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3

북 주장하는 ‘신천 학살 사건’의 진상 — RFA 자유아시아방송

북 주장하는 ‘신천 학살 사건’의 진상 — RFA 자유아시아방송

홈페이지 | 주간프로 | 북한 언론의 겉과 속
북 주장하는 ‘신천 학살 사건’의 진상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5-01-14





북한 신천군 원암리 밤나무골에서 열린 6.25전쟁 당시 미군을 규탄하는 국제성토대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K011415FE-JY.mp3





00:00/00:00


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 뒤집어보기’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오늘 시간에는 북한이 반미선전에 그토록 집요하게 이용하고 있는 ‘신천학살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근 북한이 미국 코미디 영화 ‘인터뷰’에 반발해 주민들에게 반미교양을 부쩍 강화하고 있는데요, 그 일환으로 반미계급교양관을 참관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계급교양관에는 과거 6.25전쟁때 미군이 저질렀다는 ‘신천학살사건’이 진열되어 있는데요, 오늘 시간에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 재조명하자고 합니다.

최민석: 북한이 신천학살을 미군이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 진상을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먼저 북한 매체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정영: 노동신문 13일자는 “우리는 반드시 최후승리를 이룩할 것이다”라는 기사에서 미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신천학살을 또 걸고 들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2개월도 못 되는 기간에 우리 나라의 곳곳에서 치떨리는 인간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신천군에서만도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천명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야수적인 방법으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반세기 이상 “신천학살은 미군이 저지른 것”이라고 세뇌시키고 있는데, 김정은 체제 들어 반미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계급교양관을 대대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전체 북한 주민들에게 이 계급교양관을 빠짐없이 참관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반미감정이 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최민석: 북한 주민들은 신천학살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정영: 방금 언급한대로 주민들은 완전히 세뇌되었는데요, 제가 만나고 있는 북한의 취재 협조자도 반미감정이 얼마나 높은지 기자와의 통화과정에서도 미국을 마구 욕했습니다.

최민석: 취재 협조자 자체도 욕하던가요?

정영: 그래서 나는 “미국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모른다”고 말해주었더니 깜짝 놀라는 겁니다. 실제로 내 주변에 있는 미국인들은 북한을 위해서, 북한 주민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합니다.

실례로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한반도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습니까, 그걸 본 많은 미국인들이 슬퍼하면서 걱정을 하는데, 얼마 전에는 부시 전 대통령은 ‘어둠을 가르는 빛’이라는 대북정책 제안서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한반도의 남쪽은 불야성을 이뤘는데, 북쪽은 숨 죽은 듯 암흑천지입니다. 이것을 보는 미국 사람들은 “정말 저런 암흑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까” 하고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야경으로 본 북한은 평양이 하나의 섬이에요. 주변이 까맣고 평양 한 부분만 빛이 있었어요. 자, 그러면 신천학살 사건의 진상은 어떻습니까,

정영: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 한국에서의 평가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이 사건을 공산당 좌파세력과 우파 간의 ‘좌우대결’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도 자료를 좀 찾아보았는데요, 당시 유엔군과 한국군이 평양을 향해 북진할 때 신천 땅을 거쳐간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3만 5천명의 양민들을 학살하는데 개입됐다는 증거는 없고요.

실제로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도 이 학살을 주도했다는 해리슨이라는 중대장의 이름도 없고요. 당시 미군은 평양을 향해 북진했을 뿐이고 신천땅에 머물렀다는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월남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주장이 왜곡됐다는 것입니다.

최민석: 방금 중대장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미군 한 개 중대, 150여명 가량이 3만5천명의 주민들을 죽였다는 건데, 이건 말이 안됩니다.

정영: 너무 힘들지요.


최민석: 아니, 통제도 할 수 없지요. 150명으로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가 없지요. 죽이려면 통제하고 죽여야 하는데, 천명도 통제를 하기 어렵습니다. 150명으로…… 한국에 있는 자료와 북한과의 주장이 어떻게 다른가요?

정영: 아직까지 이 양민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요, 당시 이 사건을 겪었던 신천군 출신의 월남자들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노동당과 인민군에 대항해 우파 지하조직과 신천군민들이 저항한 반공투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엔군과 한국군이 38선을 넘어서 북진하자, 노동당과 인민군이 지주, 성직자들을 포함한 우파 세력을 처형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항하여 우파 청년들이 10월 13일 반공 봉기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도 이 사건은 ‘10월 13일 반공봉기’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자료에 따르면 해리슨이라는 중대장이 신천에 없었다는 겁니다.

최민석: 미군이 신천을 통과할 때 머물렀던 부대에 해리슨이라는 중대장이 없었다고요?

정영: 그렇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해리슨이라는 위수 사령관이 3만 5천명의 양민학살을 주도했다고 주민들에게 교양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미군과 한국군은 평양시 점령에 집중하던 나머지 황해도와 같은 후방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지역 치안대들과 공산당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겁니다.

최민석: 예, 그렇군요.

정영: 이러한 주장은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접한 바 있었는데요, 신천군에서 온 한 대학 동기가 있었는데요, 그가 말하기를 자기네 지방 나이 많은 사람들은 신천학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는데요. “당시 허필순이라고 하는19살난 청년이 치안대장이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치안대를 조직하고 평소를 자기를 못살 게 굴었던 중학교 담임선생과 교장을 처형했다. 그러자, 현지 주민들이 자기들끼리 죽일 내기 했는데요, 이게 바로 신천학살의 단초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최민석: 남과 북이 갈려서 전쟁을 하면서, 그 마을 안에서도 갈려서 서로 싸운 거군요. 결국은 그 주체가 치안대가 됐든, 인민군이 됐든 좋은 것은 아니군요. 그러면 북한이 왜 이렇게 드러날 이야기를 가지고 미국을 신천학살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가는가요?

정영: 북한이 원한 것은 미군을 가장 야만적인 살인자로 만드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누군가를 증오해야 할 대상이 있어야 되지요. 즉 김씨 일가에게 돌아오는 주민들의 분노를 미국에로 돌리는 겁니다. 주민들로 하여금 미국을 미워하게 만들면서 체제 결속을 하는 거지요. 이게 반세기 동안 북한이 써온 통치방법인데요,


그런데 반세기 이상 흐른 지금에 와서도 반미를 선동하는 것은 허무한 일입니다. 왜냐면 과거 미국과 싸웠던 중국이나, 베트남도, 그리고 심지어 50년 이상 벽을 쌓고 살던 쿠바도 미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북한만 반미를 선동하면서 주민들에게 계급교양관을 참관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과거 미국과 전쟁했던 나라들도 지금은 미국과 수교하거나 교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달리 북한만 반미를 고수하는데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미국이 손을 내밀면 북한이 바로 손을 잡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쉬워요. 그런데 손을 안 내밀어 주는 거예요.

정영: 그런데 북한이 핵을 가지고 친하겠다고 하니 문제죠.

최민석: 더 안되지요.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까 말까 하는데, 손 말고 핵을 내밀어요. 그걸 누가 잡아줍니까, 안 잡아주는 거죠. 신천사건은 6.25전쟁이 낳은 비극입니다. 북한은 곧 드러날 진상을 가리지 말고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역사적 책임부터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정영기자, 오늘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