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1

민족개조론 이광수 1922

민족개조론; 이광수

민족개조론 0] 변언

나는 많은 희망과 끓는 정성으로 이 글을 조선민족의 장래가 어떠할까, 어찌하면 이 민족을 현재의 쇠퇴에서 건져 행복과 번영의 장래에 인도할까하는 것을 생각하는 형제와 자매에게 드립니다. 이 글의 내용인 민족개조의 사상과 계획은 재외동포 중에서 발생할 것으로서 내 거소가 일치하려 마침내 내 일생의 목적을 이루게 된 것이외다. 나는 조선 내에서 이 사상을 처음 전하게 된 것을 무상한 영광으로 알며, 이 귀한 사상을 선각한 위대한 두뇌와 공명한 여러 선배 동지에게 이 기회에 또 한번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원컨대, 이 사상이 사랑하는 청년 형제 자매의 순결한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박아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이다.

신유 십일월 십일일 태평양회의가 열리는 날에 춘원.


민족개조론1] 민족개조의 의의

근래에 전세계를 통하여 개조라는 말이 많이 유행됩니다. 일찍 구주대전이 끝나고 파리에서 평화회의가 열렸을 때에 우리는 이를 세계를 개조하는 회의라 하였습니다. 인하여 국제연맹이 조직되매 더욱 광열하는 열정을 가지고 이는 세계를 개조하는 기관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큰일에나 작은 일에나 개조라는 말이 많이 유행되게 되었습니다.
개조라는 말이 많이 유행되는 것은 개조라는 관념이 다수 세계인의 사상을 지배하게 된 표현입니다. 진실로 오늘날 신간 서적이나 신문 잡지나 연설이나, 심지어 상품의 광고에까지, 또 일상의 회화에까지 개조란 말이 많이 쓰인 것은 아마도 공전한 현상일 것이외다. 무릇 어떤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어떤 다른 관념이 지배하려는 시대가 올 때에는 반드시 인심에 갱신이라든지, 개혁이라든지, 변천이라든지 혁명이라든지, 하는 관념이 드는 것이지마는 갱신, 개조, 혁명 같은 관념만으로 만족치 못하고 더욱 근본적이요, 더욱 조직적이요, 더욱 전반적, 삼투적인 개조하는 관념으로야 비로소 인심이 만족하게 된 것은 실로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지금은 개조의 시대다!’ 하는 것이 현대의 표어요, 정신이외다. 제국주의의 세계를 민주주의의 세계로 개조하여라,(21자 생략) 생존경쟁의 세계를 상호부조의 세계로 개조하여라, 남존여비의 세계를 남녀평등의 세계로 개조하여라, 이런 것이 현대의 사상계의 소리의 전체가 아닙니까. 이 시대사조는 우리 땅에도 들어와 각 방면으로 개조의 부르짖음이 들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사람으로서 시급히 하여야 할 것 개조는 실로 조선민족의 개조외다.
대체 민족개조란 무엇인가. 일 민족은 다른 자연현상과 같이 시시각각으로 어떤 방향을 취하여 변천하는 것이니 한 민족의 역사는 그 민족의 변천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군시대의 조선민족, 삼국시대의 조선민족, 고려나 이조시대의 조선민족, 또는 이 같은 이조시대로 보아도 임란 이전과 이후, 갑오 이전과 이후, 이 모양으로 조선민족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난 뒤 삼십 년간으로 보더라도 조선이 어떻게나 변하였나. 정치는 말 말고 의복, 주거, 습관 등밖에 드러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사상의 내용, 감정의 경향까지 몰라보게 변하여 왔습니다. 남자가 상투를 베고 여자가 쓰개를 버린 것이 어떻게 무서운 변화오니까. 과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나날이 변하여 갑니다. 더욱이 기미 삼월 일일 운동 이래로 우리의 정신의 변화는 무섭게 급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금후에도 한량없이 계속될 것이외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자각과 일정한 계획으로 의식적으로 변화하려 하여 한 것이 못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로 만족할 수 없고 또 이러한 변화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문명인의 최대한 특징은 자기가 자기의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달하기 위하여 계획된 진로를 밟아 노력하면서 시각마다 자기의 속도를 측량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본능이나 충동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생활의 목적을 확립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일거수 일투족의 모든 행동은 오직 이 목적을 향하여 통일되는 것이요, 그러므로 그의 특색은 계획과 노력에 있습니다. 그와 같이 문명한 민족의 특징도 자기의 목적을 의식적으로 확립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정한 조직적이요, 통일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적이요 통일적인 노력을 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시시대의 민족 또는 아직 분명한 자각을 가지지 못한 민족의 역사는 자연현상의 변천의 기록과 같은 기록이로되 이미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의 역사는 그의 목적의 변천의 기록이요, 그 목적을 위한 계획과 노력의 기록일 것이외다. 따라서 원시민족, 미개민족의 목적의 변천은 오직 자연한 변천, 우연한 변천이로되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의 목적의 변천은 의식적 개조의 과정이외다.
그러면 어떠한 경우에 개조의 현상이 생기나. 이미 가진 민족의 목적과 계획과 성질이 민족적 생존 번영에 적합치 아니함을 자각하게 되는 경우외다. 그 성질로 그 목적을 향하여 그 계획대로 나아가면 멸망하리라는 판단을 얻는 경우외다. 이러한 자각과 판단을 얻는 것부터 벌써 고도의 문화력을 가졌다는 증거니, 그것이 없는 민족은 일찍 이러한 자각을 가져보지 못하고 불식부지중에 마침내 멸망에 들어가고 마는 것이외다. 능히 전민족적 생활의 핵심을 통찰하여 이 방향의 진로는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하는 분명한 판단을 얻는 것이 그 민족의 갱생하는 첫걸음이외다, 맹아(萌芽)외다. 그리고 한번 이러한 판단을 얻거든 총명하게 새로운 진로, 새로운 목적과 계획을 정하여 민족생활의 침로를 전(轉)하도록 의식적으로 조직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그 민족의 갱생하는 유일한 길이니, 이는 퍽 총명하고 용단 있고 활기 있는 민족 아니고는 능치 못할 것이외다.
나는 이상에 민족개조란 것이 민족의 생활의 진로의 방향 변환 즉 그 계획의 근본적이요, 조직적인 변경인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오직 어떤 부분을 개혁하거나 수보(修補)한다는 것이 아니요, 집으로 말하면 그 앉은 방향과 기초와 실의 배치와, 구조와 재료를 전혀 새로운 설계에 의하여 다시 짓는다 함이니 비록 낡은 재료를 다시 쓴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설계에 맞추어 쓸 만한 것이면 쓰는 것이 될 뿐이외다. 이러므로 민족의 개조라는 것은 여간한 경우에 경이(輕易)히 부르짖을 바가 아니니,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이대로 가면 망한다 할 경우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결심, 대기백으로 할 것이외다. 과거의 역사로 보건대 일 민족의 전생애(사천 년이나 오천 년)에 많아야 이삼차가 되기가 어려운 일이외다. 청년다운 생기가 없이는 도저히 못할 일인 듯합니다. 다음에는 세계 역사상에 민족개조운동의 실례 몇 가지를 들어 더욱 민족개조라는 사상을 분명히 하려 합니다.


민족개조론2] 역사상으로 본 민족개조운동

첫째로 들 것은 고대 희랍에 재(在)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민족개조운동이다. 당시 희랍은 페르시아에 대한 전승과 상업의 발전과 문화의 난숙으로 인민이 이기와 교사(巧詐)와 유질에 흘러 민족적 생활, 즉 공고한 단체생활의 힘이 날로 소모하여지고, 그 시세의 산물인 궤변학파가 일세를 풍미하여 국민 도덕이 지(地)를 불(拂)하게 되었습니다. ‘각인의 준승(準繩)은 자기라’하는 궤변학파의 표어는 봉공(奉公)이라든지, 상호부조라든지 하는 단체생활에는 생명이라 할 도덕의 권위를 무시하는 말이외다. 이때에 소크라테스는 ‘이대로 두면 망한다’는 표연한 자각으로 분연히 일어나 정의의 실재와 봉공의 덕의 권위를 역설하였고, 그의 수제자 플라톤은 국가 중심의 도덕을 절규하였습니다. 지금에는 소, 플 양씨를 철학의 조(祖)로 전하지마는 기실 양씨의 목적은 철학의 건설이 아니요 자기네의 사랑하는 국가와 민족의 구제외다.
그네의 철학은 천고에 전하여 숭앙의 표적이 되지마는 그네가 필생의 정력을 다하여 구제하려 하던 조국은 마침내 구제치 못하고 말았으니 그네의 주관으로 보면 그네는 생활에 실패한 사람이외다. 그네의 지하의 영이라도 조국은 가고 철학만 남은 것을 못내 슬퍼하였을 것이외다.
흔히 국가를 사로잡을 뜻을 가진 자는 그 국가의 정권을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기를 유일한 길로 압니다. 더욱이 동양이 그러하고 더욱이 고대에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흥망이 정권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권을 운용할 인물과 정권의 지배를 받을 인물을 포괄하는 인민에 있음을 자각하여 국가의 운명을 안태(安泰)케 하려면 인민의 사상을 건전케 하여야 한다는 점에 착목(着目)하고 인민의 사상을 개조하려면 그 인민의 차대요 후계자인 청년의 사상을 건전히 하여야 한다는 점에 착목하여 그는 일생을 청년의 교육에 바쳤습니다. 그는 진실로 민본주의의 선각자요 국민교육의 선각자요 민족개조운동의 선각자외다. 공자나 맹자는 일생에 정권을 획하기에 급급하였고 거기 실패하매 비로소 청년 자제를 교육하였으니 그네는 아직 민족개조의 진의를 자각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매일 아테네 청년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아가 닥치는 대로 청년을 붙들고 그 유명하고 독특한 대화법을 응용하여, 첫째 그 청년의 현재에 가진 사상의 그릇됨을 자각케 하고 정의와 봉공의 개념을 주입하기로 일을 삼았습니다. 이리하여 매일 한두 사람씩 내지 십수 인씩 접하여서 일생에 아테네의 민중의 사상을 개조하려 했습니다. 그는 무수한 핍박과 빈궁의 고통을 모(冒)하고 마침내 독약을 마시는 날까지 이 민족개조사업에 진췌(盡悴)하였습니다. 과연 이 어른은 천고에 의표(儀表)가 되어서 마땅한 어른이시외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인격과 신앙과 열성을 가지고도 그 어른의 사업은 실패에 귀(歸)하였습니다. 그가 독약을 받고 돌아가심으로 더불어 그의 사업은 끝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실패의 원인이 어디 있을까. 이는 진실로 큰 문제외다. 민족개조의 가능, 불가능을 결단할 만한 큰 문제외다.
그의 실패의 원인은 ‘단체사업’이란 것을 깨닫지 못한 점에 있습니다. 민족개조의 사업은 계속적으로 장구한 세월과 수단한 인물과 금전을 요구하는 대사업이외다. 첫째, 계속적이라는 데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가령 소크라테스가 일개의 청년을 구제하여 신인을 만들었다 합시다. 그 신인된 청년이 다시 재래의 환경속에 들어가면, 심하면 구(舊)에 복(復)하여버리고 말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숨은 촛불이 되어버리기 쉬울 것이니 특별히 위대한 인격자가 아니고는 단독으로 사회의 풍조를 대항하고 정복하기를 바라지 못할 것이요, 이러한 특출한 인격자는 민중의 지도자로 일대에 일이 인밖에 나기 어려운 것이외다. 그런즉 다수의 범상한 신인으로 하여금 그 신을 일생에 보존하고 아울러 그 신의 힘을 발휘케 하려면 신인된 날부터 신인의 환경 속에 처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니, 그 환경이란 다른 것이 아니요, 오직 신인만으로 되어 공통한 이상을 가진 강고한 단체외다.
이러한 단체가 있어 혹은 회합으로 혹은 문자로 혹은 공동한 사업의 경영으로 평생에 서로 저격(刺激)하고 서로 협력하여가는 중에 그 신인들이 신 됨을 잃어버리지 아니할뿐더러 그 사상이 더욱 깊이 뿌리를 박고 더욱 널리 가지를 뻗어갈 것이외다.
그러므로 단체를 만드는 것은 개조된 각 개인으로 하여금 개조의 환경 속에 계속적으로 처하게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외다. 그런 것을 소크라테스는 이 방법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처럼 얻었던 동지를 많이 잃어버렸을 것이외다. 플라톤과 같은 고명한 제자 일인보다 평범한 제자 여럿이 민족개조의 목적을 당하는 데는 더욱 중요할 것인데.
또 단체라는 무기를 이용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소크라테스의 사업은 그 세력이 크지 못하고 또 그 생명이 길지 못하였습니다. 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민족개조의 사업은 아마도 온갖 사업 중에 가장 위대하고 곤란한 사업일 것이외다. 그러므로 이 사업을 성취하기에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오랜 생명을 가져야 할 것이외다. 그런데 이 두가지를 얻는 데는 오직 단체를 이룸이 있을 뿐이외다.
개인의 생명에는 한이 있는 것이라 오래 살아야 팔구십이니 삼십에 주의가 확립하여 칠십까지 활동할 정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사십 년에 불과할뿐더러 개인이란 언제, 어느 때에 그 뜻이 좌절될는지 모르고, 또는 그 생명도 언제 없어질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슨 중요한 사상의 발견이 있거든 그것을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 전하여 두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대개 한 가지 사상의 불꽃은 몇천 년에 하나씩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한번 불행히 꺼지면 이는 인류에게 회복할 수 없는 영원한 손실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니, 마치 귀중한 미술품이나 문적(文籍)을 도난이나 화재를 면할 만한 안전한 처소에 간수하여 두는 모양으로 이러한 귀중한 사상은 아무쪼록 산일(散佚)되지 아니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전파되고 실현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외다. 이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공자나 맹자 같은 이는 제자를 택하는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석가나 야소나 소크라테스도 그러하였습니다. 자사(子思)나 플라톤이나 기타 근세의 사상가들은 저술의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돌아다니며 선전 연설을 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상을 보존하고 선전하는 데 필요한 방법이로되, 그중에 가장 중요한 방법은 단체를 조직함이외다. 예수는 이 방법을 취하여 교회라는 단체를 세웠고 그의 제자들도 잘 그의 뜻을 체(體)하여 교회를 완성하였습니다.
석가나 기타의 종교라 하여 오래 살아가고 널리 전파된 사상은 다 이 단체라는 무기를 이용한 것이외다. 근대에 이르러 사회학이 발달되며 더욱 단체의 이익 됨이 분명히 알려져 온갖 사상의 보존, 선전, 실현에 이 무기가 자유로 이용되게 되었습니다. 가령 덕, 체, 지 삼육을 표방하는 기독교청년회라든지 금주, 금연의 동맹이라든지 모두 이런 것이외다.
단체에 그러한 위력이 있는가. 그것은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신사상을 받은 신인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그 환경에 처하여 그 사상을 잃어버리지 않게 함이요, 둘째는 동 사상을 표방하는 수다인이 일단(一團)이 되어 언어나 행동이 일치하여 다른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뚜렷이 세상에 드러나서 자연하고 유력한 선전의 공효(功效)가 있는 동시에 그 단원 자신에게도 일종의 자부와 자신이 생김이요, 셋째는 다수인의 능력과 학식과 기능과 금전을 모두어 개인으로는 도저히 발할 수 없는 위대한 세력으로 그 사상의 향상과 선전과 실현에 관한 사업을 경영할 수 있음이요, 넷째는 개인의 생명은 유한하되 단체의 생명은 무한하여 영구히 그 사상의 보존, 선전, 실현의 사업을 경영할 수 있음이외다. 소크라테스가 만일 이 방법을 채용하였던들 그의 이상인 아테네인의 구제를 성취하였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너무 말이 기로에 든 듯하나 단체와 내가 말하려던 조선 민족개조운동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장황한 것을 참고 이렇게 말한 것이외다. 또 소크라테스의 민족개조운동은 그것이 역사상에 현저한 첫 실례요, 아울러 당시 아테네의 형편과 소크라테스의 실패한 경로가 퍽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 듯이 생각됩니다.
다음에 역사상에 현저한 민족개조운동의 실례로는 프레더릭 대왕 시대의 프러시아, 표트르 대제 시대의 아라사와 인텔리겐차, 사회주의자 등의 아라사에서 한 운동, 일본의 명치유신 등이겠습니다. 장차 민족개조의 대 운동을 일으키려 하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사실이 모두 흥미있는 것이지마는, 그것을 여기서 일일이 서술하고 비평할 여유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이니, 다만 통틀어서 아라사나 프러시아나, 일본이 각각 그때 마침 민족개조의 운동을 아니 일으켰던들 말 못 되게 쇠퇴하였을 것과 또 그 민족개조운동이 모두 어떤 의미로 보든지 단체적 사업이었던 것만 주의해두려 합니다. 그런데 표트르 대제, 프레더릭 대왕, 명치천황의 유신이 어찌하여 단체적이었겠느냐 하는 데 대하여서는 두어 마디 설명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책(史冊)에 기록된 것을 보면 무슨 대제, 무슨 대왕의 단독적 사업같이 보이지마는, 기실 무슨 대제나 무슨 대왕은 그 사업을 경영하던 단체의 대표자요, 중심인물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외다. 가령 일본의 유신사(維新史)를 봅시다. 명치천황을 중심으로 목호(木戶), 대구보(大久保), 사향(西鄕), 이등(伊藤), 대외등 모든 정치가, 복택(福澤), 삼9森), 신도(新島) 같은 신사상가, 교육가 가등홍립(加藤弘立), 정상철차랑(井上哲次郞), 삼댁설령(三宅雪嶺), 덕부소봉(德富蘇峰), 고산저우(高山樗牛), 같은 여러 사상가, 학자, 평내웅장(坪內雄藏) 같은 문사, 삽택영일(澁澤榮一) 같은 실업가, 기타 무릇 신일본을 건설하기에 노력한 유력 무명의 무수한 일꾼이 모두 오개조의 서문(誓文)과 교육칙어(敎育勅語)를 종지(宗旨)로 한 한 단체의 단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외다.
비록 어떤 특정한 명칭을 가지지 아니하였지마는, 그 중심인물이 마침 국가의 주권자이었기 때문에 대일본제국이라는 국가의 명칭하에 민족개조의 사업을 진행한 것이지마는 그 뜻이 같고 중심 인물을 통하여 나오는 명령에 복종하여 조직적으로 민족개조의 대사업을 경영한 점으로 단체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외다.
아라사의 인텔리겐차의 사업은 더욱이 사설단체적 색채가 농후합니다. 지상이나 구도로 사회개조론을 하여 듣고 싶은 자는 듣고, 하고자 하는 자는 하여라 하는 식으로 도저히 이러한 대사업은 생념도 못할 것이외다. 나는 이제 항을 새로 하여가지고 우리 조선 근대의 민족개조사업을 논평해서 점점 내가 지금 제창하려는, 아니 차라리 소개하려는 민족개조운동론에 접근하려 합니다.

민족개조론3] 갑신 이래의 조선의 개조운동

조선이 날로 쇠퇴하여 가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다’하여 개조할 생각을 가진 이도 꽤 많이 있었을는지 모르되, 사업으로도 남은 것이 없고 언론으로도 남은 것이 없으니, 갑신 이전의 일은 말할 수 없습니다.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꽤 새로운 생각을 가지셨다 하지마는, 나는 아직 그 어른의 글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이 혹 새로운 사상을 가지셨다 하더라도 서적으로 끼친 것 외에 특히 무슨 사업을 시작한 것을 듣지 못하니 그를 민족개조운동의 제일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거금 사십사 년 전 갑신에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등의 정부개혁운동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앙, 지방 할 것 없이 전국 일체의 정권을 농락하던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중심으로 한 민씨일파를 들어내고 유신 후의 일본의 공기를 흡입한 신진 인물의 손에 정권을 장악하려는 운동이외다. 이는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있은 후 십구 년, 병자수호조약이 있은 후 구 년이니 ‘양이침범(洋夷侵犯), 비전칙화(非戰則和), 주화매국(主和賣國)’이라는 대원군의 표어로 의식적으로 철저한 쇄국정책을 실행하던 말로의 조종(弔鍾)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옥균, 박영효 일파의 운동은 워낙 근저가 없는 운동이기 때문에 일격에 실패되고 말았습니다. 그 근저란 무엇이냐. 동지되는 인무로가 사업의 자금이 될 금전이외다. 만일 국가의 정권을 잡으면 국고의 재산이 곧 자금이기도 하려니와 동지 되는 인물에 이르러서는 정권을 잡는다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이 아니외다. 그때에 누가 있어 내정을 맡고 외교를 맡고 교육을 맡고 산업을 맡겠습니까. 누가 있어 국가 제반 기관을 동일한 보조로 운전하겠습니까. 만일 김옥균, 박영효 두 분이 진실로 총명한 계획이 있었다 하더라도 뉘로 더불어 그 계획을 실시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네가 정권을 장악하기보다 먼저 하여야 할 일은 동지요 동업자 될 일꾼을 양성하는 것일 것이외다. 그리하여 이만하면 이 동지로 능히 일국을 요리하리라 할 만한 때에 정권을 잡으면 비로소 자기의 이상을 실현도 하였을 것이외다. 그만한 실력이 없이 비록 정권을 장악하기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일부분도 실현해보지 못하고 소위 삼일천하가 되고 말았을 것이외다.
그로부터 만 십 개년을 지내어 청일전쟁이 생기고 그 때문에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이 되어 일본의 후원으로 김홍집 내각(金弘集 內閣)이라는 제일차 내각이 조직되어 여러 신인물로 그 각원을 삼고 크게 정부 혁신을 기도하니, 이것이 소위 갑오경장(甲午更張)이외다.
그러나 제도와 법령은 아무리 새로워도 그것을 운용하는 인물과 그 지배를 받을 인물이 여전히 낡으니 내하(奈何)오. 또 마침내 부패하고 수구하는 점으로 다수의 동지와 세력을 가진 구파에게 압도되어 역시 삼일천하의 비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본래 조선사람으로서 미국에 입적하여 다년 그 나라의 문명의 풍조에 씻긴 서재필(徐載弼)이 미국시민의 자격으로 외부 고문이 되어 경성에 내주(來駐)하매 그의 조국이던 조선의 갱생은 도저히 정부의 개력, 정권의 장악으로만 될 것이 아니요, 오직 일반 민중의 각성에 있음을 깨달아 독립협회를 일으키니 당시 연소기예(年少氣銳)하고 미국 선교사와 배재학당을 통하여 서양의 문명을 맛본 이승만(李承晩), 윤치호(尹致昊), 안창호(安昌浩) 등이 협회의 기하로 모여들어 일변 연설회를 열며 일변 독립신문이라는 기관신문을 간행하여 민중의 각성을 촉(促)하니, 이것이 조선서 민족개조운동의 첫소리였습니다. 당시 그네의 주장하던 바는 혁구취신(革舊就新)할 것, 서양문화를 수입할 것, 계급사상을 타파하고 자유 평등의 사상을 고취할 것, 정치상으로는 군주전제나 벌족 전제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세울 것 등이니, 이는 미국의 감화를 받은 서재필 일파의 사상의 당연한 반영일 것이외다. 특히 그 기관신문인 독립신문을 순국문으로 한 것을 보면, 그 주뇌자(主腦者)들이 어떻게 민주주의적이요, 과격하다 할 만한 혁구취신주의자인 것을 추지(推知)할 만하며, 또 민주주의의 고취에는 국민 각 개인이 그 국가의 성쇠 흥망의 책임을 가진다는 애국심을 고조하여 조선에서 애국이란 말이 이 독립협회에서 위시하였다고 할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집권자가 보부상파(褓負商派)룰 떨어서 두들기는 바람에 그만 형적도 없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운동이 민심에 미친 영향이야 불소하지마는 독립협회 자체는 영영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진인(眞因)은 결코 집권자의 강압에 있는 것이 아니요, 협회 자체에 배태(胚胎)된 것이니, 이제 그 원인을 강구함은 장래를 위하여 도로(徒勞)가 아니리라 합니다.
독립협회운동의 실패의 첫 원인은 단결의 공고치 못함이외다. 누구든지 우리 주의에 찬성하는 자는 다 오너라 하는 주의로 함부로 주워모아 수의 많기를 바람은 조선 재래의 단체의 정책이외다. 이리하여 몇천 몇만의 도당을 모은다 하면 일시 보기에는 세력이 굉장한 듯하지마는 이는 실로 오합비중이요, 모래 위에 세운 집이니 한번 대타격이 오매 모두 흩어지고 마는 것이외다. 그러할 뿐더러 이렇게 모인 단체는 일시의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일이 개인의 야심을 만족하거나 급격한 파괴작용을 하는 데는 효력이 있지마는 착실하고 장구한 사업을 하기에는 부적당한 것이외다.
착실하고 장구한 사업을 경영하는 데는 그 단체의 단원이 각각 철저하게 그 단체의 목적과 계획을 이해하여 이를 위하여서는 일심 혁력하기를 사이후이(死而後已)하리란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이 필요하니, 이상과 계획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이나, 일심협력하는 습성을 작(作)하는 것이나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도는 것이 결코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외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체를 만드는 데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오래 두고 의사를 교환하여 그가 동지인 것을 확인한 뒤에야 가입케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람들과 같이 아직 단체생활의 훈련이 없는 인민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하거늘 독립협회의 호원은 이러한 용의가 없이 모인 것이므로 일격에 분쇄되고 만 것이외다. 독립협회의 운동이 실패된 둘째 원인은 정치적 색채를 가졌던 것이외다. 이 회가 만일 정치적 개혁을 목적으로 한 정당이라 하면(아마 당시 사정으로 그러할는지 모르지마는) 다시 말할 것이 없지마는 진실로 민족개조를 목적으로 한다 하면 정치적 색채를 띠어서는 아니 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정치적 권력이란 십년이 멀다하고 추이하는 것이요, 민족개조의 사업은 적어도 오십 년이나 백년을 소기(小期)로 하여야 할 사업인즉 정권의 추이를 따라 소장(消長)할 운명을 가진 정치적 단체로는 도저히 이러한 장구한 사업을 경영할 수 없는 것이외다.
어떠한 당파의 정부, 어떠한 주의, 정견을 가진 정부라도 용훼(容喙)할 이유가 없는 단체라야 능히 이러한 사업을 하여갈 것이니, 만일 독립협회가 정치에 대하여 아무런 간섭이 없이 오직 교육의 진흥, 산업의 발전, 민중의 진작 같은 것으로만 목적을 삼았다 하면 당시의 집권자의 증오를 받을 리가 없었을 것이요, 그리하면 자기 분내(分內)의 일만, 사업만 착착히 진행하였다 하면 금일까지에 막대한 효과를 생하였을 것이외다. 그러나 그 회가 오직 정치적 사업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하면, 물론 이러한 비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에 그 회가 실패된 이유는 인물이 없었음이외다. 첫째로 인격과 학식과 능력이 족히 그 운동의 중심이 될 만한 중심인물이 없었고, 둘째는 그 중심인물의 지도를 받을 만한 회원과 그 회의 모든 사무와 사업을 분담할 만한 사무가, 전문가가 없었습니다. 동양식 생각으로 보면 어떤 단체는 그 단체를 거느리는 영웅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같이 생각하지마는, 한 단체가 성립되고 생활하여가는 데는 삼종의 인물이 정(鼎)의 삼족(三足)과 같이 필요한 것이외다. 삼종의 인물이란 무엇이뇨. 중심인물, 또는 지도자와 전문가와 회원이외다.
지도자와 전문가 도기 어려운 것은 누구나 다 알만하지마는 회원되기 어려운 것은 오직 아는 자라야 합니다. 회의 목적과 계획을 잘 이해하여 그 규칙을 잘 복종하여 회비를 꼭꼭 내고 집회에 꼭꼭 출석하고 회를 사랑하고 위하는 회원 되기는 여간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외다.
독립협회뿐 아니라, 이래(邇來) 조선의 각종 단체가 실패하는 원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회원들이 회원 될 자격을 가지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근 삼십년이나 전에리오. 이러한 이유로 독립협회의 사업은 실패된 것이외다.
글부터 얼마를 잠잠하다가 다시 십 년을 지나 갑진(甲辰)의 일아전(日俄戰)이 개시되매, 조선에는 무수한 단체가 일어났습니다. 그중에서 민족개조를 표방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관념을 가진 것은 학회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들이외다. 가장 먼저 일고 가장 세력 있던 서북학회를 위시하여 기호학회, 호남학회, 교남학회 같은 것이 있어 교육을 위한 유세, 학교의 설립, 교과서의 간행, 기관 잡지의 발행 등으로 교육열을 고취하였습니다. 이 단체들이 교육의 필요를 제창한 점에서 일단의 진보와 새로운 자각을 하였다 하겠으나, 인물이 핍(乏)한 것(지도자, 전문가, 회원), 정치적 색채를 띤 것(당시의 사정으로는 면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무엇보다도 단체조직의 요체를 모른 것 등은 독립협회와 다름이 없었고, 따라서 그 단체들의 말로도 거의 그와 동공이곡(同功異曲)이었습니다.
그네는 아직도 민족의 개조가 조선 민족을 살리는 유일한 갈인 것, 그리함에는 교육이 근본이 되는 것, 그리함에는 유위(有爲)한 인물과 거액의 자금을 가진 공고한 단결이 필요한 것, 이것이 당시에 부르짖던 독립보다도, 제국보다도, 정권보다도 필요한 것을 아직도 철저하게 자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그것을 철저하게 자각하였다 하면 좀더 착실하게, 좀더 완완(緩緩)하게 장구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외다. 그네에게는 몽롱한 자각과 열렬한 성의가 있었으나 투철한 선견과 착실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을 기를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마음’만 있으면 일이 되는 줄 알아, 한갓 조급하고 한갓 소리를 크게 하였습니다.
그네의 자각치 못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개조의 대사업을 감당할 만한 단체를 조성함에는 ‘회원 될 자부터 양성하여야 된다’는 것을 자각치 못함이외다. 의미 있는 사람, 또는 이미 된 사람으로써 능히 이러한 단체를 얻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근본적 유견(謬見)이외다. 개조를 목적하는 단체는 그 회원이 이미 개조된 사람이라야 할 것임이, 마치 금주를 선전하는 단체를 이루려면 그단원부터 이미 금주한 사람이라야 할 것과 같습니다. 주정꾼들이 모여서 술을 먹어가며 금주운동을 한다 하면 골계(滑稽)는 없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민족개조와 같은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이룸에는 그 단체의 조직보다도 그 기초회원 될 자의 양성이 더욱 필요하고 곤란한 사업이외다.
또 하나 당시의 지도자가 자각치 못한 중요한 점, ―이야말로 참으로 근본적으로 중요한 점은, 민족의 개조는 도덕적 방면으로 부터 들어가야 할 것이다―특별히 조선 민족의 쇠퇴의 원인은 도덕적 원인이 근본이니, 이를 개조함에는 도덕적 개조, 정신적 재고가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라 함이외다.
이 점을 자각치 못하고 그네는 오직 신지식의 주입만을 절규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지 신문명의 수입기에는 면치 못할 일인 듯하지마는, 그네가 조선민족의 쇠퇴의 근본 원인을 도덕적 부패에서 찾을 줄을 모르고 오직 지식의 결핍만에서 찾으려 한 것을 큰 불총명, 부자각이외다. 혹은 아직 그러한 시기에 달하지 못한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도덕적 원인을 무시하고 지시열만 고취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금일까지도 지식만 중히 여기고 도덕이란 것을 경시하는 폐습을 생하게 된 것이외다.
나중에 과거의 민족개종운동 단체로 들 것은 청년학우회외다. 이 회는 성립된 지 일년도 못되어 합병 때문에 해산을 당한 것이라, 세상에 드러난 공적은 별로 없지마는 그 조직된 법이 이전의 모든 단체의 결점을 참고하여 거의 이상에 가깝게 된 것으로 보아 신시기(新時期)를 획(劃)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 회에서는 회원을 극히 신중히 선택하여 단결의 제일의(第一義)를 지켰고, 둘째, 기본금의 적립을 실행하였고, 셋째, 덕, 체, 지의 동맹수련을 중요한 목적으로 세워 그중에는 덕육을 고조하였고, 넷째, 정치적 색채를 일체로 띠지 아니하여 순전히 교육에 의한 민족개조를 목적으로 하였고, 맨 나중으로 한번 작정한 규칙을 엄정히 지키었습니다.
이는 실로 조선의 단체사에는 특필할 만한 조직법이요, 겸하여 민족개조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는 더욱 그 의(宜)를 얻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부득이한 사정으로 하여 폐절(廢絶)되어 그 사업의 실적을 볼 수 없이 되었음이 큰 유감이외다.
이상에 나는 갑신 이래 근 사십 년간의 조선의 혁신운동을 민족개조라는 견지에서 대략으로 비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운동들이 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자각하여 무슨 새 방침을, 세워야 하겠다는 생각은 가졌다 하더라도 아직 ‘민족개조가 유일한 생로다’하는 명확한 자각과, ‘그런데 민족개조는 이러한 주의, 이러한 계획으로 해야 한다’는 구체적 의견에는 달치 못하였던 모양이외다(오직 청년학우회가 그러한 이상을 가졌던 모양이나).
이만하면 내가 제창(차라리 소개)하려는 민족개조론의 본론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개조론4] 민족개조는 도덕적일 것

민족개조라 함은 민족성 개조라는 뜻이외다. 일 민족의 생활은 무수한 부문으로 된 것이니, 그 중요한 자를 들면 정치적 생활, 경제적 생활, 문화적 생활(종교적 생활, 예술적 생활, 철학적 생활, 사교적 생활) 등이외다. 이렇게 그 실생활의 부문이 극히 복잡하지마는 이 모든 생활의 양식과 내용은 그 민족성의 여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요, 민족성은 극히 단순한 일, 이의 근본 도덕으로 결정되는 것이외다.
예컨대, 앵글로색슨족의 자유를 좋아하고 실제적이요, 진취적이요, 사회적인 국민성, 독일인의 이지적이요, 사색적이요 조직적인 국민성, 라틴족의 평등을 좋아하고 감정적인 민족성, 중국인의 이기적이요 개인주의적인 민족성, 이 중에서 앵글로색슨족을 뽑아 봅시다. 그네의 개인생활, 사회생활, 국민생활을 보시오. 어느 점 어느 획이 자유, 실제, 진취, 공동 같은 그네의 근본적 민족성의 표현이 아닌가.
첫째, 그네의 정치제도를 봅시다. 영국은 세계에 가장 처음이요, 또 가장 발달된 입헌국이니, 자유민권이란 사상은 실로 영국에서 그 원(源)을 발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영국인은 자유를 바라는 동시에 실제를 좋아하므로 불국인과 같은 공상적 혁명을 일으키어 실제에 쓰지 못할 공상적 헌법을 세우려 아니하고, 또 감정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려 아니하고, 극히 실제적으로, 극히 점진적으로 인민의 자유를 확장한 것이외다.
그 결과는 감정적, 공상적으로 급격하게, 이론만으로 보아서는 가장 철저하게 자유를 주장하던 불국인보다도 훨씬 철저한 자유를 향락합니다. 그네는 일시에 이상적으로 제정한 헌법도 없습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영국 헌법은 일조씩 일조씩 주워모은 관례의 집적에 불과합니다. 그 이론의 철저함과 조리의 정연함이 도저히 연소기예(年少氣銳)한 청년들인 중국헌법제정위원의 지은 헌법에 비겨 훨씬 떨어질 것이외다. 모순 많고 불합리한 점 많기로 영국 헌법은 세계에 제일이라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헌법은 지어 놓은 헌법이요, 영국의 헌법은 쓰는 헌법이외다. 영인에게는 쓸데없는 것은 진실로 쓸데없게 여깁니다.
이렇게 그네는 심히 실제적이요, 점진적이외다. 그네의 요구하는 자유는 이론상의 자유가 아니요, 실용상의 자유외다. 그러한 잡동사니 헌법도 영인의 실용상의 자유를 보장하기에는 넉넉한 것이외다. 그러면서도 영인은 국가로 하여금 자기 개인의 자유를 간섭케 아니하리 만큼 철저한 개인주의자외다. 그렇지마는 그네는 국가생활, 사회생활, 즉 단체생활의 필요를 알아 봉사의 정신이 왕성하므로 그네는 능히 단체를 위하여(국가만이 아니요, 무릇 무슨 단체든지 자기가 속한 단체를 위하여) 자기의 자유를 희생합니다. 그 희생함이 자유의 의사에서 발한 것이기 때문에 자유외다. 이번 구주대전에도 그네는 지원병으로 싸웠습니다.
정치제도뿐 아니라 종교나 철학이나 문학이나 예술이 모두 이 자유, 실제, 사회성, 점진성 같은 영인의 근본 성격에서 발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가령 영국의 철학을 보시오. 독일인의 것과 같은 완전한 체계나 심오한 사색도 없고 불국인의 것과 같은 명쾌한, 신기한 맛도 없이 그 역시 불완전한 실제적의 철학이외다. 특히 철학의 기초되는 인식론과 철학의 중심이라 할 인생철학, 즉 윤리학이 더욱 그러합니다. 이론적으로 보아 불완전하나 실제적으로 보아 쓸데가 많습니다. 실제란 워낙 불완전한 것이 특징이니까요.
문학과 예술도 그러합니다. 영문학에는 남구문학(南歐文學)의 염려(艶麗), 방순(芳醇)도, 북구문학의 심각, 신비도 없고 그네의 실생활과 같이 평담(平淡)하고 자연합니다. 그러나 영문학은 문학 중에는 밥과 같습니다. 남구문학을 포도주에 비기고 북구문학은 워커(소주)에 비기면.
영인의 상업이나 식민지정책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중에도 식민지정책을 보면 그 주인(主人)의 종교, 습관, 기타의 생활방식을 존중하여 그 자유로운 발달에 맡깁니다. 이것이 또한 그네의 자유의 정신의 발로외다. 그네는 다른 민족의 민족성의 자유를 알아주고 구태여 이것을 자기네의 표준을 따라서 변혁하는 것이 불가능한 줄을 아는 총명을 가지기도 하였겠지마는 자시의 자유를 심히 사랑하는 그네는 차마 남의 자유를 죽이지 못함인 듯합니다.
또 그네의 식민지를 다스리는 제도를 보건대 자기네의 본국을 표준하여 철두철미로 영국의 속령(屬領)이라는 표가 나기를 반드시 힘쓰지 않는 모양이요, 다만 실제로 자기의 식민지인 이익을취하면 그만이라 하는 듯합니다. 마치 커다란 유니언 잭 국기를 그 땅에 달아놓으면 그만이지 구태 방방곡곡이, 가가호호가 유니언잭을 그리고, 달고 해야 한다는 철저한 생각은 아니 가진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이상적으로 철저적이요, 조직적이게 모국화하려고 애쓰는 불국보다 훨씬 유효하게 그 식민지를 모국화하는 공효(功效)를 얻습니다.
그네의 식민지는 번창하고 그네의 지배를 받는 이민족은 비교적 많은 자유를 향락하고 그러면서도 그네의 모국은 이 식민지에서 얻을 이익을 넉넉히 향수(享受)합니다. 애급과 비율빈은 앵글로색슨족의 식민지정책 성공의 호표본(好標本)입니다. 그리하고 그 성공의 원인은 또한 그네의 근본 성격인 자유, 실제, 봉사, 점진성 같은 정신에서 나온 것이외다.
이렇게 영인의 모든 생활과 그 생활의 성패는 그 민족의 근본 성격, 또는 근본 정신에 기인한 것이외다.
민족심리학의 태두 불국의 석학 르봉 박사는 그의 명저 《민족심리학》에,
‘언어, 제도, 사상, 신앙, 미술, 문학 등 무릇 일국의 문명을 조직하는 각종 요소는 이를 지어낸 민족성의 외적표현이라(민족심리학 제이장 제일절)’고 단언하였으니, 이는 내가 이상에 누누이 설명한 바를 가장 간명하게 결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머리를 돌려 조선민족의 이처럼 쇠퇴한 진인(眞因)을 찾아봅시다. 조선민족이 어떻게 이처럼 쇠퇴하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일본인은 흔히 이조의 악정이 그 원인이라 하고, 서양인도 그와 같은 뜻으로 Maladministration(악정)이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쇠퇴의 가장 직접되고 또 총괄적인 원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도 원인을 설명한 것은 아니니, 이는 마치 영미가 강성한 것은 그 선정에 말미암음이라 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말이외다. 구태 악정이라 하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다 하면 그것은 ‘조선민족의 쇠퇴의 책임은 그 치자계급―즉, 국왕과 양반에게 있다’ 함일 것이외다. 과연 조선에는 적어도 삼백 년 이래로는 엄연히 치자계급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국왕과 양반, 일인의 국왕과 혹은 동서인(東西人), 혹은 노소론(老少論)하는 전민중의 몇 백분지 일에 불과하는 소수계급이 세습적으로 정치와 교화를 분담하여 왔으니, 전민족을 쇠퇴케한 직접의 책죄(責罪)가 그네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외다. 정치를 문란할 것, 산업을 쇠잔테 한 것, 국민교육을 힘쓰지 아니한 것, 사회의 풍기와 인민의 정신을 타락케 한 직접의 책임자가 피등(彼等)인 것은 피치 못할 사실이외다.
더욱이 인국(隣國)의 치자계급이 서양의 신문명을 수입하여 대경장(大更張)을 행할 때에 그 인국의 권유와 원조가 있음을 불구하고 때맞추어 유신의 원도(遠圖)를 행하지 못하여 써 전민족으로 하여금 철천의 한을 품게 한 것은 그네의 죄 중에도 가장 큰 죄라 할 것이외다.
하지마는 한걸음 더 내켜 생각하면 이 역시 전민족의 책임이요, 또 한걸음 더 내켜 생각하면 이 역시 민족의 소이(所以)외다. 만일 영인 같은 자유를 좋아하는 정신이 있고, 불인 같은 평등을 좋아하는 정신이 있다 하면 결코 신임치 못할 치자계급을 그냥 두지 아니하였을 것이외다.
또 치자계급인 그네에게도 자유, 평등, 사회성, 진취성이 있었다하면, 결코 조선민족을 이렇게 못 되게 만들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니, 치자이던 양반이나, 피치자이던 일반 민중이나, 그가 가진 타락한 민족의 희생이 되기에는 마찬가지 조건민족이외다.
만일 당시 민족성을 타락하게 한 책임이 치자계급에 있다 하여 그네를 책망할 진대 그러한 치자계급을 산출하고 존속케한 책임이 또한 일반 민중에게 있다하여 그네를 또 책망하게 될 것이외다. 그러므로 치자계급이던 양반에게 민족을 쇠퇴케 한 직접의 책임을 지우더라도 별 수 없는 일이요, 요컨대 조선민족 쇠퇴의 근본원인은 타락된 민족성에 있다 할 것이외다.
조선민족 쇠퇴의 원인이라도 악정이란 것이 이미 도덕의 부패를 연상케하는 것이니, 대개 악정이라면 식견이 부족하여 되는 악정, 즉 위정자의 동기는 국리민복을 위함에 나왔지마는, 지식이 없어서 악정이 되는 악정도 있을 것이외다. 그러나 악정이라는 이름을 듣는 악정 대부분―특히 조선민족을 쇠퇴케 한 악정의 대부분은 이러한 선의의 악정이 아니요, 진실로 그 동기부터 악한 악의의 악정이외다. 곧 정사를 행함에 국가와 민생을 위하여 하지아니하고 자기 일개인 또는 자기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일 당파의 이익을 위하여 하는 악정이외다. 가령 모가 영의정이 되었다합시다. 그는 관리의 임면(任免)이나 만반 시정(施政)을 국가를 위하여 하기보다 첫째 자기 일신의 권세, 둘째 자기의 친척 붕우의 출세, 셋째 자기와 휴척(休戚)을 같이하는 노론이나 소론의 권세를 위하여 합니다. 따라서 그의 손으로서 나온 모든 공직을 띤 자가 다 이러합니다. 조선의 악정은 실로 이러한 종류의 악정이었습니다.
이제 이 악정자를 도덕적으로 분석해봅시다. 그는 첫째, 허위의 인이외다. 국사를 한다 하면서 사사(私事)를 하고 총준(聰俊)을 거(擧)한다 하면서 당여(黨與)를 거하고, 죄인을 벌한다 하면서 자기의 사혐(私嫌)을 보(報)합니다. 교화의 머리가 되는 대제학(大提學)이 반드시 학식과 품격이 빼난 자가 아니며, 원수(元帥)와 대장이 반드시 무용과 전략을 구비한 자가 아닙니다. 하필 예를 고대에 구하리오. 최근으로 보더라도 수만의 시위대(侍衛隊), 진위대(鎭衛隊)가 국방을 위하여 있던 것이 아니요, 무슨 대신 무슨 국장이 국사를 하노라고 있던 것이 아니니 모두가 허(虛)요, 모두가 위(僞)외다.
둘째, 그네는 단체생활의 생명인 사회성, 곧 봉사의 정신이 업었습니다. 만일 공을 위하여 사를 희생하는 정신 즉, 일생의 사, 언, 행이 도시(都是) 국가와 민족을 위함이라는 정신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빙공영사(憑公營私)의 악행을 한 것이외다.
이 허위와 사욕 두 가지가 치자로 하여금 그러한 악정을 행하게 한 것이외다. 허위된지라 그네에게 정의가 없고 충신이 없으며 사욕된지라 그네에게 정의가 없고 충신(忠臣)이 없으며 사욕된지라 그네에게 국이나 민에 대한 애(愛)도 경(敬)도 없는 것이외다.
다음에 일반 민중이, 또는 치자계급 자신이 이 악정을 개혁하지 못한 원인도 또한 도덕성입니다. 그네 중에도 이것이 그릇된 것을 자각한 자가 있었을 것이외다. 생각도 하고, 말도 하고, 글도 지었을 것이외다. 논어나 맹자도 결코 허위와 사욕을 가르치는 글이 아니니 이것을 외우는 그네의 입에는 살신성인이라든지, 국궁진췌(鞠躬盡悴)라든지, 알인욕이존천리(遏人慾而存天里)라든지, 충군애국(忠君愛國)이라든지 하는 말도 많이 하였을 것이외다.
그러면서도 이 악정을 이내 고치지 못한 것은 첫째, 나타(懶惰)하여 실행할 정신이 없고, 둘째, 접나(怯懦)하여 실행할 용기가 없고, 셋째, 신의와 사회성의 결핍으로 동지의 공고한 단결을 얻지 못한 까닭이외다.
개혁의 사업은 공상과 공론으로 될 것이 아니요, 오직 실행으로야만 될 것이요, 재래의 정권이나 습관에 반항하여 구를 파하고 신을 건하는 위업은 그 사업의 성질상 곤란과 위험이 많은 것이니, 이를 능히 함에는 위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 일국을 개혁하려는 위업은 결코 일, 이 개인의 능력이 능히 할 바 아니요, 오직 공고하고 유력한 단체로야만 할 것이외다. 그런데 조선사를 보면 흔히 개혁자들이 국왕이나 재상에게 일편의 의견서를 드림으로써 유일한 빙침 삼고, 가장 근대에 비교적 진보한 사상을 사졌다 할 김옥균, 박영효조차 겨우 십수의 동지를 음모적으로 규합함에 불과하였고, 일찍 공고하고 세력 큰 대결사(大結社) 상도(想到)치 못하였습니다. 비록 근년에 이르러 개혁을 목적으로 한 여러 가지 단체가 있었지마는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그 역시 공고한 단결이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진실로 갑신 이래로 삼 인 이상의 단결된 동지가 삼 개년 이상을 그냥 그 단결을 유지한 것을 듣지 못합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나, 허위, 나타, 무신, 사회성의 결핍에 있습니다. 피차에 허위되니 피차에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단결이 안됩니다. 단체생활의 제일 요건은 진실로 서로 믿는 것인데 거짓말쟁이 속임꾼들끼리 모이면 무슨 단결이 되겠습니까. 둘째, 단체란 일하자고 만드는 것인데 밤낮 공상과 공론으로만 일을 삼으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셋째, 신의가 없어 피차에 작정한 것을 지킬 줄을 모르고 단체에 대하여 진 의리를 안 돌아보아 서로 미쁨이 없으면 무슨 단결이 되겠습니까. ‘배반’은 실로 조선의 교우사(交友史), 단체사를 관류(貫流)한 악덕이외다. 이리하여 악정의 개혁을 행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위에 말한 나의 사론(史論)이 만일 정확하다 하면 조선 민족 쇠퇴의 근본적 원인이 도덕적인 것이 더욱 분명하지 아니합니까. 곧 허위, 비사회적 이기심, 나타, 무신, 겁나, 사회성의 결핍―이것이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금일의 쇠퇴에 빠지게 한 원인이 아닙니까.
영미족의 흥왕도 그 민족성이 원인이요, 오족(吾族)의 쇠퇴도 그 민족성의 원인이니 민족의 성쇠 흥망이 실로 그 민족성에 달린 것이외다. 그러므로, 일 민족을 개조함에는 그 민족성의 근저인 도덕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함이외다.
새술은 낡은 부대에 담지 못한다. 부대는 터지고 술은 쏟아지리라. 낡은 재목으로 새집을 짓지 못한다. 더구나 썩어져 무너진 집 재목으로 새집을 지으랴. 짓지도 못하려니와 지어도 다시 무너지리라. 쇠퇴하던 백성이 흥왕하는 백성이 되지 못하리니 흥왕 하려면 그 백성부터 새롭게 힘있게 하여야 할 것이외다. 만일 그 썩어진 성격을 그냥 두면 아무러한 노력을 하더라도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니 민족적 성격의 개조! 이것이 우리가 살아날 유일한 길이외다.

민족개조론5]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한가

나는 이 논문의 상편에서 민족개조란 가능한 것이라는 뜻을 암시하였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민족개조운동을 논평할 때에, 단체사업으로만 하면 민족개조는 가능하다는 확신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몸소 민족개조운동을 개시하려고 드니 이것이 가능한가 아니한가를 한번 분명히 알고 싶어집니다.
전절에 말한 바와 같이 민족개조란 곧 민족의 성격, 즉 민족성의 개조니, 민족이란 개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가 본절에서 토론할 문제외다.
전에 인용한 르봉 박사는 민족적 성격에 근본적 성격과 부속적 성격의 이부(二部)가 있다 하여 부속적 성격은 가변적이나 근본적 성격은 불가변적이니, 오직 유전적 축척으로 지완(遲緩)한 변화가 있을 뿐이라 합니다. 크롬웰시대의 영인과 금일의 영인과는 거의 딴 민족같이 보이지마는, 기실은 그 부속적 성격이 특수한 대사건, 대변동의 영향을 받아 변하였음이요, 그네의 근본적 성격에는 거의 아무 변화도 없었다 하고, 또 나폴레옹 대제의 종순한 신민(臣民)이던 불국인과 바로 몇 해 전 대혁명시대의 불기 자유하던 불국인과는 근본적으로 딴 성격의 민족인 듯하나 기실 전제적으로 지배받기를 좋아하는 라틴족의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주위의 사정, 무슨 대사변, 또 교육은 어떤 민족의 부속적 성격을 변하게 할 수 있으되, 그 근본적 성격은 변하게 할 수는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부속적 성격을 일시 변하더라도 얼마를 지나면 다시 그 근본적 성격이 우등(優騰)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고 박사는 근본적 성격의 예로 앵글로색슨족의 자유와 자치를 좋아하는 성격, 라틴족의 평등과 피치(被治)를 좋아하는 성격을 들었습니다. 박사의 주장대로 하면 앵글로색슨족의 성격은 아무리 변하더라도 자유를 좋아하는 성격은 변치 못하리라, 그와 반대로 라틴족의 성격은 아무리 변하더라도 평등을 좋아하는 성격은 변치 못하리라 하게 됩니다.
또 박사는 민족의 성격을 해부적 성격과 심리적 성격 둘로 나누어, 우리가 흔히 민족성이라고 일컫는 바를 심리적 성격이라 하고, 체질의 특징을 해부적 성격이라 합니다. 그래서 박사는 일 민족의 해부적 특징의 근본적인 몇 가지가 변할 수 없는 모양으로 일 민족의 심리적 특징, 즉 민족성의 근본적인 몇 가지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가령 황색인종의 피부의 황색 같은 것은 불가변적인 특징이외다.
그러나 해부적 특징에 이렇게 고정불가변한 것이 있다고 거기서 유추하여 심리적 특징에도 그런 것이 있으리라 함은 한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 과학적으로 정확한 증명을 하기는 어렵지마는, 여러 가지 역사적 실례로 보건대 그것이 진리인 듯 합니다. 박사가 이미 앵글로색슨족과 및 자국인인 라틴족도 에로 들었지마는 일찍 이민족으로서 완전히 동화하여 동일한 성격의 민족을 성(成)하였다는 전례를 보지 못한 것으로 보면, 각 민족에게는 도저히 변할 수 없는 일개 또는 수개의 근본적 성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합니다.
특히 개인 심리학상으로 보더라도 각 개인마다 해부적 특징이 있는 모양으로 갑이면 갑, 을이면 을 되는 개성에 근본적 특징이 있어, 이것은 일생에 변하기 어려운 것을 보더라도 개인의 성격의 총화라 할 만한 민족성에도 변할 수 없는 근본적 성격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 하면 우리는 일종의 실망에 빠지게 됩니다. 민족성의 개조란 불가능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깁니다.
만일 민족의 근본적 성격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 하면, 다시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르봉 박사의 설과 같이 민족의 근본적 성격은 불가변의 것이라 하고, 민족을 개조할 방법을 연구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는 두 가지 경우가 있겠습니다. ① 근본적 성격은 좋지마는 부속적 성격이 좋지 못한 경우와, ② 근본적 성격 자신이 좋지 못한 경우와. 그런데 첫째로 말하면 설명치 아니하여도 주위와 대변동과 교육의 힘으로 개조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고, 둘째가 가장 어려운 문제이외다. 곧 근본적 민족성이 좋지 못하고는 그 민족은 생존 번영할 수가 없거늘, 이것은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 하면, 그 민족의 운명은 절망적일 것이외다. 그러나 역시 개조할 길이 있습니다. 근본적 성격이 좋지 못한 민족이라고 그 민족의 각 개인이 다 좋지 못한 사함일 리는 만무하니, 그 중에도 소수나마 몇 개의 선인이 있을 것이외다. 마치 부패한 유태인 중에서 예수 같으신 이가 나시고 그의 사도들 같은 이들이 난 모양으로, 이 소수의 선인이야말로 그 민족 부활의 맹아(萌芽)외다. 십인의 선인이 없으므로 하여 소돔성이 천화(天火)에 망하였다는 말도 진실로 의미심장한 말이외다.
이 소수의 선인, 다시 말하면 그 민족의 근본적 악성격을 사장 소량으로 가진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먼저 ‘이 민족은 개조해야 한다’는 자각과 결심이 생깁니다. 그 사람이 자기와 뜻이 똑같은 사람 하나를 찾아 둘이서 동맹을 합니다. 먼저 자기를 힘써 개조하고, 다음에 개조하자는 뜻이 같은 사람을 많이 모으기로 동맹을 합니다. 차차 삼 인, 사 인씩 늘어 수천만의 민족 중에서 수백 인 내지 수천 인을 모집하여 한 덩어리, 한 사회, 한 개조 동맹단체를 이룹니다. 그리하면 그 단체의 각원은 더욱더욱 수련되고, 개조되어 더욱더욱 좋은 사람(문명한 국가의 일공민 될 만한 덕행과 학식, 기능과 건강을 가진 사람)이 되고, 이러한 바른 자각과 굳은 결심과 오랜 수양을 가진 사람들의 단체이기 때문에 그 단체의 유지와 발전이 썩 잘 되어갈 것이외다. 이에 그네는 아직 개성이 고정되지 아니하고, 그중 우수한 소년 남녀를 뽑아 그 동맹에 가입케하여, 일면으로 그 동맹원의 수를 증가하며, 일면으로 그 단체의 인력과 재력을 충장(充壯)케 하여 학교, 서적 출판 기타의 사업으로 일반 민족에 크게 선전하는 동시에 차대의 후계자인 자녀에게 새 이상의 교육과 환경을 주어서 더욱더욱 신분자, 즉 개조된 개인의 수를 증가케 합니다.
이리하여 십년이나 이십 년을 지나면 개조된 개인의 일이천 인에는 달할 것이니, 그네는 모두 신용과 능력이 있는 인사이겠기 때문에 사회의 추요(樞要)한 모든 직무를 분담하게 되어 자연 전 민족의 중추계급을 성하게 될 것이요, 이리 되면 자연도태의 이(理)로 구성격을 가진 자는 점점 사회의 표면에서 도태되어 소리없이 칩복(蟄伏)하게 되고, 전 민족은 이 중추계급의 건전한 정신에 풍화되어 세월이 가고 세대가 지날수록 민족은 더욱 새로워져 오십 년이나 백년 후에는 거의 개조의 대업이 완성될 것이외다.
이렇게 의식적이요, 조직적인 방법은 아직 역사상에 전례가 없거니와,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민족개조라 할 만한 사업은 다 이와 유사경과(類似經過)로 되는 것이니, 혁명이라든지 유신이라든지가 신계급의 출현으로 굄을 보아서 알 것이외다.
이제 우리 조선 민족에게 민족개조의 원리를 응용해봅시다.
첫째, 조선 민족의 민족성의 결점은 그 근본적 성격에 있는 것인가, 또는 부속적 성격에 있는 것인가를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의 결정되기를 따라 우리의 민족개조의 사업의 난이(難易)가 결정될 것이외다. 그런데 이 문제를 결정하려면 르봉 박사의 이른 바와 같은 조선민족의 근본 성격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찾아보아야 할 것이외다.
우리 민족에 대한 가장 낡은 비평은 산해경(山海經)에 나온 한족(漢族)의 비평이니
‘군자국재기북 의관대검식수 사이문호재방 기인양호부쟁(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食獸 使二文虎在傍 其人好讓不爭)이라 하였고, 이에 대한 곽박(郭璞)의 찬(讚)에
‘동방기인국유 군자훈서시식 조호시사아호 예양예위논리(東方氣仁國有 君子薰犀是食 彫虎是使雅好 禮讓禮委論理)라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민족에게 처음 준 인상이 ’군자‘외다.
공자도 ‘군자거지(君子居之)’라 하여 자국민의 부패 무도함에 분개하여 아족 중에 오려 하였습니다. ‘기인양호부쟁’이란 것을 현대적 관념으로 분석하면 고나대, 박애, 예의, 염결, 자존 등이 될 것이외다. 다시 이 다석 가지 덕목을 한데 뭉치면 곽박의 산해경찬에 있는 바와 같이 ‘인(仁)’이 될 것이외다. 그런데 이를 조선 민족의 역사에 참고해 보건대, 인은 조선 민족의 근본 성격인 듯합니다. 국제적으로도 일찍 남을 침략해 본 일이 없고, 또 외국인을 심히 애경하는 성질이 있으며, 민족끼리도 잔인 강폭한 행위는 극히 적습니다. 살인 강도 같은 잔인성의 죄악은 현금에도 심히 적다 합니다.
조선처럼 관대한 자는 타민족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혹 누가 자기에게 모욕을 가하면 흔히는 껄껄 웃고 구태여 보복하려 아니합니다. 외국인은 혹 이를 겁나한 까닭이라고 할는지 모르나, 껄껄 웃는 그의 심리는 일종 관서(寬恕)와 자존이외다. 그래서 조선인은 원수(怨讎)를 기억할 줄 모릅니다. 곧 잊어버립니다. 심지어 자기의 혈족을 죽인 자까지도 흔히는 용서합니다. 그러므로 조선의 전설이나 문학에 보수(報讎)에 관한 것은 극히 적고, 일본 민족과 같이 이를 한 미덕으로 아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음에 조선인은 애인(愛人)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처음 대할 때에는 좀 뚝뚝하고 찬 듯하지마는 속마음에는 극히 인정이 많습니다. 십수 년 전까지 사랑에 들어오는 손님이 있으면 알거나 모르거나 숙식을 주어 관대(款待)합니다. 집에는 내객을 위하여 항상 객량(客糧)과 객찬(客饌)과 객초(客草)를 준비하고, 가족의 먹는 것은 박(薄)하여도 객에게는 맛나는 것을 주며, 가족은 좀 차게 자더라도 객실에는 불을 많이 땝니다. 옛날의 조선 가정의 하는 일의 반은 실로 ‘접빈객(接賓客)’이었습니다.
예의를 중히 여기는 것은 오족의 본래의 특성이외다. 군자국이라는 칭호부터도 예의를 연상케 하거니와 ‘의관대검’이라든지, ‘호양부쟁’이라든지 하는 말에도 예의를 연상케 합니다. 또 동방삭 신이경(東方朔 神異經)에,
‘동방유인남개 호대현관여개 채의항공좌이 불상범상예이 불상훼견인유 환투사구지창 졸견지여 치명왈선인(東方有人男皆縞帶玄冠女皆 采衣恒恭坐而 不相犯相譽而 不相毁見人有 患投死救之蒼 卒見之如 癡名曰善人)’이라 한 것이 있음을 보아 어떻게 고대 오족이 예의를 숭상할 것을 알것이외다. 또 후한서에 부여인(夫餘人)의 예의 있음을 평하여,
‘음식용조두회동배작세작읍양승강(飮食用俎豆會同拜爵洗爵揖讓升降)’이라 하였고, 또 삼국지에 마한을 평하여
‘기속행자상봉개주양로(其俗行者相逢皆住讓路’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의를 숭상하는 본성이 있었으므로 이조의 당쟁도 거의 예문의 해석이 그 원인이 되었으며, 현금의 조선인도 예의를 숭상하는 풍이 많으니, 우리 나라를 예의지방(禮義之邦)이라 한 것은 참으로 적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의란 무엇이뇨. 규율에 복종하여 질서를 지키는 것이외다. 규율 밑에는 극히 순복한다는 뜻이외다. 예의란 곧 의(義)외다.
또 조선인은 염결하였습니다. 또 삼국지에 ‘기인성원각소기욕유염치(其人性愿慤小嗜慾有廉恥)’라 하였습니다. 정승으로서 객주 집 한 방을 빌려서 유숙한 이가 있고, 결코 남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때에 물질적 보수를 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금전을 탐하는 것은 조선인의 가장 천히 여기던 바이외다. 지금은 세강속말(世降俗末)하여 금전 수입의 다소로 인물을 평가하게 되었지마는, 옛날 조선인은 금전이라는 말을 하기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은 아직도 남아서 무슨 일에나 월급이라든지 보수를 논하기를 치욕으로 압니다.
또 조선인은 심히 자존심이 많습니다. 근대에 일부 배명배(拜明輩)가 한족의 문화에 심취하여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를 쓰면서도 일반 민중은 한인을 ‘되놈’이라 하고 ‘오랑캐’라 하여 우리보다 훨씬 떨어지는 자로 여기도록 그처럼 자존심이 많습니다.
어떤 미국인이 ○○사건 후에 구제미 얻으러 온 조선인들의 모여 선 것을 박은 사진을 보고 아아 조선 사람은 존재(尊大)하다고 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 사람의 앉음앉음, 걸음걸이, 말하는 모양, 어떻게나 존대합니까. ‘점잖다’는 말은 우리가 사람의 품격을 칭찬하는데 가장 많이 쓰는 말이외다.
또 자존이라는 관념 중에는 자주나 독립이란 관념이 항상 부수(附隨)합니다. 역사를 보면 조선에는 일찍 봉건제도가 시행되어 본 일이 없습니다. 삼한시대나 삼국초에도 무한 소국이 있었지마는 그것이 다 완전한 독립국이었었고, 대국의 멸함을 받을지언정 그 부속은 아니 되었습니다. 당과 신라의 관계 같은 것은 일종 외교적 정책관계요, 신라가 당의 지배를 받은 일은 없었으며, 이씨 조선시대에도 명의상 명청양조(明淸兩朝)의 정삭(正朔)을 받았다 하나, 그것은 일편의 형식이요, 그 실질상 지배를 받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민중의 생활을 보더라도 독립 자주의 기풍이 많습니다. 조선에는 일인의 지배하에 만인이 복종하는 대가족제나 농노제는 시행된 적이 없었고, 조그마한 집일망정 각각 제집에서 제가 빌어먹기를 좋아합니다. 지금도 그 기풍이 남아 이익이 많은 남의 고용보다도 이익이 적은 독립한 영업을 좋아합니다. 이 주를 호상(好尙)하는 기풍은 조선인의 생활의 각 방면에 드러납니다.
그러나 산해경은 우리 조선사람을 그릴 때에 오직 이 인한 방면만 볼 뿐이 아니요, 또 그 무용한 방면도 보았습니다. ‘의관대검’이라 하니, 그는 점잖은 의관을 하고 무용의 검을 찼습니다. 이뿐 아니라 후한서에도 우리를 평하여
‘부여기인추대강용이근후불위구초.....행인무주야호가음음성부절(夫餘其人麤大彊勇而謹厚不爲寇鉊.....行人無晝夜好歌吟音聲不絶)’이라 하였고, 또 동옥저를 기하여,
‘........인성질직강용편지모보전(........人性質直强勇便持矛步戰).....’이라 하였습니다. 또 한인의 우리 민족을 부르는 최고(最古)한 칭호인 이자(夷字)는 종대종국(從大從弓)이라 하여, 대궁을 가지고 다니는 자라는 뜻이외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본성은 무용하였습니다. 오직 후한서에 말한 바와 같이 ‘근후불위구초’하여 ‘추대강용’하면서도 군자국이란 칭찬을 듣는 것이외다.
다음에 조선인의 성질은 심히 쾌활합니다. 여기 인용한 글에도 ‘호가음음성부절’이라 하였으니, 그네의 사는 곳에 음악이 끊이지 않는단 말이요, 삼국지에 마한의 속(俗)을 평하여
‘상이오월전경제귀신주야주회군회취가무무첩수십인상수답지위절(常以五月田竟祭鬼神晝夜酒會群會聚歌舞舞첩數十人相隨답地爲節)’이라 하고, 또 후한서에 진한(辰韓)을 평하여,
‘속희가무음주고슬(俗喜歌舞飮酒鼓瑟)’이라 하고, 삼국지에 고구려를 평하여
‘기민희가무국중읍락모야야남녀군취상취가희(其民喜歌舞國中邑落暮夜夜男女群聚相就歌戱)’라 하였습니다. 이는 한인이 고대의 우리 민족을 평한 것이어니와 우리 자신이 보더라도 우리는 퍽 쾌활한 민족이외다. 조선인은 낙천적이라 그는 웃을 줄 알되, 울거나 노하거나 음침한 태도를 취할 줄을 모릅니다. 조선인처럼 농담과 장난을 좋아하는 자는 드물 것이외다. 조선인은 결코 제국주의적, 군벌주의적 국민은 되지 못합니다. 종교적으로 우는 민족, 철학적으로 음침하게 사색하는 민족도 되지 못합니다. 조선인은 현실적, 예술적으로 웃고 놀고 살 민족이외다.
그러면 조선민족의 근본 성격은 무엇인고. 한문식 관념으로 말하면 인과 의와 예와 용이외다. 이것을 현대식 용어로 말하면 관대, 박애, 예의, 금욕적 염결(廉潔), 자존, 무용, 쾌활이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민족은 남을 용서하여 노하거나 보복할 생각이 없고, 친구를 많이 사귀어 물질적 이해관념을 떠나서 유쾌하게 놀기를 좋아하되(사교적이요), 예의를 중히 여기며 자존하여 남의 하풍(下風)에 입(立)하기를 싫어하며, 물욕이 담(淡)한지라 악착한 맛이 적고 유장(悠長)한 풍이 많으며, 따라서 상공업보다도 문학, 예술을 즐겨하고, 항상 평화를 애호하되 일단 불의를 보면 ‘투사구지(投死救之)’의 용(勇)을 발하는 사람이외다.
이제 그 반면인 결점을 보건대, 관대 박애하므로 현대 국민이 가지는 배타적 애국심을 가지기 어려우니, 그러면서 사천 년래 능히 국가를 유지한 것은 그의 자존심과 무용성이 있음이외다. 그의 성(性)이 염결한지라 이민족의 영토를 침략할 야심이 없을뿐더러, 치부치술(致富之術)이 졸(拙)하여 저 삼국시대를 보더라도 미술의 발달은 당시 세계에 관(冠)이 될 만하면서도 상공업의 발달은 보잘것이 없었습니다. 또 예의를 숭상하는 반면은 진정의 유조(流露)를 저애하여 허위에 흐르기 쉬우며, 자존심이 많음은 지도자의 지도에 순종함을 절대요건으로 하는 공고한 단체의 조직을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그의 낙천적이요 현실적인 본성은 그로 하여금 피안의 낙원을 구하는 종교나 심오한 철학적 사색이나 과학적 탐구에 대한 노력을 경시하게 하였습니다. 조선민족을 금일의 쇠퇴에 끌은 원인인 허위와 나타와 비사회성과 및 경제적 쇠약과 과학의 부진은 실로 이 근본적 민족성의 반면(半面)이 가져온 화(禍)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민족성,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니니, 이것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천품이라 어디까지든지 발휘하여야 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조할 것은 조선민족의 근본적 성격이 아니요, 르봉 박사의 이른바 부속적 성격이외다. 그러할진댄 우리의 개조운동은 더욱 가능성이 풍부하다 할 것이외다.
이에 나는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하다 함과 특히 조선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할뿐더러 참으로 용이하다 함을 단언합니다.

민족개조론6] 민족성의 개조는 얼마나 시간을 요할까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하다 함과 특히 조선 민족성의 개조는 용이하다 함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씩 시작하여 언제나 그 많은 민중을 다 개조해 놓을까, 언제나 이천만이나 되는 민족을 개조하여 문명하고 부강한 생활을 하게 할까 함을 생각하면 구누나 망연한 생각이 날 것이외다. 그래서 혹은 무슨 지름길이 없을까, 이렇게 힘드는 길 말고 갑자기 잘 살게 되는 길이 없나 하고 무슨 이적(異蹟的)인 길을 찾고자 합니다. 이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물론하고 불행한 경우에 처한 자의 흔히 가지는 심리외다. 그러고 이는 병적 심리이외다. 가령, 극히 가난한 사람이 부하기를 원한다 하면 그는 각고와 근면으로 축적하리라는 생각보다도 무슨 요행으로 졸부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혹은 금광을 찾으러 다니고 혹은 미두(米豆)를 하러 다닙니다. 그렇지마는 금광이나 미두로 소원하는 졸부가 되는 자는 만에 하나도 드문 일이외다. 나머지 구천구백구십구 인은 일생을 허욕만 따르다가 마침내 빈한 대로 죽고 말게 됩니다. 그네가 근면 축적의 길을 잡았더면 일생에 먹을 만한 재산은 다 가질 수가 있었을 것이어늘. 그러나 졸부는 혹 이러한 요행으로 될 수 있지마는 학자나 위인은 결코 요행으로 될 수 없고, 오직 각고와 근면으로만 괴는 것이외다. 그런데 민족의 성쇠는 졸부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요, 학자나 위인이 되는 덕과 같은 것이외다. 제가 도덕을 닦고 지식을 배우고 개인과 사회의 생활을 개량하고 부를 축적함으로 되는 것이지, 결코 남의 도움이나 일시적 요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외다.
강화회의나 국제연맹이나 태평양회의는 조선인의 생활개선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외다. 설사 조선인의 생활의 행복이 정치적 독립에 달렸다 하더라도 그 정치적 독립을 국제연맹이나 태평양회의가 소포 우편으로 부송할 것이 아니외다.
정치적 독립은 일종 법률상 수속이니, 이는 독립의 실력이 있고, 시세가 있는 때에 일종의 국제상의 수속으로 승인되는 것이지, 운동으로만 될 것이 아니외다. 우리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으로 이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구원을 우리 밖에서 구하는 우(愚)를 반복하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는 목적을 요행에서 달하려는 치를 반복하지 아니할 것이외다. 이제부터 우리가 근본적으로 할 일은 정경대도(正經大道)를 취한 민족개조요, 실력 양성이외다. 조선인이 각 개인으로, 또 일 민족으로 문명한 생활을 경영할 만한 실력을 가지게 된 후에야 비로소 그네의 운명을 그네의 의사대로 결정할 자격과 능력이 생길 것이니, 그때에야 동화를 하거나 자치를 하거나 독립을 하거나, 또 세계적 의의를 가진 대혁명을 하거나, 그네의 의지대로 자처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조선인의 명운개선(命運改善)에는 결코 민족개조를 제한 외에 아무 지름길도 없는 것이외다. 다시 말하면 유일한 지름길이 곧 민족개조이외다. 부질없이 다른 요행의 지름길을 찾다가는 한갓 세월만 더 허비하고 힘만 더 소비할 뿐이외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이 유치하고 못생긴 ‘요행’을 바라는 생각을 버리지 아니할 것인가.
이제부터 본제에 들어가 조선민족 개조에 걸리는 시간을 연구해 봅시다.
연구의 순서상 개인의 성격개조상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민족개조란, 결국은 그 민족을 조성한 각 개인의 개조의 문제니까.
일개인의 성격개조의 기원은 개조해야겠다는 자각의 순간에서 시작할 것이외다. 자각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신성격의 근본이 될 사상을 찾을 것이니, 그것을 찾아 얻는 동안이 함참 될 것이외다. 흔히 생각하기를 사상만 찾아내서 제 것을 만들면 성격은 개조된줄로 알지마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외다. 물론 사상을 찾는 것이 근본이 되지마는 사상은 건축으로 말하면 설계도에 불과한 것이외다. 설계도만 있다고 집이 되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신사상만 있다고 신성격이 되는 것이 아니외다.
사상이란 이지적이외다. 성격이란 정의적이외다. 사상은 이지적인 고로 일순간에 이해할 수가 있지마는, 성격이란 정의적 습관인 고로 그것을 조성함에는 서서한 축적작용을 요구하는 것이외다. 가령 부지런해야겠다 하는 사상을 얻는다 합시다. 부지런이라 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 일어나서는 꼭꼭 시간을 정해놓고 그날에 하기로 예정한 직무를 다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지로 아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이지를 정의의 역(力)으로 옮겨 실행하고, 실행하여 일일, 이일, 일년, 이년 실행하는 동안에 그만 견고한 부지런의 습관을 길러 그 다음에는 힘 안들이고 자연히 부지런하게 되어야 이에 비로소 부지런이 성격을 이루었다 하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부지런한 성격을 가지려면 적어도 일 개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합니다. 세상에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지식을 가진 자가 많지마는 부지런한 성격을 가진 자는 적습니다. 왜 그런가요. 실행과 노력으로써 부지런한 습관을 이루지 아니한 까닭이외다.
부지런이란 일례를 들어 성격조성의 경로를 설명하였거니와, 무릇 성격의 조성은 지식에서 실행, 반복실행을 통하여 습관을 성하는 경로를 밟아야 하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국민교육의 중심인, 성격조성의 교육인 수신교육과 훈련은 일언이폐지하면 선량한 습관을 조선하는 것이지, 도덕적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외다. 각 학교에서는 아직 이 ‘선량한 습관조성’이라는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여 수신교육이란 오직 도덕적 지식을 주입함으로써 만족하는 듯 합니다. 윤리학자가 결코 선량한 성격자가 아니외다. 가령 청결, 질서, 정직, 근면, 활발 같은 보통교육에서 역설하는 덕목을 봅시다. 아무리 청결이 좋다는 이론을 하더라도 날마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목욕하고, 소제하고, 때묻은 옷 안 입는 것을 반복 실행하여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아니하면 성격에는 아무 보익(補益)이 없을 것이외다. 또 정신적인 활발의 기상(氣象)도 실지로 여러 사람 사이에 나서서 뛰어, 제 재주와 기운을 발표하고, 만인 중에 나서서 큰소리로 제 뜻을 주장하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하여 그 습관을 이루는 실행이 없고는 활발이란 것이 성격이 될 수는 없는 것이외다.
이렇게 일개인이 어떤 사상으로써 자기의 성격을 개조함에는 반복실행하여 습관을 조성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 덕목의 종류를 따라 그것이 성격이 되는 시간에 각각 장단이 있을 것이외다. 가령 청결의 습관이나, 물각유소 사각유시(物各有所事各有時)의 질서의 습관 같은 단순한 성질의 것은 의식적으로 일년만 노력하면 ― 즉, 반복 실행하면 족할 것이로되, 애인여기(愛人如己)하든지 충성이라든지 언행일치라든지 하는 고상하고 복잡한 덕목이 성격을 이루도록 하기에는 일생의 반복실행으로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외다. 공자의 소위 ‘칠십종심소욕불유구(七十從心所慾不踰矩)’라 함은 자기가 원하는 모든 덕목이 칠십 년 부단의 노력과 실행으로 모두 습관을 이루어 자기의 성격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외다. 또 유명한 프랭클린의 수양이라든지 기타 무릇 수양이란 것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덕목을 습관으로 만든다는 뜻이외다.
‘언즉이행즉난(言則易行則難)’이란 이러한 뜻이니, 개인의 인격의 힘은 오직 이러한 모든 습관에서만 발하는 것이지 지나 언에서 발하는 것이 아니외다.
민족성의 개조도 상술한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니, 그 개조되는 경로는 이러할 것이외다.

1. 민족 중에서 어떤 일개인이 개조의 필요를 자각하는 것,
2. 그 사람이 그 자각에 의하여 개조의 신계획을 세우는 것
3. 그 제일인이 제이인의 동지를 득하는 것
4. 제일인과 제이인이 제삼인의 동지를 득하여 이 삼인이 개조의 목적으로 단결하는 것, 이 모양으로 동지를 증가할 것
5. 이 개조단체의 개조사상이 토의의 제목이 되는 것
6. 일반 민중 중에 그 사상이 토의의 제목이 되는 것
7. 마침내 그 사상이 승리하여 그 민중의 여론이 되는 것, 즉 그 민중의 사상이 되는 것
8. 이에 그 여론을 대표하는 중심인물이 나서 그 사상으로 민중의 생활을 지도하는 것
9. 마침내 그 사상이 절대적 진리를 작하여 토의권(討議勸)을 초월하여 전염력을 생하는 것
10. 마침내 그 사상이 이지(理知)의 역(域)을 탈하여 정의적인 습관의 역에 입하는 것을 통과하여 드디어 민족성개조의 과정을 완성하는 것이외다.

제일인의 자각이 생김으로부터 제삼인을 언어 단체를 성하기까지가 가장 곤란한 시대요, 또 기간에 일정한 한계가 없는 시대외다. 그러나 한번 단체를 성하여 계획이 확립하기만 하면, 이에 개조사업의 기초는 성하는 것이니, 이로부터 일종 유기적 생장의 결로를 밟아 장성하는 것이외다.
다음은 선전시대이니 여기 두 가지가 있어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가는 것이라, 그중에 하나를 결(缺)할 수도 없는 것이외다. 두 가지란 무엇이뇨. 동지의 규합과 사상의 선전이외다. 많은 동지를 얻으려면 사상의 선전이 근본이 되고 사상의 선전을 힘있게 하려면 또한 많은 동지가 필요한 것이니 동지가 많이 있어야 입이 많고 손이 많고 몸이 많고 돈이 많아 선전의 방면이 더욱 넓어질 것이요, 동시에 많은 동지의 결합한 단체, 그 물건이 모든 것 중에 가장 유력한 구체적 선전기관이 되는 것이외다.
그런데 여러 천만의 민중에게 일종의 중요하고 복잡한 사상을 선전하는 것도 퍽 많은 노력과 세월을 요하는 일이요, 그 민중의 여론의 지도자가 될 만한 수의 동지를 규합하는 것이 더구나 많은 세월과 노력을 요할 것이외다.
개조의 대상이 되는 민중의 수가 많을수록 세월은 더 오랠 것이요, 그 민중의 문화의 정도와 부패한 정도의 여하를 따라서 또한 사업의 난이(難易)가 결정될 것이며, 기타 실력의 대소, 외위(外圍)의 사정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그 요구하는 바 노력과 세월이 각각 다를 것이외다.
조선 내지(內地)의 인구 일천칠백만, 이를 저 중국의 그것에 비기면 이십오분지일 강(强)에 불과합니다.
또 혈통과 언어와 성정(性情)의 점으로 보더라도 조선인은 극히 단순하여 저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많은 차별이 없으며, 종교나 계급도 통일적 생활을 하는 데에 장애가 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아마 중국이나 인도의 민족개조는 심히 어려울 줄 압니다. 차라리 중국이라 인도라 하여 그것을 각각 일 민족으로 보고 개조사업을 하느니보다 그것을 혹은 지장, 혹은 언어, 혹은 종교 등을 표준으로 여러 부분에 나누어서 제가끔 개조사업을 행하는 것이 편하리라 합니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조선은 극히 단순한 일 민족으로 성정과 언어와 생활의 목적이 단일하므로 개조하기에는 가장 근본적인 편의를 가졌다고 할 수 잇습니다. 또 사상 선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되는 문자로 보더라도 조선문자는 인쇄의 불편은 있으되 학습의 용이가 있어 그 편리함이 비할 데가 없습니다.
이제 이러한 모든 편의를 기초로 하고, 개조에 요하는 시간을 개산(槪算)하여 봅시다. 그런데 이것은 가장 더디게 될 것으로 보고 하는 것이외다. 그러면 개조의 단체가 생김으로부터 그 사상이 전민족의 여론적 사상이 되기까지 대략 얼마나한 세월을 요할까.
이것을 결정하는 데는 먼저 전민족의 여론을 지배하기에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할까 하는 문제를 결정함이 필요하외다.
어떤 사상이 전민족의 여론을 지배하기에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그 민족의 지식계급의 반수 이상―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그 민족의 민족적 생활의 모든 기관을 운전하는 계급의 반수 이상이 이 사상의 찬성자가 됨이되다. 그네가 만일 사상의 소유자뿐이 아니요, 아울러 실행자이면 더욱 유력하고 각개의 실행자뿐이 아니요, 이것을 목적으로 한 단체로 뭉친 것이면 더구나 비할 데 없이 유력할 것이외다.
그런즉 우리의 민족적 생활의 모든 기관을 운전하는 지식계급은 대략 얼마나 하면 될까.
민족생활의 모든 기관이라 하면 정치기관, 경제기관, 교육기관, 각종의 민간결사(Free Association), 종교기관, 기타 학술, 예술 등 모든 것이외다. 더 자세히 말하면 정치가, 관리, 상공업자, 교사, 목사, 학자, 무사, 예술가, 신문기자, 지방유지 등을 지식계급이라 하겠습니다.
이 계급 민족의 문화 정도가 향상될수록 전민족에 대한 비례가 클 것이지마는 매 천 명에 일 인씩 잡으면 족히 문명한 민족생활을 경영할 수 있으리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전인구 일천칠백만 치고 일만칠천 인, 삼십 년 후에 이천만이 될 셈 쳐서 이만 인, 즉 이만 인의 대표 될 만한 지식계급이 생기면 조선민족은 넉넉히 문명하고 부강한 민족생활을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니, 그중에서 일만인 이상의 개조자를 가진다 하면, 개조사상으로 하여금 전조선 민중의 여론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이외다. 그런즉 결국은 얼마나한 세월이면 일만 인의 개조동맹자를 얻을까 하는 것이 문제외다.
만일 제일년에 이십 인을 얻는다고 하고 각인이 매년에 일 인의 동지자를 구한다 하면, 제이년에는 사십인이 될 것이요, 제 삼년에는 팔십인이 되어 이를 공비(公比)로 하는 기하급수로 증가될 것이니, 제칠년에 일천이백팔십 인이 되고 제구년에 오천일백이십 인이 되고, 제십년에는 일만 이백사십 인이 될 것이외다. 사상의 전파가 기하급수적이라 함은 사회심리학의 일 법칙이외다. 그러나 동지의 선책을 극히 엄중히 할 것, 동지 중에 사망, 제명, 기타의 사고가 있을 것 등을 작량(酌量)하여 넉넉히 잡고, 그 시간을 삼배하여 삼십 년에 일만 인을 얻는다고 보면 가장 확실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혹, 중간에 내부의 와해나 정부의 해산명령의 액을 당함이 없을까 하는 기우도 있으려니와 회원의 선택의 신중과 규칙의 엄수, 특히 규칙을 범하는 자는 한 번도 용서함이 없이 제명하는 방법으로 내부의 와해를 방두(放杜)할 수 있고, 또 절대적으로 정치와 시사에 관계함이 없고 오직 각 개인의 수양과 문화사업에만 종사함으로 정부의 해상을 당할 염려가 없을 것이외다.
그러므로 규칙의 엄수와 정치와 시사에 불간섭함과 이 두 가지로 능히 이 개조단체의 생명을 영원히 할 수가 잇는 것이외다.
이렇게 삼십 년에 일만 인의 개조동맹자를 얻었다 하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까.
그네는 도덕적으로 인격의 완성을 목적삼아, 혹은 삼십 년 혹은 이십 년, 혹은 십년을 제명을 당하지 않고 수양한 자니, 허위도 없고 나타도 없고 교사(巧詐)도 반복(反覆)도 없고 겁나도 없고 성실하고 근면하고 신의 있고 용단있고 사회성 있는 일만인일 것이외다. 또 그네는 지적으로 인격의 완성을 목적한 자니, 일종 이상의 학술이나 기예를 학수(學修)하였을 일만 인일 것이외다. 또 그네는 체육으로 인격의 완성을 목적한 자니, 인의 직무를 감당할 만한 건강한 체격을 가진 일만 인일 것이외다. 또 그네는 저축으로 생활의 경제적 독립을 목적한 자니, 자기의 의식주에는 근심이 없는 일만인일 것이외다. 그리고 그네는 자기 개인의 개조만 목적하지 아니하고 전민족의 개조도 목적한 자이기 때문에―이 신성한 주의로 수십 년간 수양하고 노력한 자이기 때문에, 공익심과 단결력이 풍부할 것이외다.
이러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히 사회의 각 방면에서 추요(樞要)한 지위를 점령하였을 것이 아닙니까.
그뿐더러 그네는 문화사업을 목적한 자이기 때문에 매일 매인이 평균 이십원씩을 내어 여러 가지 사업의 기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만 인이면 이십만원의 기금을 가졌을 것이요, 매년 이원씩을 낸다 하더라도 이만원의 수입은 될 것이요, 만일 학교나 기타 특별한 사업의 신설을 위하여 매인 평균 백원씩을 낸다 하면 백만원을 얻을 것이외다.
이에 비로소 교육사업이나 출판사업이나 기타의 민중교육기관을 창설도 하도 유지도 할 실력이 생길 것이외다.
그러나 만 명을 얻음이 민족개조의 완성이 아니라, 이에 민족개조의 기초가 확립함이니, 정말 민족개조사업의 본업은 이에서 시작할 것이외다. 즉, 이로부터 각 도회는 물론이요, 면면 촌촌(面面村村)에 학교와 강습소와 도서종람소(圖書縱覽所)와 오락장, 체육장을 세우고, 각종의 대학과 전문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학술 연구기관 등을 세우고 서적출판사업을 성대히 하며 미술관, 연극장, 회관, 구락부 같은 것을 십삼도 각지에 세우며, 또 산업방면으로 그러하여 조선민족으로 하여금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체격으로나 사회의 각종 사업으로나 가장 문명하고 가장 우수한 민족을 만들어, 안으로는 행복을 누리는 인민이 되게하고 밖으로는 세계 문화에 공헌하는 민족이 되게 함이 개조사업의 완성이라 할지니, 그러므로 이는 오십 년, 백년, 이백 년의 영구한 사업이외다. 이 사업에는 끝이 있을 것이 아니라, 조선민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새롭게, 젊게 하기 위하여 영원한 개조사업을 영원히 계속할 것이외다.
나는 믿거니와 이 개조의 원리와 방법은 오직 조선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요, 실로 천하 만민에게 적용할 것이니, 중국인의 부활도 오직 이 길을 통하여서야 얻을 것이외다. 그네가 혁명을 백천 번하고 손문(孫文), 고유균(顧維均), 왕정연(王正延)이 아무리 혁명과 외교를 잘한다 하더라도 중국인의 구제는 오직 민족개조운동에게서만 찾을 것이라 합니다.

민족개조론7] 개조의 내용

나는 상편에서 민족개조의 의의를 설하고, 중편에서 민족개조의 가능을 설하였습니다. 그리하는 중에 자연히 개조사상의 내용과 방법도 단편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족을 개조한다니 어떤 모양으로 개조한단 말인가 하는 개조사상의 내용과 그 개조를 어떠한 방법으로 하겠는가 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소 구체적, 계통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실 상, 중 양편에 말한 것은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의 서론이라 할 만한 것이외다.
그러면 내가 말하는 민족개조란 조선민족을 어떤 모양으로 개조하잔 말인가. 이것을 설명하는 데는 먼저 부정의 방법을 취하여 민족개조란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 마침내 민족개조란 이렇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편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사조의 영향을 입어 근래 조선 사상계의 민족이나 사회에 대한 사상분류의 범주가
흔히 민주주의 대 제국주의, 자본주의 대노농주의(勞農主義)의 이쌍(二雙)에 분한 듯합니다.그래서 각개인의 사상경향을 논할 때에도 이것을 표준으로 하는 모양이외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민족개조주의는 이 범주 중에 어느 것에 속한 것도 아니요, 또 어느 것을 특히 배척하는 것도 아니외다. 이 개조주의자 중에는 제국주의자, 자본주의자도 있을 수 있는 동시에
민주주의자, 노농주의자도 있을 수 있는 것이외다. 이런 것은 정치조직에 관한 것이니, 개조주의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외다. 개조주의자의 유일한 주장은 조선인이 제국주의자가 되든지, 민주주의자가 되든지, 또는 자본주의자가 도든지, 노농주의자가 되든지를 물문(勿問)하고, 오직 그 무슨 ‘.......자’ 될 사람의 인성을 개조해야 한다 함이외다. 다시 말하면 현재 조선인의 성격을 개조한 뒤에야 건전한 제국주의자도 될 수 있고, 민주주의자도 될 수 있고, 노농주의자나 자본주의자도 될 수 있는 것이지, 이 개조가 없이는 아무 주의자도 될 수 없이 오직 열패자(劣敗者)가 될 뿐이라 함이외다. 신용할 만한 덕행, 직무를 감당할 만한 학식이나 기능, 자기의 의식주를 얻을 만한 직업의 능력, 이런 것이 없이야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개조주의는 사람의 바탕을 개조하여 그 주의야 무엇이며 직업이야 무엇이든지 능히 문명한 일개인으로, 문명한 사회의 일원으로 독립한 생활을 경영하고 사회적 직무를 부담할 만한 성의와 실력을 가진 사람을 만들자 함이외다.
또 이 개조주의는 주의 자신이 어떤 종교도 아니요, 또 기성의 어떤 종교에 특별히 가담하는 자도 아니외다. 동시에 어떤 종교를 배척하는 자도 아니외다. 야소교인도 가(可), 천도교인도 가, 불교인도 가, 유교인도 가, 무종교인도 역가(亦可)외다. 오직 개조된 자라야 야소교인이라도 참말 야소교인이 되고, 불교도라도 참말 불교도가 될 것이외다.
다음에 이 개조주의는 정치에 대하여 아무 간섭이 없습니다. 이 주의자 중에는 정치가도 나리다. 개조주의로는 동지인 자로도 정치적 의견으로는 몇가지로든지 다를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개조주의의 단체 자신은 영원히 정치에 참여할 것이 아니외다. 그는 영원히 오직 개조주의의 단체로 민중교육사업을 위여서만 힘쓸것이외다.
그러면 이 개조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
각 사람으로 하여금,
1.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이 없게
2. 공상과 공론은 버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 의무라고 생각하는 바를 부지런히 실행하게,
3. 표리부동과 반복(反覆)함이 없이 의리와 허락을 철석같이 지키는 충성된 신의 있는 자가 있게,
4. 고식(姑息), 준순(浚巡) 등의 겁나를 버리고 옳은 일, 작정한 일이어든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나가는 자가 되게,
5. 개인보다 단체를, 즉 사보다 공을 중히 여겨 사회에 대한 봉사를 생명으로 알게,(이상
덕육방면)
6. 보통 상식을 가지고 일종 이상의 전문학술이나 기예를 배워 반드시 일종 이상의 직업을 가지게, (이상 지육방면)
7. 근검 저축을 상(尙)하여 생활의 경제적 독립을 가지게, (이상경제방면)
8. 가옥, 의식, 도로 등의 청결 등, 위생의 법칙에 합치하는 생활과 일정한 운동으로 건강한 체격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함이니, 이것을 다시 줄여 말하면 덕, 체, 지의 삼육(三育)과 부의 축적. 사회봉사심의 함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민족 중에 이러한 사람이 많게 하자, 그리하여 마침내는 조선민족으로 하여금 참되고, 부지런하고, 신의 있고, 용기 있고, 사회적 단결력 있고, 평균하게 부유한 민족이 되게 하자 함이외다.
불행히 현재의 조선인은 이와 반대외다. 허위되고, 공상과 공론만 즐겨 나타하고, 서로 신의와 충성이 없고 임사(臨事)에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어서 사회봉사심과 단결력이 없고 극히 빈궁하고, 이런 의미로 보아 이 개조는 조선 민족의 성격을 현재의 상태에서 정반대 방면으로 변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조주의자가 생각하기에 현재의 조선 민족성을 그냥 두면 개인으로나 민족으로나 열패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 이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그 반대 방향을 가르치는 개조가 있을 뿐이라 합니다.
이제 나의 말하는 민족개조의 근본은 무실(務實)과 역행(力行)의 사상이외다, 위에 말한 여덟 가지도 통틀어 말하면 무실과 역행 두 가지에 괄약(括約)되는 것이외다, 무실이란, 무엇이나 거짓말을 말자, 속이는 일을 말자, 말이나 일에 오직 참 되기를 힘쓰자함이요, 역행이라 함은 공상을 말자, 공론을 말자, 옳은 일이라고, 하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거든 말하였거든, 곧 행하기를 힘쓰자 함이외다, 이 두 가지야말로 천만고에 긍(亘)하여도 변할 수 없는 인류의 도덕 중의 근본도덕이니, 실과 행이 없이 무슨 도덕이나 있을 수가 없는 것이외다,
따라서 일개인의 생활의 성패도 여기에 달리고, 일 민족, 일 국가, 기타 모든 단체의 성패도 이 실과 행이 있고 없기에 달린 것이외다,
예컨대, 일개인에게 무실역행의 덕이 없다 합시다, 실이 없으매 그는 거짓말쟁이요, 사기사일 것이니, 세상은 그를 신용치 아니할 것이외다, 신용이 없으니 그는 상인도 못 되고, 관리도 교사도 못되고, 동네의 일이나 가정의 일조차 할 수가 없을 것이외다. 진실로 신용은 사회생활하는 자의 생명이니, 신용은 도덕의 결과 중에 대표되는 자외다.
또 행이 없으매 그에게는 이루어지는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외다, 그는 공부가 좋은 줄을 생각도 하나, 말도 하나, 실지로 공부를 하지 아니하므로 학식이 있어질 날이 없고 그는 근검 저축을 말로도 하고 생각도 하나, 실지로 아무 사업도 하지 아니하므로 그에게는 사업의 성공도 사업 없는 자의 할 일은 요행을 바라는 투기 사업이나 협잡이나 사기나 구걸이나, 또는 도적밖에 없을 것이외다.
현재 조선인의 지식계급이란 자들의 행동을 보면 어떠합니까.
과연 두터운 신용을 가지고 정당한 직업에 진췌노력(盡悴努力) 하는 자가 얼마나 됩니까. 실업계면 미두 거래나, 주식 거래나, 그렇지 아니하면 광산 기타에도 각 방면으로 요행을 바라는 협잡적 조명(釣名), 어리적(漁利的) 사업에 종사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누워서 천도(天桃)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부랑자적 인물이 많지 아니합니까.
우리 중에 누가 큰 신용을 가진 자입니까. 누가 큰 사업을 이룬자입니까.
조선민족이 무실역행의 도덕이 결핍한 것은 지내온 역사의 결과를 보면 알 것이외다, 내가 이렇게 함은 자기 민족의 결함을 폭로하기를 즐겨 그러함이 아니라, 우리의 결함을 분명히 알므로 다시 살아날 길을 분명히 찾아내자 함이외다,
첫째, 조선인끼리 서로 신용이 없습니다. 외국인은 신용하면서도 자국인은 신용치 못하는 기현상이 있습니다. 멀리는 말 말고 이조사(李朝史)를 보건대 서로 속이고,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고 모함한 역사라 하겠습니다. 이조사와 같이 완인(完人)이 없는 역사는 아마 드물 것이니, 명망 있는 인물 중에 와석 종신한 사람이 몇 사람이 못 됩니다.
또 현재로 보더라도 조선인 중에 만인의 신망을 일신에 집(集)하였다 할 만한 인물이 없고, 모두 의심을 받는 자들 뿐이외다, 이는 서로 거짓말을 하고 서로 속이는 행실을 하기 때문에 서로 신용치를 못함이니, 이러므로 큰 단체적 사업을 경영할 수가 없는 것이외다, 단체적 사업은커녕 서로 믿는 친구도 얻기가 어려운 형편이외다.
또 단체로 보더라도 허위를 숭상하는 책망을 면치 못합니다. 금전으로나 인물로나,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도 무슨 큰 실력이나 있는 듯이 허장성세를 합니다. 심한 자는 표면에 드러내인 목적과 이면의 진동기(眞동기)가 판이한 수도 있습니다. 이러므로 세상에서도 이러한 단체를 신용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저것이 기실은 무슨 목적으로 생겼나’ 또는 ‘저것이 저렇게 떠들지마는 몇 날이나 터인가’ 합니다,
또 민족적으로 보더라도 조선민족은 결코 타민족 중에 신용 있는 민족이 아니외다. 일본인도 우리를 신용치 아니합니다. 합병 전 몇십 년간의 한국 정부의 외교는 거의 전부 허위와 사기의 외교이었습니다, (93자 생략) 여기서 민족적 신용을 실추함이 다대(多大)합니다.
다음 서린(西隣)인 한족에게 조선민족의 신용을 실추한 최대한 원인은 인삼장사와 가지사(假志士)들이외다. 무릇 중국 방면에서 상업을 경영하는 오인은 십에 팔구는 한인을 속이기로 장기를 삼아 이것을 한 자랑으로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똥을 청심환이라고 팔았다는 말은 중국에 재(在)한 조선 상인의 상략을 설명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사기를 대표함은 홍삼(紅蔘)장사니, 그네는 만주삼(滿洲蔘)을 홍삼이라고 속이고, 십원짜리면 백원짜리라고 속여 참말 비인도적 폭리를 탐합니다. 그 밖에 근년에 아편장사가 많이 생겨 이 역시 정부를 속이고 인민을 속여 불의의 폭리를 탐하는 자인데, 넓은 중국에 조선 상인이라고는 이러한 홍삼장사, 아편장사뿐이니, 민족의 수치가 이에서 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은 하급 인민의 소위라 하여 관대한 한인의 용서하는 바도 되려니와 근년의 다수의 자칭 애국지사, 망명객배가 중국의 고관과 부호에게 애걸하여 사기적으로 금품을 얻는 자가 점점 증가하여 민족의 신용을 아주 떨어뜨리고 만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외다.
또 미국인의 오족에 대한 신용은 어떠한가. 그 역 말이 아니니, 조선에 와 있는 선교사들이 조선인을 신용치 않는 것도 사실이어니와 미국에 재류하는 동포가 또한, 혹은 악의로, 혹은 유치한 애국심으로 거짓말과 속이는 일을 짐짓 행하므로 신용을 잃은 것도 많고, 그중에도 상해를 경유하여 도미하는 동포들이 비록 사세(事勢)는 부득이하다 하더라도 국적을 속여 거짓 여행권으로 가며, 혹은 재산을 속여 없는 학비를 있다고 하는 등으로 ‘조선인은 거짓말쟁이’라는 실망하는 평을 하게 됩니다.
그보다도 지식계급인 인사들이 자국의 약점을 안 보이려는 생각으로 흔히 거짓말을 하나니, 이것이 민족적 신용을 잃는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줄을 알면 누구나 다 전율할 것이외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의 민족적 신용을 가장 잃게 하는 것은 모든일에 허장성세하는 병일 것이외다,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소리만 크게 내는 허위일 것이외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하여 차마 자세하고 구체한 예를 들지 못합니다.
이렇게 조선인으로, 안으로 자기네끼리도 서로 믿지 못하고, 밖으로 이민족간에도 신용을 잃어버렸으니, 이러고 어찌 살리오.
인류 생활의 가장 안전하고 유리한 방식이 단체생활인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단체생활을 가능케 하는 근본 동력은 그 단체의 각 원간(各原間)의 신뢰니, 이것이 없으면 단체가 성립될 수가 없을 것이외다. 그런데 신뢰는 어디서 생기나. 허위가 없고 진실함에서 생기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일 민족의 흥망성쇠는 그 민족의 각 원의 진실 여부에 달린 것이니, 진실하면 그 민족은 굳은 단결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민족이 이족에게 받는 신용도 클 것이외다.
그러므로, 민족의 개조는 반드시 무실에 시(始)한다 함이니, 허위의 죄의 대가가 멸망인 것과 덕의 보상이 갱생인 것을 따끔하게 자각할지어다.
이렇게 개인으로나 민족으로 신용이 없는 데다가 모두 공상과 공론뿐이요, 실지로 행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이루어 놓은 일이 없습니다. 근래에 명망 있다는 인사를 예로 들어보시오. 그네가 무엇으로 명망을 얻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가장 명망이 많은 자가 애국자입니다.
우리는 수십 인의 명망 높은 애국자들을 가졌거니와 그네의 명망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면 참으로 허무합니다. 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은 허명(虛名)이외다. 그네의 명망의 유일한 기초는 떠드는 것과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과 해외에 표박(漂泊)하는 것인 듯합니다. 나는 이곳에서 이러한 말을 좀 자세히 하고 싶지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러한 자유를 못 가진 것이 한이외다.
애국자들뿐이 아니라, 지금 사회에 명사라는 칭호를 듣는 이들로 보더라도 그네의 이 명칭은 아무 사업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 명사의 일대 특징이 일정한 직업을 안 가진 것임을 보아 알 것이외다. 혹 지사(志士)라 하여 그의 뜻이 가상하다 함으로 명사가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 생각이 좋다고 칭찬하거니와 뜻이 좋다, 생각이 좋다 하는 것이 아무 칭찬할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니, 만일 그가 아직 수학 중에 있는 청년이라 하면 그 뜻이나 생각 좋은 것이 장래의 좋은 사업할 것을 지시하므로 칭찬할 거리가 되지마는 신사라든지 명사라는 말을 듣는 자로서 뜻이 좋다, 생각이 좋다는 것을 유일한 칭찬으로 아는 것은 그 칭찬받는 자의 수치로 알 일이외다. 그런데 우리 명사는 흔히 뜻이 좋고, 생각이 좋다는 명사가 아닌지.
사람의 생명은 일에 있습니다. 일이란 직업이외다. 직업으로만 오직 사람이 제 의식주를 얻는 것이요, 제가 맡은 국가와 및 사회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니, 일을 아니하는 자는 국가나 사회의 죄인이외다. 그러므로 뜻이 좋고 생각이 좋은 것은 그것이 일로 실현되어 나오기 전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사람을 비평하는 표준은 그의 하여 놓은 일뿐이니, 이것을 두고는 다른 표준은 없는 것이외다.
혹, 감가불우라 하여 때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하고 부랑자가 되는 것을 일종의 미덕으로 알지마는 이것을 가장 잘못된 도덕적 비판이외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도자불가수유이야(道者不可須臾離也)’ 라 하였거니와, 도라는 것은 인생의 직무라는 뜻이니, 인생이 살아 있는 동안 일시일각도 그 직무를 떠날 수는 없는 것이외다. 직무란 곧 직업을 사회의 견지에서 본 명칭에 불과한 것이외다.
뜻이 좋고 아무 일도 아니하는 것을 공상이라 하고 말만 좋고 아무 일도 아니하는 것을 공론이라 하나니 공상과 공론은 나타한 자의 특징이외다. 그런데 공상과 공론은 조선 명사의 특징이외다.
이를 민족적으로 보더라도 조선민족은 적어도 과거 오백 년간은 공상과 공론의 민족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오백 년 민족생활에 아무 것도 남겨 놓은 것이 없음을 보아 알 것이외다.
과학을 남겼나, 부를 남겼나, 철학, 문학, 예술을 남겼나, 무슨 자랑될 만한 건축을 남겼나, 또 영토를 남겼나, 그네의 생활의 결과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송충이 모양으로 산의 삼림을 말장 벗겨먹고, 하천의 물을 말끔 들이마시고, 탕자 모양으로 선대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다 팔아먹었을 뿐이외다. 의주에서 부산, 회령에서 목포에 이르는 동안의 벌거벗은 산, 마른 하천, 무너진 제방과 도로, 쓰러져가는 성루와 도회, 게딱지 같고 돼지우리 같은 가옥, 이것이 오백 년 나타한 생화의 산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진실로 근대조선 오백년사는 민족적 사업의 기록이 아니요, 공상과 공론의 기록이외다.
저 이조 조선사의 주류인 당쟁도 또한 공상과 공론으로 된 것이니, 따라서 이조사에 나오는 인물은 대부분 공상과 공론의 인물들이외다. 그래서 그네의 명망은 그 이루어 놓은 사업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요, 그네의 언론과 문장으로 전할 뿐이외다.
만일 언론과 문장을 업으로 삼는 자라 하면, 언론, 문장만 세에 전하는 것이 마땅하지마는 일국의 재상이나 수령 방백(守令方伯)으로서 그렇다 하면 이는 진실로 괴변이외다. 심지어 임진(壬辰),병자지역(丙子之役) 같은 흥만이 유관한 대사건에도 당시의 당국자들은 군비나 산업에 노력하기보다 의리가 어떤 등, 어느 대장의 문벌이 어떤 등, 시가 어떤 둥 하여, 혹은 의주의 행재(行在), 혹은 남한(南漢)의 몽진(蒙塵)에 공상과 공론만 일삼았습니다. 진실로 근대조선사는 허위와 나타의 기록이외다.
과거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조선인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보는 전등, 수도, 전신, 철도, 윤선(輪船), 도로, 학교 같은 것 중에 조선인이 손수 한 것이 무엇무엇입니까. 교육을 떠들고, 산업을 떠들지마는 교육기관 중에 조선인의 손으로 된 것이 삼사의 고등보통학교가 있을 뿐이요, 산업기관이라고 자본을 총합하여도 일천만원도 못 되는 구멍가게 같은 은행 몇 개가 있을 뿐이외다.
이것이 모두 공상과 공담뿐이요, 행함이 없는 까닭이니 조선인은 언제까지나 이 나타를 계속하려는가요. 만일 분연히 이것을 버리지 아니하면 그 명운은 멸망밖에 없을 것이외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하기를 역(力)하자, 즉 역행하자, 누구나 한가지씩의 직업을 가지자. 그리하여 그 직업을 부지런히 하자 함으로 민족개조의 근본칙(根本則)을 삼아야 합니다.
이에 나는 우리가 무실과 역행으로써 민족개조의 근본칙을 삼을 것을 말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새로 개조하려는 민족성의 근본을 실과 행에 두자 함이외다. 그 밖에 모든 도덕은 이 실과 행에 기초하여 건설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실과 행과 동(同) 정도로 고조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회봉사심이외다. 전에 개조 팔원칙의 제오에 게재한 것이외다. 개인보다 단체를, 즉 사보다 공을 중히 여겨 사회에 대한 봉사를 생명으로 알게 하자 함이외다. 이것이 이기심의 반대되는 것은 명료하거니와 가족이나, 사당이나, 친구 같은 것도 또한 사(私)외다. 그런데 조선인은 아직 사회생활의 훈련이 없어 그 애호의 정이 미치는 범위가 가족, 붕당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일신이나, 일가의 이해를 위하여 사회의 이해를 불고하는 수가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니, 적더라도 그 애호의 범위를 민족까지에 확대할 것은 심히 긴요합니다.
사회봉사의 길은 둘이 있으니, 일은 사회에 익(益) 있고 해(害)없는 직업을 택함이요, 이는 모든 단체생활에 충실함이외다. 자선사업이나 소위 공익사업을 하는 것만이 사회봉사인줄 아는 것은 잘못이외다. 이는 자본주의적 사회조직에서 유산계급만 할 수 있는 일이니, 대개 세상에서 말하는 자선사업이나 공익사업은 많은 금전이나 시간을 자기의 이해와 아무 관계 없는, 순전히 남을 위한 사업에 내는 것을 이르기 때문이외다. 참뜻의 사회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 가령 농부가 오곡의 배양에 종사하는 것, 공장(工匠)이 유용한 기구를 제작하기에 종사하는 것, 교사가 청년 자제의 교육에 종사하는 것 등의 직업 자신이 이미 사회봉사를 의미하는 것이외다.
무릇 사회의 존립에 필요한 작업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사회에 봉사하는 자니, 그러므로 사회봉사의 제일요건은 사회가 요구하는 직업을 가짐이외다. 직업이 없이 사회봉사를 설(說)하는 자가 있다 하면 그는 공론을 하는 자외다.
사회봉사의 둘째 길은 모든 단체생활에 충실함이라 하였습니다. 전에도 누차 말한 바와 같이 인류의 생활은 단체생활이니, 각 개인의 생활을 분석하면 여러 가지 중중(重重)한 단체생활이외다. 실례를 들면 일개인은 첫째 국가라는 단체의 일원이겠습니다. 다음에는 도, 시, 군, 면 같은 행정자치단체의 일원이겠고, 또 그가 학생이나 교원이면 교육단체의 일원이겠고, 기타 개인의 성정과 직업의 방명을 따라, 혹은 정치단체, 경제단체, 교육단체, 학술단체, 수양단체의 일원일 것이외다. 문화가 향상할수록, 생활의 내용이 복잡할수록, 단체생활의 필요와 종류가 느는 것이니, 이 단체생활을 잘하는 것이 생존에 적자인 자의 특징이외다.
그런데 단체생활에 충실하다 함은 무슨 뜻인가. 일언이폐지하면 그 단체의 규약, 즉 법을 엄수함이요, 다시 상언(詳言)하면 그 단체의 유지와 발전의 동력이 되는 금전상의 분담(즉 난세, 회비 등)에 충실할 것, 집회에 잘 출석할 것, 그 단체를 실제로 운용하는 지도자의 지도에 순종할 것, 그 단체를 내 것이라고 사랑하는 정을 가질 것 등이겠습니다.
지도자라 하면 국가면 원수, 회면 회장 같은 것이니, 지도자를 잘 택하는 것과 택한 지도자에게 잘 순종하는 것은 진실로 단체생활에 극히 중요한 것이니, 지도자를 바로 택할 줄 모르는 민중도 단체생활에 성공할 자격이 없는 동시에 지도자의 지도에 순종할 줄 모르는 민중도 단체생활에 성공할 자격이 없는 것이외다. 데모크라시란 지도자 없는 생활이란 말이 아니라, 지도자를 민의로 택하는 생활이란 뜻이외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위에 말한 것과 같은 단체생활의 도덕이 없습니다. 길게 설명하지 아니하더라도 우리가 보는 무슨 회, 무슨 회 하는 단체들이 되어가는 모양으로 보아 알 것이외다.
그런즉 무실과 역행과 사회봉사심(즉 단결의 정신)을 개조하는 신민족성의 기초로 삼자 함이외다. 그러면 이 주의에 의지하여 개조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반드시 보통교육과 일종의 전문교육이나 기예의 교육을 받아 사회에 유익하다고 믿는 일종의 직업을 가졌을 것이외다. 그 직업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 직업을 가진 것을 영광으로 알아 일생의 정력을 그것을 위하여 다할 것이외다. 대개 그는 모든 직업이 평등으로 다 존귀한 줄을 확신할 것이외다. 그 직업이 자기에게 의식주를 주고, 사회에 대한 봉사의 신성한 보수되는 명에를 주고 또 양심의 만족과 활동과 성공의 쾌락을 주는 줄을 알기 때문이외다. 그는 일정한 휴일을 제(除)하고는 날마다 일정한 시간 동안을 성의와 근면으로 그 직업에 종사하되, 그의 하는 일, 만드는 물건이 아무쪼록 사회에 유익하기를 바라므로 속임이 없습니다.
이렇게 직업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하여 근면하므로 주색에 빠지거나 잡담, 박혁(博奕)을 즐길 새는 없지마는 그에게는 방순(芳醇)한 가정의 낙과 문학, 예술, 혹은 종교나 철학을 즐기며, 혹은 순결한 교우의 낙과 동지의 회집의 낙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는 일정한 운동으로 건강과 용기와 쾌락을 얻습니다.
그는 국가에 대하여서는 모든 의무를 충실히 다하는 국민이요, 그의 참가한 모든 단체에 대하여는 충실한 회원이외다. 그러므로 그는 혹은 체면에 끌려, 혹은 군중심리에 끌려, 용이히 무슨 허락을 아니하지마는 한번 허락한 이상 그는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위인이 아닐는지는 모르되,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요, 성인이 아닐는지는 모르되, 누구나 믿을만한 사람이외다. 그는 완성될 범인이니, 이 완성된 범인이야말로 우리가 구하는 바외다.

민족개조론8] 개조의 방법

그러면 어떠한 방법을 취하여 이 개조의 이상을 실현할까. 이상은 아무리 좋더라도 그 실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역시 공상이 되고 말 것이외다.
방법! 이것은 우리 사람들이 가장 경히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졸(拙)합니다. 우리들은 흔히 수단을 중히 여기나 방법을 경히 여깁니다. 수단과 방법을 흔히 동의(同義)의 어(語)로 쓰지마는 기실은 그 사이에는 구별이 있고 또 구별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외다.
방법이라 하면 무슨 일을 하는 길을 이름이니,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할 때에는, 첫째는 그 일의 목적을 정하여야 하고, 둘째는 그 목적을 달하는 길을 정하여야 합니다.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에는 가능한 여러 가지 길이 있음이 마치 기하학상으로 양점간에는 무수한 선을 그을 수 있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양방간의 최단거리는 직선이요, 직선은 일(一)이요, 오직 일인 것같이 사업의 출발점에서 목적의 도착점까지에 달할 수 있는 모든 길 가운데에서 신중한 고려로써 그 최단거리라 할 만한 길을 택하여 이 사업을 완성하기까지는 꼭 이 길로 나가자 하고 작정해 놓은 것이 방법이니, 방법이란 자의(字義)가 십분 그 불변성, 불가범성을 표하는 것이외다. 원래 방(方)자 모형이란 뜻이요, 법(法)자는 먹줄이란 뜻이니 방이나 법이나 일정하다는 뜻이 있는 것이외다.
다시 말하면 방법이란 법률이요, 규칙이며, 이에 반하여 수단이란 그 법률이나 규칙의 운용의 솜씨외다. 같은 법률이나 규칙도 잘 운용하고 못하기에 그 효력에 대관계를 생하는 것이니 수단이란 것도 일을 위하여는 필요한 것이외다.
방법은 식이요, 수단은 활용이외다. 그러나 수단은 방법에 의하여 쓸 것이니, 방법 없는 수단은 되는 대로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하거늘 우리들의 일하는 법은 흔히 방법을 세우지 아니하고 임시 임시의 수단만 부리려 합니다. 그래서 수단이란 그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부정한 권모나 술책을 의미하게 된 것이외다.
방법이란 만사에 다 중요한 것이외다. 밥을 짓는 데도 방법이 있으니, 쌀과 물을 솥에 두고 불을 땐다고 밥이 되는 것이 아니외다.
쌀과 물과의 분량의 비, 불 때는 양을 다 방법에 맞게 하여야 밥이 되는 것이니, 쌀과 물과 불 세 가지 재료는 같다 하더라도 그 방법을 따라 밥도 되고 죽도 되고 미음도 되고 풀도 될 것이외다. 만일 아주 방법을 그르치면 혹은 태울 수도 있고 설익을 수도 있어 소위 죽도 밥도 안될 수가 있는 것이외다. 이에 대하여 같은 밥을 지으되, 질도 되도 않게 맛나게 짓는 것은 그 짓는 자의 수단이외다. 그러므로 수단은 방법을 지키는 때에만 유효한 것이외다.
좀더 어려운 말로 방법의 필요를 설명하려면, 과학연구의 방법을 예로 드는 것이 편할 것이외다. 첫째, 오늘날과 같은 자연과학, 기타 제반 과학이 발달된 가장 주요한 원인이 베이컨의 귀납법의 발견이라 합니다. 귀납법이란 재래의 연역법에 대한 자연 급 인사 연구의 일 방법이외다. 그런데 이 방법을 얻었기 때문에 모든 과학의 발달이 된 것입니다.
무슨 과학이든지 한 과학이 성립됨에는 특수한 대상이 필요함과 같이 특수한 연구방법이 필요한 것이니, 이 방법 없이는 과학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외다.
또 딴 방면으로 말하는 서양인은 성하고 우리는 쇠하는 것도 서양인의 생활의 방법이 옳았고 우리는 생활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외다.
이렇게 일하는 방법이란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려는 가장 큰 일이 되는 민족개조에 어찌 방법이 필요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이 방법에 관하여는 위에도 기회를 따라 말하였습니다마는 그 중심은 개조동맹이외다. 금주동맹이나 금연동맹과 같이 일정한 주의로 개조하기를 동맹함이외다.
‘우선 나부터 개조하자’는 뜻을 가진 자들이 동맹을 지어 하나씩 둘씩 그러한 동맹원을 늘려가면서 서로 자격(刺激)이 되고 서로 도움이 되어 일면 자기의 개조를 완성하면서 일면 동맹원을 늘리는 것이외다.
이제 이러한 동맹이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을 말합시다.
재래로 우리 사회에서는 사상을 전하기로 주요사를 삼습니다. 그러나 공론을 좋아하고 실행이 없는 우리 사람들은 새로 얻은 사상을 오직 공론의 좋은 새 재료를 삼을 뿐이요, 그 사상이 들어오기 때문에 좋아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사상이 널리 전파되고 점점 깊이 침윤함을 따라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에는 조금씩 조금씩 행(行)으로 실현되는 것은 사실이겠지마는, 지금 우리 형편으로는 이러한 자연의 추이를 기다릴 수가 없고 마치 전지작용과 온도의 조절로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모양으로 무슨 인공적 촉진방법을 쓰지 아니치 못할 긴급한 처지에 있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이리해야된다, 저리 해야된다“하고 필설로만 떠들어 들을 자는 들을 지어다., 하고 싶은 자는 할지어다 하는 오나만한 정책에 의뢰할 수 없는 것이외다. 그뿐더러 내가 보기에 우리 민족의 결핍한 것은 사상이기보다 실행이니, 우리가 아는 것만이라도 실행만 하면 살 수가 있으리라 합니다.
가령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학술이나 기예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한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한다, 교육과 산업을 발달시켜야 한다. 이런 것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그대로 실행함이외다. 그러므로 ‘나부터 먼저 개조하자’하는 것이니 개조사업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는 것이니, 대개 나 하나의 개조는 나의 가장 확실하게 가능한 바요, 따라서 나 하나를 개조하면 이에 조선민족은 일개의 개조된 원(員)을 가지게 될 것이며, 겸하여 그 개조된 한 사람이 개조사상의 실현된 모범이 될 것이니, 이 실현된 모범이야말로 가장 웅변된 선전이 되는 것이외다. 이렇게 개조된 일인을 전민족개조의 발단이요, 기초가 되는 것이외다.
이러한 사람이 동맹을 지으므로 서로 자격(刺激)이 되고 서로 보익(補益)이 되는 동시에 개조된 사람, 적더라도 개조를 목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 일단(一團)이 되기 때문에 그 실현된 모범이 더욱 뚜렷하고 유력하게 됩니다. 특별한 주의와 행동을 하는 개인도 표가 나지마는, 그러한 개인들의 단체는 더욱 표가 나는 것이 마치 여러 천만 자루의 횃불을 한 곳에 모아 세운 것 같습니다. 비컨대 예수교회를 보시오. 그네가 만일 교회라는 단체를 이루고 속인과 판이한 습속을 가지지 아니하였더면, 그렇게 뚜렷하게 세인의 주목을 끌기가 어려울 것이외다. 그러므로 한 단체의 존재가 백천의 신문, 잡지보다 위대한 선전력을 가진 것이외다.
단체의 선전력이 위대하다는 실례로는 미국의 금주동맹이 가장 좋을까 하옵니다. 그것은 거금 오십칠 년인가 팔 년 전에 매튜라는 신부가 시작한 것인데, 하나씩 하나씩 동맹원을 모집하여 오십 칠년 만에 마침내 전미 인민의 과반수의 동지를 얻어 작년 칠월에 드디어 그 나라 헌법에 금주의 조(條)를 가입케 하였습니다. 고래로 금주를 선전한 사람이 퍽 많지마는 이 나라에서와 같이 성공한 자가 없음은 이 동맹단체라는 방법을 이용할 줄 모른 까닭이외다.
동맹을 짓는 셋째 이익은 위에도 말한 바와 같이 그 운동의 생명을 영속케 함이외다. 개인의 생명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로되, 공고하게 조직된 단체의 생명은 영원성을 가진 것이니, 비록 세월이 가고 대가 가시더라도 그 단체의 주지(主旨)는 그냥 남아 연해 동맹자의 수를 늘릴 것이며 아울러 그네가 목적하는 사업을 영구히 계속하여 갈 것이외다.
그러므로 이 민족개조를 목적하는 동맹단체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그의 생명이 영속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외다. 단체의 생명을 영속하게 하는 방법은 여기서 말할 바 아니니, 딴 기회를 기다리려니와, 한 가지 반복하여 역설할 것은 ‘민족개조는 오직 동맹으로야만 된다. 그러므로 이 동맹으로 생긴 단체는 가장 공고하여 영원성을 가짐이 필요하다’ 함이외다.
최종에 동맹이 필요한 것은 그 주의를 선전하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경영하기 위해서외다. 동맹이 비록 좋지마는 언론으로 일반 민중에게 그 주의를 선전할 필요가 있으며, 또 이미 덕육을 하여라, 보통 학식을 배우는 일종 이상의 전문학술이나 기예를 배워라 하였으니, 그러하기에 필요한 일을 하여 주어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그도 또한 공론에 불과할 것이외다. 그러면 그런 일이란 무엇이요. 학교, 서적 등의 공급이외다. 또 체육을 하라 하면 그것을 할 설비, 곧 위생설비나 체육장의 설비, 위생서, 체육서 등의 제공이 필요할 것이외다. 그러고 보니 이런 모든 것을 시설하려면 거액의 금전과 다수의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어디서 나오나. 오직 공고한 단체에서외다. 재래 우리의 모든 사업은 일전한 재력이 없이 하였습니다. 가령 신문, 잡지나 학교를 경영하는 자 중에 진실로 이러한 예산을 세우고 하는 자가 몇이나 됩니까.
소위 ‘마음만 있으면 된다’ 하고, ‘시작만 하면 된다’하여 마음만 가지고 시작한 것이 많았으며 모두 몇날이 못하여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곤란을 무릅쓰고 열심을 내라는 격언이 되지마는 마음이 밥이 되고 마음이 나무가 되지 않는 이상 마음만 가지고 일이 될 리가 있습니까. 일을 이루는 것은 오직 ‘힘’뿐이니, 힘이란 무엇이뇨. 사람과 돈이외다.
그런데 우리네는 흔히 사람을 쓸 때에 임시 임시 아무나 말마디나 하는 자면 골라 쓰려 하고 돈은 의연(義捐)이나 일시 일시 어떤 부자를 꾀어내어서 쓰려 합니다. 작은 사업에나 큰 사업에나 다 이러합니다. 이것으로 어찌 일이 되겠습니까.
일하는 사람이란, 그 일의 전문가이기를 요구합니다. 정치에는 정치의 전문가, 산업에는 각각 그 방면의 전문가, 교육에는 교육의, 신문 잡지에는 신문 잡지의 전문가를 요구하는 것이니, 전문의 교양이 없이 임시 임시로 정치가도 되고 교육가도 되었다가 은행 지배인도 되고 잡지 주필도 되는 것은 아직 사회의 분화가 생기지 아니하였던 옛날의 일이외다.
전문가란 그 직업에 상당한 덕행(즉 신용, 근면, 신의, 용기)과 거기 상당한 전문학식을 가진 자를 일컬음이니, 이러한 자격을 얻으려면 상당한 전문학식을 가진 자를 일컬음이니, 이러한 자격을 얻으려면 십수 년의 성의로운 수양과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이외다. 전문가 아니고 모종의 사업을 경영하려 함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한 공상에 불과합니다.
돈에 관하여 말하건대 일시적 사업, 비컨대 어떤 지방에 수재가 나서 그 이재민을 구제하는 사업 같은 것은 의연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그렇지 아니하고 교육사업이나 신문, 잡지, 기타 무릇 영구성을 가진 사업을 경영하는 데는 반드시 매년에 일정한 수입이 있기를 요하는 것이니, 이 일정한 수입을 얻는 길은 오직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니, 하나는 그 단체의 각원이 일정한 기간 내에 일정한 금액을 거출(據出)함이니 이는 국가의 납세, 항용 단체의 회비 갗은 것이요, 또 하나는 기본금이니 이는 어떤 단체의 단원들이 얼마씩을 내어 그 본전은 영영 쓰지 아니하고 이자만 쓰는 제도니, 근대 각종 산업단체, 교육단체, 기타 사회사업의 단체들이 많이 취하는 것이외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기본금주의니, 이것에서 나오는 매년의 수입이 일정한 금액 이상일 것이 확실합니다. 회비주의는 국가나 종교와 같이 특수권력을 가진 단체가 아니고는 꼭 일정한 금액 이상의 수입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외다.
무릇 영구성을 가진 사업을 하여 하는 단체는 위에 말한 바와 같은 인력과 금력의 준비를 가짐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이상과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공론이 되고 말 것이외다.
그러므로 민족개조를 목적하는 자들이 크고 견고한 동맹을 지음이 이 두 가지 힘을 얻는 유일한 길이니, 동맹의 큰 필요를 여기에서도 볼 것이외다.
이 모양으로 개조된 개인들, 즉 건전한 인격자들과 그네의 동맹한 단체, 즉 견실하고 큰 단체를 이루면, 이에 우리 사업의 기초는 확립한 것이니, 이로부터 오직 점점 이상을 실현하면서 성장함이 있을 뿐이지 결코 퇴보함이 없을 것이외다.
위에 말한 개조의 방법은 그 대강령(大綱領)을 든 것이어니와 이는 만고에 긍하여 변치 아니할 진리외다. 그러나 이 방법의 세밀한 점에 이르러서는 다른 때에 말하는 것이 적당하리라 합니다.

민족개조론9] 결론

나는 이상에 민족개조의 의의와 역사상의 실례와 조선 민족개조의 절대로 긴하고 급함과 민족의 가능함과 그 이상과 방법을 말하였습니다.
세인 중에는 조선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비관하는 자도 있고 낙관하는 자도 있을 것이외다. 또 비관하는 자 중에도 그 비관의 이유가 여러 가지일 것이니, 혹은 조선민족의 외국의 사정의 불순을 이유로 하는 자도 있을 것이요, 혹은 조선민족은 정신상으로나 물질상으로나 피폐의 극에 달한 것을 이유로 하는 자도 있을 것이요, 심한 자는 조선민족의 본성이 열악(劣惡)하여 도저히 번영을 기(期)치 못할 것을 이유로 하는 자도 있을 것이외다. 이러한 모든 비관의 이유로 하는 자도 있을 것이외다. 이러한 모든 비관의 이유가 다 일면의 진리를 가진 것이니 일개(一槪)로 조소해버릴 것은 아니외다.
또 낙관자 편에도 그 낙관의 이유가 하나가 아닐지니, 혹은 천운이 순환(循環)하여 부왕태래(否往泰來)할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하는 유치한 숙명관을 이유로 하는 자도 있을 것이요, 혹은 비관론자와 정반대로 조선민족의 천질(天質)이 우수함은 고대사의 증명하는 바라는 것을 이유로 하는 자도 있을 것이요, 혹은 광막한 세계의 대세를 이유로 하는 자도 있을 것이외다(저 민족의 운명에 관하여 아무 생각도 없는 자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외다). 이러한 낙관설에도 또한 취할 점은 있지마는 그 진리를 함유한 분량으로는 비관설이 훨씬 우승합니다. 진실로 낙관자의 이유는 극히 유치하고 천박합니다. 천환 순운 순환이란 것은 거론할 필요도 없고(기실 다수의 조선인을 지배하는 사상이겠지마는) 민족의 본질의 우수라는 것도 지금 형편에 누가 믿어줄 말이 못되며, 또 설사 본질은 우수하더라도 타락한 금일에는 우수한 점보다 열악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인즉, 이것이 낙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요, 세계 대세론자는 신문명, 신사상으로 민족을 일신케 하며 살아나리라는 의미로는 진리이나 정치적 의미로 말하는 것이라 하면 괘치(掛齒)할 바가 아니외다.
낙관론자에 가장 확실하고 고급적인 것은 우리가 힘씀으로 살리라 하여 문화운동을 주창(主唱)하는 자외다. 그네는 생각하기를 강연을 하고 학교를 세우고 회를 조직하고 신문이나 잡지를 경영하고 서적을 출판하는 등, 이른바 문화사업으로 족히 이 민족을 구제하여 행복과 번영의 길에 넣으리라 합니다. 이는 무론 옳은 자각이니, 대개 이는 모든 행복되고 번영하는 민족들이 그 행보고가 번영을 얻는 길로 하는 사업이외다.
그러나 조선민족은 너무도 뒤떨어졌고, 너무도 피폐하여 남들이 하는 방법만으로 남들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무슨 더 근본적이요, 더 속달의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현재 있는 대로의 상태로는 문화사업도 하여 갈 수가 없으리만큼 조선민족은 쇠약하였습니다. 자양분과 운동을 취하게 하기 전에 우선 캄플 주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보시오, 학교들이 생기나 유지할 능력이 없어 거꾸러집니다. 회들이 생겼으나 또한 그러하고 잡지와 신문들이 생겼으나 또한 그러합니다. 문화사업을 할 사람이 없고 할 돈부터 없는 처지입니다. 사람부터 만들자, 돈부터 만들자 하는 것이 맨 먼저 필요합니다.
그러면 네 의견은 어떠하냐. 이 논문에 말한 것으로 이미 짐작도 하셨으려니와 나는 차라리 조선민족의 운명을 비관하는 자외다. 전에 말한 비관론자의 이유로 하는 바를 모두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순치 못한 환경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피폐한 경우에 있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성질은 열악합니다(근본성은 어찌 되었든지 현상으로는). 그러므로 이러한 민족의 장래는 오직 쇠퇴 또 쇠퇴로 점점 떨어져가다가 마침내 멸망에 빠질 길이 있을 뿐이니 결코 일점의 낙관도 허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삼십 년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지금보다 배 이상의 피폐에 달하여 그야말로 다시 일어날 여지가 없이 되리라 합니다. 만일 내 말이 교격(驕激)하다 하거든 지나간 삼십 년을 돌아보시오! 얼마나 더 성질이 부패하였나, 기강이 해이하였나, 부가 줄었나, 자신이 없어졌나. 오직 조금 진보한 것은 신지식이어니와 지식은 무기와 같아서 우수한 자에게는 복이 되고 열악한 자에게는 화가 되는 것이라, 이 소득으로 족히 소실(所失)의 십의 일도 채우기 어려울 것이외다.
그러면 이것을 구제할 길은 무엇인가. 오직 민족개조가 있을 뿐이니 곧 본론에 주장한 바외다. 이것을 문화운동이라 하면 그 가장 철저한 자라 할 것이니, 세계 각국에서 쓰는 문화운동의 방법에다가 조선의 사정에 응할 만한 독특하고 근본적이요, 조직적인 일 방법을 첨가한 것이니 곧 개조동맹과 그 단체로써 하는 가장 조직적이요, 영구적이요, 포괄적인 문화운동이외다. 아아, 이야말로 조선민족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외다.
최후에 한 가지 미리 변명할 것은 이 개조운동은 정치적이나 종교적의 어느 주의와도 상관이 없다 함이니, 곧 자본주의, 사회주의, 제국주의, 민주주의, 또는 독립주의, 자치주의, 동화주의, 어느 것에나 속한 것이 아니외다. 개조의 성질이 오직 민족성과 민족생활에만 한하였고, 또 목적하는 사업이 상술한 바와 같이 덕체지(德體知) 삼육의 교육적 사업의 범위에 한한 것인즉 아무 정치적 색채가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있어서는 안될 것이외다. 루소의 말에 ‘정치가 되지 전에 군인이나 목사가 되기 전에 우선 사람이 되게 하여라’ 한 것이 있거니와 이것이 개조운동의 계한(界限)이니 동맹자 중에는 온갖 주의자, 온갖 직업자, 온갖 종교의 신자를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니 대개 무실하자, 역행하자, 신의 있자, 봉공심(奉公心)을 가지자, 한 가지 학술이나 기예를 배우자, 직업을 가지자, 학교를 세우자, 하는 것 등은 어느 주의자나, 어느 종교의 신자나를 물론하고 공통한 신조로 할 수 있는 까닭이외다. 어느 종교의 신자는 개조동맹에 들어 그대로 수양하므로 참으로 좋은 신자가 될 것이요, ××주의자는 참으로 좋은 ××주의자가 될 것이니 대개 이는 인의 근본 되는 모든 요건이기 때문이외다.
이에 나는 민족개조에 관한 사상과 계획의 대요를 술하였습니다. 나 자신이 이 주의자인 것은 물론이어니와 독자 중의 다수가 여기 공명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을 확신하매 넘치는 기쁨으로 내 작은 생명을 이 고귀한 사업의 기초에 한줌 흙이 되어지라고 바칩니다.

-신유 11월 22일 밤

『개벽』 19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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