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개조론 5]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한가
나는 이 논문의 상편에서 민족개조란 가능한 것이라는 뜻을 암시하였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민족개조운동을 논평할 때에,
단체사업으로만 하면 민족개조는 가능하다는 확신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몸소 민족개조운동을 개시하려고 드니 이것이 가능한가 아니한가를 한번 분명히 알고 싶어집니다.
전절에 말한 바와 같이 민족개조란 곧 민족의 성격,
즉 민족성의 개조니,
민족이란 개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가 본절에서 토론할 문제외다.
전에 인용한 르봉 박사는 민족적 성격에 근본적 성격과 부속적 성격의 이부(二部)가 있다 하여 부속적 성격은 가변적이나 근본적 성격은 불가변적이니,
오직 유전적 축척으로 지완(遲緩)한 변화가 있을 뿐이라 합니다.
크롬웰시대의 영인과 금일의 영인과는 거의 딴 민족같이 보이지마는,
기실은 그 부속적 성격이 특수한 대사건,
대변동의 영향을 받아 변하였음이요,
그네의 근본적 성격에는 거의 아무 변화도 없었다 하고,
또 나폴레옹 대제의 종순한 신민(臣民)이던 불국인과 바로 몇 해 전 대혁명시대의 불기 자유하던 불국인과는 근본적으로 딴 성격의 민족인 듯하나 기실 전제적으로 지배받기를 좋아하는 라틴족의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주위의 사정,
무슨 대사변,
또 교육은 어떤 민족의 부속적 성격을 변하게 할 수 있으되,
그 근본적 성격은 변하게 할 수는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부속적 성격을 일시 변하더라도 얼마를 지나면 다시 그 근본적 성격이 우등(優騰)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고 박사는 근본적 성격의 예로 앵글로색슨족의 자유와 자치를 좋아하는 성격,
라틴족의 평등과 피치(被治)를 좋아하는 성격을 들었습니다.
박사의 주장대로 하면 앵글로색슨족의 성격은 아무리 변하더라도 자유를 좋아하는 성격은 변치 못하리라,
그와 반대로 라틴족의 성격은 아무리 변하더라도 평등을 좋아하는 성격은 변치 못하리라 하게 됩니다.
또 박사는 민족의 성격을 해부적 성격과 심리적 성격 둘로 나누어,
우리가 흔히 민족성이라고 일컫는 바를 심리적 성격이라 하고,
체질의 특징을 해부적 성격이라 합니다.
그래서 박사는 일 민족의 해부적 특징의 근본적인 몇 가지가 변할 수 없는 모양으로 일 민족의 심리적 특징,
즉 민족성의 근본적인 몇 가지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가령 황색인종의 피부의 황색 같은 것은 불가변적인 특징이외다.
그러나 해부적 특징에 이렇게 고정불가변한 것이 있다고 거기서 유추하여 심리적 특징에도 그런 것이 있으리라 함은 한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 과학적으로 정확한 증명을 하기는 어렵지마는,
여러 가지 역사적 실례로 보건대 그것이 진리인 듯 합니다.
박사가 이미 앵글로색슨족과 및 자국인인 라틴족도 에로 들었지마는 일찍 이민족으로서 완전히 동화하여 동일한 성격의 민족을 성(成)하였다는 전례를 보지 못한 것으로 보면,
각 민족에게는 도저히 변할 수 없는 일개 또는 수개의 근본적 성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합니다.
특히 개인 심리학상으로 보더라도 각 개인마다 해부적 특징이 있는 모양으로 갑이면 갑,
을이면 을 되는 개성에 근본적 특징이 있어,
이것은 일생에 변하기 어려운 것을 보더라도 개인의 성격의 총화라 할 만한 민족성에도 변할 수 없는 근본적 성격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 하면 우리는 일종의 실망에 빠지게 됩니다.
민족성의 개조란 불가능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깁니다.
만일 민족의 근본적 성격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 하면,
다시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르봉 박사의 설과 같이 민족의 근본적 성격은 불가변의 것이라 하고,
민족을 개조할 방법을 연구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는 두 가지 경우가 있겠습니다.
① 근본적 성격은 좋지마는 부속적 성격이 좋지 못한 경우와,
② 근본적 성격 자신이 좋지 못한 경우와.
그런데 첫째로 말하면 설명치 아니하여도 주위와 대변동과 교육의 힘으로 개조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고,
둘째가 가장 어려운 문제이외다.
곧 근본적 민족성이 좋지 못하고는 그 민족은 생존 번영할 수가 없거늘,
이것은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 하면,
그 민족의 운명은 절망적일 것이외다.
그러나 역시 개조할 길이 있습니다.
근본적 성격이 좋지 못한 민족이라고 그 민족의 각 개인이 다 좋지 못한 사함일 리는 만무하니,
그 중에도 소수나마 몇 개의 선인이 있을 것이외다.
마치 부패한 유태인 중에서 예수 같으신 이가 나시고 그의 사도들 같은 이들이 난 모양으로,
이 소수의 선인이야말로 그 민족 부활의 맹아(萌芽)외다. 십인의 선인이 없으므로 하여 소돔성이 천화(天火)에 망하였다는 말도 진실로 의미심장한 말이외다.
이 소수의 선인,
다시 말하면 그 민족의 근본적 악성격을 사장 소량으로 가진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먼저
‘이 민족은 개조해야 한다’는 자각과 결심이 생깁니다.
그 사람이 자기와 뜻이 똑같은 사람 하나를 찾아 둘이서 동맹을 합니다.
먼저 자기를 힘써 개조하고,
다음에 개조하자는 뜻이 같은 사람을 많이 모으기로 동맹을 합니다.
차차 삼 인,
사 인씩 늘어 수천만의 민족 중에서 수백 인 내지 수천 인을 모집하여 한 덩어리,
한 사회,
한 개조 동맹단체를 이룹니다.
그리하면 그 단체의 각원은 더욱더욱 수련되고,
개조되어 더욱더욱 좋은 사람(문명한 국가의 일공민 될 만한 덕행과 학식,
기능과 건강을 가진 사람)이 되고,
이러한 바른 자각과 굳은 결심과 오랜 수양을 가진 사람들의 단체이기 때문에 그 단체의 유지와 발전이 썩 잘 되어갈 것이외다.
이에 그네는 아직 개성이 고정되지 아니하고,
그중 우수한 소년 남녀를 뽑아 그 동맹에 가입케하여,
일면으로 그 동맹원의 수를 증가하며,
일면으로 그 단체의 인력과 재력을 충장(充壯)케 하여 학교,
서적 출판 기타의 사업으로 일반 민족에 크게 선전하는 동시에 차대의 후계자인 자녀에게 새 이상의 교육과 환경을 주어서 더욱더욱 신분자,
즉 개조된 개인의 수를 증가케 합니다.
이리하여 십년이나 이십 년을 지나면 개조된 개인의 일이천 인에는 달할 것이니,
그네는 모두 신용과 능력이 있는 인사이겠기 때문에 사회의 추요(樞要)한 모든 직무를 분담하게 되어 자연 전 민족의 중추계급을 성하게 될 것이요,
이리 되면 자연도태의 이(理)로 구성격을 가진 자는 점점 사회의 표면에서 도태되어 소리없이 칩복(蟄伏)하게 되고,
전 민족은 이 중추계급의 건전한 정신에 풍화되어 세월이 가고 세대가 지날수록 민족은 더욱 새로워져 오십 년이나 백년 후에는 거의 개조의 대업이 완성될 것이외다.
이렇게 의식적이요,
조직적인 방법은 아직 역사상에 전례가 없거니와,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민족개조라 할 만한 사업은 다 이와 유사경과(類似經過)로 되는 것이니,
혁명이라든지 유신이라든지가 신계급의 출현으로 굄을 보아서 알 것이외다.
이제 우리 조선 민족에게 민족개조의 원리를 응용해봅시다.
첫째,
조선 민족의 민족성의 결점은 그 근본적 성격에 있는 것인가,
또는 부속적 성격에 있는 것인가를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의 결정되기를 따라 우리의 민족개조의 사업의 난이(難易)가 결정될 것이외다.
그런데 이 문제를 결정하려면 르봉 박사의 이른 바와 같은 조선민족의 근본 성격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찾아보아야 할 것이외다.
우리 민족에 대한 가장 낡은 비평은 산해경(山海經)에 나온 한족(漢族)의 비평이니
‘군자국재기북 의관대검식수 사이문호재방 기인양호부쟁(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食獸 使二文虎在傍 其人好讓不爭)이라 하였고, 이에 대한 곽박(郭璞)의 찬(讚)에
‘동방기인국유 군자훈서시식 조호시사아호 예양예위논리(東方氣仁國有 君子薰犀是食 彫虎是使雅好 禮讓禮委論理)라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민족에게 처음 준 인상이
’군자‘외다.
공자도
‘군자거지(君子居之)’라 하여 자국민의 부패 무도함에 분개하여 아족 중에 오려 하였습니다.
‘기인양호부쟁’이란 것을 현대적 관념으로 분석하면 고나대,
박애, 예의, 염결, 자존 등이 될 것이외다.
다시 이 다석 가지 덕목을 한데 뭉치면 곽박의 산해경찬에 있는 바와 같이
‘인(仁)’이 될 것이외다.
그런데 이를 조선 민족의 역사에 참고해 보건대,
인은 조선 민족의 근본 성격인 듯합니다.
국제적으로도 일찍 남을 침략해 본 일이 없고,
또 외국인을 심히 애경하는 성질이 있으며,
민족끼리도 잔인 강폭한 행위는 극히 적습니다.
살인 강도 같은 잔인성의 죄악은 현금에도 심히 적다 합니다.
조선처럼 관대한 자는 타민족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혹 누가 자기에게 모욕을 가하면 흔히는 껄껄 웃고 구태여 보복하려 아니합니다.
외국인은 혹 이를 겁나한 까닭이라고 할는지 모르나,
껄껄 웃는 그의 심리는 일종 관서(寬恕)와 자존이외다.
그래서 조선인은 원수(怨讎)를 기억할 줄 모릅니다.
곧 잊어버립니다.
심지어 자기의 혈족을 죽인 자까지도 흔히는 용서합니다.
그러므로 조선의 전설이나 문학에 보수(報讎)에 관한 것은 극히 적고,
일본 민족과 같이 이를 한 미덕으로 아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음에 조선인은 애인(愛人)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처음 대할 때에는 좀 뚝뚝하고 찬 듯하지마는 속마음에는 극히 인정이 많습니다.
십수 년 전까지 사랑에 들어오는 손님이 있으면 알거나 모르거나 숙식을 주어 관대(款待)합니다. 집에는 내객을 위하여 항상 객량(客糧)과 객찬(客饌)과 객초(客草)를 준비하고,
가족의 먹는 것은 박(薄)하여도 객에게는 맛나는 것을 주며,
가족은 좀 차게 자더라도 객실에는 불을 많이 땝니다.
옛날의 조선 가정의 하는 일의 반은 실로
‘접빈객(接賓客)’이었습니다.
예의를 중히 여기는 것은 오족의 본래의 특성이외다.
군자국이라는 칭호부터도 예의를 연상케 하거니와
‘의관대검’이라든지, ‘호양부쟁’이라든지 하는 말에도 예의를 연상케 합니다.
또 동방삭 신이경(東方朔 神異經)에,
‘동방유인남개 호대현관여개 채의항공좌이 불상범상예이 불상훼견인유 환투사구지창 졸견지여 치명왈선인(東方有人男皆縞帶玄冠女皆 采衣恒恭坐而 不相犯相譽而 不相毁見人有 患投死救之蒼 卒見之如 癡名曰善人)’이라 한 것이 있음을 보아 어떻게 고대 오족이 예의를 숭상할 것을 알것이외다.
또 후한서에 부여인(夫餘人)의 예의 있음을 평하여,
‘음식용조두회동배작세작읍양승강(飮食用俎豆會同拜爵洗爵揖讓升降)’이라 하였고,
또 삼국지에 마한을 평하여
‘기속행자상봉개주양로(其俗行者相逢皆住讓路’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의를 숭상하는 본성이 있었으므로 이조의 당쟁도 거의 예문의 해석이 그 원인이 되었으며,
현금의 조선인도 예의를 숭상하는 풍이 많으니,
우리 나라를 예의지방(禮義之邦)이라 한 것은 참으로 적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의란 무엇이뇨.
규율에 복종하여 질서를 지키는 것이외다.
규율 밑에는 극히 순복한다는 뜻이외다.
예의란 곧 의(義)외다.
또 조선인은 염결하였습니다.
또 삼국지에
‘기인성원각소기욕유염치(其人性愿慤小嗜慾有廉恥)’라 하였습니다. 정승으로서 객주 집 한 방을 빌려서 유숙한 이가 있고,
결코 남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때에 물질적 보수를 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금전을 탐하는 것은 조선인의 가장 천히 여기던 바이외다.
지금은 세강속말(世降俗末)하여 금전 수입의 다소로 인물을 평가하게 되었지마는,
옛날 조선인은 금전이라는 말을 하기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은 아직도 남아서 무슨 일에나 월급이라든지 보수를 논하기를 치욕으로 압니다.
또 조선인은 심히 자존심이 많습니다.
근대에 일부 배명배(拜明輩)가 한족의 문화에 심취하여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를 쓰면서도 일반 민중은 한인을
‘되놈’이라 하고
‘오랑캐’라 하여 우리보다 훨씬 떨어지는 자로 여기도록 그처럼 자존심이 많습니다.
어떤 미국인이 ○○사건 후에 구제미 얻으러 온 조선인들의 모여 선 것을 박은 사진을 보고 아아 조선 사람은 존재(尊大)하다고 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 사람의 앉음앉음,
걸음걸이, 말하는 모양,
어떻게나 존대합니까.
‘점잖다’는 말은 우리가 사람의 품격을 칭찬하는데 가장 많이 쓰는 말이외다.
또 자존이라는 관념 중에는 자주나 독립이란 관념이 항상 부수(附隨)합니다. 역사를 보면 조선에는 일찍 봉건제도가 시행되어 본 일이 없습니다.
삼한시대나 삼국초에도 무한 소국이 있었지마는 그것이 다 완전한 독립국이었었고,
대국의 멸함을 받을지언정 그 부속은 아니 되었습니다.
당과 신라의 관계 같은 것은 일종 외교적 정책관계요,
신라가 당의 지배를 받은 일은 없었으며,
이씨 조선시대에도 명의상 명청양조(明淸兩朝)의 정삭(正朔)을 받았다 하나,
그것은 일편의 형식이요,
그 실질상 지배를 받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민중의 생활을 보더라도 독립 자주의 기풍이 많습니다.
조선에는 일인의 지배하에 만인이 복종하는 대가족제나 농노제는 시행된 적이 없었고,
조그마한 집일망정 각각 제집에서 제가 빌어먹기를 좋아합니다.
지금도 그 기풍이 남아 이익이 많은 남의 고용보다도 이익이 적은 독립한 영업을 좋아합니다.
이 주를 호상(好尙)하는 기풍은 조선인의 생활의 각 방면에 드러납니다.
그러나 산해경은 우리 조선사람을 그릴 때에 오직 이 인한 방면만 볼 뿐이 아니요,
또 그 무용한 방면도 보았습니다.
‘의관대검’이라 하니,
그는 점잖은 의관을 하고 무용의 검을 찼습니다.
이뿐 아니라 후한서에도 우리를 평하여
‘부여기인추대강용이근후불위구초.....행인무주야호가음음성부절(夫餘其人麤大彊勇而謹厚不爲寇鉊.....行人無晝夜好歌吟音聲不絶)’이라 하였고, 또 동옥저를 기하여,
‘........인성질직강용편지모보전(........人性質直强勇便持矛步戰).....’이라 하였습니다.
또 한인의 우리 민족을 부르는 최고(最古)한 칭호인 이자(夷字)는 종대종국(從大從弓)이라 하여,
대궁을 가지고 다니는 자라는 뜻이외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본성은 무용하였습니다.
오직 후한서에 말한 바와 같이
‘근후불위구초’하여 ‘추대강용’하면서도 군자국이란 칭찬을 듣는 것이외다.
다음에 조선인의 성질은 심히 쾌활합니다.
여기 인용한 글에도
‘호가음음성부절’이라 하였으니,
그네의 사는 곳에 음악이 끊이지 않는단 말이요,
삼국지에 마한의 속(俗)을 평하여
‘상이오월전경제귀신주야주회군회취가무무첩수십인상수답지위절(常以五月田竟祭鬼神晝夜酒會群會聚歌舞舞첩數十人相隨답地爲節)’이라 하고,
또 후한서에 진한(辰韓)을 평하여,
‘속희가무음주고슬(俗喜歌舞飮酒鼓瑟)’이라 하고,
삼국지에 고구려를 평하여
‘기민희가무국중읍락모야야남녀군취상취가희(其民喜歌舞國中邑落暮夜夜男女群聚相就歌戱)’라 하였습니다.
이는 한인이 고대의 우리 민족을 평한 것이어니와 우리 자신이 보더라도 우리는 퍽 쾌활한 민족이외다.
조선인은 낙천적이라 그는 웃을 줄 알되,
울거나 노하거나 음침한 태도를 취할 줄을 모릅니다.
조선인처럼 농담과 장난을 좋아하는 자는 드물 것이외다.
조선인은 결코 제국주의적,
군벌주의적 국민은 되지 못합니다.
종교적으로 우는 민족,
철학적으로 음침하게 사색하는 민족도 되지 못합니다.
조선인은 현실적,
예술적으로 웃고 놀고 살 민족이외다.
그러면 조선민족의 근본 성격은 무엇인고.
한문식 관념으로 말하면 인과 의와 예와 용이외다.
이것을 현대식 용어로 말하면 관대,
박애, 예의, 금욕적 염결(廉潔), 자존, 무용, 쾌활이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민족은 남을 용서하여 노하거나 보복할 생각이 없고,
친구를 많이 사귀어 물질적 이해관념을 떠나서 유쾌하게 놀기를 좋아하되(사교적이요), 예의를 중히 여기며 자존하여 남의 하풍(下風)에 입(立)하기를 싫어하며, 물욕이 담(淡)한지라 악착한 맛이 적고 유장(悠長)한 풍이 많으며,
따라서 상공업보다도 문학,
예술을 즐겨하고,
항상 평화를 애호하되 일단 불의를 보면
‘투사구지(投死救之)’의 용(勇)을 발하는 사람이외다.
이제 그 반면인 결점을 보건대,
관대 박애하므로 현대 국민이 가지는 배타적 애국심을 가지기 어려우니,
그러면서 사천 년래 능히 국가를 유지한 것은 그의 자존심과 무용성이 있음이외다.
그의 성(性)이 염결한지라 이민족의 영토를 침략할 야심이 없을뿐더러,
치부치술(致富之術)이 졸(拙)하여 저 삼국시대를 보더라도 미술의 발달은 당시 세계에 관(冠)이 될 만하면서도 상공업의 발달은 보잘것이 없었습니다.
또 예의를 숭상하는 반면은 진정의 유조(流露)를 저애하여 허위에 흐르기 쉬우며,
자존심이 많음은 지도자의 지도에 순종함을 절대요건으로 하는 공고한 단체의 조직을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그의 낙천적이요 현실적인 본성은 그로 하여금 피안의 낙원을 구하는 종교나 심오한 철학적 사색이나 과학적 탐구에 대한 노력을 경시하게 하였습니다.
조선민족을 금일의 쇠퇴에 끌은 원인인 허위와 나타와 비사회성과 및 경제적 쇠약과 과학의 부진은 실로 이 근본적 민족성의 반면(半面)이 가져온 화(禍)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민족성,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니니,
이것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천품이라 어디까지든지 발휘하여야 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조할 것은 조선민족의 근본적 성격이 아니요,
르봉 박사의 이른바 부속적 성격이외다.
그러할진댄 우리의 개조운동은 더욱 가능성이 풍부하다 할 것이외다.
이에 나는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하다 함과 특히 조선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할뿐더러 참으로 용이하다 함을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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