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의 <군과 나>를 읽고 나니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한국군의 형성 과정을 회고록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은 한국전쟁이라는 파국 속에서 미군과의 협력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 과정이 마무리되자 백선엽은 장군직에서 은퇴하는 걸로 책이 마무리 된다. 예전에 분명히 읽었는데 그때는 왜 별 생각이 없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그의 간도특설대 경험이 녹아 있을줄 알고 책을 읽었다가 관련된 내용이 아예 없어서 하찮다 생각하고 치워두었던 듯하다. 이래서 책은 반복해서 봐야 하나보다.
아무튼 읽으면서 좌파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제대로 입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미군과 한국군이 주도한 군숙청, 여순사태, 제주 4.3 사건 등에 대한 이해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다. 내 입장과 비슷한 게 주철희의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이다. 동포에 대한 학살을 명령하는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역사로 여순항쟁을 해석한 역작인데 70%정도 동의가 된다. 남로당에 의한 조직적 반란이라는 맥락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된 건 그가 여순항쟁의 연장에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순항쟁을 진압하며 한국군은 그저 명령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따르게 되었다. 따르지 않으려는 이들은 반反국가세력, 즉 "빨갱이"로 불리며 실제로 학살을 당하였다.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전두환의 쿠데타 시도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광주항쟁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더 나아가 군부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주철희의 지적은 곱씹어볼 지점이 분명 있다.
이제는 아무도 진지하게 폭력혁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에 군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지 더 이상 논의할 곳이 없어져버렸지만 좌파정당은 최후에 군대를 장악해야 한다. 부르주아적 근대국가의 최후의 보루는 상비군 형태로 존재하는 군조직이다. 엥겔스가 최후에 이르러 상비군을 타파하고 인민총무장을 주장했던 것도, 레닌이 총력전을 혁명으로 바꾸자 했던 것도 군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민총무장 혹은 징병제 등의 "민주적인 군제도"를 통해 제어하려 했던 것이었다. 군부를 장악해서 쿠데타를 일으킨다든지 무장봉기를 한다든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군부와 결탁한 극우세력이 어떻게 노동조합 등을 무너뜨리는지는 오인석의 바이마르 공화국 분석이 잘 보여주고 있다. 군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제어 못한 독일 사민당은 끝내 군부에 기초하여 세력확장을 이룬 극우 보수 세력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과연 현재의 한국군은 "시민의 군대", 공화국의 군대, 민주주의의 군대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좌파 정당이 지지를 많이 모아서 "민주적"으로 혁명적인 변혁을 시도할 때 군부는 민의라며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쿠데타 등의 시도를 통해 저지하려 할 것인가. 백선엽의 <군과 나>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군의 형성과정 속에서 어떻게 민주주의 체제의 군대로서, 민의에 복종하는 군대로서 기능하지 않게 되는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우파편향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군대로 재편되었는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1920~40년대의 사회주의 사상사와 "남로당"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조선노동당과 박헌영을, 그리고 식민지기 사상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그 연장에서 군 내부로 침투했던 남로당 세력들을 제거한 숙군 사업의 의미를 단순히 '반공주의'적인 서사에서만 다루지 않고 복합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스스로의 무지와 무식을 이렇게 고백하는 게 뼈저리게 서글프다. 남로당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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