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고 말해보자면] 발전하는 한국사회에서 좌파노릇하기 쉽지 않네
2023/08/27 류상영의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논형, 2022)에 관한 서평글을 요청받아서 계속 쓰고 있다. 저번에 말한 적이 있는데 1962~1987년까지의 25년을 "한국적 근대 ver.1.0"으로, 1987~2022년까지의 35년을 "한국적 근대 ver.2.0"으로 설정하여 각각 저개발국에서 중진자본주의로의 도약, 중진자본주의에서 선진자본주의로의 도약을 설명하려 한다. 그 연장에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은 '한국적 근대 ver.3.0'을 설명하기 위해 두 버전의 근대화가 지닌 한계가 무엇이었는가를 박정희와 김대중을 비판한 박현채의 입장을 빌려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는 지점은 역시나 'ver.2.0'이다.
한국은 어찌됐든 1987년 이래로 발전해왔다.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발전인가? 무역구조의 측면에 있어서 한국 사회는 박정희의 'ver.1.0'이 만든 조립가공형 무역구조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는 박정희 시절과 마찬가지로 원자재 등을 잘 수입해 조립가공해서 잘 수출하는 걸로 먹고 산다. 금융업, IT 산업 등의 서비스업 구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음에도 본질적인 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ver.1.0이나 ver.2.0으로 구별하는게, 더 본질적으로는 저개발국에서 중진자본주의로, 중진자본주의에서 선진자본주의로 도약하고 있다는 단계론적인 구별 자체가 맞는가.
1987년 이후에 IMF의 구조개혁이 있었다 하고 그것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 맹폭격을 하던 게 진보좌파 진영이지만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과장된 게 많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께 여쭤보면 IMF 이전과 달리 확실히 대기업들이 분업체계를 발전시켜서 외주를 주니 관련 업체들이 많이 생기고 전문성도 생기면서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런 식의 수급관계를 형성하던 건 이미 1980년대 초중반부터 나타나던 현상이다. 어떤 단절적인 구조변화나 개혁이 있었다기보다는 연속성이 강한 게 한국사회의 특질 아닌가 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연구들을 찾아보면 이미 1980년대 무렵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박정희식의 발전국가는 민주화 이후에 그것을 상징하는 '경제기획원'의 철폐로 완전히 해체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놓은 기본적인 구조는 이후에도 재생산되며 선진 자본주의로 도약하고 있는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 때문에 1987년 이후의 제6공화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언사들이 많고 나도 그렇게 보았지만 이렇게 보면 제6공화국이 이룩한 높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임혁백의 지적처럼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의 경제성장 못지 않게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상대적인 고성장 기조가 유지되어 왔다. 임혁백과 같은 몇몇 정치학자들은, 그리고 애쓰모글루 같은 이들은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식으로 이런 걸 설명하려고 하지만 식민지기부터 이어져온 한국의 고도성장 추세는 정치체제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려면 그 근본 배경으로 1960~1980년대 이래로 지속되어온 동아시아 지역의 공업화를 꼽아야 한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4마리의 용을 필두로 하여 동아시아 공업화는 중국, 동남아 등을 거쳐 인도와 아프리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별다른 단절점 없이도 고도성장이 가능했고 그것에 기초하여 권위주의 체제의 성립, 붕괴, 민주화 등의 여러 정치적 상부구조의 극심한 단절을 손쉽게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본다면 과연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둘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한국적 근대 ver.3.0'을 주장하는 게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제한되어 있다. 한국의 근대화가 지금까지 어찌됐든 지속될 수 있었던 요인이 고도성장 덕분이고, 그 고도성장의 배경에 아시아 지역의 공업화가 있었다면 이제 그것이 미중대립과 한중일+아세안의 인구구조의 격변 등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되는 시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연 거기서 '정치의 역할'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구조변혁 없는 선진화'를 겪고 있는 한국의 발전을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망국론'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논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을 잡는 게 쉽지가 않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본질적으로 그것의 '부재'를 논증해야 하는데, 부재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후의 한국 사회가 적절하게 발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실천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인지편향으로 인해 과도하게 지금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적 사고를 항시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요즘 나의 고민을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둔다.
2023/08/27
한국은 어찌됐든 1987년 이래로 발전해왔다.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발전인가? 무역구조의 측면에 있어서 한국 사회는 박정희의 'ver.1.0'이 만든 조립가공형 무역구조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는 박정희 시절과 마찬가지로 원자재 등을 잘 수입해 조립가공해서 잘 수출하는 걸로 먹고 산다. 금융업, IT 산업 등의 서비스업 구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음에도 본질적인 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ver.1.0이나 ver.2.0으로 구별하는게, 더 본질적으로는 저개발국에서 중진자본주의로, 중진자본주의에서 선진자본주의로 도약하고 있다는 단계론적인 구별 자체가 맞는가.
1987년 이후에 IMF의 구조개혁이 있었다 하고 그것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 맹폭격을 하던 게 진보좌파 진영이지만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과장된 게 많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께 여쭤보면 IMF 이전과 달리 확실히 대기업들이 분업체계를 발전시켜서 외주를 주니 관련 업체들이 많이 생기고 전문성도 생기면서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런 식의 수급관계를 형성하던 건 이미 1980년대 초중반부터 나타나던 현상이다. 어떤 단절적인 구조변화나 개혁이 있었다기보다는 연속성이 강한 게 한국사회의 특질 아닌가 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연구들을 찾아보면 이미 1980년대 무렵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박정희식의 발전국가는 민주화 이후에 그것을 상징하는 '경제기획원'의 철폐로 완전히 해체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놓은 기본적인 구조는 이후에도 재생산되며 선진 자본주의로 도약하고 있는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 때문에 1987년 이후의 제6공화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언사들이 많고 나도 그렇게 보았지만 이렇게 보면 제6공화국이 이룩한 높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임혁백의 지적처럼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의 경제성장 못지 않게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상대적인 고성장 기조가 유지되어 왔다. 임혁백과 같은 몇몇 정치학자들은, 그리고 애쓰모글루 같은 이들은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식으로 이런 걸 설명하려고 하지만 식민지기부터 이어져온 한국의 고도성장 추세는 정치체제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려면 그 근본 배경으로 1960~1980년대 이래로 지속되어온 동아시아 지역의 공업화를 꼽아야 한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4마리의 용을 필두로 하여 동아시아 공업화는 중국, 동남아 등을 거쳐 인도와 아프리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별다른 단절점 없이도 고도성장이 가능했고 그것에 기초하여 권위주의 체제의 성립, 붕괴, 민주화 등의 여러 정치적 상부구조의 극심한 단절을 손쉽게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본다면 과연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둘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한국적 근대 ver.3.0'을 주장하는 게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제한되어 있다. 한국의 근대화가 지금까지 어찌됐든 지속될 수 있었던 요인이 고도성장 덕분이고, 그 고도성장의 배경에 아시아 지역의 공업화가 있었다면 이제 그것이 미중대립과 한중일+아세안의 인구구조의 격변 등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되는 시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연 거기서 '정치의 역할'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구조변혁 없는 선진화'를 겪고 있는 한국의 발전을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망국론'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논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을 잡는 게 쉽지가 않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본질적으로 그것의 '부재'를 논증해야 하는데, 부재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후의 한국 사회가 적절하게 발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실천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인지편향으로 인해 과도하게 지금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적 사고를 항시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요즘 나의 고민을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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