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살림의 경제학
강수돌 (지은이)인물과사상사2013
강수돌 교수는 기존의 경제경영학이 희소성의 명제로 생존경쟁과 기득권 경쟁을 조장할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생산요소로 취급한다고 비판한다. 그 안에서 인간과 자연은 노동력ㆍ인력ㆍ인적자원 혹은 자원ㆍ물적자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수돌 교수는 성장과 이윤을 지상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사다리 질서에 반대한다.
“기업이나 국가가 세계 경쟁에서 승리해서 많은 돈을 벌고, 그 일부를 임금이나 복지 형태로 보상받으면 정말 행복해지는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인격과 건강, 공동체, 생태계가 모두 파괴되어버리는데, 경제성장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반문한다.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을 추동하면서 온 세상을 하나의 공장, 하나의 시장, 하나의 돈벌이 공간으로 재편한다. 국경을 열기 위해 개방화, 규제를 피하기 위해 탈규제화, 공공 부문을 돈벌이 삼기 위해 민영화 및 사유화를 추진하고, 비용을 줄이고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 유연화를 무기로 전 세계를 자본의 제국으로 만든다. 그리고 저렴한 노동력과 원료, 에너지원을 찾는 한편, 새로운 판매 시장을 찾는다.
저자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자율적 생태공동체’, ‘대안 공동체’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체제는 최선의 경우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최악의 경우에는 ‘파시즘적’ 자본주의로 귀결될 거라고 보며, 마하트마 간디의 말대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본다.
목차
프롤로그: 돈벌이 패러다임에서 ‘승자’는 없다
제1부 자본주의의 끝에서 외치는 ‘살림의 경제학’
01 모든 인간이 ‘노동력’으로 평가되는 사회
아이의 탄생은 제2세대 노동력의 확충 23 | 학교는 ‘노동력’을 키우고 강화하는 공장 25 | 규율과 복종을 배우는 군대 28 | 노동능력이 떨어지면,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29 | 돈벌이 위주의 경제구조가 파괴하는 7가지 인간적 조건 34
02 인류 공멸과 자본주의의 치명적 오류
생산활동이 많아질수록 파괴활동도 커진다 44 | 자본이 노동에서 얻는 이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46 | ‘돈 놓고 돈 먹는’ 사회의 종말 49 | 자본주의의 종말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53 | 자본주의 돈벌이를 넘어서는 패러다임은 없을까? 61 | 인간의 욕구는 정말 무한한가? 64 | ‘줄이며 사는 것’도 방법이다 69
03 인간을 위한 경제논리와 살림의 경제학
살림의 경제에 필요한 5가지 근본 원칙 74 | 살림의 경제와 효율성 76 |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돕는 10가지 테제 79 | ‘살림의 경제’ 구축을 위한 방향성 86 |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실천 89
제2부 과도한 경쟁과 죽음을 부르는 시장 논리
04 죽음을 부르는 경쟁과 이윤의 법칙
경쟁 논리의 내면화 94 | 사회적 다윈주의와 사다리 질서 98 | ‘ADD 증후군’을 통해 본, 경쟁과 이윤의 그늘 101 | ‘원탁형 구조’가 절실하다 104
05 병든 사회를 부르는 부자강박증
한국 사회의 부자 열풍은 ‘집단 광기’ 110 | 2007년 태안사건과 돈벌이 경제의 비극 113 | 탐욕 시스템이 아닌 지속가능 시스템으로 120 | 경제성장이 인류 행복의 필수 조건인가? 124
06 한국의 집단적 일중독증과 성장중독증
한국 사회는 일중독 사회 128 | 일중독과 소비중독이라는 쌍두마차 132 | 일중독과 소비중독으로부터의 해방 134 | 개발주의와 신개발주의,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138 | 개발에 대한 국민적 환상과 성장중독증 143 | 녹색 사회로의 이행 148
제3부 허울 좋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07 초국적자본이 지배하는 인간성 상실의 세계화
세계화는 자립적 삶과 문화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158 | 자본의 세계화와 노동의 세계화: 이주노동의 문제 162 | 세계화는 비민주적 획일화 과정 164 | 세계화는 무한축적 본능과 생태계 파괴 169 | 바닥을 향한 경주와 저항의 세계화 175
08 생존경쟁을 가속화하는 한미 FTA
가장 무서운 건 ‘초국적자본’의 세계 지배 183 | 시장이 자유화될수록 인간의 삶은 부자유스럽다 187 | 자유무역의 자유는 돈벌이의 자유 191 | ‘세계화’를 빙자한 미국의 평화와 경제 번영 193
09 국민의 99%가 바라는 ‘복지사회’?
성장과 복지의 상관관계 199 | ‘참된 복지’란 무엇인가? 202 | 기존 복지국가의 물적 토대 비판 206 | 노동, 가치, 돈에 대한 성찰과 자율사회의 전망 211
제4부쪾죽임의 현실을 바꾸는 행복 경제학
10 돈벌이 패러다임과 살림살이 패러다임
대증요법 아닌 근본요법이 필요하다 222 | ‘배부른 임금 노예’에서 벗어나기 229 | 파이의 크기, 분배, 그리고 원천 232 | 살림의 경제학은 ‘삶의 식민화’에 대한 대안 236 | 삶의 구조를 바꾸는 ‘저항과 대안의 변증법’ 242 | 대안사회를 열기 위한 노동진영의 과제 245 | 체제 안정화 속의 진보운동을 넘어 249
11 희망을 만드는 ‘나부터’ 실천과 연대
지역사회와 마을에 주목한다 252 | 나부터 실천하는 밥상혁명 255 | 나부터 실천하는 교육혁명 260 | 나부터 실천하는 생활혁명 264 | 운동 간 소통과 연대가 절실하다(One No, Many Yeses!) 287 | 소통과 연대의 방법 292
에필로그: 인간다운 사회를 위하여 297
주 316
참고문헌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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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진정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돈벌이가 아닌 살림살이 관점으로 경제행위와 구조를 재창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사람들이 경제가치로부터 사회가치와 생명가치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로 바뀌어야 하며, 그래야만 만족과 충분함을 알면서도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하는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 새로운 사회경제 제도와 구조는 이같은 삶의 태도 위...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강수돌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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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2021년까지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경영학 분야는 물론, 경제, 정치, 사회, 노동, 심리, 교육, 생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좌우명 아래 공부한 것을 ‘나부터’ 실천하고자 한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생태 화장실을 사용하며 세 아이를 키웠다. 교수로 재직할 때 5년 동안 마을 이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쓴... 더보기
최근작 :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부디 제발>,<[큰글씨책] 자본과 국가 권력을 넘어 교육자치의 새 길을 찾다> … 총 1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삶의 모든 문제가 ‘돈’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
‘강한자만 살아남는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성찰과 대안 제시
“돈 때문에 일생을 노동에 바치지 않아도 되는 삶의 패러다임과 공생의 경제를 말한다”
- 살림의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욕구는 무한한가? 책에 써진 것처럼 모든 인간은 정말 평등하고, 모든 생명은 귀하게 대접받는가? 강수돌 교수는 기존의 경제경영학이 희소성의 명제로 생존경쟁과 기득권 경쟁을 조장할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생산요소로 취급한다고 비판한다. 현대의 경제학은 강자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자연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학문이며, 그 안에서 인간과 자연은 노동력ㆍ인력ㆍ인적자원 혹은 자원ㆍ물적자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수돌 교수는 성장과 이윤을 지상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사다리 질서에 반대한다. “기업이나 국가가 세계 경쟁에서 승리해서 많은 돈을 벌고, 그 일부를 임금이나 복지 형태로 보상받으면 정말 행복해지는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인격과 건강, 공동체, 생태계가 모두 파괴되어버리는데, 경제성장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반문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없으며 더 이상의 개발은 인류 공멸이자 자멸이라고 말한다. 살림의 경제학은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대안의 패러다임이다. 한마디로 자율적 생태공동체에서 상부상조하고 자급자족하며 ‘소박하게 줄이면서 살자’는 것인데, 저자는 이것이 경제(經濟, economy)의 본뜻인 ‘살림살이 경제학’이라고 말한다.
살림의 경제학이라는 개념은 칼 마르크스의 죽은 노동에 대비되는 ‘산 노동’, 마하트마 간디의 자립ㆍ자치의 경제인 ‘스와데시’, 이반 일리히의 ‘토착적 생계’, E. F. 슈마허의 ‘인간회복의 경제’, 김지하의 ‘살림의 미학’, B. 브란트의 ‘총체적 삶의 경제학’, H. 하이데의 ‘생동성 경제’, 김종철의 ‘땅의 옹호론’ 등을 밑거름으로 한다.― 73~74쪽
살림의 경제학에서는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중시하여 낭비와 파괴를 예방한다. 모든 것은 순환성의 원칙 아래 자연에서 나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원칙들이 실현되려면 지금까지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선성장-후분배론’을 극복함은 물론 ‘선분배-후성성장론’,‘성장과 분배 동시 추구론’까지 넘어가야 한다. 선진국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다. … 앞으로는 저성장, 저속도, 저소비, 간소함, 검소함, 다양성, 순환성, 관계성, 건강성 따위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런 기준들은 결국 일중독, 소비중독, 물질중독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며, 성장 지상주의, 과학기술 만능주의, 발전(개발) 지상주의, 현대화 맹신 등으로부터도 빠져나오는 것이다.― 87~88쪽
-인간과 자연을 죽이는 자본주의 알고리즘
1) 인간을 단지 노동력으로 본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한낱 노동력ㆍ인적자원에 불과한 인간은 한평생 돈과 일에 중독된 채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든 인간의 생명이 귀중하다는 대원칙은 어디까지나 이론에서만 그렇다. 현실에서는 노동력의 가치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고급 노동력의 죽음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만 뒷골목 마약 중독자나 가난한 노인의 죽음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선진국의 핵폐기물이 후진국으로 수출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아이의 탄생도 ‘제2세대 노동력 확충’이라는 관점으로 파악한다. 학교는 그런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훈련소이며 개인에게 쓸모 있는 노동능력,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세를 집중 교육하는 곳이다.
60세를 전후로 정년퇴직해 노동시장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면, 그때 개인에게 남는 것은 병든 몸과 황폐화된 정신뿐이다. 노동시장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사회적으로도 ‘무용지물’ 취급을 당한다. … 퇴직 이후 사람들은 ‘노후의 행복’을 위해 여유롭게 여행을 하거나 창조 활동에 종사할 기력이 없다. … 평생 일만 하며 살아왔던 까닭에 정년 이후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면 자아상실감이나 허탈감 속에 방황하기 일쑤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너나할 것이 인생을 헛살기 쉽다. 인간은 하나의 생산요소인 노동력으로 훈육되고, 그렇게 훈육된 인간은 모든 삶의 토대인 자연을 (또 다른 생산요소인) 자원으로 여겨 원료나 부품, 기계 따위로 가공하는 데 앞장선다. …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단순히 ‘인적자원’이나 ‘물적자원’으로 치환되어 자본에 의해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도구화되고 만다.― 32~34쪽
2) 자연을 단지 물적자원으로 본다
자본주의 체제는 바다와 땅, 물과 공기 등 자연을 단순히 상품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인식한다. 그 결과 세계 곳곳의 땅과 숲, 호수는 파헤쳐지고 개발되며, 곡식 종자는 벡텔이나 비방디와 같은 초국적기업들에 의해 과학의 이름으로 조작되고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된다. 놀라운 것은 대자연의 순환성을 파괴한 자본이 가장 먼저 이를 간파하고, 자연을 또다시 상품화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면서도, 그 오염의 위기를 이용해 물과 공기를 상품화한다. 공공재를 사유재로, 자연을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자본은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를 달성한다. 이러한 ‘비용의 사회화’는 사실상 모든 기업의 행위들에서 쉽게 관찰된다. 폐수나 폐유를 함부로 방출한다든지, 원로를 무단 채취하거나 대기오염을 시키는 일 따위다. 예컨대, 2008년 10월 5일 영국 신문 『더 선(The Sun)』에 따르면, 전 세계 약 1만 개의 스타벅스에서는 매장이 열린 동안 ‘위생상’ 수돗물을 계속 틀어놓아 하루 2300만 리터의 물이 소모된다. 자그마치 가뭄에 허덕이는 나미비아(아프리카 남서부)의 전 인구 200만 명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물이 그냥 버리지는 것이다. 런던 킹스 칼리지 교수인 폴 에킨스는 “그들이 2300만 리터의 물을 낭비한 것은 낭비하는 것과 절약하는 것 중 어느 게 이득인지 저울질한 결과다. 물과 그 물을 정화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자원에 대한 비용을 물리지 않은 것이다”라며 자본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비용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를 비판한다.― 116쪽
3)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더 강화한다
자본주의 체제와 사다리 질서는 ‘선착순 경쟁’, ‘사회적 다윈주의’를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 취업시험에 이르기까지 수백 번의 시험을 통해 생존 게임을 내면화하며 ‘일등만이 살 길’이라는 생존 법칙을 터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사회적 DNA는 이기적이고 경쟁적으로 만들어진다. 경쟁의 내면화는 ‘강자화의 동일시’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사회적 다윈주의도 마찬가지다.
슬픈 것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부자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굳게 믿는 점이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잘살 수 있다”, “우리도 하면 된다”,“선진국이 되면 모두 잘살게 된다” 따위를 믿으며 헛되이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 헛된 삶, 파괴에 동참하며 열심히 땀 흘리는 삶이야말로 안타깝게도 자본이 가장 원하는 바다.― 47쪽
가진 자의 의무라고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는 자본주의의 속성상 절대로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일부 기득권층이 행하는 자선 행위는 그 자체로 숭고할지는 모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기존의 사다리 질서만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자선이 사다리 질서는 물론 그 속의 경쟁관계와 지배관계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105~106쪽
4) 경제성장을 이유로 노동압박을 가한다
대부분 현대인들은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여유롭게 살지 못한다.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어쩔 수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삶을 산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습득한 태도를 자연스런 삶의 자세로 받아들인다. 특히 다양한 상벌 제도를 통해 강화되어 일정한 삶의 패턴으로 굳어지는데, 예를 들어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야간자율학습과 야근을 당연시하도록 만든다. 몸에 배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건 ‘성장과 발전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중독과 소비중독, 알콜중독을 유발한다. 내면의 참된 욕구가 건강하게 충족되지 못해 생긴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강박적으로 일에 매달리게 되고, 일에 대한 고통을 잊기 위해 쇼핑이나 술 등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1인당 국민소득 몇 만 달러가 되어야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까? “국민 여러분,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 이제는 우리도 잘살게 되었으니, … 오늘부터는 정말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십시다. 하루에 일도 서너 시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또 아이들이나 이웃과 즐겁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시길 빕니다”라고 말이다. … 지금의 경제 패러다임 안에서는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 지금의 경제 패러다임이야말로 끊임없이 목표치를 상향조정하고 백성의 일상적 행복을 뒤로 유예시키면서 온 백성을 생산성 향상 게임에 동원해야지만 겨우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223~224쪽
-초국적자본과 세계화 “아프리카는 원래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다”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을 추동하면서 온 세상을 하나의 공장, 하나의 시장, 하나의 돈벌이 공간으로 재편한다. 국경을 열기 위해 개방화, 규제를 피하기 위해 탈규제화, 공공 부문을 돈벌이 삼기 위해 민영화 및 사유화를 추진하고, 비용을 줄이고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 유연화를 무기로 전 세계를 자본의 제국으로 만든다. 그리고 저렴한 노동력과 원료, 에너지원을 찾는 한편, 새로운 판매 시장을 찾는다.
이런 세계화 과정에서 굶주림이 해소되기보단 오히려 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1995~1997년과 1999~2001년 사이에 굶주리는 사람 수가 무려 1800만 명이나 늘었다. 사실은 오늘날 굶주림의 대명사가 된 아프리카도 원래는 그 정도로 열악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농업은 약 500년 전인 16세기부터 유럽의 식민 세력들에 의해 식량 대신 커피, 설탕, 면화 등 환금 작물 재배를 강요당한 결과 체계적으로 파괴되었다.
J. 페트라스와 H. 벨트마이어는 세계화라는 용어조차 ‘세국(주의)’를 은폐하는 ‘헛소리’라 보며, 세계화는 결국 새로운 국제적 자본가들의 ‘계급 프로젝트’라 규정한다. 자본의 세계화 과정은 생산력의 발전ㆍ심화가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착취하고 높은 이윤을 위한 지역을 찾아내려는 시도다. 제국주의 세계화에 의해 삶의 다양성이 범지구적으로 파괴되는 전형적 사례를 맥도날드의 세계화에서 볼 수 있다. 맥도날드 문화는 한마디로 사람들이 배고픔을 느낄 때 그 나라 고유의 밥을 생각하기보다는 통일적으로 맥도날드 햄버거를 생각하게 만든다. 목마를 때는 코카콜라를, 놀이동산에 가고 싶을 때는 디즈니랜드를, 만화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디즈니 만화를 보고 싶게 하는 것이다.― 165쪽
-지역사회와 마을공동체가 희망의 대안이다
강수돌 교수는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명제에도 오류가 있다고 본다. 선진 강대국의 지배층과 그들에 봉사하는 학자들의 위선과 기만을 폭로한다는 점에서는 역작임에 틀림없지만, ‘너도 올라갔으니, 나도 올라가겠다’는 식은 참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자율적 생태공동체’, ‘대안 공동체’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체제는 최선의 경우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최악의 경우에는 ‘파시즘적’ 자본주의로 귀결될 거라고 보며, 마하트마 간디의 말대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본다.
나는 기존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모두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근원적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 자신의 외면과 내면의 통일까지도 이룰 수 있는 대안적 시스템이 바로 자율적 생태공동체라 본다. 지역은 그러한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 단위이다. 이런 점에서 지역의 먹거리를 둘러싸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는 생협 운동, 지역 주민들이 우애와 호혜의 원칙 아래 상부상조하는 지역화폐 운동, 지역의 아이들이 살아있는 학습을 할 수 있는 마을학교 또는 대안교육 운동, 사라지는 인간관계 및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각종 마을 만들기 운동 등은 지역을 기초로 경제와 사회를 동시에 살리려는 소중한 실험들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학생운동 등 여러 운동 단위들은 지역과 마을을 새로운 구심점으로 정치경제적 민주화, 사회문화적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마을이나 지역으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은 그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 과정이자 삶의 희망을 만드는 운동이 될 것이다.― 254~255쪽 접기
‘강한자만 살아남는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성찰과 대안 제시
“돈 때문에 일생을 노동에 바치지 않아도 되는 삶의 패러다임과 공생의 경제를 말한다”
- 살림의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욕구는 무한한가? 책에 써진 것처럼 모든 인간은 정말 평등하고, 모든 생명은 귀하게 대접받는가? 강수돌 교수는 기존의 경제경영학이 희소성의 명제로 생존경쟁과 기득권 경쟁을 조장할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생산요소로 취급한다고 비판한다. 현대의 경제학은 강자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자연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학문이며, 그 안에서 인간과 자연은 노동력ㆍ인력ㆍ인적자원 혹은 자원ㆍ물적자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수돌 교수는 성장과 이윤을 지상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사다리 질서에 반대한다. “기업이나 국가가 세계 경쟁에서 승리해서 많은 돈을 벌고, 그 일부를 임금이나 복지 형태로 보상받으면 정말 행복해지는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인격과 건강, 공동체, 생태계가 모두 파괴되어버리는데, 경제성장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반문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없으며 더 이상의 개발은 인류 공멸이자 자멸이라고 말한다. 살림의 경제학은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대안의 패러다임이다. 한마디로 자율적 생태공동체에서 상부상조하고 자급자족하며 ‘소박하게 줄이면서 살자’는 것인데, 저자는 이것이 경제(經濟, economy)의 본뜻인 ‘살림살이 경제학’이라고 말한다.
살림의 경제학이라는 개념은 칼 마르크스의 죽은 노동에 대비되는 ‘산 노동’, 마하트마 간디의 자립ㆍ자치의 경제인 ‘스와데시’, 이반 일리히의 ‘토착적 생계’, E. F. 슈마허의 ‘인간회복의 경제’, 김지하의 ‘살림의 미학’, B. 브란트의 ‘총체적 삶의 경제학’, H. 하이데의 ‘생동성 경제’, 김종철의 ‘땅의 옹호론’ 등을 밑거름으로 한다.― 73~74쪽
살림의 경제학에서는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중시하여 낭비와 파괴를 예방한다. 모든 것은 순환성의 원칙 아래 자연에서 나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원칙들이 실현되려면 지금까지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선성장-후분배론’을 극복함은 물론 ‘선분배-후성성장론’,‘성장과 분배 동시 추구론’까지 넘어가야 한다. 선진국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다. … 앞으로는 저성장, 저속도, 저소비, 간소함, 검소함, 다양성, 순환성, 관계성, 건강성 따위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런 기준들은 결국 일중독, 소비중독, 물질중독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며, 성장 지상주의, 과학기술 만능주의, 발전(개발) 지상주의, 현대화 맹신 등으로부터도 빠져나오는 것이다.― 87~88쪽
-인간과 자연을 죽이는 자본주의 알고리즘
1) 인간을 단지 노동력으로 본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한낱 노동력ㆍ인적자원에 불과한 인간은 한평생 돈과 일에 중독된 채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든 인간의 생명이 귀중하다는 대원칙은 어디까지나 이론에서만 그렇다. 현실에서는 노동력의 가치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고급 노동력의 죽음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만 뒷골목 마약 중독자나 가난한 노인의 죽음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선진국의 핵폐기물이 후진국으로 수출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아이의 탄생도 ‘제2세대 노동력 확충’이라는 관점으로 파악한다. 학교는 그런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훈련소이며 개인에게 쓸모 있는 노동능력,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세를 집중 교육하는 곳이다.
60세를 전후로 정년퇴직해 노동시장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면, 그때 개인에게 남는 것은 병든 몸과 황폐화된 정신뿐이다. 노동시장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사회적으로도 ‘무용지물’ 취급을 당한다. … 퇴직 이후 사람들은 ‘노후의 행복’을 위해 여유롭게 여행을 하거나 창조 활동에 종사할 기력이 없다. … 평생 일만 하며 살아왔던 까닭에 정년 이후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면 자아상실감이나 허탈감 속에 방황하기 일쑤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너나할 것이 인생을 헛살기 쉽다. 인간은 하나의 생산요소인 노동력으로 훈육되고, 그렇게 훈육된 인간은 모든 삶의 토대인 자연을 (또 다른 생산요소인) 자원으로 여겨 원료나 부품, 기계 따위로 가공하는 데 앞장선다. …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단순히 ‘인적자원’이나 ‘물적자원’으로 치환되어 자본에 의해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도구화되고 만다.― 32~34쪽
2) 자연을 단지 물적자원으로 본다
자본주의 체제는 바다와 땅, 물과 공기 등 자연을 단순히 상품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인식한다. 그 결과 세계 곳곳의 땅과 숲, 호수는 파헤쳐지고 개발되며, 곡식 종자는 벡텔이나 비방디와 같은 초국적기업들에 의해 과학의 이름으로 조작되고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된다. 놀라운 것은 대자연의 순환성을 파괴한 자본이 가장 먼저 이를 간파하고, 자연을 또다시 상품화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면서도, 그 오염의 위기를 이용해 물과 공기를 상품화한다. 공공재를 사유재로, 자연을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자본은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를 달성한다. 이러한 ‘비용의 사회화’는 사실상 모든 기업의 행위들에서 쉽게 관찰된다. 폐수나 폐유를 함부로 방출한다든지, 원로를 무단 채취하거나 대기오염을 시키는 일 따위다. 예컨대, 2008년 10월 5일 영국 신문 『더 선(The Sun)』에 따르면, 전 세계 약 1만 개의 스타벅스에서는 매장이 열린 동안 ‘위생상’ 수돗물을 계속 틀어놓아 하루 2300만 리터의 물이 소모된다. 자그마치 가뭄에 허덕이는 나미비아(아프리카 남서부)의 전 인구 200만 명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물이 그냥 버리지는 것이다. 런던 킹스 칼리지 교수인 폴 에킨스는 “그들이 2300만 리터의 물을 낭비한 것은 낭비하는 것과 절약하는 것 중 어느 게 이득인지 저울질한 결과다. 물과 그 물을 정화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자원에 대한 비용을 물리지 않은 것이다”라며 자본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비용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를 비판한다.― 116쪽
3)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더 강화한다
자본주의 체제와 사다리 질서는 ‘선착순 경쟁’, ‘사회적 다윈주의’를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 취업시험에 이르기까지 수백 번의 시험을 통해 생존 게임을 내면화하며 ‘일등만이 살 길’이라는 생존 법칙을 터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사회적 DNA는 이기적이고 경쟁적으로 만들어진다. 경쟁의 내면화는 ‘강자화의 동일시’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사회적 다윈주의도 마찬가지다.
슬픈 것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부자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굳게 믿는 점이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잘살 수 있다”, “우리도 하면 된다”,“선진국이 되면 모두 잘살게 된다” 따위를 믿으며 헛되이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 헛된 삶, 파괴에 동참하며 열심히 땀 흘리는 삶이야말로 안타깝게도 자본이 가장 원하는 바다.― 47쪽
가진 자의 의무라고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는 자본주의의 속성상 절대로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일부 기득권층이 행하는 자선 행위는 그 자체로 숭고할지는 모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기존의 사다리 질서만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자선이 사다리 질서는 물론 그 속의 경쟁관계와 지배관계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105~106쪽
4) 경제성장을 이유로 노동압박을 가한다
대부분 현대인들은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여유롭게 살지 못한다.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어쩔 수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삶을 산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습득한 태도를 자연스런 삶의 자세로 받아들인다. 특히 다양한 상벌 제도를 통해 강화되어 일정한 삶의 패턴으로 굳어지는데, 예를 들어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야간자율학습과 야근을 당연시하도록 만든다. 몸에 배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건 ‘성장과 발전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중독과 소비중독, 알콜중독을 유발한다. 내면의 참된 욕구가 건강하게 충족되지 못해 생긴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강박적으로 일에 매달리게 되고, 일에 대한 고통을 잊기 위해 쇼핑이나 술 등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1인당 국민소득 몇 만 달러가 되어야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까? “국민 여러분,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 이제는 우리도 잘살게 되었으니, … 오늘부터는 정말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십시다. 하루에 일도 서너 시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또 아이들이나 이웃과 즐겁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시길 빕니다”라고 말이다. … 지금의 경제 패러다임 안에서는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 지금의 경제 패러다임이야말로 끊임없이 목표치를 상향조정하고 백성의 일상적 행복을 뒤로 유예시키면서 온 백성을 생산성 향상 게임에 동원해야지만 겨우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223~224쪽
-초국적자본과 세계화 “아프리카는 원래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다”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을 추동하면서 온 세상을 하나의 공장, 하나의 시장, 하나의 돈벌이 공간으로 재편한다. 국경을 열기 위해 개방화, 규제를 피하기 위해 탈규제화, 공공 부문을 돈벌이 삼기 위해 민영화 및 사유화를 추진하고, 비용을 줄이고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 유연화를 무기로 전 세계를 자본의 제국으로 만든다. 그리고 저렴한 노동력과 원료, 에너지원을 찾는 한편, 새로운 판매 시장을 찾는다.
이런 세계화 과정에서 굶주림이 해소되기보단 오히려 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1995~1997년과 1999~2001년 사이에 굶주리는 사람 수가 무려 1800만 명이나 늘었다. 사실은 오늘날 굶주림의 대명사가 된 아프리카도 원래는 그 정도로 열악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농업은 약 500년 전인 16세기부터 유럽의 식민 세력들에 의해 식량 대신 커피, 설탕, 면화 등 환금 작물 재배를 강요당한 결과 체계적으로 파괴되었다.
J. 페트라스와 H. 벨트마이어는 세계화라는 용어조차 ‘세국(주의)’를 은폐하는 ‘헛소리’라 보며, 세계화는 결국 새로운 국제적 자본가들의 ‘계급 프로젝트’라 규정한다. 자본의 세계화 과정은 생산력의 발전ㆍ심화가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착취하고 높은 이윤을 위한 지역을 찾아내려는 시도다. 제국주의 세계화에 의해 삶의 다양성이 범지구적으로 파괴되는 전형적 사례를 맥도날드의 세계화에서 볼 수 있다. 맥도날드 문화는 한마디로 사람들이 배고픔을 느낄 때 그 나라 고유의 밥을 생각하기보다는 통일적으로 맥도날드 햄버거를 생각하게 만든다. 목마를 때는 코카콜라를, 놀이동산에 가고 싶을 때는 디즈니랜드를, 만화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디즈니 만화를 보고 싶게 하는 것이다.― 165쪽
-지역사회와 마을공동체가 희망의 대안이다
강수돌 교수는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명제에도 오류가 있다고 본다. 선진 강대국의 지배층과 그들에 봉사하는 학자들의 위선과 기만을 폭로한다는 점에서는 역작임에 틀림없지만, ‘너도 올라갔으니, 나도 올라가겠다’는 식은 참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자율적 생태공동체’, ‘대안 공동체’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체제는 최선의 경우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최악의 경우에는 ‘파시즘적’ 자본주의로 귀결될 거라고 보며, 마하트마 간디의 말대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본다.
나는 기존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모두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근원적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 자신의 외면과 내면의 통일까지도 이룰 수 있는 대안적 시스템이 바로 자율적 생태공동체라 본다. 지역은 그러한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 단위이다. 이런 점에서 지역의 먹거리를 둘러싸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는 생협 운동, 지역 주민들이 우애와 호혜의 원칙 아래 상부상조하는 지역화폐 운동, 지역의 아이들이 살아있는 학습을 할 수 있는 마을학교 또는 대안교육 운동, 사라지는 인간관계 및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각종 마을 만들기 운동 등은 지역을 기초로 경제와 사회를 동시에 살리려는 소중한 실험들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학생운동 등 여러 운동 단위들은 지역과 마을을 새로운 구심점으로 정치경제적 민주화, 사회문화적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마을이나 지역으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은 그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 과정이자 삶의 희망을 만드는 운동이 될 것이다.― 254~255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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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특별한 것은 세상과 삶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와 삶에서의 치열한 실천
솜다리 2010-12-01 공감 (1) 댓글 (0)
이해하기 쉬운 좌파적 삶에 대해 매혹당하다..ㅋㅋ
사복 2009-07-1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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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삶에 대한 근원적 문제 제기
이 책은 행복에 관한 책이다. 저자 강수돌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음에 분명하다. 『살림의 경제학』은 이 사회가 사람들의 행복을 어떻게 가로막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있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대안까지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이장이자 교수인 강수돌은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음에도 마음이 편안했던 것은 아니다.
진실을 마주 대해야 했고, 진실이란 때로 크나큰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십 년 대한민국은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어떤 자는 선거 공약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내걸었으니 선진국이 꿈만은 아닌 모양이다. 길거리에 자동차가 넘쳐 주차장이 돼있고 배고픔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옷이며 가구 등 생필품들은 멀쩡한 것들이 쓰레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참 ‘풍요로운’ 시대이다.
반면에, 북극의 얼음은 다 녹아가고 있고 기후 변화로 지구촌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화석 에너지에 기초한 사회경제 시스템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뿐인가? 이 순간에도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한명씩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과 자영업자들은 날이 갈수록 더 힘들기만 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경제성장에 걸맞게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행해져만 간다.
왜인가?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죽임의 경제’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수많은 근거들을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생산성이란 경향적으로 파괴성의 생산성이며, 근본 이유는 그것이 필요(살림살이)의 경제가 아니라 이윤(돈벌이)의 경제인 까닭이다.
따라서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더 치명적인 파괴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이다.
이것은 발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실 우리 자신 역시 이 죽임의 경제에서 조력자로서 기능하고 있다. 사회경제시스템과 교육, 문화 등 사회적 구조가 자본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노동력의 생산에 기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결정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 사회에 살면서 경쟁의 사다리 질서에 순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의 논리, 죽임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중독과 소비중독은 일상이 되었고 개발의 논리에 저항할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온 국민의 뇌리를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이제 가난은 죄악이 되고 말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이 죽임의 경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우리 자신이 이 패러다임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해서 ‘살림의 경제’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은 이미 숱한 세월 동안 수없이 제시되어 왔다. 그것은 주로 소유와 권력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대립은 자본과 노동으로부터 비롯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수돌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넘어 자본과 생태의 대립을 오히려 더 중요한 관계로 본다. 노동 자체도 상당 부분 이미 자본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동차가 더 많이 팔릴수록 좋다고 보지만 그것은 생태적 관점에서는 파괴를 증폭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다름과 같은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본의 질서 안에서 ‘배부른 임금노예’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미래의 희망으로 들고 있는 것은 ‘자율적 생태공동체’ 또는 ‘대안공동체’이다. 농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핵심산업이다. 소농은 ‘쁘띠 부르주아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주체세력이다.
또한 저자는 대의정치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는다. 위로부터의 정치, 대규모를 지향하는 정치, 중앙 권력자에 의해 대리되는 정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운동, 소규모 연결망 운동, 분권과 자치의 운동을 추구한다.
저자는 ‘마을’을 새로운 살림살이의 출발로서 설정하고 있다. 삶의 뿌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강수돌 교수가 이장으로서 전개해온 운동은 이에 대한 명확한 사례였던 셈이다.
이밖에 ‘나부터’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영역으로는 생협운동, 대안교육운동, 귀농운동, 마을공동체운동, 대안화폐운동, 대안에너지운동, 노동자기업운동, 공정무역운동, 대안세계화운동 등을 들고 있다.
이 운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계급계층 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통과 연대야말로 이 운동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다. 강수돌은 이와 관련해서도 상단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은 서술은 그의 연구와 실천으로부터 비롯된 고뇌와 지혜를 표현하고 있다.
“분노와 증오는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우정과 환대, 소통과 연대, 애정과 유대야말로 해결의 실마리다. 이를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고 토론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만들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아직도 희망은 있다!”
이 대목에서 내가 불편했던 연유를 말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저자 강수돌 교수는 우리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화석에너지 경제를 당연한 것으로, 물질문명의 총화로서 그 편리함에 취해 있다. 걷기보다는 자동차, 그것도 혼자서 승용차를 타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밤의 어둠에 익숙치 않고 대낮처럼 밝은 전등불이 있어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일상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죽임의 경제를 24시간 실천하고 있다.
물론 착한 설탕에 착한 커피 마시며 세상에 기여하고 있노라고 자위하고 있기도 하다. 강수돌은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이 완전하게 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이념세대다. 권력에 대한 항거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었고 실제로 세상이 조금 변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듯이 선거는 대중의 교육 공간이라는 경험이 온전히 잘못되었다고는 아직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반면에 대의정치에 맛을 들여 정치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고 삶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에 소홀했던 것도 아프지만 사실인 것 같다. 이른바 ‘강남좌파’란 신조어가 왜 나왔겠는가? 강남좌파는 강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소화하지 못했다. 긴 시간을 두고 되새김질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도 당장 약효가 적지 않음을 느낀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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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들 2009-07-0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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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경제로 가는 길, 평탄하진 않으나 분명한 길
칼 폴라니는 경제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는 근대적 경제학이 추상화한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살림살이를 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여 인간의 살림살이(human livelihood)라는 책을 저술했다. 저자 강수돌은 경제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살림의 경제학이라고 책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일중독에서 벗어나기 라는 책에서 이미 현대 경제의 문제점이 인간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드는 생산과 소비 구조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단계를 넘어서 대안을 제시하며, 특히 경제위기를 맞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영 전체와 그 중에서도 문제가 큰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 제시를 위해 쓴 책으로 보인다.
그는 전문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언어로 건강한 삶을 지켜줄 수 있는 경제의 형태를 말해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단위로 하는 경제라는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여 대규모 토목건설사업을 하고 대단위 시설을 만드는 케인즈식 경기부흥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복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서로 대면할 수 있는 마을 단위, 지역단위에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공공 서비스와 지역단위의 자급자족체계가 기본이 될 때 그 경제는 인간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하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의 경제위기 시대는 지금의 경제운용 구조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좋은 기회이고 이 기회를 밤낮 허리띠 졸라매고 노력봉사하여 넘긴다고 해서 사람이 사는 그런 경제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지치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경쟁구조는 더 사람을 왜소화시키고 소모품화시킬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경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형태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 명쾌한 진실이다. 지금의 경제가 그런 목표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그런 경제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듯이 친절한 언어로 풀어나간 이 책은 그런 분명하고 선한 뜻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 진실되고 평이한 글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머리가 맑게 정리되는 것을 느끼며 주위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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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dust 2009-04-0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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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자고 일하는 이유는... '살자고' 하는 거 아닌가...
결혼을 결심한 연인들은 둘이 같이 살면 행복하게 잘살게 될 거라 믿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살아보면 알게 된다. 살아본 분들은 이미 다 알겠지만 그게 쉽잖다...
돈, 그 자체가 중심이고 핵심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지만, 그걸 먼저 내놓고 비워야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모두가 가진 자로서의 삶을 살면 행복할 거라 믿고 그것을 향해 내달리는 데, 그걸 하지 말고 다른 길을 가자 하니 쉽게 따라나설 수 없다. 나도 번듯한 집을 소유하고 싶고, 새 자동차를 사고 싶다. 그러려면 튼튼한 쇠가죽 허리띠를 장만해야 한다. 이 질긴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졸라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해도 번듯한 집을 소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을 이장이자 대학교수인 강수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데 있어서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현실적인' 대안들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미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도 같이 동참하자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죽자고 일하는 게 아니라 살자고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가 선택한' 대통령이 우리에게 부족한 돈을 채워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기 주머니 채우기에 바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이 책은 돈에서 좀 벗어나자는 쪽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데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채우자는 것이다. 각 개인의 욕망이 모여 지금의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도 우리다. 촛불을 100만 명이 들어도 꿈쩍하지 않는다면 1000만 명이 들면 눈치는 볼 것이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해서 월급을 조금 더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구조를 바꿔보자는 마음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욕심 탓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걱정된다면, 나부터 그 길을 그만 가야 한다. 나 또한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한 명임은 분명하다. 모두가 가고 있는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가는 건 어렵다. 이 어렵고 두려운 길을 하나 둘 같이 갈 수 있다면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책들을 읽으면서 좀 불편했었다. 뭐냐면, 우리도 지금의 선진국처럼 되고자 졸라 열심히 하는데 이 선진국들이 지들은 먼저 이뤄서 잘 사는데, 뒤따라 올라가려는 우리는 못 올라오게 막고 있다는 거다. 이것에 대해 강수돌 교수는 전에 없는 새로운 얘기를 하기보다 지금의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길을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너도 올라갔으니, 나도 올라가겠다'는 식은 참된 대안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대안은 '네가 올라간 곳이나 길이 잘못되었으므로 나는 전혀 다른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죽임의 길이 아니라 '살림의 길' 말이다."
나는 지금부터 뭘 해야 하나? 행복한 삶을 위한 즐거운 고민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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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보(드)는곤 2012-02-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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