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5

시사저널 - 조선 후기 르네상스, 정조와 함께 부활하다

시사저널 - 조선 후기 르네상스, 정조와 함께 부활하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 정조와 함께 부활하다

正祖 서거 200주년 맞아 재조명 움직임 분주…〈홍재전서〉 곧 완역

박성준 기자 ㅣ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11.02(목)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했던 ‘학자 군주’ 정조대왕이, 서거한 지 20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관장 정옥자 교수)은 정조 서거 200주년을 맞아 10월17일부터 정조가 남긴 개인 자료와 규장각 소장 도서·고문서·고지도·의궤(儀軌)·회화 등을 모아 〈정조, 그 시대와 문화〉라는 이름으로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규장각측은 전시회와 아울러 11월2일까지 일반인에게 전문가들이 정조 시대를 설명하는 특별 강연회 자리도 세 차례 마련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도 정조와 그의 시대는 복원되고 있다. 한신대박물관(관장 유봉학 교수)이 그동안 이 대학이 국사학과를 중심으로 꾸준히 수집해온 정조 어필 탁본 등 탁본류·초상화 1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정조 시대를 돌아보는 〈정조대왕 서거 200주년 추모전〉을 10월25일까지 열고 있는 것이다.

오는 11월3일에는 고전 국역 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회장 이우성)가 〈홍재전서(弘齋全書)〉의 한글 완역을 기념하는 학술 세미나를 연다. 〈홍재전서〉는 1백84권 100책이라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정조의 개인 문집이다. 민족문화추진회는 지난 몇 년간 이 문집을 국역해 왔는데, 오는 11월초 마침내 대단원을 맞이한다.

대학이나 학술기관 바깥에서도 정조 시대 재조명 열기는 뜨겁다. 간송미술관은 당시 활약했던 조선 후기 화단의 양대 거봉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걸작들을 전시장에 내걸었다(〈시사저널〉 제574호 참조). 이보다 앞서 10월12일에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경기문화재단이 정조가 편찬케 한 〈무예도보통지〉 내용을 재연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정조 시대는 정치사적으로는 ‘붕당(朋黨) 정치’를 무너뜨리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정사를 돌보게 하는 탕평(蕩平)의 시대였으며, 문화사적으로는 조선 고유색을 발현해 이른바 ‘진경 시대’를 무르익게 한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의 절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조 시대는 사회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대였다. 신분제 사회의 굴레였던 서얼 차별, 노비제 폐단이 적극 시정되던 때가 바로 이 때이며, 조선이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조선 중화(中華)’를 외치며 민족 자부심을 과시했던 것도 바로 이 때였다.

18세기 연구자들은 이같은 변화의 정점에 정조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탁월한 정치력과 당대 최고를 자랑하는 지성, 시대의 추이를 읽고 그에 알맞게 대처할 줄 아는 예민한 균형 감각, 정치력을 발휘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었던 재위 기간 등 안팎의 요소가 어우러져 ‘역사의 허수아비’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를 이끈 탁월한 경륜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조는 1776년 25세에 영조의 뒤를 이어 임금 자리에 올랐다. 당시 정조는 암살 위협을 당하리만큼 신변이 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집권했다. 그러나 정조는 규장각을 만들어 권력 기반을 새로이 구축하고, 친위 부대인 장위영을 창설해 비교적 빠르게 정국을 장악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의리 탕평’이라는 고도의 정치술로 역대 최고 수준의 강고한 왕권을 세우며 24년에 걸쳐 조선을 통치했다.
정조의 여러 치적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업적은 대외적으로 ‘조선 문화가 최고’라는 자긍심을 드날리고, 대내적으로는 이른바 ‘힘의 논리’보다 ‘문화의 논리’를 앞세워 고유 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같은 조선의 르네상스는 스스로 ‘군사(君師)’를 자부했던 정조의 높은 문화 의식에서 나왔다고 지적한다.

정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1980년대 이래 지성사·문화사 방면에서 꾸준히 이어진 체계적인 ‘정조 읽기’ 성과가 축적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제1 세대 정조 연구자’의 간판 격인 정옥자 교수가 지난 5월 펴낸 〈일득록 연구〉(일지사)도 그 중 하나다. 정조의 개인 문집 〈홍재전서〉 가운데 일종의 수상록 격인 〈일득록〉을 따로 떼어내 독해한 이 책은, 정조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1차 사료를 분석해 결과를 드러냈다.

한국학 연구 모임인 문헌과해석팀이 진행해온 작업도 괄목할 만하다. 이들은 정조 연간 간행된 문헌을 중심으로 한 ‘정조 시대 읽기’ 결과를 정돈해 네 권(문헌과해석사)으로 묶어냈다.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정조대의 예술과 과학〉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간의 정조 연구가 정치사의 평면적 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면, 최근의 연구 성과들은 정조의 내면이나 사상적 좌표를 들여다보는 심층 분석을 추구하는 데서 특징을 보인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조는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사상사적으로도 당대를 이끌어간 주요 지도자였다. 정조는 그 자신이 체계화한 경학 이론을 통해 규장각 외에 이른바 ‘초계문신제’(정조가 직접 입안하고 감독한 일종의 고급 공무원 재교육 과정)를 지렛대로 삼아 전통 학문인 주자학과 신흥 학문인 북학사상 간에 균형과 조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전통 시대 군주들, 특히 조선 국왕에 대한 연구는 세종대왕 등 몇몇 예외를 빼놓고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전통 시대의 왕은, 오늘날 대통령이 갖는 권한보다 훨씬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며 당대를 움직였는데도, 과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탓에 좀처럼 본격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기 힘들었다.

정조에 관한 한 양상은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정치·산업·학예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정조가 이룩한 성과는 ‘문화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상황에 적지 않은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박광용 교수(가톨릭대·국사학)는 “정조 연간에 실험되었던 탕평책은, 최소한 그 발상 면에서 오늘날 계층 갈등과 지역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한국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정옥자 교수는 ‘내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확인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18세기와 정조의 존재는 귀중하다고 말한다. 조선 후기 지성사를 연구하는 주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문식 박사(서울대 규장각)는 아예 “정조와 그의 시대는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연구자가 힘이 나는 시대이다”라고 말했다.

기왕의 조선 연구자들은 역사에서 ‘그림자’의 의미를 더듬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자들은 역사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이름 짓고 높은 문화적 성취를 자부했던 정조에게서 연구자들은 빛을 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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