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31

중국교과서의 한국사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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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과서의 한국사 인식 > 중국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본 역사인식과 한국사 서술 > Ⅳ. 한국사 서술의 특징


Ⅳ. 한국사 서술의 특징
중국사에서 한국사 서술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기준 (A)에서 제시한 대로 인접국의 역사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또는 미래 역사상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우선 외국사를 다루는 세계사 교과서 서술은 다루는 범위가 광범하기 때문에 한국사 서술에 대해 교과서를 분석할 때 서술량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서술량은 흔히 다른 나라와의 상대적인 분량으로 문제 삼기도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준 (B)에서 제시한 대로 정치적 영향의 문제는 행간에 투영되고 있는 진정한 서술의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다. 서술의 의도는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에 서술된 한국사 관련 서술의 축조분석만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술 전체의 경향을 살피면서 의도를 추론해 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위에서 살펴본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역사인식의 특징을 바탕으로 이미 축조 분석한 선행 연구註 056를 참고하여 중국 세계사 교과서 속의 한국사 서술의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구체적으로 그 특징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한을 포함한 한국관련 서술이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세계사 구성원리가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북한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들이 많이 있는데 오히려 이런 것들은 교과서 서술의 구성 원리에 충실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의 소개나, 사진의 제시, 북한 건국 사실의 제시 등이 상대적으로 자세하고, 대한민국의 건국 사실이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소개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것註 057이지만 남한이든 북한이든 한국에 대한 서술이라는 점에서 보면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겠다. 현실적으로 남북한 모두를 한국관련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인도나 베트남에 비해 서술량은 적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나아가 앞서 제시한 ‘무시 전략’이 오히려 문제이다. 의도적으로 ‘선택’에서 ‘배제’하는 서술 전략은 ‘선택’해서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것만큼이나 역사왜곡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과의 수교 사실이나 경제 상황, 올림픽의 개최 같은 현대사에 중국이나 북한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배제되어 있다. 어차피 역사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고, 사실 중에 선택되어 설명되는 것이므로, 상대국가를 배려하는 입장에서도 적극적인 서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국에 대한 배려가 소극적이고, 지나치게 자국 중심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다.

둘째, 近現代史를 중시하는 서술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겠지만 고대나 중세의 서술에서 한국관련 내용이 너무 소략하다. 예컨대 『世界歷史』에는 최초의 건국에서부터 조선의 건국까지 수 천년의 역사를 단 두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世界近代現代史』에서도 아주 소량 간략하게 다루는데 그치고 있는데 그것도 임진왜란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古朝鮮에 관한 사항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고 있으면서 高句麗에서부터 나라가 시작된 것처럼 서술한 것 등은 두드러진 흠이다. 그것도 통일신라의 통일이나 고려, 조선을 아무 인과관계나 교류사에 대한 설명 없이 평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도 세계사 전체를 다루는 속에서 서술 분량의 배분상에 나타나는 서술량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고대사에서 古朝鮮史의 생략으로 표현되는 의도적인 배제이다. 이는 교과서 서술의 ‘배제’ 전략이 잘 드러나는 것으로 교과서 전체에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사항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셋째, 中華主義 입장이 한국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국사의 독자성이나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일방적인 문화 전파 사실만을 서술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많은 발전을 했지만 결코 중국 문화의 일방적인 전달만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받은 것을 法古創新의 입장에서 새롭게 창조해 나갔다는 사실이 반영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입장의 동아시아사 설명에 영향을 받은 西歐人들은 한국 문화는 수동적이고 타율적이며 중·일 문화의 아류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역사서술로는 중국의 학생들도 같은 동아시아사 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많으며 따라서 한국 문화가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가진 문화이면서도 자신의 특수성을 가진 문화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서술에 있어 좀더 정확한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보편과 특수라는 관점에서 서술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다음은 한국을 중화문화권 속에 편입시켜서 애초부터 서술에서 배제해버리는 경우이다. 중화주의의 소극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국사의 독자성이나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고조선사의 배제나, 앞서 살펴본 大國 중시의 입장, 한국 문화의 독자성에 대한 무지, 중국에 유리한 사실의 선택의 기준 등은 中華主義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역사적 사실의 설명에 일관되게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준 (E)에서 제시한대로 강자의 논리는 자기의 기준을 보편성으로 가장하여 자기의 의도를 관철하는 방법이다. 그런 예는 전쟁이 대표적인데 중국과 한국이 당사자가 되는 전쟁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서술 태도를 취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나라의 침략에 대한 전쟁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미 선행 연구에서 전쟁, 즉 한국과 일본의 갈등관계에서 중국이 영원한 韓·中 우의를 위하여 지원하였다는 이른바 脣亡齒寒, 藩破堂危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예컨대 
壬辰倭亂은 朝鮮後援戰爭, 
淸日戰爭은 中日甲午戰爭, 
韓國戰爭은 抗美援朝 전쟁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전쟁마다 조선의 요청에 의하여 중국이 우방인 조선을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군대를 파견하여 원조해 주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역사적 사건들에서 중국이 일본과 미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自衛的인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조한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다註 058고 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이런 것을 통하여 앞서 말한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겠다. 강자의 논리는 보편성으로 치장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논리이다.註 059 

일본도 이런 강자의 논리에 따르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예외 없이 일본도 조선을 도우려 파병했다는 똑같은 주장을 하게 된다.註 060
중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한국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반성이나 자신의 방어를 위한 파병 등의 입장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강자의 논리에 따른 서술의 문제는 교과서 전체에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서 시정이 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전반적으로 중국 세계사 교과서에 서술된 한국사는 세계사로서보다는 중국사의 전개에 부수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배경에 중화주의, 강국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한국사의 독자성이나 문화적 독창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선택과 배제를 통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고 있다. 선택된 사실은 부정적 서술이나 중국 중심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배제된 사실은 적극적인 서술은 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한 다른 의도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중화문화권이고, 정치적으로 중국의 영향의 범위 안에 있었으며, 중화가 아닌 외국의 침략을 받을 때는 중국이 도와주었다는 역사인식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런 서술 태도에 대하여 주어진 과제는 우선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업은 전문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시급한 일이고, 역사교육 관계자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같이 서술의 축조적 분석에 의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역사서술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인식을 드러내면서, 한국사 관련 서술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해석해내고 분석해 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동아시아사에 대한 역사상을 구성하는 일이다. 이는 누구보다도 전문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일이며, 역사교육에서는 핵심적인 요구이다. 동아시아사는 한·중·일의 관계 당사국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설득력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아시아는 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속에 한국사의 역할이 적절하게 위치를 잡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역사적 관점이 대단히 중요하며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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