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2

소재두 - "한반도는 저 비극의 혼란에서 60년이 지난 지금, 쌍방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확실히 변하려 하고... | Facebook

소재두 - "한반도는 저 비극의 혼란에서 60년이 지난 지금, 쌍방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확실히 변하려 하고... | Facebook


소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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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저 비극의 혼란에서 60년이 지난 지금, 쌍방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확실히 변하려 하고 있다. 한편, 일본을 보면, 최근 수상한 분위기가 한 발 한 발 자욱하게 엄습해온다고밖에 생각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역사를 모르는 정치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칙어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교육기본법의 개정,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다시 양성하려는 헌법 9조의 개정, 게다가 핵무기를 지니려는 움직임까지 갈수록 노골적으로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당시 아시아태평양전쟁, 중일전쟁을 치룬 군부는 전쟁을 대일본제국의 자존자위와 구미 제국의 지배에서 아시아의 해방을 위한 정의의 전쟁으로 생각했다. 그 정의를 위해 싸운 영령에 합장하는 일이 왜 안되는가라는 생각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정당화하는 근저에 깔려있다. 그러나 전쟁에 정의란 결코 있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믿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1975년 내가 ‘조선피폭자협회’를 만든 후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1977년 당시 후지타 마사아키(藤田正明) 총무장관으로 시작해, 2005년 8월까지 21명의 관계 각 대신과 9명의 총리대신에게 요청해 온 재조피폭자 지원조치는 지금도 ‘검토 중’이다. 일본정부의 ‘검토’란 28년이 걸려도 결론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가? 조피협 멤버도 이제는 꽤 줄었다. 처음에는 130명으로 출발, 한때는 540명까지 늘어났지만, 북한으로 귀국한 자, 사망한 자도 많아, 지금은 300명을 밑돌지 않을까. 단 일본에 사는 조선·한국인 피폭자를 모두 포함하면 4,200명 정도 된다. 그 중 약 1,500명이 히로시마현에 살며, 대부분 히로시마 시내에 산다. 아직 상당수의 피폭자가 남아 있다.
지금 다시 30년을 회고해보면, 내가 걸어온 길은 피폭자 문제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모든 게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 몇 번이나 좌절했는가. 그러나 그때마다 난관을 넘어,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성취해 온 날을 생각하면, ‘그때 피폭자 조직을 만들길 잘 했다’란 감회가 절실히 든다. 후회는 없다. 틀리지 않았다. 그런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지금 내게 하나의 만족감과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만약 그때 피폭자 조직을 만들지 않았다면, ‘조선인에게도 피폭자가 있다’는 역사적 사실 조차 세상에 인지되지 않았을 테고, 반전·반핵 평화운동의 대열에 동참은 물론 북한 거주 피폭자 문제는 틀림없이 알려지지 않았을 테다.(이실근의 <나의 히로시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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