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범
올해 유난히 비행기 탈 일이 많았다. 그렇게 타고 다니면서도, 게이트에 서 있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새삼 놀란다. 저게 허공에 뜬단 말이지. 그래도 때가 되면 탄다. 비행기의 부상 원리에 대해서는 누가 설명을 해줘도 잘 이해를 못하지만, 비행기의 개발/발전 역사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 그 과정에 헌신한 사람들과 그들이 수행한 과학적 과정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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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든 다른 어떤 종교이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론이며 종말론 같은 것들은 다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들까지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인간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최선을 다해 토론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종교에 관한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별로 다르지 않다. 너무 거칠게 대략 얘기해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머리가 가 닿는 대상과 주제, 따라서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까 결론도 달라지는 것일테고. 이 두 영역 안에는 각자의 내재적 논리가 있고, 이 논리가 그 영역 밖으로 나올 때에는 조정을 필요로 한다. 물론, 각 영역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논리가 보편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건 물론 착각이다. 별 보고 길 찾던 시대는 지나갔다. 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길이 많아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이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가도 그것이 유효한 범주를 벗어나게 되면, 느닷없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가 된다. 나처럼 느슨하게 두 세계에 양다리 걸치고 있는 자(아마도 대다수의 개인들)에게는 이런 게 잘 보인다.
종교를 믿는 이들을 존중하고 심지어 존경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이 그 논리를 현실세계에 들이대기 시작하면 갑자기 상식선 이하의 이기적인 머저리가 되는 걸 종종 본다.
과학을 다루는 이들 역시 존중하고 소수에 대해서는 존경까지 하지만, 그들 또한 인간의 정신에 대해 한심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대책없는 꼭 막힌 바보로 보이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물론 내색은 안한다. 그 자들도 나에 대해 마찬가지 느낌일 테니까. 그냥 피차 참고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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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백신을 두고 말이 많았었다. 특히 초기에. 나 역시 좀 께름칙하긴 했지만(그리고 물론 백신을 맞을 때마다 하루 이틀 고생을 했다) 그래도 맞으라는 대로 다 맞았다. 백신이 실제로 어떤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내적 구성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해도 모르지만, 그래도 맞았다. 우선, 서양의 제약의 역사라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신뢰가 있고, 그에 더해, 이 약물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원리, 효과, 그것의 한계 등등에 대해 하도 여러 번 들어서 마치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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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약물이 개발돼서 시판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거쳐 (나름대로) 잘 조직된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는 건 옛날에 <독립영화 만들기>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라는 감독이 쓴 건데, 이 친구는 영화제작비용을 벌기 위해 한 약품의 마지막 테스트 과정에 인간 마루타로 참여한다. 몇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음식물 섭취, 수면, 배설, 운동 등을 철저히 통제받는 가운데 특정 약물의 효과 실험에 참여하고 그 댓가로 상당액을 받는 일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마지막 실험단계에 참여한 건데, 이 실험에서 실험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건 실험대상의 '표준'의 범위를 설계하는 일인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을 번역하던 당시에는 촬영용 장비와 편집장비를 다루고 설치하는 일을 많이 했는데, 이 일들에서도 중요한 게 그거였다. 표준을 잡는 것. 이를테면, 촬영이나 편집을 제대로 하려면 카메라와 편집기, 모니터의 색상과 음영을 비롯한 여러 기능이 표준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 작업을 하는 표준화기기(각종 scope) 역시 표준화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작업을 하는 기기 또한 있어야 하고, 당연히 그 기기 또한... 하는 식으로 일종의 연쇄가 이뤄진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약물의 개발과정과 마찬가지로, 첫째 실제로 각 장비들의 표준화가 이뤄져야 하고, 둘째 그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는 비용이 든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뤄진 표준화는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도 잘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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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나는 이런 두 가지 차원의 노력 중 어느 하나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늘 느꼈다.
비행기나 자동차, 의약품의 개발사에 준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따라서 일반 시민들은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처음 벌어지는 일인데 몇몇 과학자들의, 그것도 여전히 충돌하는 견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섣부르게 강행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이 일이 급하게 이뤄지리라고 믿지는 않았는데, 이런 중차대한 일을 실행에 옮기면서, 하다못해 약물 하나를 개발하고 편집실 하나를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거치는 마지막 과정인 모델의 표준화와 구동실험, 그 결과의 설명과 홍보 같은, 이제는 거의 모든 과학적/기술적 업무처리에 필수화된 과정을 거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 웬만한 크기의 인공 바다와 해류의 흐름을 조성해 놓고 그 안에 원자력 오염수를 흘려넣어가면서 장기간에 걸쳐 변화과정을 살피는 정도의, 제약과정으로 치면 2상과 3상의 중간과정 정도에 해당하는 실험쯤은 할 걸로 기대했다. 그정도의 '과학'적 과정은 있어야 해당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과학적 환상이라도 가지고 신뢰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다음 과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합리적인 아이디어도 생길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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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정부야 사정이 다급하니까 대충 넘어가려 한다고 치고, 이런 요구는 한국 측에서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시민들한테 입 닥치라고 할 게 아니라?8 comments
Joon Jo
천공 무당이 일본과 친해야 한다고 유지를 가르치니 유지는 돼지를 구워삶고, 닛뽕총리가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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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h
Bae Hyojin
맹종이 과학이 되고 미신이 정치적 배경이 되는 국가가 오작동을 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 나는지 우리는 직접 겪고 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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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
김혜진
동감합니다.
급작스런 감행과 수용
둘다 참 당황스럽습니다.…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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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h
Sejin Pak
일부 공감이 되고, 일부는 안되고 합니다. 저는 본래 물리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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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h
고영범
Sejin Pak 공감하지 못하시는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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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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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과학적 설명과 그 설명에 대한 신뢰에 이르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일반론이니까 물론 공감합니다. 그러나 오염수/처리수 문제에 와서는 코비드 박신 문제와 같지는 않아도 크게 다르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둘 다 일반인들이 그 안전성에 대해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고, 일반인 들 모두를 설득시키지 못한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불안감이나 신뢰의 정도에 있어서 <나라간 차이>입니다. 코비드 박신의 경우에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정부의 설명이나 지시를 따르는게 미국과 달랐습니다. 호주나 카나다도 미국보다 한국이나 일본과 비슷했습니다.
원전 오염수/처리수 문제에서는 일반 시민의 불안감/정부에 대한 신뢰도의 차이가 더 크다고 보입니다. 일본, 한국 카나다, 세 나라를 비교해보자면, 불안에 제일 떨고, 정부를 신뢰하지 않아야 할 나라는 일본일 것 같은데, 한국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바닷물의 흐름이 북미 서해안으로 먼저 온다고 하니, 카나다나 미국 서부 해안의 주민들이 한국에 사는 사람들 보다 더 걱정을 해야 할 것 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제일 불안해하고 한국정부나 일본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 요인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소위 진보파의 반일감정, 반윤정부 감정이라고 보입니다. 진보파는 불안감을 가지고 정치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신뢰감은 불안감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왜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난 일본에서보다 더 불안감을 느끼는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요인입니다. 제가 보기는 한국은 이상한 나라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 저의 포스트와 그 글에 제가 부친 댓글들을 참고로 보시면 조금 더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pfbid03WTaT4TzVKx8XWWekYQSWoF1dBRkFrEyMMZ3Fy9eEZvefKsGfCyG9AsHiNBKbXG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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