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1

민족개조론 2] 역사상으로 본 민족개조운동

민족개조론 2] 역사상으로 민족개조운동


첫째로 것은 고대 희랍에 ()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민족개조운동이다. 당시 희랍은 페르시아에 대한 전승과 상업의 발전과 문화의 난숙으로 인민이 이기와 교사(巧詐) 유질에 흘러 민족적 생활, 공고한 단체생활의 힘이 날로 소모하여지고, 시세의 산물인 궤변학파가 일세를 풍미하여 국민 도덕이 () ()하게 되었습니다. ‘각인의 준승(準繩) 자기라하는 궤변학파의 표어는 봉공(奉公)이라든지, 상호부조라든지 하는 단체생활에는 생명이라 도덕의 권위를 무시하는 말이외다. 이때에 소크라테스는 이대로 두면 망한다 표연한 자각으로 분연히 일어나 정의의 실재와 봉공의 덕의 권위를 역설하였고, 그의 수제자 플라톤은 국가 중심의 도덕을 절규하였습니다. 지금에는 , 양씨를 철학의 () 전하지마는 기실 양씨의 목적은 철학의 건설이 아니요 자기네의 사랑하는 국가와 민족의 구제외다.
그네의 철학은 천고에 전하여 숭앙의 표적이 되지마는 그네가 필생의 정력을 다하여 구제하려 하던 조국은 마침내 구제치 못하고 말았으니 그네의 주관으로 보면 그네는 생활에 실패한 사람이외다. 그네의 지하의 영이라도 조국은 가고 철학만 남은 것을 못내 슬퍼하였을 것이외다.
흔히 국가를 사로잡을 뜻을 가진 자는 국가의 정권을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기를 유일한 길로 압니다. 더욱이 동양이 그러하고 더욱이 고대에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흥망이 정권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권을 운용할 인물과 정권의 지배를 받을 인물을 포괄하는 인민에 있음을 자각하여 국가의 운명을 안태(安泰) 하려면 인민의 사상을 건전케 하여야 한다는 점에 착목(着目)하고 인민의 사상을 개조하려면 인민의 차대요 후계자인 청년의 사상을 건전히 하여야 한다는 점에 착목하여 그는 일생을 청년의 교육에 바쳤습니다. 그는 진실로 민본주의의 선각자요 국민교육의 선각자요 민족개조운동의 선각자외다. 공자나 맹자는 일생에 정권을 획하기에 급급하였고 거기 실패하매 비로소 청년 자제를 교육하였으니 그네는 아직 민족개조의 진의를 자각하였다고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매일 아테네 청년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아가 닥치는 대로 청년을 붙들고 유명하고 독특한 대화법을 응용하여, 첫째 청년의 현재에 가진 사상의 그릇됨을 자각케 하고 정의와 봉공의 개념을 주입하기로 일을 삼았습니다. 이리하여 매일 한두 사람씩 내지 십수 인씩 접하여서 일생에 아테네의 민중의 사상을 개조하려 했습니다. 그는 무수한 핍박과 빈궁의 고통을 ()하고 마침내 독약을 마시는 날까지 민족개조사업에 진췌(盡悴)하였습니다. 과연 어른은 천고에 의표(儀表) 되어서 마땅한 어른이시외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인격과 신앙과 열성을 가지고도 어른의 사업은 실패에 ()하였습니다. 그가 독약을 받고 돌아가심으로 더불어 그의 사업은 끝났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실패의 원인이 어디 있을까. 이는 진실로 문제외다. 민족개조의 가능, 불가능을 결단할 만한 문제외다.
그의 실패의 원인은단체사업이란 것을 깨닫지 못한 점에 있습니다. 민족개조의 사업은 계속적으로 장구한 세월과 수단한 인물과 금전을 요구하는 대사업이외다. 첫째, 계속적이라는 데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가령 소크라테스가 일개의 청년을 구제하여 신인을 만들었다 합시다. 신인된 청년이 다시 재래의 환경속에 들어가면, 심하면 () ()하여버리고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숨은 촛불이 되어버리기 쉬울 것이니 특별히 위대한 인격자가 아니고는 단독으로 사회의 풍조를 대항하고 정복하기를 바라지 못할 것이요, 이러한 특출한 인격자는 민중의 지도자로 일대에 일이 인밖에 나기 어려운 것이외다. 그런즉 다수의 범상한 신인으로 하여금 신을 일생에 보존하고 아울러 신의 힘을 발휘케 하려면 신인된 날부터 신인의 환경 속에 처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니, 환경이란 다른 것이 아니요, 오직 신인만으로 되어 공통한 이상을 가진 강고한 단체외다.
이러한 단체가 있어 혹은 회합으로 혹은 문자로 혹은 공동한 사업의 경영으로 평생에 서로 저격(刺激)하고 서로 협력하여가는 중에 신인들이 됨을 잃어버리지 아니할뿐더러 사상이 더욱 깊이 뿌리를 박고 더욱 널리 가지를 뻗어갈 것이외다.
그러므로 단체를 만드는 것은 개조된 개인으로 하여금 개조의 환경 속에 계속적으로 처하게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외다. 그런 것을 소크라테스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처럼 얻었던 동지를 많이 잃어버렸을 것이외다. 플라톤과 같은 고명한 제자 일인보다 평범한 제자 여럿이 민족개조의 목적을 당하는 데는 더욱 중요할 것인데.
단체라는 무기를 이용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소크라테스의 사업은 세력이 크지 못하고 생명이 길지 못하였습니다. 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민족개조의 사업은 아마도 온갖 사업 중에 가장 위대하고 곤란한 사업일 것이외다. 그러므로 사업을 성취하기에는 우리가 얻을 있는 가장 위대한 힘과 우리가 얻을 있는 가장 오랜 생명을 가져야 것이외다. 그런데 두가지를 얻는 데는 오직 단체를 이룸이 있을 뿐이외다.
개인의 생명에는 한이 있는 것이라 오래 살아야 팔구십이니 삼십에 주의가 확립하여 칠십까지 활동할 정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기간이 사십 년에 불과할뿐더러 개인이란 언제, 어느 때에 뜻이 좌절될는지 모르고, 또는 생명도 언제 없어질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슨 중요한 사상의 발견이 있거든 그것을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 전하여 두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대개 가지 사상의 불꽃은 몇천 년에 하나씩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한번 불행히 꺼지면 이는 인류에게 회복할 없는 영원한 손실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니, 마치 귀중한 미술품이나 문적(文籍) 도난이나 화재를 면할 만한 안전한 처소에 간수하여 두는 모양으로 이러한 귀중한 사상은 아무쪼록 산일(散佚)되지 아니하도록 있는 대로 속히 전파되고 실현되도록 힘써야 것이외다. 이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공자나 맹자 같은 이는 제자를 택하는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석가나 야소나 소크라테스도 그러하였습니다. 자사(子思) 플라톤이나 기타 근세의 사상가들은 저술의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돌아다니며 선전 연설을 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모든 것이 사상을 보존하고 선전하는 필요한 방법이로되, 그중에 가장 중요한 방법은 단체를 조직함이외다. 예수는 방법을 취하여 교회라는 단체를 세웠고 그의 제자들도 그의 뜻을 ()하여 교회를 완성하였습니다.
석가나 기타의 종교라 하여 오래 살아가고 널리 전파된 사상은 단체라는 무기를 이용한 것이외다. 근대에 이르러 사회학이 발달되며 더욱 단체의 이익 됨이 분명히 알려져 온갖 사상의 보존, 선전, 실현에 무기가 자유로 이용되게 되었습니다. 가령 , , 삼육을 표방하는 기독교청년회라든지 금주, 금연의 동맹이라든지 모두 이런 것이외다.
단체에 그러한 위력이 있는가. 그것은 가지로 있습니다. 첫째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신사상을 받은 신인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환경에 처하여 사상을 잃어버리지 않게 함이요, 둘째는 사상을 표방하는 수다인이 일단(一團) 되어 언어나 행동이 일치하여 다른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뚜렷이 세상에 드러나서 자연하고 유력한 선전의 공효(功效) 있는 동시에 단원 자신에게도 일종의 자부와 자신이 생김이요, 셋째는 다수인의 능력과 학식과 기능과 금전을 모두어 개인으로는 도저히 발할 없는 위대한 세력으로 사상의 향상과 선전과 실현에 관한 사업을 경영할 있음이요, 넷째는 개인의 생명은 유한하되 단체의 생명은 무한하여 영구히 사상의 보존, 선전, 실현의 사업을 경영할 있음이외다. 소크라테스가 만일 방법을 채용하였던들 그의 이상인 아테네인의 구제를 성취하였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너무 말이 기로에 듯하나 단체와 내가 말하려던 조선 민족개조운동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장황한 것을 참고 이렇게 말한 것이외다. 소크라테스의 민족개조운동은 그것이 역사상에 현저한 실례요, 아울러 당시 아테네의 형편과 소크라테스의 실패한 경로가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 듯이 생각됩니다.
다음에 역사상에 현저한 민족개조운동의 실례로는 프레더릭 대왕 시대의 프러시아, 표트르 대제 시대의 아라사와 인텔리겐차, 사회주의자 등의 아라사에서 운동, 일본의 명치유신 등이겠습니다. 장차 민족개조의 운동을 일으키려 하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사실이 모두 흥미있는 것이지마는, 그것을 여기서 일일이 서술하고 비평할 여유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이니, 다만 통틀어서 아라사나 프러시아나, 일본이 각각 그때 마침 민족개조의 운동을 아니 일으켰던들 되게 쇠퇴하였을 것과 민족개조운동이 모두 어떤 의미로 보든지 단체적 사업이었던 것만 주의해두려 합니다. 그런데 표트르 대제, 프레더릭 대왕, 명치천황의 유신이 어찌하여 단체적이었겠느냐 하는 대하여서는 두어 마디 설명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책(史冊) 기록된 것을 보면 무슨 대제, 무슨 대왕의 단독적 사업같이 보이지마는, 기실 무슨 대제나 무슨 대왕은 사업을 경영하던 단체의 대표자요, 중심인물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외다. 가령 일본의 유신사(維新史) 봅시다. 명치천황을 중심으로 목호(木戶), 대구보(大久保), 사향(西鄕), 이등(伊藤), 대외등 모든 정치가, 복택(福澤), 9), 신도(新島) 같은 신사상가, 교육가 가등홍립(加藤弘立), 정상철차랑(井上哲次郞), 삼댁설령(三宅雪嶺), 덕부소봉(德富蘇峰), 고산저우(高山樗牛), 같은 여러 사상가, 학자, 평내웅장(坪內雄藏) 같은 문사, 삽택영일(澁澤榮一) 같은 실업가, 기타 무릇 신일본을 건설하기에 노력한 유력 무명의 무수한 일꾼이 모두 오개조의 서문(誓文) 교육칙어(敎育勅語) 종지(宗旨) 단체의 단원이라고 있는 것이외다.
비록 어떤 특정한 명칭을 가지지 아니하였지마는, 중심인물이 마침 국가의 주권자이었기 때문에 대일본제국이라는 국가의 명칭하에 민족개조의 사업을 진행한 것이지마는 뜻이 같고 중심 인물을 통하여 나오는 명령에 복종하여 조직적으로 민족개조의 대사업을 경영한 점으로 단체사업이라고 있는 것이외다.
아라사의 인텔리겐차의 사업은 더욱이 사설단체적 색채가 농후합니다. 지상이나 구도로 사회개조론을 하여 듣고 싶은 자는 듣고, 하고자 하는 자는 하여라 하는 식으로 도저히 이러한 대사업은 생념도 못할 것이외다. 나는 이제 항을 새로 하여가지고 우리 조선 근대의 민족개조사업을 논평해서 점점 내가 지금 제창하려는, 아니 차라리 소개하려는 민족개조운동론에 접근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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