 일본 내지 합법 사민주의 정당들은 식민지 독립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인 입장에서 보면 어느 쪽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지 불보듯 뻔하죠. 거기에다가 조선에서는 지역 의회 투표권은 일부 고소득자에게 주어진다 해도 정당의 후보로서의 출마가 불가능했습니다. 일본 국회 투표권을, 호적을 일본 내지로 옮겨야 주어질 수 있었습니다. "선거"가 이 정도로 의미 없는 상황에서는, 주로 의회활동을 지향하는 사민주의는 안착될 리가 없었죠.


그런데 또 이것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좌파운동의 기반이 되는 민중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고전적 의미의 "무산자" 상태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소작인의 소작 계약도 1-2년, 길어야 3년, 노동자의 근로 계약도 아주 길어야 1-2년이었고, 상당수는 구두계약이었죠. 그러니까 직장 안전의 보장이란 전무했죠. 임금은 생존선을 왔다갔다했으며, 대부분의 도심 노동자들이 주거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복지혜택은 꿈도 꿀 수 없었고요. 공립 초급 학교 교육도 무료가 아니었기에,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가 교육제를 통해 신분상승될거라는 기대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런, 거의 완전한 "무산" 상태에서는 사민주의의 "사회개혁" 이야기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이라도 주어지고, 또 한국 전쟁의 화염 속에서 급진주의자들이 거의 다 월북하거나 학살 당하고 나서야 전형적인 사민당인 진보당이 도심 노동자들의 민심을 확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급진당파가 진보당과 합법적 경쟁을 할 수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 것인지, 또 알 수가 없죠.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상황은 어떤가요? 오늘날 한국 노동계급은 "급진적 변혁"을 추구할 이유가 있는 "무산자"에 더 가까울까요, 아니면 점진적 개혁 그 이상의 뭔가를 추구하기에 이미 이런저런 "재산"과 "혜택"들이 너무 많을까요? 글쎄요, 한국의 세계체제 속의 위치가 중간적인 "준주변부"인 만큼 노동자 계급의 상황도 다소 양면적입니다. 일면으로는 대기업 숙련공의 임금은 아시아에서 다소 높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물론 핵심부와 비교됐을 때에 전혀 높지 않죠. 제조업에서의 평균 임금은, 미국의 절반 정도 될까 말까 합니다. 단, 그 임금이 가진 구매력이 웬만한 서구 국가의 제조업 노동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 세금이 아직도 낮기 때문이고, 둘째, 노동자들에게의 생필품 공급 분야에서 종사하는 영세업자나 마트 알바, 외식업체 알바 등등의 엄청난 경제적인 희생으로 생필품이나 외식 가격이 핵심부보다 꽤 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대기업 숙련공의 "무산자" 탈출의 전제조건은, 바로 편의점 알바생이나 마트 계산대 비정규직 아주머니의 "무산자" 신세입니다. 그렇다면 대기업 숙련공들은 "노동귀족"인가요? 절대 아닙니다. 개인 임금은 약간 높아도, 세금이 낮은 만큼 사회임금도 낮죠. 즉, 오늘날 조선업이나 해운업처럼 기업이 도산되면, 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란 약 10개월 정도 되는 실업수당뿐입니다. "노동귀족" 비슷하게 되자면 북구처럼 몇년간 임금소득의 60-70%나 되는 실업급여가 보장돼야 하는데, 이건 한국에서는 달나라 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대기업 중년 남성 숙련공 같은 경우에도, 해고되는 순간 120만원짜리 비정규직 고용이라도 찾으러 나서야 하는 "준무산자"에 가깝습니다. 해고가 안돼도,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대서 아이를 "명문대"를 통해 출세시키기에 무리가 있을 거고, 주거 소유도 다소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투표권이야 있지만, 대기업 조직노동자에게 기대는 정의당 같은 우파 사민당은 복지개혁을 주도할 만한 역량을 아직 갖춘 것도 아닙니다. 의료보험의 보장성은 약 50%에 불과하고, 국민연금만 믿고 노후설계할 수도 없고...말그대로 "준무산자"에 근접하죠. 그러면 대기업도 남성도 정규직의 숙련공도 아닌 경우라면? 노동의 불안성이나 임금착취 정도, 노동 강도, "두잡족"의 실질 근로시간 등으로 봐서는, 한국의 불안노동은 마르크스 시대의 "무산자"들과 거의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물론 투표권과 아주 기초적인 국가복지제 (의료, 실업, 노후보험)의 존재는 차이긴 하지만, 크게 봐서는 거의 "무산" 상태입니다.


지금 "평화 집회"를 크게 찬양하는 제도권 언론들의 소리가 높지만, 저는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궁극적으로 "개혁" 프레임에도 "평화" 프레임에도 갇히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평화 집회"를 통해 "개혁"만을 촉구하기에는, 한국 노동계급이 처하는 상황은 너무나 처절하고 비극적입니다. 그 비극성은, 경제 붕괴가 초기에 불과한 오늘날 시점에서는 아직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위기가 보다 심화될 금년과 내년에는 보다 분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 80년대 이후에 거의 잊혀진 "혁명"에 대한 담론은, 다시 시의성을 얻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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