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7

[인싸의 세계] “남의 말 잘 경청해 ‘인싸’가 되었죠” 황정산 평론가

[인싸의 세계] “남의 말 잘 경청해 ‘인싸’가 되었죠” 황정산 평론가


[인싸의 세계] “남의 말 잘 경청해 ‘인싸’가 되었죠” 황정산 평론가내 인생 최고의 가치는‘아름다움’과 ‘자유’
올해 목표는 시집과 평론집 동시 발간

임유이 기자
입력 2023-05-24 

▲ “인생 최고의 가치는 ‘아름다움’과 ‘자유’가 아닐까요?” 황정산 평론가는 올해 목표가 시집과 평론집을 동시에 발간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 교수 출신의 황정산 평론가는 여러 문학 전문지에서 주간을 맡고 있으며 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집 해설자’ 중 한 명이다. 또한 그 자신이 시인이며 페이스북에서는 손꼽히는 ‘인싸(주류측에 속하난 사람)’로 통한다. 그는 어떻게 인싸가 되었을까. ‘아싸’는 모르는 ‘인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요즘 주력하고 있는 일은?

대학에서 퇴직한 지 3년이 지났다. 백수 시인의 삶을 즐기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아직 한 대학에서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 두 과목뿐이지만 정해진 시간에 강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하다.

그래도 본업인 시와 평론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은 글쓰기 준비를 하는 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인싸의 비결은 무엇인가?

‘스카이데일리’에 인싸로 초청되어 아주 많이 당황했다. 보통 ‘인싸’ 하면 떠오르는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급 회장을 맡았는데 회의를 진행하면서 내가 혀짧은 소리로 말을 하자 모두가 크게 웃는 사건이 있었다. 막내로 자라 어리광부리던 말투를 그때까지 버리지 못한 탓이다.

아무튼 그 사건의 트라우마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공포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후엔 학창 시절 반장이나 회장 같은 직책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성장하여 어쩔 수 없이 남 앞에 서야 할 일이 생겼다. 다른 사람처럼 유창하고 활달한 언변을 뽐낼 수 없었던 나는 나만의 장기를 개발해야 했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나는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고 그 말의 핵심을 잘 파악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잘 살려 어눌하지만 재치 있는 농담과 짧지만 적절한 멘트를 날리는 것으로 나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또한 태생적으로 욕심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경쟁심을 갖지 않는 편이다. 타인에게 이런 감정적 부하가 없는 것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했다. 결론적으로 욕심없는 삶이 인싸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나?

나는 인간의 삶에서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지난 시절은 자유롭지 못했다. 젊은 날에는 내가 믿어왔던 이념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고, 좀 더 나이 들어서는 집안 일로 자유롭지 못했다. 돈을 잘 벌던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자유를 저당 잡혀야 했다.

내가 자유를 얻게 된 시기는 어머니의 사별과 맞물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를 가슴으로 염려하는 단 한 사람이 세상에서 떠났으니 이제 내가 어떻게 되든 아무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치거나 죽거나 혹여 국가기관에 잡혀가더라도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살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자유가 찾아왔다.

일관된 관심사가 있다면?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다. 8살 무렵이었다. 우리 집 바로 앞이 바다였다. 어느 저녁 무렵 낮은 담벼락 너머로 석양에 물든 바다가 보였다.

마침 돛단배 한 척이 땔나무 짐을 싣고 영산강 하구 앞을 지나고 있었다. 바다도 하늘도 돛단배도 그 돛단배에 실린 땔나무도 모두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이후 아름다움은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화가나 조각가가 될 꿈을 꾸었다.

또 하나는 중학 시절이었다. 당시 영산강 하구둑을 막아 바다를 간척하는 사업이 한창이었다. 갓 육지가 된 그 땅은 오랫동안 황무지로 방치되어 있었지만 봄이면 찔레순이 올라와 온통 연초록으로 물들었다.

또한 그때쯤이면 농촌이었던 동네 채소밭에 거름으로 인분이 뿌려지고 봄 햇살에 그 인분이 마르면 악취인지 향기인지 분간하기 힘든 그런 냄새가 피어올랐다. 연초록의 황무지를 바라보면서 인분 냄새를 맡으면 누군가 우리 동네 뒷산을 넘어 나를 데리러 올 것 같았다. 답답한 시골 동네에서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줄 그 누군가 말이다.

그것을 시로 표현해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나의 문학이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을 두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페이스북에서 ‘미모’ 콘셉트를 밀고 있는데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왔나?

‘미모’ 콘셉트는 앞서 말한 아름다움·자유와 관련이 있다. 사실 나는 미남이라고 평가될 만한 인물은 아니다. 단지 ‘미모’라고 우기는 그 뻔뻔함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해방감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모라는 말로 나를 수식하면서 나의 아름다움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비록 타고난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온갖 명품으로 화려하게 꾸밀 여유도 없지만 좀 더 편안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생각하며 살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캐릭터가 나름 인싸로 사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인싸로 산다는 것에 고충이 있다면?

애로사항이라면 항상 스케줄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약속이 하루 세 건을 넘어가기도 하고, 일정이 겹쳐 어쩔 수 없이 초대를 거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을 만나 당구를 치거나, 좋은 사람과 여행을 가는 것이 사실 가장 행복한 일이지만 이런 일보다는 나의 사회적 자산을 지키는 데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 자신 인싸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인싸로 살기 위해 페이스북에 재치 있는 글을 남기고, 사람들을 만나 술자리를 갖고, 각종 행사에서 축사를 하니 말이다.

미래의 계획이 궁금하다


새롭고 특별한 시를 쓰고 싶다. 일단 올해는 시집 한 권, 평론집 두 권을 출판할 예정이다. 그런데 벌써 5월이 지나가고 있다. 마음이 바쁘다.

현재 새로운 시 전문지를 창간해서 편집 주간을 맡아 2호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이 잡지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해 내가 맡은 역할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