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에 반대한다-도란스 기획 총서 1
권김현영·루인·류진희·정희진·한채윤 지음, 정희진 엮음/교양인· 1만2000원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논객, 연구자로 맹활약해온 저자들이 함께 책을 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양성평등 담론은 “반격을 부르는 남성 중심적 논리”라는데, 이쯤 되면 페미니스트를 혐오하거나 자처하는 이들 모두 혼돈을 느낄 만하다.
성문화 연구모임 ‘도란스’ 기획 총서 1권으로, 지난 2년여 동안 치열하게 토론하며 집단 창작물을 완성했다고 한다. ‘들어가는 글’마저 모든 필자가 검토하며 수십번 첨삭을 교환했다는 걸 보면, 그 수고로움과 긴장을 짐작케 한다.
2016년 6월11일 제17회 퀴어문화축제에서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퍼레이드 진행에 항의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책은 불편한 질문을 던지면서 통념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우선, 남/녀 범주와 개념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또 페미니즘(여성주의)을 “남성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제안하는 사유”로 정의한다. 양성평등 담론은 ‘여성’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상정해 내부의 차이나 다양한 인식자의 위치를 가린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총론격인 글에서 정희진은 성별이 ‘복수’라는 점을 밝힌다. 엘지비/티(LGB/T: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트랜스 젠더)와 성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 간성인 인터섹스(intersexuals)의 존재는 “양성 체계의 허구를 폭로하는 강력한 반증”이다.
나아가 정희진은 국가, 시민사회, 여성 운동계가 “일 가정 양립” 같은 구호를 쓰거나 과도한 여성 노동을 여성 지위향상의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아와 가사, 돈벌이를 모두 떠안는 여성의 사회 진출은 허울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 개념은 결국 ‘남성’이라는 ‘보편’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 ‘사회’에서 진정한 양성평등이란 없다. 평등보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음란과 폭력’의 문제를 질문하는 루인의 글은 섹슈얼리티, 음란, 성폭력, 범죄의 구성과 적용이라는 문제를 교차하며 비/정상성을 폭로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2014년 공연음란죄로 치료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 지방검찰청장 사건으로 포문을 연다. 지은이는 ‘바바리맨’의 범죄로 일컬어진 이 사건이 특정인을 향해 신체를 노출하는 성폭력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방식을 거쳐 범죄로 ‘구성’되었는지 설명한다. 이를테면 대법원이 판시한 ‘건전한 사회통념’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 ‘보통인’이라는 규범적 젠더는 철저히 이성애 입장에서 구성된 것이다. 사실 풍기 문란, 경범죄, 공연음란죄 등의 범죄 범주 만들기는 국민/시민의 일상생활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기획의 일환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트랜스젠더 퀴어’를 경범죄로 경찰에 연행하고 단속하는 일을 중요 과제로 삼았다. 퀴어도, 범죄도, 섹슈얼리티도, 음란한 행위도 역사·문화적 맥락에 따라 권력이 구성하는 지배규범이라는 것이다.
‘양성평등’은 여성 노동을 이삼중으로 강화한다고 정희진은 밝힌다. 사진은 2015년 7월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연 ‘기업과 함께 하는 일·가정 양립’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권김현영의 글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을 때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강간으로 취급해 처벌하는 법 조항이다. 법 적용 연령은 만 13살 미만. 그러나 선거권 연령은 만 19살이다. 문제는 정치경제학적 조건이 섹슈얼리티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임신·출산 문제가 핵심인 성관계를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까? 더욱이 남녀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는 무척 다르게 실천되지만, 몰성적으로 동일한 연령 기준의 법을 적용하면서 젠더에 따른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언론 보도 분량 면에서 피해자 성별이 비슷하게 기사화하지만, 실은 95% 이상이 여성 피해자다. 가해자는 성인 남성이 압도적인 것이다. ‘양성’을 기계적으로 나누고 똑같이 다루는 시도는 공정하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메갈리아 미러링’을 설명하는 류진희의 글은 촛불소녀, 배운 녀자, 메갈리안 등으로 호명된 2000년대 이후 새로운 여성주체의 탄생을 다룬다. ‘김치녀’로 비하되던 여성들은 스스로를 ‘갓(God)치’라고 선언하며 대차게 맞섰지만 ‘메퇘지’(메갈리안+돼지)라는 신조어로 재호명되었다. ‘여혐 대 남혐’이라는 구도는 양성평등 패러다임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여성은 성차별적 현실을 재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메갈리아 세대’는 여성을 일으켜 세우면서 여성성을 해체하는 이중 과제를 숙제로 떠안게 되었다.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에서 한채윤은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를 분석한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극우 정치세력과 손을 잡은 개신교계의 반동성애 활동 목적은 “공포와 혐오를 통해 세력을 넓히는 데 있다”고 이 글은 지적한다. 동성애 혐오 담론은 이성애 가족, 결혼중심적 사고의 정치적 수사이며 위기 때마다 절실히 ‘필요된다’. 이때 혐오는 본질적인 감정이기보다,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인 권력에 따라 구축되는 것이다.
종합하면,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남성중심성과 ‘중산층 이성애가족’ 신화를 폭로하는 대기획이자 전복을 꿈꾸는 도발이다. 양성평등에 토대를 둔 여성주의, 국가에 양성평등 제도화를 요구해온 여성운동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남성’의 책임과 의무가 빠질 순 없다. 그러나 정희진의 말처럼, 남성들에게 보편적 사회 정의로서 여성주의 인식을 요청하려면 꾸준하고 고통스러운 개별자의 투쟁과 협상이 있어야 한다. 여성운동계가 국가에 법·제도변화를 요구하며 달려나갔던 것 또한 ‘국가 가부장’의 명령이 남성의 변화를 빠르게 강제하며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의 집단적 반동(백래시)에 직면한 지금, 남성 개인의 양심에 불을 붙이며 연대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은 어디 있을까? 타자화된 여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의 연대는 기본이다. 그럼에도 ‘기준’이 되는 남성 중산층 이성애 가족중심의 사회를 어떻게 낙후시키고 현실을 재구축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또 다른 고민거리를 남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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