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30

100년 전,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한국인

100년 전,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한국인

100년 전,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한국인 1/n

먼저 옛날 기사 하나를 봅시다.


[노트북을 열며] 남 알기, 나 알리기
[중앙일보, 노재현 문화부장, 2005-04-12 21:05]


100여 년 전 외국인이 한국과 일본을 어떤 눈으로 봤는지 조사해 보면 정말 속이 많이 상한다. 조선(대한제국)이 외국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면 속이 더 끓어오르고, 그런 우(愚)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


이자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영국인 여성 탐험가다(당시 한국은 '탐험'의 대상이었다). 그는 1894년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한 뒤 배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여행했고, 한반도 북부 지방도 답사했다. 그의 여행기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 묘사한 서울은 '더럽고' '냄새나고' 같은 단어로 가득하다.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다른 영국인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3000마리의 소를 키우면서 30년 동안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아우게이아스 왕의 마구간'에 한국을 비유하면서 "이곳을 청소할 자는 일본뿐"이라고 결론지은 사람도 있었다. 1896년부터 9년간 서울 주재 총영사와 주한 영국공사를 지낸 존 고든은 고종에 대해 "황제는 정말 희망이 없다. 한국 궁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비교하면 로마가 불에 탈 때 네로가 바이올린을 켠 것은 차라리 위엄 있는 행동이었다"고 말했다('일그러진 근대'.박지향).


일본에 대한 서양인의 생각은 한국과 차이가 났다. 도쿄대 동물학 교수를 지낸 미국인 에드워드 모스(1838~1925)는 1877년 처음 일본 땅을 밟았다. 피아노를 칠 줄 알았던 그에게 사미센 등 일본 전통악기의 소리는 '기분 나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음에 불과했다. "일본인은 음악을 듣는 귀가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1882년 6월부터 8개월간의 세 번째 일본 체류 기간 중 모스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우리(서양) 음악은 하모니로 효과를 내고, 일본 음악에는 멜로디가 있다"고 제법 그럴 듯한 풀이도 하고, 급기야 일본의 다도(茶道)를 배우기에 이른다('메이지의 소리'.나이토 다카시).


기독교 신자였던 니토베 이나조(1862~1933). 그는 1899년 '무사도:일본의 혼(Bushido : The Soul of Japan)'이라는 책을 영어로 썼다. 영국에서 이 책은 큰 반향과 일본에 대한 호감을 불러 일으켰고, 1902년 영.일동맹이 맺어지는 데도 기여했다. 영.일동맹은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고 합병하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


당시 조선은 어땠을까. 남은 물론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1871년 신미양요에서 미군을 격퇴한 대원군은 '양인(洋人)들의 배에서 나는 연기와 먼지가 온 천지를 뒤덮어도 동방국(東方國)의 찬란한 광채는 영원토록 빛나누나'라는 자축시를 지었다. 그러나 신미양요의 전사자는 조선군 243명, 미군 13명이었다. 당시 조선이 보유한 일본 관련 '최신' 정보는 100여 년 전인 1764년 조선통신사가 수집해 온 것들이었다. 뒤늦게 일본조사단을 파견하긴 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 사람들은 단지 놀라기만 하고 돌아가지만, 우리 일본인은 (유럽 문명을 보고) 놀라는 데 그치지 않고 몹시 부러워하며 그것을 우리나라에도 실행하겠다는 야심을 단단히 굳혔다"며 냉소했다.


우리는 통감부 외교고문이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슨을 암살(1908년)한 전명운.장인환 의사를 기억한다. 그러나 스티븐슨이 왜 친일파가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지금 전 세계에는 한국을 잘 알고 사랑하는 친한파 '스티븐슨'이 몇 명이나 있는가.


< 기사 인용 끝 >



읽어보면 대충 이런 저런 '변태적 자학'을 좀 늘어놓다가 "그래서, 선진국- 윗글에선 일본- 을 잘 배우고 따라하자"라는 말로 마무리 지으면 칼럼 하나가 뚝딱 완성됩니다. 정말 먹고 살기 쉽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과거 조선인들이 영어로 된 책을 썼어야 했고, 유럽문명을 보고 놀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따라하겠다는 야심(?)을 단단히 굳혀야 했다는 뻔하디 뻔한 소리를 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노재현씨는 한국인의 '정신'과 '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자기 글이 어떤 기능을 할지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고, 책임질 마음도 없습니다. 그들의 글이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를 도출하더라도, "역시 한국인은 안돼"라는 멘트나 한 번 날려주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세상에 이렇게 쉽고 이렇게 편한 직업이 또 있을까요?


다만, 이런 직업을 가지기 위해선 아주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바로, '팔아야 할 지식'과 '팔지 말아야 할 지식'을 선별하는 눈입니다. 위의 칼럼에서 노재현씨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가 남긴 글 중에서, '팔아야 할 것'과 '팔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별한 후, 팔아야 할 것만 팔았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자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영국인 여성 탐험가다(당시 한국은 '탐험'의 대상이었다). 그는 1894년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한 뒤 배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여행했고, 한반도 북부 지방도 답사했다. 그의 여행기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 묘사한 서울은 '더럽고' '냄새나고' 같은 단어로 가득하다.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 노재현


이자벨라 버드 비숍, 영국 왕립 지리학회 회원이라고 소개하면 될 것을, 굳이 '탐험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탐험이 필요한 '오지'라는 소리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1890년대에 탐험이라... 참고로, 조선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인 『하멜표류기』가 1668년에 나왔습니다. 하여간 윗글과 비슷한 내용의 글을 그녀가 남기긴 했습니다.


"서울의 성벽 안쪽을 묘사하는 일은 어쩐지 피하고 싶다. 나는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고, 사오싱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대 도시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 이자벨라 버드 비숍, 1894년.


하지만, 조선인들의 "청결"한 일상에 대한 기록도 찾아보면 있습니다.


"냄새나는 하천에서, 궁궐 후원의 우물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물웅덩이에서, 아니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 이자벨라 버드 비숍


"반짝이는 조약돌이 깔려 있는 냇가에서는 언제나 부인네와 처녀들이 무명옷을 눈처럼 희게 빨고 있다. 이상주의자와 순교자의 민족이 아니라면 이처럼 눈부시도록 깨끗한 청결을 위하여 그토록 힘든 노동을 감내하지는 않으리라." - 님 웨일스


그렇다면 냄새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노재현씨는, "그리스 신화 속의 '아우게이아스 왕의 마구간'에 한국을 비유하면서 "이곳을 청소할 자는 일본뿐"이라고 결론지은 사람도 있었다."라며 "일본인"을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이 냄새나는 더러운 나라인 이유는 조선인들이 "일본인"과는 달리 수준낮은 국민성- 혹은, 기질-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선이 냄새나는 더러운 나라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농한기에는 농지로 운반되는 이러한 퇴비가 담긴 용구를 실은 소나 조랑말의 끝없는 행렬 때문에 거리가 온통 악취로 가득하다. 악취가 나는 이러한 행렬과 부딪치게 되면 조선 방문객들은 조선이 오물과 악취의 나라라는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 알렌,『조선견문록』, 1908.


농업 국가였던 조선에서 퇴비냄새와 소나 조랑말의 똥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왜 일본인과 조선인의 기질에 대한 문제로 치환되어 버렸을까요? 기질문제가 나왔으니, 당시의 기록을 좀 더 살펴봅시다. 우선 조선인들의 외관에 대한 기록입니다.

"아름답고, 총명하며, 우수해 보이는 민족이 외형상 확실히 두드러진 점이 없는 조그마한 일본인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것이 생물학적으로는 걸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안짱다리의 작달막한 일본인 간부가 칼을 거드럭거리며 여러 명의 한국인들에게 거만하게 명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동행한 선교사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물어 보았고,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열등감이 도리어 뛰어난 성취 능력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나는 다시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바보임이 틀림없어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아니예요, 그네들은 일본인보다 훨씬 더 총명하지요. 일본인은 이제 겨우 근대적인 군비에서 선두를 달리게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한국에 나와 있는 선교사들은 진정으로 한국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찬양했다." - 님 웨일스,『Song Of Ariran』.


"한국인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에,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 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한국인들의 일상적 표현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활기차다. 얼굴 생김새는 가장 잘 생긴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아 힘이나 의지의 강인함보다는 날카로운 지성을 나타낸다. 한국인들은 확실히 잘 생긴 종족이다. 체격도 좋은 편이다.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3.4센티미터이다. 여자의 평균 신장은 확인할 수 없는데, 세상에서 제일 보기 흉한 옷 때문에 그 결점이 과장되는 여자들의 모습은 땅딸만하고 펑퍼짐하다. 남자들은 힘이 매우 세어서 짐꾼들에게 45킬로그램의 짐은 보통이다. 가족생활은 대가족제이며 도덕적으로 지극히 건강하다." - 이자벨라 버드 비숍


"조선인은 대단한 지적 능력이 있으며 예리하고 탐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단력을 갖춘 자랑할만한 민족..... 조선은 위대한 가능성의 나라" - 알렉산더 윌리엄슨(영국 선교사) ,1870.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다. 또한 신체가 잘 발달되었고 균형이 잡혔다. 태도는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었다. 똑바로 추켜올린 얼굴은 거침없고 당당했다. 걸음걸이는 힘차 보였으며 의식적으로 점잔을 빼는 것 같았다. 비굴하게 벌벌 기고 과장되게 예의를 차리는 일본인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몸놀림과 태도였다."


"일본에서는 모든 사물의 외면이 매혹적으로 아름다워서 그 이면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비로소 일본의 잔인함과 냉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계가 ‘일본은 서구식으로 개화된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비록 일본인이 빠른 두뇌회전과 명석함을 무기로 힘을 과시하고는 있지만, 서구 문명이 도달한 지점까지 일본이 따라오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미(韓美)합작회사의 미국인 담당자: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일을 더 빨리 배우며, 그들이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조선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프랑스계 기독교 학교 피에르: "조선인들은 머리가 명석합니다. 이들이 동면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탐구심으로 불타오를 거예요." - 아손 그렙스트(스웨덴 기자 ),『조선에서』, 1912.


"조선인들은 아름답고, 총명하며, 사랑스럽고, 잘생겼고, 참신하며, 체격이 크고, 활기차며, 지성적으로 보이고, 힘이 세고, 도덕적이고, 탐구력이 있고, 결단력을 갖춘" 사람들이군요. 반면에 일본인은 "열등감에 휩싸여 있는 안짱다리의 작달막하고 못생긴" 사람들이군요. 뭐 별로 꿀릴 건 없지 않습니까?


사실 비숍여사의 글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서울의 거리에서 냄새가 났네, 안났네' 따위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녀의『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꼭 읽어 두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는데, 바로 '매판식자(買辦識者)'인 노재현씨가 팔기를 거부한 지식들입니다.

"한국 관리들은 살아있는 민중의 피를 빠는 흡혈귀다. …관아 안에는 한국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렸다. 거기엔 티롤 모자를 쓰고 푸른색이 많은 조잡한 면직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포졸들, 문필가들, 부정한 관리들, 늘 일이 손에 달린 척 가장하는 전령들이 있었고, 많은 작은 방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서예 도구를 옆에 놓고 긴 장죽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조선인)은 게을러 보인다.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들이 자기 노동으로 획득한 재산이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체제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일 어떤 사람이 '돈을 번' 것으로 알려지거나, 심지어 사치품인 놋쇠 식기를 샀다고 알려지기만 해도, 근처의 탐욕스러운 관리나 그의 앞잡이로부터 주의를 받게 되거나, 부근의 양반으로부터 대부를 갚도록 독촉당하는 식이었다.


…여행자들은 한국인의 게으름에 많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러시아령 만주에서의 한국인들의 에너지와 근면함 그리고 그들의 검소하고 유족하고 안락한 집의 가구들을 보고 난 후에 나는 그것이 기질의 문제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 이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관리들의 수탈이 아주 견딜 수 없게 되고,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마저도 빼앗겼을 때에만 한국의 농민들은 폭력을 통한 절망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된다.


…근사한 기후, 풍부하지만 혹독하지는 않은 강우량, 기름진 농토, 내란과 도적질이 일어나기 힘든 훌륭한 교육.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없다. 협잡을 업으로 하는 관아의 심부름꾼과 그들의 횡포, 그들의 악행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줄어들고 소작료가 적정히 책정되고 수납된다면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이다." - 이자벨라 버드 비숍


다른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관리들은 짧은 재임기 동안 道, 郡 등의 안녕에 대하여 거의 무관심한 반면 그들은 억지로라도 세금을 쥐어짜기에만 열중한다. 누구나 그 지위에 오르면 광범위하고 신속한 착취를 통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한다." - 오페르트


"한국인은 섬세한 용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힘이다. 더 씩씩한 인종과 비교해 보면 한국인은 기개가 없고 여성스럽다. 예전에는 용맹을 떨쳤지만 수세기에 걸친 집권층의 부패로 인하여 점차로 용맹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 잭 런던(미국의 사회 소설가),『조선 사람 엿보기』.


주변자이자 방문객의 위치에 있던, 게다가 나름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을 외국인이 조선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기에, 특정 외국인의 발언을 토대로 한 시대를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기왕 외국인의 글을 가져와 글을 쓰기로 노재현씨가 마음먹었다면, 차라리 위와 같은 '기록'들을 토대로 건설적인 글이나 쓸 것이지 겨우 한다는 짓이 '서울거리의 위생문제'를 '한국인의 기질문제'로 치환한 후 '변태적인 자학'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하물며 노재현씨의 칼럼은, "100여 년 전 외국인이 한국과 일본을 어떤 눈으로 봤는지 조사해 보면 정말 속이 많이 상한다. 조선(대한제국)이 외국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면 속이 더 끓어오르고, 그런 우(愚)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군요.


세상에... 참 별스런 애국자도 다 있습니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애국이라 한 사람도 있으니 뭐 그러려니 합니다. 참고로, 비숍 여사가 조선을 떠나며 남긴 글은 이렇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의 운명을 놓고 서로 대결한 상태에 ,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의 겨울 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영국 정부의 작은 기선인 상하이행 헨릭호를 타고 무자비하고 엄혹한 북풍에 실려 제물포를 떠났다." - 이자벨라 버드 비숍

- 이상 기록의 출처: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한국인(http://gun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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