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0

윤동주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5가지

윤동주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5가지

윤동주와 그의 작품의 진정한 면모와 가치들을 살펴 보세요.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문학어로서의 한글의 명맥을 지켜내고자 했던 시인


윤동주는 일제강점기 탄압 속에서도 모든 시를 한국어로만 썼던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습작노트에서부터 자선시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를 한글로 썼으며, 검열 속에 일본어로 출간되어야만 했던 연희전문 교지 "문우"에도 꿋꿋이 한글 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오랜 역사의 켜가 쌓인 하나의 문화 공동체가 외압에 의해 강제로 소멸되어 가는 현실을 안타까이 여겼으며, 한글로 시를 쓰는 실천을 통해 일상어 그 이상의 문학어로서의 한글의 명맥을 유지하고 지켜내고자 했던 강건한 문학청년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낸 윤동주의 육필 원고, 단 한권의 시집


누군가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낸 한 권의 시집 덕분에 우리는 윤동주의 시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 한권만이 남아있는 시인의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문학의 벗이자 이후 고전문학자가 된 정병욱, 그리고 그 가족들이 일제의 단속과 검열을 피해 광양 고향집에 숨겨 지켜낸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이 원고를 귀하게 여긴 이들이 시집을 출판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서시 '와 '별 헤는 밤' 등이 영원히 사라질 뻔 했다니 아찔한 일입니다.

학업을 통해 시인으로서 정진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


윤동주는 언어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고향 마을의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경성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했고 이후에도 일본 릿쿄대, 도시샤대에서 문학가로서 소양을 키워나갔습니다. 또한, 그의 스크랩 북과 소장도서들을 보면 문학, 철학, 예술, 고전, 새로운 사상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도 충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깊이 있는 독서와 토론으로 닦은 사유를 쉽고 아름다운 시어로 담아내고자 늘 노력했던 시인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강직했던 사람


윤동주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친구들은 그의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강직한 성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인간적이고 재능있는 친구의 안타까운 요절이었기에, 이후에도 여러 동료들은 그의 추모제를 마련하고 매해 기꺼이 먼 길을 달려와 함께 했습니다. 고향 후배이면서 연희전문 후배였던 장덕순은 윤동주와의 산책과 대화, 침묵까지 하나의 시였다고 기억합니다. 그가 들려주는 윤동주와의 일화를 통해 사람 윤동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나는 여독으로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밖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깼다. 동주가 다시 와서 창문을 조금 열어 놓으라는 것이다. 내가 일어나서 들창문을 열어 놓는 것을 보고 그는 휘파람을 불며 발길을 돌렸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동주는 가깝지 않은 기숙사까지 다 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서 내 하숙에까지 온 것이다. 얼마 전에 그 방에서 학생 하나가 냇내에 중독이 되어 쓰러진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톱밥을 아궁이 속에 넣어서 불을 떼기 때문이란다. 희미한 전등불의 굴 속을, 외등 하나 없는 길다란 백양로를 그는 갔다가 와서, 그리고 또 걸어갔던 것이다.” - 장덕순

한국, 일본, 중국에서 모두 기억하고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사랑받는 특별한 시인입니다. 그는 동아시아의 복잡한 근현대사 속에서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의 후손으로 한반도인 남쪽 땅을 고향으로 그리워하며 성장하다가 학업을 위해 점차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가 머문 지역들은 현재 중국, 한국, 일본에 걸쳐져 있으며 그 모든 장소에서는 그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졌고 추모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청년의 생애와 고결한 시편들은 이를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동아시아의 기억과 화해를 향한 매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윤동주의 삶과 시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더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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