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Jaewon Chey - <필라델피아를 떠나며 '서재필 기념관'에 들르다>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디씨로 떠나며 미리... | Facebook
Jaewon Chey 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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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를 떠나며 '서재필 기념관'에 들르다>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디씨로 떠나며 미리 약속한 일정에 맞춰 서재필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직접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안내해주신 분은 제가 아는 것도 좀 있고 질문도 구체적이라 좀 놀라셨던것 같습니다. 그분의 설명은 유익하기는 했지만 최초로 가졌던 공화국의 꿈과 그 박동, 무엇보다 건국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한국을 최초로 잉태한 분이 가진 그 심장의 박동을 이 기념관은 모르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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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군주가 사라진 망국 청년들이 더이상 대륙의 번속국이 아닌 태평양 너머 새로운 독립국가와 공화국을 모델로 최초의 꿈을 꾸게 한 이는 바로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 서재필)이었습니다.
1895년 김홍집 내각에서 중추원 고문으로 귀국했을때 그는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김홍집 선생의 갑오경장(甲午更張)이 없었다면 서재필 선생도 올 수 없었을 것이고 이 모든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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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중국제국 번속국(藩屬國)의 하나였던 조선이 사대모화했던 상징인 영은문을 철거하고 잔해인 주춧둘(주초)을 바라보는 자리에 독립 상징의 관문을 세워 사대주의를 극복했다는 상징조작을 하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개장한다는 아이디어도 서재필 선생의 제안이었습니다.
서재필 기념관에서는 《독립신문》 복사본을 볼 수 있습니다. 순 한글로 쓰여지고 누가 봐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며 파격적인 기고문과 주장들 뿐 아니라 다양하고 흥미있는 다양한 상업 광고 등도 실려 있습니다.
망국의 빈 자리에 불어 넣은 공화제 담론의 씨앗과 함께 새로운 독립국가는 태평양 너머의 미국을 꿈의 모델로 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됩니다. 서재필에 의해 청년들의 독립운동은 이제 친미가 노선이요 자유 민주주의공화국의 모델이 미국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대단한 사건이란 말입니까? 망국 청년들에게 군주도 귀족도 아닌 인민이 주권자가 되는 공화국의 롤모델로 태평양 너머에 꿈꾸고 기도하고 지향할 수 있는 나라가 생겨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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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재필의 혁신적 공헌들을 과연 알면서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미국 이름을 쓴다며 그를 망각의 감옥에 유폐시키는 겁니까? 서재필이 뿌려준 이 씨앗을 서재필 선생이 '링컨'에 비유하며 아꼈던 도산 안창호는 (독립)민족개조론으로 계승해 나갔습니다.
서재필을 존경하며 선생으로 따랐던 이승만은 태평양을 건너 장차 하와이와 워싱턴에서 "하나님 말씀을 반석 삼아 의로운 나라"로 한국을 독립시키기 위해 절실한 기도 속에 독립운동과 외교를 펼쳐 나갑니다.
조금은 외롭게 느껴지는 이 방에서, 서재필이 뿌린 이 모든 씨앗을 너그러운 아버지처럼 거둬들여 이 청년들이 싹 틔울 수 있도록 소중하게 가꿔준 분이 월남 이상재 선생인데 월남도 이 방에 안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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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모든 한국 독립운동의 동료들과 한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같이 떠올랐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묻혀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모두 한국 건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혁명의 동료들입니다.
그런데 남은 사람들은 여기에 당신이 어떤 의미의 독립운동가였는지도 모르고 당신을 그저 홀로 외로이 버려 둔 것 같았습니다.
19 comments
OH Sunmoon얼마 전 <1919 필라델피아>라는 음악극을 봤는데, 거기서 의장을 맡았던 출중한 인물이 서재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승만도 등장했는데, 아직 덜 다듬어진 의협심 출중한 젊은이로 묘사되었더군요.
역사는 그렇게 상호 교차하고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가 봅니다. 멋진 글에 항상 감사합니다.
Jaewon CheyOH Sunmoon 감사합니다. <1919 필라델피아>음악극이 만약 필라델피아에서의 한인대회(a Korean Convention)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 한인대회를 하자고 서재필에게 먼저 제안한 것도 이승만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기독교계와 천주교계가 3.1운동을 구상하고 있었고 이승만은 같은 시기에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 제정의 산실인 대륙회의의 장소인 필라델피아에서 3.1운동을 펼치자는 구상을 한 것이죠.
아.... ..... 이분들의 노력이 너무 눈물나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의 독립운동과 건국은 국제적인 협업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로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대통령이라 부르고, 특정한 개인에게만 국한하는 '국부'라는 표현은 지양해야 하겠다는 깨달음이 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한국 건국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 맞습니다. 이 분들은 기도로 하나님의 종으로 나라를 건국한 것이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람의 무엇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릅니다.
Isabella Kim최재원 서재필은 이승만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죠. 즉 무시했던거에요'
이젠 이승만과 서재필 사이는 사제 간 보다 라이벌 관계가 되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승만은 여전히 사제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OH Sunmoon최재원 선생님 글 읽으며 저도 벅차 오릅니다. 말씀하신대로 필라델피아 한인대회 이야기를 다룬 음악극이었습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만 제대로 알아도 이 나라는 흔들릴 수가 없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맙습니다.
Jaewon CheyOH Sunmoon 그 음악극 저도 한국에 있으면 봤을텐데 실은 참 눈물나는 장면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이 날 시위에서 행렬한 노선이 어디었는지 저도 필라델피아 가서 하나하나 살펴보며 답사를 했어요.
이 날 집회를 기획한 이승만과 필라델피아 당국으로부터 시위 행렬을 지원해 준 악단도 지원받도록 이끌어 낸 서재필까지 눈물 나는 협업의 과정입니다. 어떻게 보면 비까지 내려 조금은 초라하고 외로운 느낌이 드는 이 날 시위에는 필라델피아 시장도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취지로 집회에 참석해 주었었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세우는 일은 호불호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Sukhoon Choi조선말 당시 일반 백성들의 민도는 낮았어도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 김홍집을 비롯한 온건개화파 등 뛰어난 인물들이 없지는 않았었습니다. 단지 고종이란 사상 최악의 군주가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었죠.
Jaewon CheySukhoon Choi 고종이 김홍집을 어떻게 죽이게 했나요? 김옥균은요? 홍종우는 또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이 기껏 군주에 복종하고 조국을 위해 귀한 일꾼인 김옥균을 암살한단 말입니까?
저는 한국인 중에 정말로 뛰어난 인재가 많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체제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탤런트가 너무나 많죠. 그 고종을 제거라도 하면 좋겠는데 말이죠.
Sukhoon Choi최재원 급진개화파라고 했었었도 군주제 타도 같은 목표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 한 것부터 구조적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Jaewon CheyMyoungDo Lee 선생님 저는 한일병합 소식에 이승만 대통령이 침통해 하시기는 커녕 확실하고 깨끗하게 조선이 몰락하고 양반들도 사라 없어지게 되어 잘되었다는 취지로 받아들이셨던 것을 이제 나이가 조금 들고서야 깨닫습니다.
지금
조선인들의 기질을 봐도, 차라리 러시아가 아닌 일본과 병합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면 좋을까요? 지금 한국은 조선입니다. 배웠다는 새끼들은 이런 근현대사 투쟁에서 도망가있고 자리만 해 쳐먹고 노예집단은 웅성웅성 모여 양반 곳간 털자며 궐기하고 있고 대깨문 집단을 이뤄 해산하지 않고 말입니다
Jaewon CheySukhoon Choi 그렇죠 구조적 한계가 명백했죠. 필요할 땐 뒤집어 엎고 제거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일본처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조슈 파이브처럼 좀 차분하게 일답게 할 수 있도록 할 수 없는 걸까요?
그게 안되면 외세에 의해 수술이 되어야 겠지요. 무능한 조선인들끼리 협업이 되지 않는다면 외세와의 결탁 밖에 환경에서 구성되지 않는데 이런 구조적 동인에 대한 사고가 왜 이리 부족할까요?
노비들이 팔장끼고 소비만 하는 것 같아요. 결점 나오나 흠결 나오나
MyoungDo Lee지금도 다 빠들이 되어서 내부힘만으로는 어림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만 선생님을 비롯한 우리 자유시민들이 뭉쳐서
인천상륙작전 해올때 부산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듯
내부에서 최후결전을 준비해야할 때라고 봅니다.
Jaewon Chey김인철 잘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침 선생님 덕분에 용기 내서 과감하게(?) 시카고 일정도 잡았습니다.
Kim Sungsoo마침 아는 감독님이 <하와이로 간 대통령>제목으로 영화를 준비중이셔셔 더욱 포스팅 내용이 다가오네요.
Jaewon CheyKim Sungsoo 정말 기뻐할만한 좋은 일입니다! 관점 설정을 잘해야 할텐데요. 왜냐하면 대표적으로 하와이 행을 '망명'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망명을 했을 때는 한일병합 이후에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이 "정치적인 이유로 자국에서 위협을 받는 사람이 외국으로 피신하는 것"으로서 망명이었던 것이죠.
이때는 강제로 당신을 유폐하고 대한민국 건국부터 1,2,3 공화국을 무능과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4.19봉기를 4.19혁명으로
만들기 위해 획책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승만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인식은 바로 이 여지에서 구성된 산물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이 조선인들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악하고 무책임한 집단인지 알았다면, 절대 이화장을 떠나서는 안되었습니다. 김일성은 남파간첩을 통해 4.19봉기에 대해 실시간으로 지령을 내렸었죠. 결과적으로는 내러티브에서 김일성이 완승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부정과 이승만에 대한 부정, 항일 투쟁 서사를 통한 인민공화국의 정통성 구축 등 말입니다. 미국도, 당시의 한국 국방부도, 시민들과 학생을 제외한 대학 교수 집단도 모두 이승만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우리 "할아버지!"이승만이 한국 건국해 주시고 6.25때 공산군도 막아 주신 분으로 간직하고 있는게 있었는데, 결정적인 전환은 대학교수의 시국 성명 발표로 이승만 하야 프레임이 구축된 것이죠. 원래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가 잘못되었으니 선거 다시하자는게 구호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위 배웠다는 것들이 좌익질입니다. 그게 이땅의 비극입니다. 자기의 학문과 담론을 하지 못하고 간신에 사대주의에 반역만을 일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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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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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ey김구 주석은 상해 임정을 잘 지켜주셨죠. 백의사 그룹 관리도 잘해주셨죠. 김일성 암살도 미수에 그쳤지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구는 이승만에 대한 질투와 질시에 사로 잡혔고 자기 분수를 잃어버리고 김일성과 소련 정보국의 공작과 회유에 넘어가 통일 한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망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대비한 조선 인민군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침할 것을 알고서도 남북 연석 회의에서 돌아와 막 건국한 취약한 대한민국을 갖은 수단을 동원해 파괴시키려 했죠.
그럼 남은 것은 죽음 뿐입니다. 적들이 김구를 영웅시하는 것은 그의 반역 때문입니다.
박선영 · 미국은 서재필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서재필은 이승만을 밀었지요.
서재필은 문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돕기도 했구요.
선생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Jaewon Chey박선영 필라델피아 한인 대회는 한국 헌정사의 소중한 첫 걸음이자 흐린 하늘에 별과 같은 비전의 시작인데 이 행사도 서재필이 없었다면 이승만이 홀로 엄두를 낼 수 없는 기획이었습니다.
서재필의 아내 뮤리엘의 가족 네트워킹도 간단치가 않은데 한국에선 이마저도 폄하하기 바쁩니다. 모두 다 살리던가, 각개 전투면 모두 패배합니다.
저는 서재필 이승만 미국의 지한파 모두 소중한 동지들입니다.
이흥복조선 고종의 미국인 신분의 외교고문으로 있으면서 영어로만 말하고 쓰고, 해임될 때는 엄청난 돈을 위약금으로 요구하여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환산하면 수백억원에 이른다는 발표문도 있습니다.
Jaewon Chey고종과 민씨 척족이 서재필의 처자식은 물론 삼족을 멸했고 죽은 목숨처럼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인종 차별과 한계를 넘어 미국 국적도 취득하고 뮤리엘과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면 될 것을
박영효의 간곡한 부탁으로 빌어먹을 조선에 온 것입니다. 미국인이 영어를 쓰는 게 뭐가 문제죠? 처자식을 죽인 고종 새끼를 죽이지 않은걸 다행이라 생각해야죠
그리고 십년 계약을 고종 새끼가 해놓고 갑신정변 했다고 지금이라도 사형시키라는 상소와 압박에 밀려 해임을 했으면 조선 조정의 개같은 새끼들이 계약 파기에 따른 배상을 해야 할 게 아니에요?
그럼 계약을 파기하지 말던가
미국인이 아니면 죽였을 거잖아?
빌어먹을 조선 놈들은 대체 언제까지 서재필 선생에 대한 이런 말같지도 않은 편견의 필터를 쓰고 볼 겁니까? 그의 공적을 보라구요 자꾸 옹졸한데다 전근대적인 종족주의 적개심으로 매사를 보는 틀을 벗어 던지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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